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담의 열자주 한길그레이트북스 180
장담 지음, 임채우 편역 / 한길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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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아는 도교는 그저 윤리와사상 시간에 잠시 스쳐지나간 고대 중국의 사상일 뿐이었다. 호접몽, 노자, 장자, 이 정도가 도가에 대한 내 지식의 전부였고 궁금하지도 알려고 하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장담의 열자주>를 읽고 나니, 도교가 궁금해졌다. 수천년 전 등장한 사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진보적이고 신선했다. 이 책에 해제를 단 임채우 교수는 "유교가 권력자의 사상이라면, 도교는 대중들을 위한 사상"이라고 이야기하며 사회지도층의 유교중심적 문화로 인해 중국과 한국에서 모두 도교가 평가절하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굉장히 설득력 있었다. 특정한 도덕 가치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도교의 방식은 유교문화로 인해 무언가를 잊고 살았던 한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사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

도교는 꿈의 철학이다.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인 노자의 호접몽도 그러하지만, 열자의 책에서는 꿈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 특히 "인간의 감정과 욕망, 이성적인 사유를 벗어나서 이르게 되는 정신적 경지"(p105)인 "허(虛)"를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의 상태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꿈을 통해 가능하다. 편역자인 임채우 교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예시로 들며 후대의 판타지물이 도교의 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는 SF/판타지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 <센스8>도 보이고, <황금나침반> 시리즈도 보였다.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보고 싶은 창작자라면 누구에게나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꿈의 철학이자 상상력의 철학이 될 거라 확신한다.


#3.

열자의 사상이 시대를 앞서갔다고 생각한 부분이 여러 가지 있었다. 유교 특유의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생태주의관도 물론 그러했지만, 이러한 도교의 자연관은 이전에도 얼핏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나를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어린이에 대한 도교의 인간관이었다. 열자는 인간의 생애를 소년-중년-노년-사망의 4단계로 정의하며, 어린 시절인 소년기에 대해 "기운과 정신이 흩어지지 않아서 완전히 조화를 이루고 있"어 "외부의 사물이 해칠 수도 없고 덧붙일 수도 없는 완전한 덕"을 가진 시기(p80)라고 표현한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어린이들을 아직 완성되지 못한 미숙한 상태이며, 어른을 위한 잠재적 단계로 분석하는데 열자는 오히려 어린이들 또한 도덕의 완결상태로 본 것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비유와 일화에서 어린이의 관념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는데, 노키즈존이나 '잼민이' 등의 유아혐오가 팽배해진 오늘날의 사회가 수천년 전의 열자의 사상보다 나은 지점이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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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도를 어기는 것이지, 도는 사람들을 어기지 않는다 - P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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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 - 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 임철규 저작집 2
임철규 지음 / 한길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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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상 기록된 최초의 연극으로 알려진 그리스 비극. 고대 그리스 최대의 행사였던 디오니소스 축제 메인 이벤트였던 비극들은 '그리스 비극'이라는 또 하나의 장르로 분류되며 현재까지 전해진다. 정확한 시점조차 가늠할 수 없는 수천년 전에 창작된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이어져오며 많은 이야기의 원형을 제공하고 있다. 이미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접한 우리에겐 너무도 단순하고 유치하며 식상한 서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 또한 그리스 비극에 최초로 제시한 서사적 모티프들이 후대에서 변주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고 있거나 만들고 싶은 사람, 세상 모든 이야기의 원천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봐야 한다는 상투적인 문장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2.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리스 비극은 읽기가 참 쉽지 않다. 현대극의 형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품이 전개되는 데다가, 신화적 배경 지식을 너무 많이 요한다. 주인공이 처한 운명과 저주들을 둘러싼 신화적 요소들은 당대의 관객들에겐 배경지식이었기에 전혀 설명이 되어있지 않지만, 21세기에 읽는 우리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임철규 교수님은 이 책을 통해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독자들이 짚고 넘어가야 할 배경지식들을 알차게 담아냈다. 이 책의 분량 자체는 쉬이 도전할 수 없을 만큼 두껍긴 하나, 이 책 한 권 속에 15편의 희곡과 각 희곡에 대한 수많은 석학들의 주석서 수십권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면, 한 권의 책으로 수십 권을 읽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이 책이 최고의 요약서이자 효율성 끝판왕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3.
이 책을 읽으며 '역시 그리스 비극은 친절한 해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곱씹었다. 수천년 전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의문들에 대해 임철규 교수님은 한 문장 한 문장 정성스럽게 서술해간다. 특히 '애도'라는 키워드에 매우 초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언제나 누군가의 죽음 위에서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우리의 삶을 구성하도록 한 앞선 시간의 누군가를 애도하는 자세가 비극을 통해 구현된다는 것이다. 인류는 이러한 애도의 마음을 오랜 시간 학습해왔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극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내재화된 것이리라. 오늘날의 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의 해피엔딩을 바라고, 새드엔딩이 나오면 불쾌함을 표하면서도 그 엔딩을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 것 또한 이것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새드엔딩에 끌리는 알 수 없는 마음이 궁금하다면 <그리스 비극>에 도전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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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비극을 통해 분노가 극한에 이를 때 인간은 인간이라는 범주를 초월하는 절대추상체가 되어, 분노 자체가 자신이 되고, 복수 자체가 자신이 되고, 저주 자체가 자신이 되는, 그리하여 자기 자신에게도 낯선 타자가 되는 인간의 존재론적인 비극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P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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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발한다 - 드레퓌스사건과 집단히스테리
니홀라스 할라스 지음, 황의방 옮김 / 한길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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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밀 졸라의 기고문으로 더 잘 알려진 <나는 고발한다>. <J'Accuse!>라는 원제로 대서특필된 이 글은 당시 스파이 조작사건의 타겟으로 지목되어 불명예 제대와 인권침해적 재판을 받은 드레퓌스를 옹호하며 사회 전반의 유대인 혐오를 지적하는 글이다. 당대는 물론 후대에 이르기까지 이 글은 사회의 소수자 혐오와 형사소송법 상의 인권보장 문제, 반지성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메시지를 전해주며 "나는 고발한다"는 표어는 하나의 관용구로 자리잡았다. 동명의 이 책은 19세기 말에 태어나 그 이후의 시대를 경험했던 지식인, 니홀라스 할라스가 사건의 내용을 재구성한 소설이다. 1958년에 영화화 되었다고도 하는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복원한 것임에도 그만큼의 드라마틱함을 자랑한다는 점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얼마나 난폭하고 강렬한 사건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에밀 졸라라는 한 사람의 호소문을 넘어 시간의 순서에 따라, 다양한 인물들의 언행으로 재구성된 사건은 마치 사건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는 듯한 생생함을 선사한다. "유대인 드레퓌스가 스파이로 거짓 기소된 사건"이라는 교과서 속 한 줄의 문장이 얼마나 무거운 사안을 담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2.

이 책은 어느 한 사람의 시점을 따라가지 않는다. 사건과 관련한 다양한 인물들이 쏟아지는 등장한다. 프랑스 군부를 비롯해 독일의 행정부, 러시아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1차 세계대전으로 촉발되는 수많은 혼란들이 농축되어 있다. 특히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언론들, 특히 반유대주의 보수 언론들의 헤드라인과 기사들을 곳곳에 배치하여 마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언론에 현혹당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미디어 사회에 진입한 오늘날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쓰인 기사를 보며 '기레기'를 욕하다가도, 우리 스스로도 결국 그런 기사에 무의식 중에 끌리는 모습을 보다 보면 많은 반성을 하게 된다. 또한 자극적인 언론을 둘러싼 가짜뉴스 등의 문제도 요즘만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미디어가 발전하며 최근에 '촉발'된 것이지 매체가 존재하는 한 매체에는 언제나 허위/혐오 정보가 함께했고 대중들은 그런 매체에 쉽게 현혹되어 왔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특히 반유대주의와 같은 소수자 혐오 정서를 둘러싼 폭력의 문제에서 지도층과 언론이 1차적 책임을 지고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유포하는 대중들에게 2차적 책임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 아주 극명히 드러난다. 과연 우리 모두는 이 문제에서 결백하고 순진무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반응했기에, 그 힘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은 아닐까.


#3.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19세기 말을 살아가는 당대의 사람들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변모했다고 자부하곤 한다. 평균적인 교육 수준도 높아졌으며, 지식의 민주화도 더 적극적으로 이뤄젔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진정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있을까? '드레퓌스 사건도 마치 '과거의 비이성적 사건' 정도로 치부하기엔 우리는 이와 비슷한 사례를 너무도 빈번히 마주한다. 반지성주의'가 한국을 넘어 국제사회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다. 민주주의가 지성주의와 합리주의로 이룩해온 역사이기에, 그 대척점에 놓인 반지성주의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언제든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민주주의 이전에 시대로 복고할 수 있는 법이니까. 물론, 엘리트주의에 대한 경계는 필요하다. 하지만 나에게 껄끄럽고, 나에게 배움을 요구하는 모든 이데올로기를 엘리트주의라 매도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뭘 또 깨달으라고 하냐'는 식의 불편도 일견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인간 앞에 놓인 세계는 끝이 없고, 특히나 빠른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겐 세상의 불편함을 인지하고 배우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 얻은 편리함의 대가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022년에도 드레퓌스는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그 드레퓌스는 내가 되지 않으란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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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법이 만약 나의 발언의 정확성을 증명하도록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할 수단을 박탈한다면 그 법은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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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
김현화 지음 / 한길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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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중미술을 처음 접한 건 대학교 1학년 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전시에서였다. 20세기 아시아에서 발생했던 다양한 사회참여 예술운동에 대한 전시였는데, 거대한 전시장을 가득 채운 그림들은 나의 숨통을 조여왔다. 굵은 선과 빨강, 주황, 노랑 등의 원색을 활용한 강렬한 색채, 우회적 은유 대신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직설 화법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예술은 미감(美感)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나의 관념이 와르르 붕괴했다. 민중미술 전시공간을 감싸는 것은 아름다움의 미학보다 정치적 메시지 그 자체였다. 그림은 하나의 도구로 활용되었을 뿐이다. 그때의 광경과 감각은 오랜시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때 처음 느꼈다. 미술이 이렇게 한 사람의 머리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이래서 정치운동에 미술이 활용되는구나를 직접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치적인 안정기에 태어나 예술과 친밀한 삶을 살았던 나에게도 이렇게 충격적인데, 정치적 혼란기에 미술을 쉬이 접하기 어려운 당시의 민중들에게 민중미술이 얼마나 강렬한 경험을 선사하는 대상이었을지가 느껴졌다. 몇달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여성민중미술전 <허스토리 리뷰>를 관람할 때에도 이 경험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2.

민중미술은 고유명사다. 영국의 테이트미술관 홈페이지도 민중미술을 소개할 때 'Minjung Art'로 번역한다. 사회참여형 예술은 20세기의 제3세계 국가들 어디에나 존재했지만, 민중미술은 1970-80년대 한국에서 등장했던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예술운동이자 사조다. 일반적인 문화운동이 구호나 포스터 중심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운동에 가까웠다면, 민중미술은 단순히 투쟁의 도구를 넘어 미술품을 창작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있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도 작품으로써 존재한다. 또한 단순히 창작을 넘어 그것이 시민들에게 수용되는 방식들도 함께 고민한 운동이기에 민중미술의 흔적은 여전히 우리의 삶 곳곳에 남아있다. 연세대의 <한열이를 살려내라>와 경희대의 <팔뚝이>와 같이 복원된 형태뿐만이 아니라, 대학의 '대동제'문화에서부터 요즘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벽화마을이나 걸개그림, 상상속 지옥을 현대적 형태로 재현한 <신과함께>에 이르기까지 알게 모르게 우리는 민중미술의 숨결을 느끼고 있다.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민중미술전을 끝으로 민중미술은 막을 내렸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민중미술 작품들을 만나다보면, 도판 곳곳에서 생각보다 친숙함을 느끼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3.

작가는 민중미술을 하나의 거대한 제의(祭儀)라고 정의한다. 장례에서부터 49제, 제사와 굿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기리고 추모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민중미술이 제의의 역할을 했다는 점은 아주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착취가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사회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하는 것은 아주 빈번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의 말과 행동이 생명을 해칠 수 있다는 공포, 지금 소식이 끊긴 누군가가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언제든 내가 끌려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전개된 운동이기에, 그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으리라. 그리고 민중미술은 이 기능을 아주 성실히 수행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함과 동시에 그 위에서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내는 민중미술의 힘은 예술이 가진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가늠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 힘을 직접 경험했던 당시의 예술가와 민중들은 지역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운동을 이어가고 있고, 이것이 오늘날의 지역문화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물론 민중미술 운동에 대한 한계도 있다. 여성에 대한 대상화 문제나 가부장 질서의 성실한 재현, 성공적인 주류 미술계 진출에 따른 지역 예술가의 소외문제 등 이 책에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들에 대한 비판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건, 여전히 그 미술에는 추모의 정신이 담겨있고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들의 죽음 위에 세워진 것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민중미술을 볼 때 경험한 숨막히는 충격은 아마 내 무의식 속에서 이들의 죽음을 인지하고 애도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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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셋째, 창조나 수용이 조화롭게 만나며 함께 나누는 통로로서 민중적 삶을 함께하는 수용의 운동과 교육의 실천방법을 다각적으로 확대하는 일. (...) ‘민족미술협의회‘의 목적을 요약하면 통일지향과 민족미술계발 그리고 미술교육을 통한 미술의 대중화와 미술가의 권익 보호라 할 수 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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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와 차 한잔 - 그의 사상과 만나다
김선욱 지음 / 한길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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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나 아렌트의 책을 꽤 좋아한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혐오와 반지성주의가 가득한 시기를 이겨내기에 그만큼 적합한 책도 거의 없는 듯하다. 그리고 나의 이런 취향에는 김선욱 교수님이 번역하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읽은 책이 바로 그 책이었는데, '어렵고 난해하다'는 소문만 듣고 두려워했던 나의 걱정과 달리 김선욱 교수님의 번역으로 읽은 그 책은 생각보다 술술 읽혔다. 아마도 김선욱 교수님이 평생을 한나 아렌트 철학 연구와 번역에 쏟아온 열정과 시간들이 그런 결과로 이어진 것이리라. 김선욱 님이 쓰거나 옮기신 한나 아렌트에 대한 글을 볼 때면, 한나 아렌트의 멋진 사유와 철학들에도 감탄하지만 한나 아렌트의 매력을 알게 해주신 교수님께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2.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아렌트 한 사람만이 아니라, 철학사적인 맥락 속에서 설명해준다는 점이다. 한나 아렌트는 칸트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막연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대체 어떤 형태로 어떤 부분에 그 흔적이 남아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된 것 같다. 이를 테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정치적 동물'이라는 개념에 대해 "아렌트는 '정치적'이라는 말과 '사회적'이라는 말을 엄격하게 구분"하며 "이 개념들의 뿌리를 추적하는 가운데 경제에 몰입한 현대의 삶이 어떤 정치적 태도를 놓치는지 발견"하고 "경제에 몰두한 삶 속에서 정치를 회복함으로써 인간적 삶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를 주장"(p32)한다고 설명하며, 고대의 철학들이 계속되는 수용과 비판을 통해 현대에는 어떠한 맥락을 자리잡는지를 너무도 잘 보여준다. 항상 어렵고 버겁다고만 느껴졌던 철학의 매력이 무엇인지 맛볼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책이다. 아주 쉬운 언어들을 바탕으로 챕터들도 주제별로 짧고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어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김선욱 교수님의 해설을 따라가다보면 한나 아렌트뿐만 아니라 고대로부터 현대로 이어지는 정치철학의 묘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3.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 한나 아렌트의 사상에 미친 영향들을 디테일하게 설명해주신 부분들도 인상깊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워낙에 유명하다보니, 유대인 문제가 그의 철학에서 매우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왜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아는 것은 어려웠다. 이 책은 적지 않은 챕터를 할애하여 이에 대해 친절하게 해설해준다. 예를 들면, "국민국가가 형성될 때 유대인이 취한 태도와 그들에 대해 유럽 사회가 취한 태도는 국가의 위기와 제국주의의 확대 시기에 근본적으로 변"하고 이것을 통해서만 "유럽의 사회적 집단들과 유대인 사이에 적대감이 고조된 이유가 드러나"며 "이런 인식이 바탕에 있어야 유대인이 져야 할 역사적 책임의 몫을 알 수 있다"(p235)고 주장하는 부분에서는 유대인문제가 단순히 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긴 흐름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어 왔는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정체성마저 객관화하고 유대인과 반유대주의자 모두의 비판을 감수하고 새로운 정치사상을 이끌어낸 그의 용기와 지성이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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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실의 일들이 논리적으로 또 합리적 방식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거짓말은 항상 논리를 바탕으로 해서 합리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진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종종 사실보다는 거짓말이 더 그럴듯해 보이고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을 넘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들을 동원하여 사실 연관성에서 말의 진위를 확인함으로써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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