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민음의 시 298
정재율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산뜻하다, 는 형용사는 어떤 감각을 담고 있을까. 산뜻하다는 말의 반대편에 있는 형용사들을 떠올려보자. 끈적하다, 더럽다, 무겁다, 답답하다. 어떠한 감각의 과잉의 순간의 반대편에서 우리는 산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인식되는 감각인 셈이다. 이렇듯 산뜻하다는 말은 부재(不在)함에 대한 감각이다.

그러나 '자극-감각-인지'로 이어지는 인간의 인지 체계에서 감각은 본디 어떠한 존재로 인한 자극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존재가 없이 우리는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까. 무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인지되기 위해선 그 전에 어떠한 감각이 선행되어야 할까.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는 이러한 부재에 대한 인간의 감각을 탐구한다. 누군가의 부재로 인한 죽음과 애도를 담은 기존 시들의 세계를 넘어, 정재율은 부재 그 자체를 감각하는 언어를 모색한다.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먼저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나의 발을 가져다 대 보"('끝과 시작')을 함께 따라가본다.


#2.

존재하지 않는다, 는 감각은 존재하는 것을 감각해본 자들만이 느낄 수 있다. 존재했지만 지금은 부재한 것들 앞에서 우리는 "유실에 대해 생각해 본"('고해성사')다. 부재를 감각하는 것은 유실(遺失)을 감각하는 것이다.

있었던 것의 부재를 감각하는 것은 흑백영화를 관람하는 행위를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 "흑백이 된 나는/ 색이 있는 널 사랑해야 하"('프랑스 영화처럼'), 해변을 걸으며 너와 "다음 신에서 만나"는 순간을 준비하기 위해 주웠던 조약돌도 "모두 다 흑백이었다"('영화와 해변'). 컬러영화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흑백영화는 그 자체로 완전한, 어느 것도 부재하지 않다. 영화 속에서 색채를 경험해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흑백영화 속 부재하는 색채의 감각을 인지할 수 있다. "본 적 없는 눈이 가장 깨끗하다고 믿는 것처럼"('축복받은 집')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부터는 부재함을 감각할 수 없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부재의 감각이 더욱 강력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그 사람의 존재를 경험했기에, 그 사람의 부재도 감각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물건을 태웠"('축복받은 집-숲')던 이유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지금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보다 과거에 존재했지만 지금은 부재한 것들은 우리에게 더 강렬한 감각으로 다가오니까.

부재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리가 언제나 존재하는 비(非)청각장애인의 세계에서는 "순간 주위가 너무 조용해"지는 것만으로 "세계는 잠시 지구 종말 같"은 두려움을 선사한다('개기일식'). 우리가 이미 소리의 존재를 경험했기에, 그 부재가 더 두렵게 다가온다. 하지만 청각의 존재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이 순간은 어떻게 다가올까. 청각을 경험했지만 후천적으로 이 부재를 평생 감각해야만 하는 이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그 부재를 인정하며 살아갈까.


#3.

부재의 감각에 대한 정재율의 탐구는 인간을 넘어 비인간동물들의 감각으로 확장된다.

"맹목적으로 우두머리를 따라가다가 그대로 바다에 빠져죽게 되는" 집단자살로 잘 알려진 동물 레밍은 비이성적인 군중심리를 비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빈번히 인용된다. 하지만 정재율은 이러한 레밍의 행위를 인간의 관점에서 판단하지 않고, 슬픔과 부재를 끌어안는 그들 종(種)만의 방식으로 바라본다. 그들의 행위는 어쩌면 "남겨진 레밍들이 죽은 레밍의 몫까지 열심히 땅을 파는 것처럼" "모두가 한꺼번에 슬픔을 나누면/ 그건 그거대로 슬프지 않"게 된다. 그들의 행위는 결국 부재의 슬픔을 나누기 위한 하나의 리추얼(ritual)인 셈이다. 그들의 행위를 통해 정재율은 질문한다. "함께 슬픔을 나누려면 몇 명이나 필요하지"라고. ('축복받은 집-레밍')

펭귄 중에는 "걷다가 뛰다가 날다가 (...) 떨어져서 죽은/ 펭귄의 뼈를 모아// 둥지를 만드는 녀석도 있다"고 한다. 죽은 이를 매장하거나 화장해서 시체를 보존하는 것이 익숙한 인간에게 다른 재료로 유골을 활용하는 것은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진다. 무리에서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는 일부 종들의 행위도 그러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부재하는 그들을 항상 곁에 두면서 "우리가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지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지금은 부재하지만 한때 "사랑했던 것을 조금 남기는 기분으로" 함께하는 이들의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안는다. ('0') 그렇게 그들은 부재를 감각한다.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함께 슬픔을 나누려면 몇 명이나 필요하지

나는 수를 세다가 레밍의 죽음에 대해 떠올렸다 맹목적으로 우두머리를 따라가다가 그대로 바다에 빠져 죽게 되는

그런 믿음

(...)

모두가 한꺼번에 슬픔을 나누면
그건 그거대로 슬프지 않았다

(‘축복받은 집-레밍‘ 부분) - P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킬트, 그리고 퀼트 문학동네 시인선 131
주민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킬트(Kilt)는 "스코틀랜드의 남성이 전통적으로 착용한 스커트"('킬트의 시대'). "스코틀랜드의 어느 광장에서" "치마 입은 남자들과 춤을 추" "치마는 소리 없이 돌고/ 돈다는 것은/ 돌면서 계속 새로운 무늬를 가진다". "치마를 입고 함께 춤을 춘다고 해서/ 우리의 성이 같아지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모호하게 기워져 있"다. 킬트는 이렇듯 우리의 젠더 이분법을 모호하게 만드는 유산이다. 이와 같은 킬트의 모호함은 역사적 관습으로써의 남녀유별은 필연적이라는 혹자들의 고정관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렇게 우리는 편견의 경계가 사라진, "밖에서의 규칙들을 잊어버려도 좋"을 물속으로 빠져든다('오리들의 합창'). 비록 그곳에선 "마음대로 되는 게 없"지만, "뭐든 천천히 힘을 빼야" 한다는 새로운 방법을 배운다. 누군가는 명확함이 정체성을 규명하기에, 너와 나 사이의 범주를 더 철저히 세워야 한다 말하지만 "흔들리며 명확해지는 풍경"('블루스의 리듬')도 있는 법이기에 때로는 그 경계들을 지우는 것을 통해 '우리'가 된다. 이렇듯 주민현 '우리'가 되는 첫 번째 방법으로 킬트처럼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 것을 제안한다.


#2.

퀼트(Quilt)는 작은 크기의 천들을 모아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다. 서로 다른 곳으로부터 비롯된 직물들은 누군가의 손을 거쳐 결합하며 하나의 새로운 산출물을 만들어낸다. "비슷한 군중이 되어 걷고 있지만"('호텔, 캘리포니아') 그 본질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세상은 마치 퀼트의 질서를 닮았다. 우리는 분명 서로 다른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원에 간다/ 우리의 삶이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하려고"('한낮의 공원'). 비록 다른 직물들이지만 하나의 조각보 위에 놓여있음을 확인받고 싶은 것이 사회적 동물의 마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가 다른 곳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래서 "서로 다른 영화를 보면서/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그걸 사랑이라 부른다"('어두운 골목'). 같은 천 위에 놓여있지만 서로 다른 직물임을 인정하는 과정. 서로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기에 조각보가 더 아름답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세. 주민현이 제시하는 '우리'가 되는 두 번째 방법은 바로 퀼트의 세계를 떠올리는 것이다.


#3.

"킬트, 그리고 퀼트". 경계를 지우는 킬트와, 차이를 확인하는 퀼트. 서로 상반된 듯 보이는 두 가지를 주민현은 '킬트의 시대'라는 하나의 시로 풀어낸다.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가 되는, 양극단에 놓여 있지만 하나의 지면에 풀어낸 두 가지 질서는 어떻게 공존하는 것일까. "체크무늬의 치마, 우리를 깁지"라고 마무리되는 '킬트의 시대'의 마지막 행이 그 해답을 제시한다. 경계를 흐릿하게 지우는 체크무늬의 킬트가 결국엔 퀼트처럼 우리를 기워줄 것이다.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결국엔 그것이 인위적 경계가 아닌 자연스러운 차이들을 더 극명하게 드러내줄 것이다. "어떤 것들은 사라진 때부터/ 제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가방의 존재')는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포기하지 못했던 어떠한 편견의 경계들이 사라진 이후, 비로소 우리의 진정한 차이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경계를 지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후 드러나는 차이들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일일 것이다. "우연한 악의의 감정" 대신 "놀라울 만큼의 선의"로 말이다('브루클린, 맨해튼, 천국으로 가는 다리')

치마를 입고 함께 춤을 춘다고 해서
우리의 성이 같아지는 건 아니지만

한때 노동복이었던
치마를 입은 내가 스코틀랜드에선

남자여도 이상할 건 없지 - P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이트 러닝
이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봄은 새싹의 생명력으로 상징되고, 가을은 추수의 풍요로움과 동일시되며, 겨울은 눈이 가득 덮인 설원이 가지는 감춰짐의 이미지를 갖는다. 반면에 여름은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계절이다. 모든 식물은 여름에 가장 빠른 속도로 생장하며 이곳저곳에서 분출하는 강렬한 생명의 에너지는 폭염과 폭우의 형태로 드러난다. 인간에게 여름이 힘든 것도 그러한 이유 탓이리라. 그런 점에서 <나이트 러닝>은 여름의 냄새가 나는 소설이다. 물론 작품 속 대부분의 공간에서 더위와 작렬하는 햇빛, 귀를 때리는 매미소리 등이 느껴지는 탓도 있겠지만, 이지의 소설은 여름의 분위기를 닮았다. 모든 존재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발산한 나머지, "내가 울면 누군가 구경할 수도 있"으니 "슬픔의 행위는 벽이 있는 곳에서 해야 한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에덴-두 묶음 사람', p270) "차라리 눈물이 오래오래 흘러서 무덤도, 길도, 풀도 잠겨버리길 소망"('우리가 소멸하는 법', p138)하길 바라는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힘겨운 여름을 건너는 여정을 통해 삶의 원동력을 이끌어낸다.


#2.

<나이트 러닝> 속 인물들은 죽음에 압도된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죽은 이를 그리워하며 계속해서 자라나는 자신의 팔을 절단하고('나이트 러닝'), 왕릉 주변을 거닐며 죽은 친구를 추억하기도 한다('우리가 소멸하는 법'). 죽음의 문턱에 선 환자들을 간병하느라 "언제나 대기"하며 "사람의 몸이 얼마나 나약하고 질긴지, 몸을 통과하는 모든 것들을 봐야 하는" 이도 있으며('곰 같은 뱀 같은', p217), 때로는 "폭격으로 사람이 죽어가고, 공중에서 비행기가 사라"지고 "매일매일 어디선가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사건에 가려져 여타의 인간문제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취급을 받기도 한다('모두에게 다른 중력', p162). "언제나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했고, 계절은 바깥으로만 흘"러가는 고급 주택가도 죽음을 피해가진 못한다('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을 꾸었네', p171).  "관념으로서의 죽음은 무섭지 않다. 그저 잘게 부서지는 일과 같게 느껴졌다."('에덴~', p244) 하지만 죽음은 그저 관념이 아니기에, 그것은 마치 화석처럼 "은유가 아니었다. 명백한 증거"('대리석 궁전에~', p186)이기에 더 무서운 법이다. 인물들은 삶의 한 부분으로써의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음이 자연스럽다는 말에 대해 "자연은 무서우니까. 그런 의미라면 맞을 거야"('곰 같은~', p209)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죽음이 더 무서운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아무리 소중하고 중대한 것일지라도 세상 전체의 관점으로 보면 별 거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목숨을 내놓는다고 누가 돈을 줄까"('대리석 궁전에~', p183).


#3.

하지만 무섭다고 무작정 달아날 순 없다. <나이트 러닝>은 죽음에 압도된 인간의 삶 속에서 "우리가 함께 소멸하는 방식"('우리가~', p119)을 이야기한다. 죽음은 마치 밤을 닮았다. 밤의 그림자는 "날아다닐  어떤 누구도   없고어떤 사냥꾼도 맞출  없"('슈슈', p38)고,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은 그렇"듯 "밤의 얼굴은 온통 거짓말"('슈슈', p46)이다. 하지만 삶을 압도하는 죽음의 컴컴한 어둠 속에서 "끝도 없이 달리며 생의 내력에 대해 생각"('나이트 러닝', pp33-34)하며 그 두려움을 돌파한다. 삶이라는 이름의 "여행지에서는 꿈을 많이 꾸"('곰 같은~', p234)게 마련이다. 우리에게 죽음이 예견된 공포라면 초연하지 못한 것이 인간의 당연한 생리일지 모른다. 이것을 초월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을 상기시키는 두려운 꿈을 잊기 위해 그들은 계속해서 한밤 중의 달리기를 이어간다. 격렬한 신체 운동에 지쳐버린 이들은 "아주 오랜만에 만난  없는 잠"('슈슈', p66)에 깊이 빠져든다. 일상의 지속을 통해 죽음의 공포로 잠식된 삶에서 잠시나마 해방되며 더 가뿐하게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 <나이트 러닝>이 보여주는 삶의 방식은 그런 것이 아닐까.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일으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참았다. 옥상은 원형극장처럼 사방에서 보이기 때문에 내가 울면 누군가 구경할 수도 있다. 애도는 철저하게 자신을 위한 행동이다. 그러므로 이 슬픔의 행위는 벽이 있는 곳에서 해야 한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 P2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직면하는 마음 - 나날이 바뀌는 플랫폼에 몸을 던져 분투하는 어느 예능PD의 생존기
권성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십여년간 예능을 만들어온 권성민 PD는 예능을 장르의 여집합이라 표현한다. "공통점이라고는 '카메라 앞에 사람을 세워 찍은 다음 편집실에 와서 편집'"(p10)하는 것뿐이며, "확실히 드라마이거나 확실히 시사교양인 것들을 빼고 난 뒤에 남은 애매한 것들이 복닥거리는 곳, 정해진 모양이 없는 만큼 자유롭고, 좋은 뜻으로 제멋대로"인 분야가 바로 예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해외 시장에서는 '예능'이란 이름의 종합적인 장르 분류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scripted(대본이 있는)'의 반대 개념으로 'non-scripted(대본이 없는)'라는 분류 정도가 있"(p48)을 뿐이다. 그래서 예능엔 언제나 신선함이 필요하다. 예능은 통상 드라마나 다큐, 시사교양보다 시청자들에겐 더 친숙하고 가깝게 느껴지지지만, 반대로 드라마보다 완성도가 낮지 않느냐, 시사교양보다 유익함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 속에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누군가의 노동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2.

이 책에서 권성민PD는 창작자이기 이전에 방송국이라는 조직(혹은 기업)에 속한 노동자로써의 PD의 정체성을 고찰한다. 그에게 PD는  "관객들은 전혀 모를 텐데 감독 눈에만 보이는 사소한 오류조차 용납하지 않는" 거장이기만 해서는 안된다. 여러 사람의 노동과 커리어, 생계를 지고 있는 사람이니만큼 때로는 현실과 타협하며 최고(最高)만큼이나 의미있는 최선(最善)을 만들어야 한다. 빠르게 다른 컨텐츠로 대체 가능한 디지털과 달리 "채우기로 약속한 자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채워줘야 하는"(p53) 레거시 미디어의 환경 속에서는 작품성을 따지기 이전에 다른 이들과의 약속도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또한  "애매하고 폼 안 나는 일들이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줘야 폼 나야 할 것들이 제대로 보"(p69)이듯, PD는 명확하게 규정되진 않아도 모든 일에 관여해야 하는 존재다. 그는 PD의 역할을 통해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역량만큼이나 그것을 운용하기 위한 노동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다. 또한 그는 창작노동자로써의 동종업계 종사자를 위한 사회적 책임 또한 놓치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좋은 작품을 발견하면 열심히 소문내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직업 창작자들에게 최고의 인정은 결제, 그리고 정확한 언어로 보내는 칭찬"(pp.80-81)이라고 강조한다. 


#3.

레거시 미디어는 죽었다고 말하는 시대, 권PD는 "여전히 TV에 힘이 남아 있다"(p48)고 믿는 사람이다. 특히 그는 시청하는 뉴미디어가 갖지 못하는, "시청 인구 100만은 방송이 나가는 딱 한 시간 동안 100만 명이 동시에 TV 앞에 앉아 있"(p48)어야만 한다는 집중도에 주목한다. 그래서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더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고 구매하는 책이나 영화"와 달리"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대중을 사로잡아야 하는 TV는 "불특정 다수의 눈길을 끌어야 하는"(p161) 운명에 처해있다. 여기서 그는 신선함만큼이나 중요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던, '아는 맛'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매일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는 익숙한 것이 주는 편안함"(p136)을 놓치지 않고 "내 예상이나 통제 바깥의 것에 매달리기보단, 내가 잘 아는 것에 집중하는"(p130) 마음. 사람들의 삶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가, 익숙하지만 얼마나 더 확실한 즐거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

-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PD는 이야기를 만들고 찾아내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둘러보니, 꼭 그게 직업이 아니어도 세상에 자기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참 많더라. 시장 좌판에서도 나물이며 과일 곁에 적혀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가끔은 도로 위 자동차 뒤통수에서도 목소리를 만난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예능을 만드는 본업에, 글을 써서 책도 내보니, 예능을 만드는 일은 담력이 필요하고 글 쓰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더라. - P2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빅뱅의 질문들 - 우주의 탄생과 진화에 관한 궁극의 물음 15
토니 로스먼 지음, 이강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과학책은 언제나 쉽지 않다.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일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책에 비해 쉽게 손이 가지 않고 읽는 데도 훨씬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다보니 과학분야 도서를 편식하게 된다. <빅뱅의 질문들> 역시 마냥 쉬운 책은 아니다. 대중서이기는 하지만, 우주과학에 대해 꽤나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만큼 이 책이 가진 내용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 <빅뱅의 질문들>이라는 제목과 달리 빅뱅에 대한 지식이 드라마틱하게 확장되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주를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마음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는 점이다. "자연의 붉은 테이프를 잘라 관측되는 현상에 대한 가장 단순한 설명들을 만들어내는"(p115) 과학자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거대한 우주의 탄생과 질서를 밝혀나가는 것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우주를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지성과 열정에 경의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2.

"이 책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주제를 다룬 작은 책이다"(p11)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이 책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문장은 우리를 둘러싼 우주, 그리고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이 얼마나 거대한 존재일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그 어떤 학문적 탐구보다도 거대하며 오래된 '빅뱅'이라는 존재를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결연한 의지를 전해준다. 과거에는 신화와 철학의 영역이었던 우주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그 규모 탓에 관측과 증명이 쉽지 않고, 우주과학에서는 관찰만큼이나 상상력의 중요성이 더욱 극대화된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적 관점에 익숙한 이들에겐 당연한 탐구의 과정일지 몰라도, "복잡한 방정식들로 가득 찬 어떤 이론이 뭔가를 의미해야만 한다"(p231)고 믿는 과학의 세계에서는 정체성과 연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수많은 수식과 이론들을 통해 점점 진리와 가까워진다고 믿고 있으면서도, "수학적인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이론을 만들고 받아들이는 배경이 되는 강력한 힘이었지만 이런 모호한 성질에 기반한 제안들은 맞는 만큼이나 틀린 것으로 드러난 것도 많았"(p223)기에,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여정은 성취와 좌절의 연속이었으리라. "완벽한 사실은 아님에도 아주 성공적인 것으로 밝혀"(p232)질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학자들의 지적탐구와 상상력, 그로부터 비롯한 열정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상상력은 과학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는데, 다가갈 수 없는 진리의 영역을 발견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는 그들의 인간적 모습에 친밀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3.

과학과 미학은 거리가 멀 것 같지만, 미학을 공부하다보면 과학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와 만나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다. 과학, 특히나 물리학에서 아름다움은 "종종 수학적인 대칭으로-계가 규칙적인 경향이 있는 것-포장되어 있다"(p232).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게 무슨 아름다움이냐'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인데, 이 책을 읽고나니 그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과소평가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미의 상대성을 배웠으면서도 누군가의 미적 판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너무도 편협하고 무례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의심할 바 없이 이론가들의 상상력을 제한할 실험이나 관측이 부족"(p235)한 시대에, 그 부족함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워가며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향해 걸어가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우주는 기묘한 현상이 일어나는 무대로 밝혀졌고, 현재로서는 우주론을 입자물리학과 떼어놓을 수 없다. 일반상대성 이론, 핵물리학, 입자물리학, 그리고 여러 분야가 함께 엮어서 우리가 그리는 우주를 만들어내고, 여러 가닥은 분리될 수 없다. 어떤 새로운 물리학의 제안도 400년 동안의 실험 및 관측과 일치해야 하고, 결국 자연은 우리보다 더 똑똑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P1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