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앤더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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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름 상위권에 속했던 해솔은 돌연 호주 유학을 결정한다. 부모의 무관심에 지쳤던 해솔은 예상치 못했던 호주 유학이 부모가 자신에게 준 관심이란 생각에 잠시나마 설렜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무관심하다는 생각에 실망한다.

클로이는 그보다 훨씬 전에 호주로 유학을 갔다. 어떻게든 자식이 성공하길 바라는 소위 '극성' 부모 밑에서 과도한 불안에 시달리며 공부를 이어가는 우등생이다. 오늘도 클로이는 "그래, 너 저렇게 안 살게 하려고 여기 이민 온 거야. 성공했네, 딸이 이렇게 세상 물정 모르게 큰 걸 보면."(p53)이라는 엄마의 비아냥을 견뎌내며 의대 진학이라는 꿈을 향해 안간힘을 다한다.

앨리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 일찍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호주로 이사를 간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앨리는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고 자신도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하고 있지만 누가 한국인이냐고 물으면 불쾌한 표정을 짓는 애들"(p85) 중 하나다. 하지만 화려해보이는 모습 뒷편엔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어버린 불안과 한국어를 할 줄 모르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다는 걱정, 불법 주거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는 슬픔이 휘몰아친다.


#2.

서수진은 자신의 호주 거주 경험을 통해 아주 사실적인 한인 커뮤니티의 모습을 담아낸다. 특히 기존에 언급되었던 가족주의적 커뮤니티, 혹은 성인 중심의 묘사방식이 아닌 청소년들의 시각으로 담아낸 한인 커뮤니티를 그려낸다. 가부장제에 대한 향수가 담겨있지도,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감동의 서사가 담겨 있지도 않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자신의 의사가 아닌 부모의 의사로 새로운 터전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이민자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보여준다.

특히, 한인 커뮤니티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내부의 위계를 담아낸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제 막 유학을 시작해 "호주에서 한국 스타일로 입고 다니는 애들. 호주에서 K-POP을 듣는 애들. 호주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애들. 호주에서 한국어로만 이야기하는 애들. 호주의 한인 타운에 가서 떡볶이를 먹고 노래방에 가는 애들. 호주에서 한국을 사는 애들."을 일컫는 Fresh Off the Boat 즉 FOB. 그리고 "한국말을 모르는 애들.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찐따 같다고 생각하는 애들. 한국 유학생들은 FOB라고 부르며 무시하고 조롱하는 애들. 부모가 원하는 대로 공부 잘하고 순종적인 아시안이 되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애들."이라는 이미지로 대표되는 Asian Baby Girl, ABG(p85). 두 집단 간의 위계를 통해 이민자들이 겪는 정체성 문제를 극명히 드러낸다. 특히 서로 정반대에 위치한 집단이지만 이들이 서로를 배제하는 내면의 동기는 아주 유사하다. 자신에 대한 혐오를 다른 쪽으로 돌리고 싶은 심리, 누군가를 위계로 정복하지 않으면 내가 정복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 소수자의 신분에선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안은 결국 또다른 차별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실감한다.


#3.

사실 해솔과 클로이, 엘리 중 어떤 캐릭터도 호감이 가는 쪽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불안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해솔과 다른 사람에 대한 콤플렉스로 가득한 클로이, 자신도 이민자 집단의 ABG이면서 FOB들에게 비아냥거리는 엘리까지. 하지만 이들의 이런 부분들도 모두 마음 속 어딘가에 상처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에 정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이민자, 여성, 빈곤이 겹쳐진 차별 속에서 어린 나이에 그 험난함을 마주한 이들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택한 생존의 방식인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게다가 이러한 모습이 비단 호주로 유학을 간 세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적지 않은 10대들은 여전히 한국에서 세 사람과 같은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살아가고 있을테니 말이다.

누군가는 유학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로망처럼 여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엄청난 상처가 함께 관통한다.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독을 품은 올리앤더처럼, 본인이 원했던 장밋빛 미래를 향해 가던 중 더 잔인한 현실을 마주한 모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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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엄마, 우리는 이제 갈 곳이 없어.
우리는 추방당할 거야.
내가 자라난 땅에서.
내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언어를 하는 나라에서.
엄마가 나를 키우겠다고 다짐한 곳에서.
우리는 같이 추방당할 거야.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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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선물 민음의 시 301
조해주 지음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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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트램펄린 위에서 점프하며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멀리 벗어날 수 있다". "아무리 높이 뛰어오르더라도/ 반드시 그곳에 착지"한다('트램펄린'). 조해주의 시는 트램펄린을 닮았다. 그의 시 속 화자들은 아주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순간 속에 잠시 환상을 보지만, 어느새 일상으로 돌아와 삶을 지속한다.

  마치 삽화처럼 삽입된 일상 속 환상에서 그를 현실로 귀환시키는 것은 아주 사소한 접촉과 대화다. 공원에서 농구하는 모습을 구경하던 중 자신만의 공상에 빠졌다가도 "저기요,/ 그것 좀 이쪽으로"라는 말에 곧장 현실로 돌아온다('파리공원'). '그'와 함께 걷다가 환상적 상상 때문에 걸음이 뒤쳐지지만 "어느새 멀어진 그가 나에게 손짓"하는 모습을 보곤 곧장 그곳으로 따라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에게').

  그의 시를 관통하는 삽화적 공상들은 마치 시 그 자체의 모습을 닮았다. 시는 삶을 뚜렷하게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똑같이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도 하나의 공상으로써 빈 공간(void)을 선사한다. 일상 속에서 자리를 지키면서도 더 먼 세상을 내다볼 수 있게 해 주는 힘. 그것이 조해주가 생각하는 시의 속성이자 문학의 속성, 나아가 예술의 속성이 아닐까.


#2.

  어떠한 입자들이 모인 물질에서 빈 공간(void)의 크기는 그 물체의 무게를 더 가볍게 만들어준다. 똑같은 외형일지라도 가득 차 있는 건 무겁지만 빈 공간이 생기면 무게가 가벼워진다. 이 빈 공간들은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마치 해면체의 구조처럼.

  무겁다고 언제나 강한 것이 아니듯, 가볍다고 언제나 약한 것은 아니다. 통상 우리는 무게와 강도를 연결지어 생각하기도 하지만 무게와 강도는 엄연히 별도의 척도이다. 이러한 직관과 감각의 괴리 또한 조해주는 놓치지 않는다. "먹다 만 것도/ 먹은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안방해변'), 페인트는 "노랑 파랑 주황 다른 색채여도 같은 냄새"를 내는 액체라는 사실을 감각한다('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어요'). 달라 보여도 같은 것, 같아 보여도 다른 것을 명확히 포착해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빈 공간을 통해 충격을 흡수시켜 더 강한 물체가 존재할 수 있는 법이다. 뿐만 아니라 빈 공간은 탄성을 만들어 내 가벼우면서도 충격을 더 부드럽게 감싸안는다. 트램펄린이 빽빽한 직조가 아닌 그물 같은 구멍을 담은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게다가 트램펄린은 엄청난 탄성력으로 우리가 평소 느끼는 중력을 아주 극소량으로 줄여 가볍게 만들어낸다. 그래서 다치지 않고 더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다. 조해주가 말하는 <가벼운 선물>도 이러한 '가벼움의 강함'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빈 공간의 가벼움을 통해 우리는 충격을 받아들이는 법을 연습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넘어지는 순간에/ 나름의 규칙이 있다"는 것을('누수').


#3.

  삶의 빈 공간으로써 작용하는 삽화적 공상들은 하나의 빈 공간으로써 우리의 삶을 가볍고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시는 우리가 일상을 더욱 단단하게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체조 선수가 완벽한 공중회전 뒤에/ 양팔을 벌리고 착지하는" 아주 극적인 순간에도 그는 "내일은 잎차를 마셔야지/ 커튼을 달아야지/ 동네 문화센터에서 배드민턴도 배우고//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아야지"라며 일상을 계획한 채 "TV를 끄고/ 등을 돌려 눕는" 사람이다('체조 경기를 보다가'). "인간으로 매일 출근하는 것도 일 같아서" "주말이 삼 일이었으면 좋겠어/ 아니 사 일"이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주말').

  그리고 시가 만들어 낸 빈 공간은 우리에게 여력이 남아있음을 증명하는 듯 보인다. 언제든 충격이 다가와도 맞설 수 있다는 희망. 삶에서 아무리 도망치고 싶어도 잠시의 삽화적 공상을 통해 그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믿음. 이러한 마음 덕에 우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남아 있는 치약을 모두 짠다// 손끝이 얼얼할 정도로// 아직 더 남은 것이 있다"('여력').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남아 있는 힘을 모아 치약을 짠다

손끝이 얼얼할 정도로

아직 더 남은 것이 있다

- ‘여력‘ 중에서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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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백 희곡전집 9 이강백 희곡전집 9
이강백 지음 / 평민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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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강백이라는 이름은 참 익숙하다. 희곡과 연극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교과서나 국어시험문제를 통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연극을 공부하는 나는 이강백 희곡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이강백 희곡전집> 시리즈의 마지막인 9권이 되어서야 드디어 이강백의 작품을 만났다.

"노년기의 쇠약한 몸, 식어가는 마음"(p22)으로 더 이상 작품활동이 어렵다고 고백하는 작가에게 아마도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인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 연극계에 한 획을 그은 거장의 마지막 인사는 도대체 어떤 목소리를 담고 있을까. 오늘의 연극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2.

네 편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본주의"다.

  우화적인 성격이 강한 <여우인간>에서 여우들은 자본주의엔 "실감""감동"이 없다고 말한다. "직접 잡아먹는 실감""내가 살도록 자신을 희생한 먹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가슴 뭉클한 고마움"(p65)이 사라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게 될까? 또한 " 세상엔 사람보다 동물이 많고, 식물도 많이 있는데" "오직 사람만이 투표하는" (p108) 인간중심적 자본주의 세계관에 대한 비판도 놓치지 않는다.

  효(孝)의 이데올로기를 담은 고전설화 심청전은 이강백을 통해 빈곤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심청>으로 재탄생한다. 뱃사람과 선주들은 "안전하게 항해하도록 거센 파도와 바람에 끄덕 않는 배를 만들"(p143)지 않고 " 비용으로 효과가 좋은" 제물을 위해 인간을 희생시킨다.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많았"(p139)던 가난한 간난은 " 불행한 사람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p142)는 설득에 넘어가 제물이 되기를 선택한다.

  <어둠상자>는 기와집 열두채 가격에 육박했던 카메라가 일회용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관통한다. 그 사이 사람들은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것을 사진에 담아 간직했"던 과거 대신 "잠깐 보고는 휴지처럼 버려"버리는 시대를 살아간다(p238). 나아가 이제는 "이제 사진만이 아니라 사진기도 버리는" 세상이다(p252). 이러한 시대에서도 주인공은 "온갖 고장 카메라들을 수리해서 미국 군인의 물자 절약에 기여를 하였다"(p244)는 공로로 훈장을 받고,그 훈장 덕분에 또 하나의 역경을 헤쳐나간다.

  <신데렐라>는 그 누구에게도 맞지 않는, 궁극의 평균을 향해 나아가는 레디-메이드 신발을 신어야만 하는 현대인의 비애를 담는다. 어떻게든 신을 수는 있지만 편하지 않은,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그것을 신을 수밖에 없는 구두 앞에서, 작가는 그 구두를 버려버리라고 외친다."신데렐라가 신어도 맞지 않는 구두인데, 세상 어떤 여자 발에 맞을 수가 있겠냐? 없다, 없어. 빨간 구두야, 진심으로 말한다. 이젠 신데렐라 그만 찾아 다녀라! 고생만 헛수고야!"(p299)


#3.

솔직히 말하면, 그의 작품이 내 취향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다소 시대착오적인 부분들도 있는데다, 모든 표현들이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여성 서사가 부족한 측면에 대해서는 작가 또한 머리말에서 인정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부분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집을 9권이나 낼 만큼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쳤으며, 이러한 활동이 한국 연극계의 양적/질적 성장을 일으켰음을 부정하긴 힘들다. 특히 그의 작품들은 브레히트적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드는데, 20세기 중반의 유럽 연극계를 강타했던 브레히트의 방식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국내 연극계에 녹여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것이 마지막 작품임을 선언한 거장은 앞으로 어떠한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줄까? 방대한 극작의 여정으로 다양한 드라마를 선사한 거장 이강백. 연극이 끝나고 난 후, 그의 커튼콜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본다.

원숭이는 꼬리를 자르고 인간이 됐어요! 그런데 우리 여우들은 뭡니까? 원숭이보다 훨씬 월등한 우리가 꼬리를 달고 있어서 진화가 안 되는 거예요! 이젠 꼬리를 자릅시다! 우리 모두 쓸데없는 꼬리를 자르고 인간으로 진화합시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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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 더 나은 ‘함께’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 이주민 24명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순심(이나경) 그림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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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문화' 대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싫어하는 걸까요그런 미움은 정말 의미 없는 아닌가요? 싫어한다고 어디로 사라질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pp45-46) 이 책에 등장하는 다니엘은 이렇게 묻는다. 정말 의아하다. 사회는 왜 그리도 이주민을 싫어하는 걸까. "국제 이주노동의 흐름은 마치 물이 흐르는 것과 같"아서 " 나은 곳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듯, "물이 넘치는데 물길이 없거나 막혔다면 새로 길을 내며 흐"르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p294). 소정의 복지혜택과 물품 지원만을 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믿는 우리니라의 사회적 시스템이 이러한 혐오와 편견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외국인한테 뭐 도움을 준다고 하는데, 물건 주는 게 도와주는 거 아니에요.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게 최고예요. 우리는 다 사람이잖아요."(p206)라고 말하는 아미두 디아바테의 말은 우리 사회의 이주민 정책이 과연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돌이켜보게 한다. 이 책이 담아낸 이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는, '다문화'라는 말로 통칭할 때에는 알지 못했던 그들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이 한국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의 마음에 우리가 어떤 상처를 내고 있는지. 나아가 우리 사회가 그들과 어떻게 하나의 마음으로 같은 세계를 살아갈 수 있는지.


#2.

저자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교훈에 머물지 않는다. 외국인의 대한 편견을 내려놓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자, 라는 식의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아주 구체적인 비판과 솔루션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사점은 사회 전반을 향한다. 최근 시행되는 청년 주거와 관련한 정책의 대상을 이주 노동자를 대상으로 확장하자거나, 귀화 한국인의 병역 문제 등 최근 우리 사회의 여러 예민한 이슈들을 동료시민으로써의 이주민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를 둘러싼 노동환경 문제에서도 단순히 그들을 고용한 사업주가 악인이라고 치부하며 문제 해결을 미루지 않는다. "영세한 사용자를 위해 가진 없는 노동자에게 양보하라 강요하는 말고도 나은 방법"(p136) 등 더 본질적인 해결책을 통해, 을과 을의 싸움이 아닌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증진하기 위한 사회적 차원의 솔루션을 제시한다.

"미리 정착 단계를 밟은 이주민들 있었기에, 이민 정책을 어떻게 설계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배울 있"(pp196-197)다고 말하며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기여한 바 또한 놓치지 않는다. 오랜 기간 이주민들이 살아가는 현장 곳곳에서 함께 해온 저자이기에, 그들에 대한 애정과 문제 해결을 위한 열정, 그리고 이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이어졌기에 제시할 수 있는 내용들이리라.


#3.

"아무 기술이 없어도 항상 일이 있어요. 기술자 도와주고 물건 옮겨주고 허드렛일하면 일당 12 정도 받아요. 노동력으로는 필요한 사람이란 뜻이죠. 그렇다면 인간적인 대접도 해주면 좋잖아요?"(p193) 조니는 묻는다. 그렇다. 사실 "대한민국은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향후 나라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경고를 받고 "다(p197). 실제로 인구가 감소하면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오너스 효과'라는 개념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는 노동력이 필요한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고,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일자리가 많은 데다 정치와 치안이 안정"된 한국으로 이주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순리다(p295). 외국인 노동자를 수용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의 경제적 위상을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이들을 동료 시민, 동료 노동자로 대해준다면 조금은 안전하고 따뜻한 일터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현대사회는 빠르게 변화하 있고 대부분의 사회가 서로 닮아가고 있으니 유사한 점도 아주 많"(pp225-226). 우리와 그들이 서로 아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고, 지역에서 살아가는 시민이며, 우리 곁에 함께 하는 이웃이다. 저 사람도 나처럼 쉽지 않은 일상을 버텨내는 사람일 뿐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바라본다면 조금은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식을 탓하기 전에, 사회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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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외국인한테 뭐 도움을 준다고 하는데, 물건 주는 게 도와주는 거 아니에요.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게 최고예요. 우리는 다 사람이잖아요.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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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8
헨릭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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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세기 말 당시나 21세기의 지금이나 센세이션한 결말로 기억되는 입센의 <인형의 집>. 이번에 천천히 다시 읽어 본 <인형의 집>은 결말의 파격만큼이나 두터운 담론을 다룬 이야기로 다가왔다. 지금껏 노라가 집을 떠나는 결말에만 집중하느라 보지 못한 채 놓친 것들이 너무 많았구나, 라는 걸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먼저, 노라는 단순히 자신 앞에 주어진 상황들이 개인적인 문제라고 치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신은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헬메르를 향해 노라는 말한다. "그래요, 이해하지 못해요. 하지만 나는 시작할 거예요. 나는 사회가 옳은지 내가 옳은지 밝힐 거예요"(p120). 또한 노라는 자신이  노라는 자신이 "그렇게 아빠 손에서 당신 손으로 넘어갔"(p115)을 뿐이라고 말한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종속이 대를 이어 계승되어 왔음을 명확히 인지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변화해야 할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었음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행복한 적은 없었"다는 자신을 향해 "놀이는 끝난 것으로 하지. 이제는 교육이 시작되는 거야"(p116)라며 옭아매는 남편에게 노라는 이렇게 되받아친다. "당신에게 어울리는 아내로 교육할 람은 당신이 아니에요"(pp116-117)라고. 그리고 집을 나가며 "나는 더 이상 기적을 믿지 않"(p124)는다고 말하는 걸 보면, 어쩌면 그는 이 세상의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으리라. 그리고 그의 생각은 정확했고, 여전히 우리가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2.

<인형의 집>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성 인물 모두 노동의 경험을 가진 이들이다. 입센은 이들을 통해 여성의 노동과 계급을 이야기한다.

노라의 친구이자 사건 해결의 열쇠를 제공하는 크리스티네는 "살기 위해서 (...)  평생, 내가 기억할 있는 동안은 언제나 일을 했"(p91). 그는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친구인 노라를 통해 남편이 재직 중인 은행의 일자리를 얻고자 찾아온다. 그리고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노라를 둘러싼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노라와 그 자녀들의 유모인 안네 마리는 "내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p56)던 남성들 대신 "아이들을 다른 사람에게 떼어 놓"(p55)으면서 일을 해야 했다. 부르주아의 삶을 살아가는 노라로선 상상하기 힘든, 노동하는 여성의 삶을 그에게 일깨워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의외였던 점은 노라 또한 한때는 여성 노동자였다는 사실이다. 남편 몰래 돈을 빌렸던 그는 그 돈을 갚기 위해 "방에 들어가 문을 걸고 매일 밤늦게까지 쓰는 일을 했"(p29)다. 하지만 필연으로써 노동을 인지하는 앞의 두사람과 달리 그에게 "돈을 버는 건 참 즐거웠"으며 "꼭 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p29).

노동을 대한 이들의 태도에서 노동을 다루는 계급에 따른 이미지가 아주 극명하게 갈라진다. 사실 크리스티네와 안네-마리에게도 노라와 같은, 어쩌면 더 강력한 해방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3.

노라에 가려져 제대로 보지 못했던 크리스티네가 뇌리에 강력하게 남는다. 사실 이번 뿐만이 아니다. 2018년 예술의전당이 30주년 기념으로 기획했던 <인형의 집> 연극에서도 그랬다. 공연 자체는 개인적으로 매우 별로였지만, (최근 드라마 '슈룹'에서 고귀인으로 열연 중인) 우정원 배우가 연기한 크리스티네만은 달랐다. 카랑카랑한 발성과 꼿꼿한 연기로 표현한 크리스티네는 노라에 가려져 보지 못한 여성 노동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친구에게 일자리를 부탁하러 오는 민망함과 자괴감. 거기에 친구의 은혜를 갚고자 친구가 돈을 빌린 자신의 전남친 크로그스타드를 찾아가 "나는 내가 어머니가 되어 누군가가 필요해요. 그리고 당신의 아이들은 어머니가 필요하죠. 우리 둘은 서로가 필요해요."(p93)라며 청혼하며 상황을 해결하려는 모습. 노라의 친구라는 이유로 취직에 성공했지만 노라의 가출 이후 헬메르의 눈칫밥을 먹어야 할 그의 앞날까지. 노라의 화려한 서사에 가려진, "내가 무언가, 누군가를 위해 일할"(p93) 기회를 원하는 크리스티네의 굳건함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크리스티네의 시선으로 풀어낸 <인형의 집>도 궁금해진다. 노라를 찾아오기 전까지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노라가 떠난 후, 헬메르 밑에서 일해야만 하는 크리스티네는 얼마나 많은 껄끄러움과 역경을 견뎌내야 할까.

노라: 예, 그게 문제예요. 당신은 나를 이해하지 못해요. 그리고 나도 당신을 이해한 적이 없었어요. 오늘 저녁까지는 그랬어요. 아니, 내 말을 끊지 말아 줘요. 당신은 내가 하는 말을 그냥 들어요. 지금 우리는 밀린 계산을 하는 거예요.
헬메르: 그게 무슨 뜻이오?
노라: (잠시 침묵한 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앉아 있는데, 뭐 생각나는 게 없나요?
헬메르: 대체 뭐?
노라: 우리가 결혼한 지 팔년이 되었어요. 그런데 당신과 나, 남편과 아내, 우리 둘이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게 지금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

노라: 걱정거리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우리가 한 번도 진지하게 앉아서 무언가를 근본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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