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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갓난아기 - 소아과 의사가 신생아의 눈으로 쓴 행복한 육아서
마쓰다 미치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뜨인돌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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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서의 진지함은 텍스트가 아닌 독서자 때문이다. 타인의 역사에 이만큼 깊숙히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또 어디 있을까. 부모는 짜장면과 짬뽕의 기로에서보다 신중하고, 잘익은 여드름을 골라 거울 앞에 선 사춘기보다 진지하다. 하지만 <나는 갓난아기>, 긴장 풀고 웃었다.(갓난쟁이 시기를 지나서 그랬겠지?)
장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에밀'이란 아이를 키우며 자연주의 교육사상을 녹인 가상의 장場을 마련했다. 한 때 유행했던 '마이펫'을 연상시킨다. 일본에선 육아서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는 <나는 갓난아기> 역시 한 명의 아기를 키우는(혹은 자라는) 이야기 속에 육아공식을 풀어낸다. 재밌게도 픽션이 육아,교육서와 만난 것이다.
<나는 갓난아기>는 '양육자'가 아닌 '피양육자', 즉 아기의 목소리다. 정녕 바라건데 말랑한 머리통이 끄집어내지는 그 순간 나의 아기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은 누구이며, 여긴 어딘가요?"
물론 요 영특한 아기는 그런것 쯤은 다 안다. 엄마젖을 과식했다는 것도 알고, 분유에 비타민제를 넣어줘도 귀신처럼 눈치채고, 아파트가 살기에는 별로라는 것도, 기저귀커버가 답답하다는 것도, 옆집 아줌마가 하는 말은 다 헛소리라는 것도, 활동량이 많아 몸무게가 500g정도 미달(망할놈의 평균치에서!) 된다는 것도, 여관이 지낼만한 숙소가 아니란 것도 안다. 게다가 엄마는 내 맘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도 체득했다.
..엄마가 타 주는 분유는 내겐 너무 진하다. 분유 회사는 분유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팔려고 하기 때문에 되도록 진하게 먹는 아이들의 입맛에 맞춰 분량을 제시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각자의 취향이 있다. ... 분유를 조금 적게 넣고 그 대신 물을 좀 더 넣어줬으면 좋겠는데, 순진한 엄마는 분유 회사가 광고하는 숫자대로 정확히 타주려고 애를 쓴다. 싱거운 분유로는 영양부족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갓난아기>40쪽 에서
맞다. 아기들은 다 안다. 어른들이나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간혹 자신을 잃는 것이지 아기들은 누구보다도 자기에 대해 잘 아는 시원始原의 존재다. 우리는 그들이었지만 아쉽게도 그때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자고로 어른은 자주 울어도 안되며 호기심으로 말썽을 부려도 안되고, 불평을 해서도 안된다. 결국 우리는 아이를 떼어내야만 했다.
그래서 아이를 어른의 키로 어른스런 생각으로 잡아당기기 전에(이 힘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이' 그대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쭉 이어져 왔다. 아마 <나는 갓난아기>도 그 몫을 단단히 했을 것이다. 기어이 경쟁사회는 아이를 삶의 중심에 놓는 지경까지 다다랗지만, 그게 이 책이 홀대당해야 하는 이유는 결코 아니다.
...나는 위도 크지 않고 대식가도 아니어서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거나 소화하지 못한다. 그러니 자주 젖이 먹고 싶어지는 게 당연한 것이다. 밤에 잠깐 깨었을 때 십분 정도만 젖을 먹여 줘도 나를 안고 한 시간 넘게 자장가를 불러 주는 것보다 숙면을 취하는 데 열 배는 더 효과적일 텐데, 어른들은 왜 그걸 모르는 걸까.-62쪽 에서
'나는 갓난아기야. 나를 알아줘, 내 얘기를 들어줘' 정도로, 부모중심육아와 아이중심육아에서, 과잉육아와 방치 사이에서, 육아의 환희와 고통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가는 솜씨가 굉장하다. '해야한다'는 묵언의 강요가 사라진 자리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신입 부모들을 모아 다독인다. 아무리 가짜라도 감정이입의 장치는 꽤나 쓸만해서 요 대리아기에게 깜빡깜빡 속아 넘어갈 지경이다.
이 아기는 <나는 갓난아기>에 출현하기 위해 각종 증상과 질병에 시달려야 했고, 심지어 개한테도 물려봐야 했다. 알만큼 아는 부모도 이리저리 휘둘려야 했고, 주변인물들은 엉터리이거나 달관자이거나 속물이어야 했다. 수집되고 과장된 현실들은 시트콤처럼 유쾌했고, 기어코 메시지를 전하는 힘도 잃지 않았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문학육아서' 한 권이 출생했던 것이다.
소아과 의사로서 메시지의 객관성을 검증받은 마쓰다 미치오의 몇몇 생각들은 양육법의 조언을 넘어, 부모의 양육 본능을 끄집어낸다. 아이와의 소통에서 가장 난항을 겪을 두 돌 전까진 이성(코칭)보다는 본능이 앞서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