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면하는 마음 - 나날이 바뀌는 플랫폼에 몸을 던져 분투하는 어느 예능PD의 생존기
권성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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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여년간 예능을 만들어온 권성민 PD는 예능을 장르의 여집합이라 표현한다. "공통점이라고는 '카메라 앞에 사람을 세워 찍은 다음 편집실에 와서 편집'"(p10)하는 것뿐이며, "확실히 드라마이거나 확실히 시사교양인 것들을 빼고 난 뒤에 남은 애매한 것들이 복닥거리는 곳, 정해진 모양이 없는 만큼 자유롭고, 좋은 뜻으로 제멋대로"인 분야가 바로 예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해외 시장에서는 '예능'이란 이름의 종합적인 장르 분류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scripted(대본이 있는)'의 반대 개념으로 'non-scripted(대본이 없는)'라는 분류 정도가 있"(p48)을 뿐이다. 그래서 예능엔 언제나 신선함이 필요하다. 예능은 통상 드라마나 다큐, 시사교양보다 시청자들에겐 더 친숙하고 가깝게 느껴지지지만, 반대로 드라마보다 완성도가 낮지 않느냐, 시사교양보다 유익함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 속에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누군가의 노동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2.

이 책에서 권성민PD는 창작자이기 이전에 방송국이라는 조직(혹은 기업)에 속한 노동자로써의 PD의 정체성을 고찰한다. 그에게 PD는  "관객들은 전혀 모를 텐데 감독 눈에만 보이는 사소한 오류조차 용납하지 않는" 거장이기만 해서는 안된다. 여러 사람의 노동과 커리어, 생계를 지고 있는 사람이니만큼 때로는 현실과 타협하며 최고(最高)만큼이나 의미있는 최선(最善)을 만들어야 한다. 빠르게 다른 컨텐츠로 대체 가능한 디지털과 달리 "채우기로 약속한 자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채워줘야 하는"(p53) 레거시 미디어의 환경 속에서는 작품성을 따지기 이전에 다른 이들과의 약속도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또한  "애매하고 폼 안 나는 일들이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줘야 폼 나야 할 것들이 제대로 보"(p69)이듯, PD는 명확하게 규정되진 않아도 모든 일에 관여해야 하는 존재다. 그는 PD의 역할을 통해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역량만큼이나 그것을 운용하기 위한 노동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다. 또한 그는 창작노동자로써의 동종업계 종사자를 위한 사회적 책임 또한 놓치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좋은 작품을 발견하면 열심히 소문내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직업 창작자들에게 최고의 인정은 결제, 그리고 정확한 언어로 보내는 칭찬"(pp.80-81)이라고 강조한다. 


#3.

레거시 미디어는 죽었다고 말하는 시대, 권PD는 "여전히 TV에 힘이 남아 있다"(p48)고 믿는 사람이다. 특히 그는 시청하는 뉴미디어가 갖지 못하는, "시청 인구 100만은 방송이 나가는 딱 한 시간 동안 100만 명이 동시에 TV 앞에 앉아 있"(p48)어야만 한다는 집중도에 주목한다. 그래서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더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고 구매하는 책이나 영화"와 달리"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대중을 사로잡아야 하는 TV는 "불특정 다수의 눈길을 끌어야 하는"(p161) 운명에 처해있다. 여기서 그는 신선함만큼이나 중요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던, '아는 맛'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매일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는 익숙한 것이 주는 편안함"(p136)을 놓치지 않고 "내 예상이나 통제 바깥의 것에 매달리기보단, 내가 잘 아는 것에 집중하는"(p130) 마음. 사람들의 삶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가, 익숙하지만 얼마나 더 확실한 즐거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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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PD는 이야기를 만들고 찾아내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둘러보니, 꼭 그게 직업이 아니어도 세상에 자기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참 많더라. 시장 좌판에서도 나물이며 과일 곁에 적혀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가끔은 도로 위 자동차 뒤통수에서도 목소리를 만난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예능을 만드는 본업에, 글을 써서 책도 내보니, 예능을 만드는 일은 담력이 필요하고 글 쓰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더라.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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