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트, 그리고 퀼트 문학동네 시인선 131
주민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킬트(Kilt)는 "스코틀랜드의 남성이 전통적으로 착용한 스커트"('킬트의 시대'). "스코틀랜드의 어느 광장에서" "치마 입은 남자들과 춤을 추" "치마는 소리 없이 돌고/ 돈다는 것은/ 돌면서 계속 새로운 무늬를 가진다". "치마를 입고 함께 춤을 춘다고 해서/ 우리의 성이 같아지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모호하게 기워져 있"다. 킬트는 이렇듯 우리의 젠더 이분법을 모호하게 만드는 유산이다. 이와 같은 킬트의 모호함은 역사적 관습으로써의 남녀유별은 필연적이라는 혹자들의 고정관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렇게 우리는 편견의 경계가 사라진, "밖에서의 규칙들을 잊어버려도 좋"을 물속으로 빠져든다('오리들의 합창'). 비록 그곳에선 "마음대로 되는 게 없"지만, "뭐든 천천히 힘을 빼야" 한다는 새로운 방법을 배운다. 누군가는 명확함이 정체성을 규명하기에, 너와 나 사이의 범주를 더 철저히 세워야 한다 말하지만 "흔들리며 명확해지는 풍경"('블루스의 리듬')도 있는 법이기에 때로는 그 경계들을 지우는 것을 통해 '우리'가 된다. 이렇듯 주민현 '우리'가 되는 첫 번째 방법으로 킬트처럼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 것을 제안한다.


#2.

퀼트(Quilt)는 작은 크기의 천들을 모아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다. 서로 다른 곳으로부터 비롯된 직물들은 누군가의 손을 거쳐 결합하며 하나의 새로운 산출물을 만들어낸다. "비슷한 군중이 되어 걷고 있지만"('호텔, 캘리포니아') 그 본질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세상은 마치 퀼트의 질서를 닮았다. 우리는 분명 서로 다른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원에 간다/ 우리의 삶이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하려고"('한낮의 공원'). 비록 다른 직물들이지만 하나의 조각보 위에 놓여있음을 확인받고 싶은 것이 사회적 동물의 마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가 다른 곳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래서 "서로 다른 영화를 보면서/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그걸 사랑이라 부른다"('어두운 골목'). 같은 천 위에 놓여있지만 서로 다른 직물임을 인정하는 과정. 서로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기에 조각보가 더 아름답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세. 주민현이 제시하는 '우리'가 되는 두 번째 방법은 바로 퀼트의 세계를 떠올리는 것이다.


#3.

"킬트, 그리고 퀼트". 경계를 지우는 킬트와, 차이를 확인하는 퀼트. 서로 상반된 듯 보이는 두 가지를 주민현은 '킬트의 시대'라는 하나의 시로 풀어낸다.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가 되는, 양극단에 놓여 있지만 하나의 지면에 풀어낸 두 가지 질서는 어떻게 공존하는 것일까. "체크무늬의 치마, 우리를 깁지"라고 마무리되는 '킬트의 시대'의 마지막 행이 그 해답을 제시한다. 경계를 흐릿하게 지우는 체크무늬의 킬트가 결국엔 퀼트처럼 우리를 기워줄 것이다.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결국엔 그것이 인위적 경계가 아닌 자연스러운 차이들을 더 극명하게 드러내줄 것이다. "어떤 것들은 사라진 때부터/ 제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가방의 존재')는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포기하지 못했던 어떠한 편견의 경계들이 사라진 이후, 비로소 우리의 진정한 차이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경계를 지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후 드러나는 차이들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일일 것이다. "우연한 악의의 감정" 대신 "놀라울 만큼의 선의"로 말이다('브루클린, 맨해튼, 천국으로 가는 다리')

치마를 입고 함께 춤을 춘다고 해서
우리의 성이 같아지는 건 아니지만

한때 노동복이었던
치마를 입은 내가 스코틀랜드에선

남자여도 이상할 건 없지 - P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