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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인간 - 인간 억압 조건에 관한 철학 에세이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지음, 허경.양진성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핫한 이슈로 떠오른 단어 중에 하나가 ‘하우스 푸어(House Poor)', ’워킹 푸어(Working Poor)'다. 집 한 채만 가지고 있을 뿐 제대로 된 경제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과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노력을 해도 가계생활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다.
최근 미국 월가 점령 사건이나 그리스 등 유럽 국가들의 부도 사태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닌가 한다. 이런 현상들은 대부분 20세기 후반에 나타났다. 많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이는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남겨준 상흔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부채인간은 그와 같은 신자유주의와 연관되어 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이지 않은 모든 것들, 즉 사회적인 것, 개인적인 것, 도덕적인 것, 정치적인 것을 모조리 경제적 효용가치로 환원시켜 버린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 원리가 바로 채무자-채권자 관계다. 그리고 ‘빚’이라는 ‘원죄’를 진 인간, 즉 ‘부채인간’의 형상이 여기서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까지 알고 지내온 경제학적인 지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상당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우리는 매일 매일 신용카드를 쓰면서 빚을 지고 있고,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주택담보 대출을 이용하고 있으며, 최근 반값 등록금으로 문제되고 있는 학자금 대출을 받고 있는 등 우리의 생활 전체가 크고 작은 빚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빚으로 인해 우리는 마치 죄인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바로 이 점에 주목을 하고 신자유주의는 부채를 통해 개인의 도덕과 양심, 그리고 일상 통제하며 그것이 개인의 자발인 선택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부채인간들은 빚이라는 죄를 지고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앙띠 오이디푸스’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대출과 은행’, ‘자본’, 니체의 ‘도덕의 계보’,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등을 통해 부채인간의 생산 과정에 대해 들려준다. 솔직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내용이다. 책 분량이 얼마되지 않지만 경제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철학적 개념을 빌려서 이야기함으로 인해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책을 다 읽으면 부채는 단순한 개인과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는 구조와 권력의 문제이며, 인식과 투쟁의 문제다. 부채는 단순히 개인과 개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최근 국가 부도 사태를 맞고 있는 그리스에 대해서도 부채를 안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이제까지와 달리 그리스라는 나라 자체를 안좋은 쪽으로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 국민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빚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빚을 갚거나 아니면 파산신청 내지 개인회생신청을 한다고 해서 빚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 같다. 부채인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채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협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부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경제적인 것이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어떻게 하면 부채라는 것이 개인을 통제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부채가 죄악은 아니다. 누구나 살다보면 부채를 떠안을 수 있다. 이를 어떻게 현명하게 헤쳐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부채를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 본 색다른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