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조금만 -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
이충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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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터뷰집을 좋아한다. 한 권의 책으로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인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나의 일상 속에선 조우할 일이 거의 없는 완전히 다른 업계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경험이다. 인터뷰어의 노력 덕택에, 인터뷰이의 인생을 우리는 고스란히 전해받는다.

<질문은 조금만>은 여타의 인터뷰집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분명 인터뷰집이지만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대화보다는 인터뷰이의 대화를 기반으로 한 인터뷰어의 생각이 더 많이 담겨 있다. 어떤 부분은 인터뷰집보다 인터뷰를 통해 얻은 통찰을 정리한 저자의 아포리즘 에세이처럼 느껴진다. 인터뷰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대할 만한 구조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이지만, 여기에 적응하면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2.

각 분야에서 나름의 성취를 거둔 '거장'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진태옥과 김대진, 박정자와 최백호처럼 사회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거장'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고, 거장이라는 표현이 낯선 정치외교분야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이 중 한 명인 강경화의 이야기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강백호와 강유미처럼 가장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중간세대의 이야기도 있으며, 차준환처럼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의 날이 더 기대되는 이의 이야기도 있다. 나이도 분야도 전혀 다르지만, 자신이 하는 일의 정체성을 발견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여정 위에 서 있다는 점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모두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이 아닐까. "내가 60년을 뒤돌아보니까 기본을 하기가 그렇게 힘들어요. 기본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어요."(p217)라는 진태옥의 말처럼, 기본은 제일 기초적이지만 그래서 더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그 중요성을 경시하게 되고, 그렇게 기본기가 흐릿해지면 이후의 성취들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의 결론은 '연습의 중요성'으로 이어진다. 너무 뻔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연습이 무언가를 완성시켜주지는 못해도 "망쳐도 그렇게 완전히 망치지는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며, 엄청난 연습 덕분에 "연주를 통째로 말아먹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김대진의 말(p255)이 몸소 증명한다.


#3.

가장 인상깊었던 인터뷰이를 꼽자면 강경화와 강유미를 꼽고 싶다. (우연히도 두 사람 모두 강씨 성을 가진 여성이다.)

강경화는 외교부 장관 발탁 당시부터 파격과 화제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전문가들은 그의 실력이 세계에서 알아주는 수준이라고 했지만, 대중에겐 낯선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는 유리천장 너머의 리더십을 보여준 최초의 외교부 장관으로, 그리고 그토록 복잡하고 미묘한 한국의 외교환경 아래서 장기간 재임에 성공한 장관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행보를 성찰한다. "제가 외교부 장관으로 있는 동안, 같은 값이면 중요한 자리에 여성들을 많이 등용했습니다. 근데 제가 퇴임하는 날, 퇴임식도 못하고 그냥 쭉 돌면서 계단에서 간부들하고 사진 찍고 차 타고 나왔는데, 나중에 보니까 제 뒤에 다 남자였어요." (pp194-195)라는 그의 말에서는 아직 우리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수단 내전 지역의 마을에 방문했을 때 "그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인 할머니께서 유엔에서 고위직이 왔다고 하니까 쭉 줄을 서 있다가 나무토막 같은 손으로 악수를 하시더니 '어서 오십시오. 댁네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까?' 하고 물어"(p180)보았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그럼에도 존엄성을 지키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강유미는 미디어의 대전환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대에 완벽히 적응하고 있는 코미디언이다. TV개그맨으로도, 코미디작가로도, 유튜버로도 모두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그는 "글로 쓰건 연기를 하건 다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한다며 코미디에 대한 열린 마음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p112) 웃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하는 그 마음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향한 댓글 중 '유튜브 인류학자'라는 표현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정말 그의 그러한 개그가 훗날 인류학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정립될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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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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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국 시계를 본다, 각자 정해진 일정에 맞추기 위해. 시계를 들여다보는 눈은 보통 실망스럽다. 시곗바늘이 시간을 졸라 인연 따라 만났으니 인연 따라 헤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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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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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르크스는 말했다. "지금까지 철학자는 세계를 이리저리 해석해왔을 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p90) 정여울 작가는 이러한 주장을 문학으로 확장한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일상 속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내 안과 밖의 문제를 발견하고, "날카롭게 둘로 나누어진 세계 사이에서 매개자가 되"어간다(p8).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삶의 의지를 얻고, 때로는 치유를 받으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한다.

"햇살이나 공기처럼 저절로 흡수할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달리 문학은 "햇살이나 공기처럼 저절로 흡수할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이다(p91). 이러한 적극성이 가미된 아름다움의 향유를 통해, 우리는 문학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의 자세를 찾는다. 문학이 삶의 결과를 바꿀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마음가짐을 바꿔내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2.

문학은 미래의 위험, 그리고 슬픔을 준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견딜  있는 위험' '견딜  없는 위험' 경계"를 일깨워주고, "위험이 닥쳐왔을 도저히 공포와 불안을 피해  방법이 없을  문학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으로부터 우리는 용기를 얻는다. (pp197-198)

누군가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통해 "타인의 슬픔 속으로 한참 여행하고 다시  슬픔으로 돌아올 우리는 바로  순간 성숙한다타인의 고통 속에  빠졌다가 나만이 돌볼  있는  고통으로 돌아올  문득 깨닫는다 아픔은 나만의 것이 아님을. (...) 우리는 각자 다른 곳에서 아주 비슷한 슬픔을 앓고 있다는 사실우리는 만나지 못해도 서로 너무 닮은 슬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분명 우울을 치유하는 힘이 된다."(p222)

그렇게 우리는 문학을 통해 "애도는 단지 수동적인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떠나간 자들이 미처 만들지 못한 세상을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마저 완성해 내는 끝없는 혁명의 몸짓"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p26)


#3.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바이링궐(bilingual, 이중언어구사자)이라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사연을 가진 사람들", 특히나 "지배자의 언어와 피지배자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소수자"의 경우엔 특히나. "온갖 저항의 언어를 마음속에 잔뜩 쌓아놓고도 차마 우리를 괴롭히는 그들 앞에서는 아무  없는  '정상적인 언어' 구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회생활'이기에.

하지만 "문학은 이렇게 마음속에 저항의 언어를 쌓아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상 이중 언어로 자신을 은폐하지 않아도 된다고이제 침묵을 끝장내자고 삭이는내성적인 사람들의 가장 매혹적인 친구다." (pp248-250) 

문학은 우리 내면의 언어를 발견하게 한다. "문학을 사랑하는 일은  '자기 안의 외계어' 끝내 지키는 일"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문학을 통해 우리는 사회생활이라는 이유로 내면에 꼭꼭 숨겨왔던 자신의 언어와 마주한다. " 세상의 언어로는 번역되지 않는울퉁불퉁하고 도저히 통제가  되는 나만의 계어"와 말이다. (pp191-192)

이렇듯 문학은 우리가 자신의 언어를 잃지 않도록 끝내 우리의 편이 되어준다. 세상의 갈등 속에서, 나와 세상 사이의 갈등에서, 그리고 내 안의 갈등에서 "모두가 양극단으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세상에서 매개자가 되고 균형추가 되어주는 존재"(p8),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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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신화를 살아낸다는 것, 그것은 신화 속 올림포스 신들처럼 멋지고 영웅적으로 살아내는 것만은 아니다. 신화를 살아낸다는 것, 그것은 신화 속 인물들이 받았던 고통의 의미를 되새기며, 나에게 그런 고통이 다가왔을 때 그 고통을 이겨낼 힘을 기르는 일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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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을 만나러 갑니다 - 함께 우는 존재 여섯 빛깔 무당 이야기
홍칼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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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군가는 샤머니즘이 미신이라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사기나 거짓일 뿐이라 말한다. 무당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한 행위일 뿐이며, 샤머니즘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보다 샤머니즘의 힘은 훨씬 강력하다.

"옛날에 이런 말이 있어요. 며느리가 굿판에 가서 춤을 너무 많이 추니까 시어머니가 며느리 보기 싫어서 굿을 한다. 애환이 많기도 하고 그동안 쌓인 한을 어디 가서 푸니까, 굿을 하면 그냥 며느리들이 회포를 풀기 때문에 생긴 말이에요." (p40)

굿은 그 자체로써 치유의 행위다. 예술이 카타르시스, 즉 심리적 정화의 힘을 가진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종합예술로써의 굿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불어넣는다. 우울감과 분노, 허탈감 같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떨쳐버리고 더 평안한 내일을 도모할 수 있게 돕는다.


#2.

"아마 많은 성소수자가 공감할 텐데, 커밍아웃은 평생 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내가 어떤 집단에 들어가거나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마다 정체성을 알려야 하니까요. 비슷한 맥락에서, 저는 무밍아웃을 처음 해보니까 반응이 어떨지, 어떤 반응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의 데이터가 전혀 없었어요. 커밍아웃에 대해서는 무수한 데이터가 쌓였으니까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때로는 화도 내고 때로는 웃어넘기는 능숙해졌는데, 이쪽은 그렇지 않아서 두려웠어요." (p59)

퀴어-페미니스트-비건지향 무당인 저자 홍칼리는 사회적 소수자로써의 정체성과 커밍아웃, 그리고 신내림의 행위를 연결시킨다. 샤먼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행위에 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마주하는 순간을 투영한다. 무당들의 이야기가 비단 특별한 누군가만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제각기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고 그 과정에서 무당이 겪었을 신내림에 버금가는 혼란과 고난의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3.

"가난한 사람이 보일러 켤 돈이 없어 추운 곳에서 자다가 죽으면, 공동체의 지혜를 모아 제도를 개선해서 죽은 사람에게 뒤늦게나마 이불을 덮어줄 수 있다. (..._ 중증장애인이 활동보조인 없이 집에 방치되어 홀로 죽었을 때, 이런 일이 예방하고자 애쓰는 행동이 곧 애도다. (…) 공동체의 애도가 없으면 억울하게 죽은 존재는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두려운 타자인 '귀신'이 된다." (pp133-134)

약자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뒤늦은 해결책이 제시될 때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냐'는 비아냥과 쉬이 마주한다. 하지만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이미 끝난 일이라고 손을 놓고 있으면 더 많은 죽음과 희생이 있을 뿐이다. 무당은 무당 나름의 방식으로, 시민은 시민들의 방식으로, 정책 결정권자 나름의 방식으로 애도를 표해야 한다. 얼마 전 있었던 사고를 비롯해, 여전히 애도받지 못한 죽음들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있다. 이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진정으로 애도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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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신내림을 일종의 자격이나 미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모두 이미 신이고, 신내림은 하나의 의례에 불과해요.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는걸요."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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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파워먼트 리더십 - 조직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리더는 무엇이 다른가
프랜시스 프라이.앤 모리스 지음, 김정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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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조직의 다양성을 끌어안는 포용의 리더십을 말한다. 자신들을 "관습의 틀에서 벗어난 칸에 성별을 표시하는 사람"으로 표현하며 레즈비언 부부로써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두 저자는 "자신의 경계 너머를 바라보"는 리더십의 방법론을 제안한다(p37)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조직은 "여러 산업을 뒤흔들 만큼 무섭게 성장했지만 눈부신 성공은 기본적인 품위마저 구기고 얻은 결과에 불과"할 뿐이다. 처음엔 그러한 문제들을 덮어버리며 성공을 앞당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엔 "인정머리 없는 회사라는 오명 역시 점점 굳어"진다(p54).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단순히 조직 내의 다양성이 갖추어진다고 이러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성 팀이라 하더라도 구성원 간의 차이점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동일성 팀보다 성과가 떨어질 있다". "사람은 타인과의 공통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서로 공통으로 아는 정보를 찾고 지지하면서 집단의 가치와 구성원 간의 친분이 확인되"는 과정 속에서 "다양성 팀에서는 집단의 의사 결정에 곧바로 적용할 있는 정보의 양이 제한되기 때문이다"(pp78-79). 그들의 교집합이 아닌 합집합으로써의 성과를 얻기 위해선 다양성을 포용해야만 한다.


#2.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저자들은 이러한 다양성 리더십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신뢰'를 가장 중시한다. "로고스(logos, 논리적 판단), 파토스(pathos, 감정과 공감), 에토스(Ethos, 인격선의)"의 신뢰삼각형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리더십의 핵심 자본인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신뢰가 무너진 원인을 찾아 들어가보면 대개 하나가 망가져 있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제안한다. (pp57-58)

이러한 리더십을 위해선 "정확히 아는 점에 관해서만 말하고 (여기서부터가 어렵다) 이상은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즉, 어설프게 아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지 않고, "' 능력의 한계를 알고 경기하는 ' 배워야 한다". "아는 것까지만 말하는 편안해졌다면 그때부터는 아는 것을 확장해야 한다". (pp73-74) 아는 것을 알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공유할 수 있는 역량, 이것이 리더에 대한 신뢰의 기초일 것이다.


#3.

이 책이 말하는 리더십의 궁극적 방향은 리더가 떠난 후에도 그 가치가 유지되는 조직이다. 그러기 위해서 "리더는 자신의 책상을 넘어온 결정보다 회사의 담장조차 넘지 못하 문제를 진지하게 돌봐야 한다"고 말한다(pp18-19). 자신은 판단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일 뿐, 그것을 실제로 수행하는 이들은 조직의 구성원이고 그렇게 권한이 이양되어야만 더 지속적으로 조직의 가치기 유지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치가 '무기화(weaponized)'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치를 무기화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힘을 빼놓거나 (극단적으로는) 누군가에게 해를 가할 목적으로 모두가 지지하는 가치를 조작하는 일을 뜻한다. 이는 가치를 무기화하는 장본인과 사람의 이익이 가장 중요해진다는 의미에서 임파워먼트 리더십과 반대된다. 무기화된 가치 새로운 믿음으로 무장하고 기존 가치의 탈을 쓴다. 그러고는 나머지 조직의 동의 없이 '진실' 의미를 바꿔버린다."(p264) 아무리 좋은 가치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신뢰를 위태롭게 한다면 그것은 지속될만한 가치가 있는지 재고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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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리더는 자신의 책상을 넘어온 결정보다 회사의 담장조차 넘지 못하는 문제를 더 진지하게 돌봐야 한다. 또한 권력과 의사 결정권을 의식적으로 나눠주되 결과는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판단을 내리는 데 하루를 바치는 것은 구성원들의 일이다. 그때 리더는 그들이 그 일을 잘해내도록, 즉 조직의 비전과 가치, 전략을 선택에 잘 담아내도록 돕는 일을 맡아야 한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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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의 문법 (2023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정부, 가난한 국민
김용익.이창곤.김태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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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지는 본디 노동과 연결되어 있다. 사회보험을 소득세와 연동해서 징수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복지의 문법>이라는 제목처럼 한국 사회의 복지정책을 더 광범위한 사회정책으로 확장하기 위해 저자는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노동과 고용의 문제를 조명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똑같이 3 달러 규모였을 세계적으로 복지가 취약하다고 알려진 미국보다 한국이 공공사회지출로 훨씬 적은 금액을 썼다는 사실"(p76)을 딛고 저자는 다양한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 중 하나는 근로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유연근무제가 확대되는 최근의 세태에 대해, 복지 증진을 위해선 "단축된 노동시간이 들쑥날쑥해서는 된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주당 52시간을 일하더라도 어느 날은 오래 일하고 어느 날은 짧게 일해야 해서 퇴근 시간을 예측할 없으면 퇴근 자기 시간을 계획할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가사 노동도 하지 못하고 자기계발을 위해 시간을 수도 없게 된다." 근로시간과 관련한 여러 논쟁이 많은 상황 속에 이러한 주장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p155)

또한 노동이 복지의 증진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역으로 복지가 노동력의 증대를 유발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사회서비스 분야는 특히 여성의 취업 기회를 많이 늘"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회화되어야 돌봄 노동이 여전히 무급 가족노동, 특히 여성 가족 구성원의 노동에 의존"하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경제적 진출을 가로막고 경력단절을 일으키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에 자영업자가 유난히 많은 이유도 이런 종류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일 있다." (p97) 저자는 돌봄의 영역이 공공분야로 들어온다면 그것 자체가 또 하나의 노동력 창출의 가능성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2.

이 책은 노동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인구구조에 대한 담론들도 놓치지 않는다. 노동이라는 것 자체가 그 노동력을 구성하는 인구에 대한 이야기와 뗄레야 뗄 수 없기에 인구에 대한 분석도 눈여겨 봐야 한다. 제대로 된 인구학 전문가조차 희박했던 2000년대 초반, 고령화및미래사회위원회(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이끈 저자의 분석은 여러 시사점을 제시한다.

그 중 하나는 고령화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고령화의 의미를 너무 협소하게 바라봐서 단순히 노인인구의 양적인 증가, 또는 노인부양비 부담의 증대로만 생각하는데 노인인구의 질적인 변화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된다"고 말한다. "현재의 40, 50대가 미래의 노인인데 이들은 상당한 경제력과 더불어 노후를 맞""새로운 노인들이 소비자로서 강한 구매력을 갖게 되면 고령친화산업이 발전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p168). "앞으로는 노인인구가 대한민국의 압도적인 대규모 인구집단이 되기 때문에 유권자로서 이들을 대상으로 노인 정치도 본격화할 것"이라는 예측 또한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이다(p169).

또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할 수록 출생률이 감소한다'는 사회적 통념에 대해서도 저자는 다양한 통계를 활용해 반증을 제시한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 가계소득이 올라가서 금전적 여유가 생기니 출산력이 올라가는 긍정적 효과로 이어"저야 하는데, 한국과 같이 "회사가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면 강한 억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p153). 저출생의 문제를 여성에게 전가하는 듯한 기존의 분석들을 치밀하게 반박하며 성평등 정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갖오한 것이다.


#3.

단순히 정책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과거 정치인이자 공공기관장이기도 했던 저자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정당 문화의 개선과 선거제도 개편을 이야기한다. 복지의 문제를 또 정치화하냐는 의견도 있겠지만, 복지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정치권의 문제이기에 이러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사실 역대 모든 정부들은-능력이 족한 정당을 기반으로 당선된 대통령들"이었기 때문에 "부족한 능력을 관료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관료들이 집권당을 주도하는 구조에서는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해도 박정희 모형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pp64-65). 뉴스에서 쉬이 언급되는 '어공'과 '늘공'의 세력전을 해소하기 위해선 정당의 힘이 더 탄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정당은 명확한 정치적 지향성 보다 특정 인물이나 세력을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된 만큼 역량을 키우는 것이 더 막중한 문제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바로 현행의 소선거구제를 대체하는 "중대선거구제"다. "거대 정당이 의석수를 무기로 '밀어붙이기' 식의 정책 입안을 강행하는 일이나 지역구 이해관계에 얽힌 '밀실, 쪽지 정책' 추진은 어려워"지기에,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국회 내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것이 생산적인 논의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명확한 다수가 없을 때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당의 강령과 정책들을 보고 당과 정치적.정책적 연합을 있는지를 따지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다소 불완전했던 정책이 입체적으로 발전할 여지가있다. (pp24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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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시장은 국가가 정해준 틀 속에서 성립되는 것이지, 시장 자체가 자동적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 일정한 조직의 틀을 만드는 데, 그리고 시장의 규칙을 만드는 데 필요한 국가의 역할이 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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