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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
김현화 지음 / 한길사 / 2021년 1월
평점 :
#1.
민중미술을 처음 접한 건 대학교 1학년 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전시에서였다. 20세기 아시아에서 발생했던 다양한 사회참여 예술운동에 대한 전시였는데, 거대한 전시장을 가득 채운 그림들은 나의 숨통을 조여왔다. 굵은 선과 빨강, 주황, 노랑 등의 원색을 활용한 강렬한 색채, 우회적 은유 대신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직설 화법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예술은 미감(美感)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나의 관념이 와르르 붕괴했다. 민중미술 전시공간을 감싸는 것은 아름다움의 미학보다 정치적 메시지 그 자체였다. 그림은 하나의 도구로 활용되었을 뿐이다. 그때의 광경과 감각은 오랜시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때 처음 느꼈다. 미술이 이렇게 한 사람의 머리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이래서 정치운동에 미술이 활용되는구나를 직접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치적인 안정기에 태어나 예술과 친밀한 삶을 살았던 나에게도 이렇게 충격적인데, 정치적 혼란기에 미술을 쉬이 접하기 어려운 당시의 민중들에게 민중미술이 얼마나 강렬한 경험을 선사하는 대상이었을지가 느껴졌다. 몇달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여성민중미술전 <허스토리 리뷰>를 관람할 때에도 이 경험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2.
민중미술은 고유명사다. 영국의 테이트미술관 홈페이지도 민중미술을 소개할 때 'Minjung Art'로 번역한다. 사회참여형 예술은 20세기의 제3세계 국가들 어디에나 존재했지만, 민중미술은 1970-80년대 한국에서 등장했던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예술운동이자 사조다. 일반적인 문화운동이 구호나 포스터 중심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운동에 가까웠다면, 민중미술은 단순히 투쟁의 도구를 넘어 미술품을 창작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있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도 작품으로써 존재한다. 또한 단순히 창작을 넘어 그것이 시민들에게 수용되는 방식들도 함께 고민한 운동이기에 민중미술의 흔적은 여전히 우리의 삶 곳곳에 남아있다. 연세대의 <한열이를 살려내라>와 경희대의 <팔뚝이>와 같이 복원된 형태뿐만이 아니라, 대학의 '대동제'문화에서부터 요즘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벽화마을이나 걸개그림, 상상속 지옥을 현대적 형태로 재현한 <신과함께>에 이르기까지 알게 모르게 우리는 민중미술의 숨결을 느끼고 있다.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민중미술전을 끝으로 민중미술은 막을 내렸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민중미술 작품들을 만나다보면, 도판 곳곳에서 생각보다 친숙함을 느끼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3.
작가는 민중미술을 하나의 거대한 제의(祭儀)라고 정의한다. 장례에서부터 49제, 제사와 굿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기리고 추모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민중미술이 제의의 역할을 했다는 점은 아주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착취가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사회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하는 것은 아주 빈번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의 말과 행동이 생명을 해칠 수 있다는 공포, 지금 소식이 끊긴 누군가가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언제든 내가 끌려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전개된 운동이기에, 그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으리라. 그리고 민중미술은 이 기능을 아주 성실히 수행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함과 동시에 그 위에서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내는 민중미술의 힘은 예술이 가진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가늠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 힘을 직접 경험했던 당시의 예술가와 민중들은 지역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운동을 이어가고 있고, 이것이 오늘날의 지역문화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물론 민중미술 운동에 대한 한계도 있다. 여성에 대한 대상화 문제나 가부장 질서의 성실한 재현, 성공적인 주류 미술계 진출에 따른 지역 예술가의 소외문제 등 이 책에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들에 대한 비판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건, 여전히 그 미술에는 추모의 정신이 담겨있고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들의 죽음 위에 세워진 것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민중미술을 볼 때 경험한 숨막히는 충격은 아마 내 무의식 속에서 이들의 죽음을 인지하고 애도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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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셋째, 창조나 수용이 조화롭게 만나며 함께 나누는 통로로서 민중적 삶을 함께하는 수용의 운동과 교육의 실천방법을 다각적으로 확대하는 일. (...) ‘민족미술협의회‘의 목적을 요약하면 통일지향과 민족미술계발 그리고 미술교육을 통한 미술의 대중화와 미술가의 권익 보호라 할 수 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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