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 김정남 소설
김정남 지음 / 북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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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뒤에는 남성, 이라는 화자와 남성,이라는 작가가 우뚝하게 서 있다. 평범한 언어로 예민하게 일상의 부조리를 끌어내는 '여성스러운' 화자들에게 지극히 공감해 왔다는 사실을 거꾸로 자각하게 해준 소설집.  

소란스럽고, 미묘하고, 간지러운 느낌이 '여성스러운' 소설의 단서라면 <숨결>은 앞의 모든 형용을 거세한 채 던져진 살덩이 같다. 상처에선 정확히 피가 흐르고, 한계의 구분선은 명징하고, 동물적인 욕망은 직선으로만 존재하는 세계에 발을 담근 기분이다.
 
아시다시피 남성작가들이 모두 이런 소설에 합류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해 마지 않는 영미 작가 레이먼드 카버는 부엌과도 같은 협소한 공간과 단순한 동선, 식탁과 침대에서의 대화, (거의 감지하기 힘든)약간씩 뒤틀린 관계만으로도 지속가능한 파장을 보여주었다. 그를 존경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굵직한 서사의 힘이라고는 할 수 없는 예민한 감각으로 무장하긴 마찬가지다. 반면 헝가리 여류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은 이만큼 잔인하게 남성화된 문체를 만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드는 작품이다.
 
얼마 안되는 소설편력까지 끄집어 낸 건 이 단편들의 지독한 설정들 때문이다. 교통사고 가족이라 명명한 레커차 운전기사가 끝내 맞는 불운은 집 나간 부인의 시체를 아무것도 모른채 끌어 날랐던 지난 밤이다.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의 현대판일까?) 동영상 과외 강사로 절제된 식사와 충분한 정욕을 집안에서 모두 해결하는 정 박사는 절대 자기가 히키코모리가 아니라고 웅변한다. 서민의 한달치 월급봉투를 단번에 숍에 지불하는 사서와의 보름간의 희롱에 '어머니, 제 걱정일랑 하지 마세요. 서울에서 부잣집 딸 만나서 호의호식하고 있어요'라고 뇌까리고 마는 남자는 원룸텔로 돌아와 쓸쓸하다. 


생략의 생략을 거듭한 진술서들이 무척이나 불리해 보인다. 누굴 대변하고 누굴 비난하는 건지 쉽게 편들기가 힘들다. 물론 <숨결>의 모든 포즈는 시니컬이다. 주장을 담지 않고 '조명'하는 것만으로도 소설은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르다. 도시의 꿉꿉한 삶을 다루는 것만으로 그의 시선은 만천하에 드러난 샘이다. 그러므로 '사회 비판'이라는 철지난 모토는 미뤄두자. 

문제는 그가 삶을 소화해내고 있는 방식이다. 다분히 직설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남성적 서사의 진행은 소설 속의 삼류극장 간판 마냥 촌스럽고 동시에 아득하기도다. 비극의 무대에 올려진 주인공들은 고통을 향한 대사들을 응집하고 그외의 생의 이면들은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것만 같다.  

이 아주 오래된 소설적 기법이 새삼 낯설게 느껴지는 건, 여태 실은 다양하다고 할 수 없는 여성적 섬세함들이 지배하고 있는 소설들을 읽어왔기 때문이겠다. 지나친 자기 고백과 자아 성찰에서 한 걸음 물러나 '소설'이라는 '거짓말'을 되살리는 이 무뚝뚝한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 본다.
 
대단한 발견도, 중요한 변수도 아니지만 '이야기'를 마주하는 내 눈은 두 개의 동공만큼이나 균형을 잡고 싶어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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