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과 속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30
M.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 / 한길사 / 1998년 5월
평점 :
#1.
종교학은 국내에선 꽤나 낯선 분야다. 기독교의 신학이나 불교학 등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반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연구하는 종교학은 많은 이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대입 때 잠시 종교학의 매력에 빠져 종교학과 진학을 꿈꿨었는데,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후 읽은 종교학의 고전, 엘리아데의 <성과 속>은 정말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심리학과 철학, 신학과 인류학 등의 유사학문 분야들 속에서 종교학이 무엇인지 정의하며 고유의 영역을 찾아가는 과정이 특히나 인상깊었다. 사람들은 왜 신을 찾을까?라는 유구한 질문에 해답을 따라가는 기나긴 여정에 조금이나마 함께한 것 같다.
#2.
근대 이후의 인간은 중세 이전의 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성을 찾게된 '합리적' 인간으로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엘리아데는 이런 근대적 세계관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근대인들이 말하는 소위 "비종교적 인간은 종교적 인간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며, 좋든 싫든 간에 종교적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근대인들이 가지는 탈종교적 시각마저도 "선조가 만들어낸 상황에서 발전한 것"(p183)이라고 말이다. 모든 반(反, "비종교적")는 정(正, "종교적")을 내포한다는 헤겔의 변증법은 차치하더라도, 신앙과 무관하게 우리는 모두 종교적 세계관 아래서 살아간다. 엘리아데의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중요한 시험을 앞둘 때면 두 손 모아 천지신명을 찾으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 것도, 빨간색으로 이름 쓰는 것이 꺼려지는 것도 결국은 모두 '성스러움'의 영역이다. 하나의 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중세의 종교는 이성으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모두가 납득하는 미신의 형태로 남아 근대 이후로도 지속되었고 현대를 살아가는 '합리적인' 우리들에게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3.
언뜻보면 무겁고 진지하고 지루할 것 같지만, <성과 속>은 생각보다 훨씬 경쾌하고 흥미롭다. 분명 우리와 완전히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종교와 성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속에서 투영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에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이를 테면 "신년은 우주 창조의 재현이므로 시간을 그 시초부터 반복한다는 것, 따라서 창조의 순간 그대로 태초의 시간, '순수한' 시간을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년이 '정화'의 계기, 즉 죄나 악마 혹은 속죄양을 쫓아내는 계기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는 문장에선 새해 첫 날마다 전 해의 기억들은 리셋하며 새로운 결심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져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왜 많은 종교들이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서 피범벅이 된 제물을 바치는지, 새로운 집터를 고르는 일에 신중한 이유와 같이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들에 대한 실마리를 얻어갈 수도 있었다. 신을 믿든 그렇지 않든, 인간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번쯤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추천해본다.
-
* 한길사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비종교적이라고 주장하는 근대인들에게 있어 종교와 신화는 그들의 무의식의 어둠 속에 ‘은폐‘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이러한 인간이 내면의 깊이 안에 생의 종교적 비전을 회복할 가능성을 감추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P1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