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조금만 -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
이충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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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터뷰집을 좋아한다. 한 권의 책으로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인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나의 일상 속에선 조우할 일이 거의 없는 완전히 다른 업계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경험이다. 인터뷰어의 노력 덕택에, 인터뷰이의 인생을 우리는 고스란히 전해받는다.

<질문은 조금만>은 여타의 인터뷰집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분명 인터뷰집이지만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대화보다는 인터뷰이의 대화를 기반으로 한 인터뷰어의 생각이 더 많이 담겨 있다. 어떤 부분은 인터뷰집보다 인터뷰를 통해 얻은 통찰을 정리한 저자의 아포리즘 에세이처럼 느껴진다. 인터뷰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대할 만한 구조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이지만, 여기에 적응하면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2.

각 분야에서 나름의 성취를 거둔 '거장'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진태옥과 김대진, 박정자와 최백호처럼 사회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거장'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고, 거장이라는 표현이 낯선 정치외교분야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이 중 한 명인 강경화의 이야기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강백호와 강유미처럼 가장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중간세대의 이야기도 있으며, 차준환처럼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의 날이 더 기대되는 이의 이야기도 있다. 나이도 분야도 전혀 다르지만, 자신이 하는 일의 정체성을 발견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여정 위에 서 있다는 점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모두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이 아닐까. "내가 60년을 뒤돌아보니까 기본을 하기가 그렇게 힘들어요. 기본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어요."(p217)라는 진태옥의 말처럼, 기본은 제일 기초적이지만 그래서 더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그 중요성을 경시하게 되고, 그렇게 기본기가 흐릿해지면 이후의 성취들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의 결론은 '연습의 중요성'으로 이어진다. 너무 뻔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연습이 무언가를 완성시켜주지는 못해도 "망쳐도 그렇게 완전히 망치지는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며, 엄청난 연습 덕분에 "연주를 통째로 말아먹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김대진의 말(p255)이 몸소 증명한다.


#3.

가장 인상깊었던 인터뷰이를 꼽자면 강경화와 강유미를 꼽고 싶다. (우연히도 두 사람 모두 강씨 성을 가진 여성이다.)

강경화는 외교부 장관 발탁 당시부터 파격과 화제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전문가들은 그의 실력이 세계에서 알아주는 수준이라고 했지만, 대중에겐 낯선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는 유리천장 너머의 리더십을 보여준 최초의 외교부 장관으로, 그리고 그토록 복잡하고 미묘한 한국의 외교환경 아래서 장기간 재임에 성공한 장관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행보를 성찰한다. "제가 외교부 장관으로 있는 동안, 같은 값이면 중요한 자리에 여성들을 많이 등용했습니다. 근데 제가 퇴임하는 날, 퇴임식도 못하고 그냥 쭉 돌면서 계단에서 간부들하고 사진 찍고 차 타고 나왔는데, 나중에 보니까 제 뒤에 다 남자였어요." (pp194-195)라는 그의 말에서는 아직 우리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수단 내전 지역의 마을에 방문했을 때 "그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인 할머니께서 유엔에서 고위직이 왔다고 하니까 쭉 줄을 서 있다가 나무토막 같은 손으로 악수를 하시더니 '어서 오십시오. 댁네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까?' 하고 물어"(p180)보았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그럼에도 존엄성을 지키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강유미는 미디어의 대전환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대에 완벽히 적응하고 있는 코미디언이다. TV개그맨으로도, 코미디작가로도, 유튜버로도 모두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그는 "글로 쓰건 연기를 하건 다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한다며 코미디에 대한 열린 마음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p112) 웃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하는 그 마음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향한 댓글 중 '유튜브 인류학자'라는 표현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정말 그의 그러한 개그가 훗날 인류학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정립될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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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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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국 시계를 본다, 각자 정해진 일정에 맞추기 위해. 시계를 들여다보는 눈은 보통 실망스럽다. 시곗바늘이 시간을 졸라 인연 따라 만났으니 인연 따라 헤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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