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바구 하나 들려드립니다.
옛날에 어떤 왕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왕은 세 아들을 똑같이 사랑해서 자기가 죽은 뒤 어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어야 할지 고민이었습니다. 왕은 죽을 때가 가까워지자 세 아들을 침대 곁으로 불러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내가 요즘 깊이 생각한 게 있는데, 지금 너희들한테 그걸 말해주고 싶다. 나는 너희들 중에서 제일 게으른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왕국은 제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자려고 누워 있을 때 비가 와서 제 눈으로 빗방울이 들어가더라도 이미 눈 감은 것 때문에 그냥 잠이 들 정도로 게으르거든요."
가장 나이 많은 아들이 먼저 말하자 둘째 아들이 나섰습니다.
"그렇다면 왕국은 제 것입니다. 저는 난롯가에서 불을 쬐고 있을 때 발을 끌어당기는 것이 귀찮아서 차라리 발꿈치를 불에 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만큼 게으르거든요."
셋째 아들이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왕국은 제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게으르냐 하면 제가 교수형을 당하게 돼서 제 목에 올가미가 씌워져 있는데, 누가 제게 그 밧줄을 자를 수 있는 날카로운 칼을 준다고 해도 차라리 교수형을 당하고 말지 귀찮게 제 손을 움직여서 밧줄을 자르지 않을 정도거든요."
왕이 이말을 듣고 말했습니다.
"네가 제일 게으르니 네가 왕이 되거라."
-<어른들을 위한 그림형제 동화 전집>,231~232쪽(<아이들은 이야기 밥을 먹는다>에서 재인용.)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이재복/문학동네/2010.6
듣자듣자 하니 게으름이를 찬양하다니요. 이 동화는 참 해롭겠습니다. 권선징악의 공식에 의한다면, 지혜의 씨름장인 동화판에 의한다면, 게으름을 증명하지 못해 어쩔줄 모르는 부지런이가 왕의 간택을 받아 마땅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게으름도 보상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각인하지 않을까요.
그치만 아니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의 이재복 선생님에 의하면 말이죠. 뭐 꼭 선생님 말씀이 아니라도 도덕가의 주장이 무색할만큼 유쾌한 허풍들입니다. 마지막 발언권을 가질수록 유리한 경기 입니다. '게으름'이란 주제가 헛갈리게 만들지만 상상력과 기획력이 돋보이는 답입니다. 어른들은 메시지를 보지만 아이들은 유희합니다. 전혀 헤롭지 않을겁니다.
동화 공부장이 이재복은 더 많은 해석들을 내놓습니다. '근면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기존의 문화 바탕에서 나오는 고정 관념을 비틀어 보고, 뒤집어 보려는 대결 의식의 감정이 숨어 있다.''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해 과도한 경쟁 사회로 몰아가는 지금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내면에도 게으름이 영웅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있다''일의 논리, 이성의 본질, 일중독에만 빠진 사람에게 게으름은 밖을 지향하는 일의 논리보다는 내면을 지향하는 감성적인 직감, 사랑의 본질, 애정 방식에서 여성의 원리를 상징하다고 볼 수 있다''게으름이 아이에게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옛이야기의 시시함을 단번에 깨뜨리는 대목이었습니다. 바보, 마녀(계모), 공주, 괴물이라는 전형도 얼마든지 전복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권선징악'에도, 잔혹한 이야기에도 새 힘을 나눠줍니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못박았던 옛이야기 속의 대결 인물들을 '빛이 되는 인간과 그림자가 되는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빛과 그림자를 떼어 설명할 수 없듯이, 선과 악을 상징하는 두 인물은 모두 우리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겁니다. 왜 이 당연한 사실을 품지 못했던 걸까요.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른들은 이런 동화를 이렇게 읽혔을 겁니다. '나쁜 짓을 하면 벌 받아.착한 사람이 되야 복을 받는 거야' 이제 아이들에게 다르게 읽어줘야 할껍니다. '너의 마음에도 착한이와 나쁜이가 있지?'
잔혹한 이야기에도 '에너지가 강한 원형의 꿈'이라는 타이틀을 선사합니다. 이런 이야기나 꿈은 귀하게 여겨야 한답니다. 마음속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상징의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라지요.
참으로 조곤조곤, 이야기 하듯이 편하게 들려주는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는 성심껏 글씨를 따라 읽어주거나, 주제가 되는 교훈을 전달하고 마는 '책 읽어주기'의 함정을 깨닫게 합니다. 창의력에 목매 선호하는 창작동화, 좋은 습관에 얽매여 고르는 딱딱한 책들을 돌아보게도 만듭니다. 그런 와중에 위시하고 말았던 옛이야기의 매력도 되찾습니다. 이야기가 놀이고, 유희고, 하나의 세계라는 근본적인 사실을 그새 잊어버린듯 합니다. 건설적인 독서습관이나 학습태도를 위한 수단으로써의 '이야기 책'들이 재발견을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전래동화나 명작동화 전집으로 공급책을 확보해야 할까요? 저는 이부분에 일말의 의심을 죽 품고 있었습니다. 유익함 말고도 책을 읽어주는 순간의 신체적, 감정적 교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귀로 듣고 머릿 속으로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빠져 못내 아쉬웠습니다. 제아무리 영감으로 가득하고, 아이의 마음을 끄는 그림이래도 '보는'는 행위에 그친다는게 불구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결심합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매일 밤 할머니가 들려주던 캥거루 이야기처럼 엄마만의 테마도 만들어보자는 제법 당찬 포부를 가졌지요. 책보다는 육성으로, 아이에게 곧 닥칠 분열되고 단절된 세계를 합쳐주고 싶었습니다. '종이'가 아닌 '품'이 앎의 시작이라는 점을 각인하고 싶었습니다.
순전히 제가 읽을 요량으로 짧은 이야기들이 실린 어린이 책 두 권을 보았습니다. 한 권은 이솝이야기, 또 한 권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 편씩 읽고 들려주는 일이 여렵지 않아보였습니다. 돌아보니 아이를 업고 다닐 때, 가장 많이 들려준 이야기가 '호랑이와 곶감' 이었네요. 하지만 거기까지. 아이가 말을 시작하자 지루해 하는게 눈에 보였습니다. 그렇게 여러번 중단하고 나니 저도 힘이 빠져서는 반쯤 포기하고 말았지요.
하지만 위 <아이들은 이야기 밥을 먹는다>와 이어 소개할 <베이비 스토리텔링>이 숨죽인 열망을 일깨웁니다. 맨 처음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결심했을 때 <책 읽어주고 이야기해주는 부모들>이란 흥미로운 책을 봤습니다. 들려주기 좋은 옛이야기의 매력은
지루한 설명 없이, 사건의 연속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 사건들은 그림을 보듯 이야기의 진행을 상상할 수 있고, 일말의 반복성이 있다.-<책 읽어주고 이야기해주는 부모들> 94쪽
<아이들은 이야기 밥을 먹는다>와 비교한다면 옛이야기의 외형적 유용성을 언급하는 샘이네요. 옛이야기의 원본을 들려주기 좋게 압축하는 실예를 제시하고, 아이들의 경험과 환경에 맞게 지어낸 이야기들도 담습니다. 책은 고개를 주억거릴만 했지만 어쩐지 제 세치 혀는 굳어버렸습니다. 줄줄 꿸 것 같았던 이야기들이 통 입에 붙질 않았습니다. 아이가 지루한 것도 당연하지요.
그러다 이재복 선생님의 책에서 지당하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명확한 단서를 발견합니다.
줄거리를 안다고 해서 남에게 재미있게 들려줄 수는 없습니다.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 24쪽
이 두 문장 안에 제가 저지른 실수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줄거리만 알고 감동 받은 적은 없다'는 거죠. 또 한 가지는 <책 읽어주는 부모>가 언급했던 아이의 경험과 환경에 맞는 이야기를 발굴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베이비 스토리텔링>으로 이정표를 찾았습니다.
베이비 스토리텔링/로니 M.콜/팝콘북스/2010.4
이 책에는 주변의 부러움을 살만한,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빠가 등장합니다. 저자이기도 한 로니 M.콜이 풀어놓는 이야기는 'literary fairy tails'(새로 옷을 입힌 요정이야기-옛이야기)가 아닙니다. 말하자면 직접 꾸며낸 환타지죠. 칙폭이(기차), 탁탁이(탭슈즈), 햄순이(햄스터)가 지구와 우주, 집안 곳곳을 여행하고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서 낯설거나 혹은 익숙한 경험을 하는 내용들입니다.
별안간 걱정이 앞섭니다. "내가 과연 이야기를 지어낼 능력이 있을까?" 우선 이 중대한 문제는 덮어둡시다. 우선 잠자리 이야기가 강력한 효과를 자랑하는 잠 최면제라는 사실을 <베이비 스토리텔링>이, 서투른 제가 증명 합니다.
이런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그날부터 아이들은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또 하루를 마감하는 그러한 의식이 기대되어 날마다 행복에 겨워 잠자는 시간을 기다리게 됩니다.-11쪽
홈쇼핑에 미리 섭외된 충실한 사용자 후기 같지만, 지난 주 저희 모녀는 유례없이 평화로운 잠자리 시간을 가졌습니다. 엄마가 어디서 얻어온 이야기에는 시큰둥하던 아이가, 마당에서 시체로 발견된 우리집 암탉 '꼬꼬'가 밤이면 깨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다소 엽기적인 이야기에 열렬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옆집 언니도 나오고, 할머니 할아버지, 다른 동물들도 마구 등장시킵니다. 황당할 뿐 아니라 더듬거리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나서서 잠자리 의식을 채근하는 아이에게 강력한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
<베이비 스토리텔링>의 신선한 이야기 창작법들을 조금 만나봅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아이디어와 먼저 친해지기 위해서 강력한 시각화의 기술을 사용하십시요.
#대부분의 이야기에 늘 출현하는 핵심 등장 인물들이 있으면 이야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하세요.
#옛속담을 사용하면서 줄거리를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름을 짓고 이야기를 만드세요.
어떤가요? 가능할까요? 그래도 좀 어렵나요? 그렇다면 책이 제안한 한가지 묘수(잠자는 시간이 창의력을 발전시키기 좋다는 교육적 의미였지만)를 시도해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잠들기 전 우리의 정신에 답을 제시하라는 긍정적 명령 내릴 수 있습니다.' '뇌야. 문제를 해결해주길 원해. 멋진 답얻을 수 있게 해줘. 고마워.'라고 말하는 거죠. 자기계발서의 우스꽝스러운 주문 같은가요?
어쨌든 저는 '이야기 들려주는 엄마'라는 명함을 놓칠 수 없습니다. 책값을 줄이려는 꼼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활자가 아닌 목소리로 감정과 온기를 전달하고픈 욕구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이게 바로 이야기가 가진 밈 유전자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