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아침 산책.
한 철을 살면서도 풀들은 이토록 성실하고 완벽하게 삶을 산다. - P81

환자의 주체성은 패러독스의 논리를 필요로 한다. 생의 근원적 덧없음과 생의 절대적 존재성, 그 사이에서 환자의 주체성은 새로운 삶의 영토를 연다.
- P83

사랑한다는 것이다. 생 안에는 모든 것들이 충만하다. 눈물도 가득하고 사랑도 가득하다. 왜 생 안에 가득한 축복과 자유들을 다 쓰지 못했던가.
- P85

잘 헤어지고 잘 떠나보내는 일이 중요하다. 미워하지는 않지만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이 있다. 그것들과의 불가능한 사랑이 필요하다. - P90

아침 산책. 또 꽃들을 둘여다본다.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 - P97

지금 살아 있다는 것 – 그걸 자주 잊어버린다. - P103

선택은 쉽지 않고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그건 어느 쪽이든 나의 삶은 온전히 나에게 맡겨졌다는 것. 이제 나는 오로지 나에게만 속하는 단독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 P109

문득 차라투스트라의 한 문장: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인간은 무르익어 죽는다. 온세상이 가을이고 하늘은 맑으며 오후의 시간이다." 무르익은 것은 소멸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두가 무르익었다. 니체는 그 순간을 ‘조용한 시간‘이라고 불렀다. 조용한 시간-그건 또한 거대한 고독의 순간이다. 사람은 이 난숙한 무화과의 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 평생을 사는가.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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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시골집에서 며칠을 머물던 어느 겨울날,
들판 건너편의 오래 비어 있는 폐가를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 마을의 풍경이 어떻게든 지금의 나를 이루었겠구나, 하고. 
- P230

그러니 사라져가는 것, 망가지고 부서진 것, 이제는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어떤 것들을 가만히 응시하는 일에 대해 이유를 묻는다면, 아직 그것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없다. 
- P232

그런 생각 끝에는 늘, 가고 싶은 데는 되도록 가보며 살자는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디에 가고 싶은지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것도, 나를 마침내 그곳에 데려갈 사람도 결국은 나밖에 없다. 우리는 후회를 늘리려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 
(중간생략)
가보고 싶은 곳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아직 오지 않은 무수한 오늘들은 살아볼 만한 날들이 되기 때문이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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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처럼 사는 일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다. 저무는 해가 아쉽게 느껴지는 날이라면, 잘 살아낸 하루일 것이다. 그런 하루가 모이고 모여 삶을 이룬다면, 그것은 잘 살아낸 삶일 것이다.
- P205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바다는 늘 달랐다. 내가 보는 바다는 사실이 세계를 채우고 있는 단 하나의 바다일 뿐인데, 매번 다른 바다에 당도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것은 꼭 시간에 대한 은유 같기도 했다. 삶이란 수많은 날들로 이어져 있지만, 우리는 매일 아침 새로운 하루에 도착한다는 점에서.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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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그렇게 될 줄 미리 알고는 있었소만, 로디온 로마니치, 당신은 방금 나를 놀라게 했소. 당신이 내게 타락과 미학에 대해 논하다니! 당신은 실러요, 당신은 이상주의자예요! 물론 그 모든 게 마땅히 그래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놀랍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현실에선 이상하게 여겨지는구려...... 
- P313

긴 이야기지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 당신에게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소만, 여기엔 일종의 이론 같은 게 존재하는데, 그에 따르면 가령 주목적이 훌륭하다면 한 가지 악행 정도는 허용될 수 있다는 것과 똑같은 이치요. 한 가지 악행과 백 가지 선행! 
- P343

다시 말해, 아주 많은 천재적인 사람들이 개개의 악에 아랑곳하지도,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걸 넘어섰다는 사실이 오빠를 특히 매료시킨 거요. 오빠는 자기도 천재적인 사람이라 상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때 그렇게 확신했던 거지요. 하지만 자기가 이론은 만들어낼 줄 알지만, 아무 생각 없이 선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 따라서 천재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몹시 괴로워했고,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소. 뭐, 자부심을 가진 청년에겐 정말 굴욕적일 수 있지요, 우리 시대에는 특히나......
- P344

"이런 미국에 가려는 사람이 비를 두려워하다니요, 허허! 잘 있어요.
소피야 세묘노브나, 정다운 사람! 오래오래 사시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거요. 참...... 라주미힌 씨에게 내가 안부 전하더라고 말해주시오. 아르카디 이바노비치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인사드린다, 이렇게 말이오. 꼭입니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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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건 어떤지요. 사람을 죽이고도 자신을 정직한 사람이라 여기고 사람들을 경멸하며 창백한 천사처럼 돌아다니다니요 아닙니다. 이게 어떻게 미콜카란 말입니까, 친애하는 로디온 로마니치, 이건 미콜카가 아닙니다!
- P289

믿을수 없다는 건 압니다만, 교활하게 머리를 굴리지는 마세요. 생각하지말고 그냥 삶에 몸을 던지세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금방 해안가에 이르러 두 발로 서게 될 겁니다. 어떤 해안가냐고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난 단지 당신에게 삶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걸 믿을 뿐입니다. 지금 내 말을 줄줄 외운 지루한 설교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건 압니다. 그래요, 하지만 나중에 기억이 나서 언젠가 도움이 될지 모르잖아요. 그때를 위해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P295

"대체 어디로 그렇게 서두르시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호기심에 찬눈길로 그를 살피며 물었다.
"각자 자신의 길이 있는 법이니까요." 라스콜니코프는 음울하고 초조한 어투로 말했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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