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문법 (2023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정부, 가난한 국민
김용익.이창곤.김태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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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지는 본디 노동과 연결되어 있다. 사회보험을 소득세와 연동해서 징수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복지의 문법>이라는 제목처럼 한국 사회의 복지정책을 더 광범위한 사회정책으로 확장하기 위해 저자는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노동과 고용의 문제를 조명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똑같이 3 달러 규모였을 세계적으로 복지가 취약하다고 알려진 미국보다 한국이 공공사회지출로 훨씬 적은 금액을 썼다는 사실"(p76)을 딛고 저자는 다양한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 중 하나는 근로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유연근무제가 확대되는 최근의 세태에 대해, 복지 증진을 위해선 "단축된 노동시간이 들쑥날쑥해서는 된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주당 52시간을 일하더라도 어느 날은 오래 일하고 어느 날은 짧게 일해야 해서 퇴근 시간을 예측할 없으면 퇴근 자기 시간을 계획할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가사 노동도 하지 못하고 자기계발을 위해 시간을 수도 없게 된다." 근로시간과 관련한 여러 논쟁이 많은 상황 속에 이러한 주장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p155)

또한 노동이 복지의 증진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역으로 복지가 노동력의 증대를 유발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사회서비스 분야는 특히 여성의 취업 기회를 많이 늘"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회화되어야 돌봄 노동이 여전히 무급 가족노동, 특히 여성 가족 구성원의 노동에 의존"하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경제적 진출을 가로막고 경력단절을 일으키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에 자영업자가 유난히 많은 이유도 이런 종류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일 있다." (p97) 저자는 돌봄의 영역이 공공분야로 들어온다면 그것 자체가 또 하나의 노동력 창출의 가능성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2.

이 책은 노동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인구구조에 대한 담론들도 놓치지 않는다. 노동이라는 것 자체가 그 노동력을 구성하는 인구에 대한 이야기와 뗄레야 뗄 수 없기에 인구에 대한 분석도 눈여겨 봐야 한다. 제대로 된 인구학 전문가조차 희박했던 2000년대 초반, 고령화및미래사회위원회(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이끈 저자의 분석은 여러 시사점을 제시한다.

그 중 하나는 고령화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고령화의 의미를 너무 협소하게 바라봐서 단순히 노인인구의 양적인 증가, 또는 노인부양비 부담의 증대로만 생각하는데 노인인구의 질적인 변화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된다"고 말한다. "현재의 40, 50대가 미래의 노인인데 이들은 상당한 경제력과 더불어 노후를 맞""새로운 노인들이 소비자로서 강한 구매력을 갖게 되면 고령친화산업이 발전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p168). "앞으로는 노인인구가 대한민국의 압도적인 대규모 인구집단이 되기 때문에 유권자로서 이들을 대상으로 노인 정치도 본격화할 것"이라는 예측 또한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이다(p169).

또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할 수록 출생률이 감소한다'는 사회적 통념에 대해서도 저자는 다양한 통계를 활용해 반증을 제시한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 가계소득이 올라가서 금전적 여유가 생기니 출산력이 올라가는 긍정적 효과로 이어"저야 하는데, 한국과 같이 "회사가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면 강한 억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p153). 저출생의 문제를 여성에게 전가하는 듯한 기존의 분석들을 치밀하게 반박하며 성평등 정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갖오한 것이다.


#3.

단순히 정책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과거 정치인이자 공공기관장이기도 했던 저자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정당 문화의 개선과 선거제도 개편을 이야기한다. 복지의 문제를 또 정치화하냐는 의견도 있겠지만, 복지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정치권의 문제이기에 이러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사실 역대 모든 정부들은-능력이 족한 정당을 기반으로 당선된 대통령들"이었기 때문에 "부족한 능력을 관료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관료들이 집권당을 주도하는 구조에서는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해도 박정희 모형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pp64-65). 뉴스에서 쉬이 언급되는 '어공'과 '늘공'의 세력전을 해소하기 위해선 정당의 힘이 더 탄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정당은 명확한 정치적 지향성 보다 특정 인물이나 세력을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된 만큼 역량을 키우는 것이 더 막중한 문제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바로 현행의 소선거구제를 대체하는 "중대선거구제"다. "거대 정당이 의석수를 무기로 '밀어붙이기' 식의 정책 입안을 강행하는 일이나 지역구 이해관계에 얽힌 '밀실, 쪽지 정책' 추진은 어려워"지기에,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국회 내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것이 생산적인 논의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명확한 다수가 없을 때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당의 강령과 정책들을 보고 당과 정치적.정책적 연합을 있는지를 따지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다소 불완전했던 정책이 입체적으로 발전할 여지가있다. (pp24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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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시장은 국가가 정해준 틀 속에서 성립되는 것이지, 시장 자체가 자동적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 일정한 조직의 틀을 만드는 데, 그리고 시장의 규칙을 만드는 데 필요한 국가의 역할이 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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