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누가와 - 鬼怒川
단이리 지음 / 나남출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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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한일전이 제일 재밌지' 아르헨티나 전을 보며 남편이 한 말이었습니다. 경술국치 백년.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백년이면 세월의 강물만도 억만겁은 흘러갔을테고, 우리에게 일말의 앙금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을법도 한데 '역사'는 전혀 그럴 의향이 없나봅니다. 


하긴 위안부의 삶을 처철히 재현한 권윤덕의 그림책 <꽃할머니>를 말끄러미 보고 있자니 흘러간 건 아무것도 없다,는 역사의 각인을 되새기게 됩니다. 해소되지 않은 치욕과 분노는 언제고 되살아 나 복수심을 일깨웁니다. 한일전이 재밌는 건 이겼을 때의 쾌감이 남다르기 때문이겠지요? 또 스포츠만이 선사할 수 있는 공정한 조건의 싸움이 일견 한일관계의 어긋난 부분을 보상해주기도 합니다.
 
네, 그러고보니 한일전이 진짜 재밌어보이기도 합니다. 한 번쯤의 승리에 찾아오는 우월감보다는 역사의 속내를 뒷주머니에 찔러넣고 누구나 앞마당에 모여 무기없이 알량한 조약 없이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이 세계는, 코 앞에 닥친 백년 전의 치욕에 비하면 너무도 평화로우니까요. 고통을 유희로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분노의 처분법은 맨 먼저 분노를 응시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우월감인 용서는 분노를 덮어버리고 심지어 자괴감마저 들게 합니다. '일본은 없다'고 거부하는 것도, 일본의 위력을 깎아내려 우리를 추키는 것도 신나는 일은 아닙니다.

지금껏 일제의 야욕만을 대한제국 점령의 유일한 이유로 설명하는 역사관에서 균형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로지 피해자의 권리만 학습하고 누차 억울한 마음을 고한다고 해서 피의자의 주장을 막아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전 <기누가와>라는 살인추리소설을 통해 일본의 극단적인 우파들이 견지하고 있는 자세를 엿봤습니다. 말하자면 미개한 조선을 개화시켰다는 자부심이 미화가 아닌 실화(주인공의 실화)로서 인간사에 누적되어 있었습니다. 


<기누가와>/단이리/나남/2010.4 

그가 한국인 국회의원을 죽인 살인자 인데다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사실은 지당한 비난과 분노에 역의심을 살만했습니다. 일제가 대한제국에 가한 폭력과 잔인성만으로는 경술국치 100년을 톱아보는데 큰 장애가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극단적인 살인현장에서 발견하는 상대의 '입장'은 현재 내가 미워하고 있는 실체가 과연 무엇인가 되묻게 합니다. 

한국의 국회의원 박민자는 민주투사이자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비판하는 정의파로 경술국치 100년, 동경에서 대규모 항의집회를 준비합니다. 순진한 계산법으로 정당한 주장이 적법하게 발휘되는 동시에 위기를 겪고, 한일전의 한판승마냥 잠시나마 위안을 얻는 전말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자 단이리가 인용했듯 '역사에는 교묘한 통로들과 까다로운 복도들과 문젯거리들이 있게'(T.S. 엘리엇) 마련입니다. 그는 이것을 '우리 자신이 직접 역사에서 꺼내오는 인식과 감정들'이라고 말했는데, 저는 비슷한 말로 실제의 '역사'와 '역사의 현상'의 충돌로 바라봤습니다. 

박민자에게 역사란 정치적 계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이를데 없이 모순적인 행위를 낳기도 했습니다. 박민자의 아버지는 일제의 징용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일본에 귀화해서 성공한 재일교포로 박민자의 막대한 정치자금은 일본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더없이 가까운 일본인 이복자매를 두고 자신의 컴플렉스(음경선망-성기를 동경하는 심리)를 해소하는 장소로 한국이 아닌 그토록 날서게 비판한 일본을 선택했다는 사실 역시, 순수한 역사관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그녀를 죽인 가즈야는 그의 핏속에 단 한 가지, 식민역사의 우월성만이 거침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증조부와 조부가 모두 조선총독부의 뛰어난 관료였다) 극단적으로 '역사'만으로 살인을 할 수 있는 건 오히려 박민자 일텐데 말이죠. 주검과 살인자는 이토록 다른 지점에 있습니다. '역사의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스스로의 '역사'를 죽입니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습니다. 둘 다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이죠. 이 부분은 한일 공동의 과제처럼 들립니다. 

<기누가와>에는 사건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한국의 여형사 배영희를 등장시킵니다. 그녀는 가즈야 집안의 내력을 살피면서 통치자의 역사기록을 마주하게 됩니다. 배영희가 드러내는 사념, 고민, 혼란들을 지금 우리의 심중과 겹치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경술국치 100년 째, 또 다시 주검과 살인자로 만나 물밑으로 대립하는 한일간의 입장이 수사관의 중립적 견해로 정리됩니다.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이라는 타국으로부터 식민통치를 당한 과거는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을 일본에서는 막연한 피해의식이라거나 우라미(원한)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과거의 일을 두고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충돌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당시 서구세력이 아시아를 지배하고자 하므로 일본이 서구세력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하기로 '선택'하였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이는 지금도 일본의 많은 우익인사들이 가지고 있는 태도라고 봅니다. 또 하나는 일종의 공리주의인데, 일본의 식민통치를 조선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결과적으로 일본의 통치가 조선의 근대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주장이지요. 어떤 이들은 식민통치가 없었다면 조선은 러시아에 먹혀 버렸거나 오늘과 같은 발전이 없었다고 공공연히 말하지요."

이후 배영희는 '반일감정'의 불성실함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습니다. 일본의 호스트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우월감을 느끼려했던 박민자의 행동으로 공허한 신념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간과 쓸개를 걸어놓고 고통을 잊지 않도록 되새기는 것은 아닐겁니다. 

<기누가와>의 해법은 살인자가 의당 받아야 할 처벌(자살)과 어긋난 신념의 단절이었습니다. 동시에 일말의 계산과 위선, 절제되지 않은 복수심을 국가주의로 위장한 박민자 역시 이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역사의 신념을 변형없이 가두는 것도, 제식대로 풀어놓는 것도 모두 위험한 일처럼 보입니다. 이 양끝을 가로지르는 외줄에서 아슬아슬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한일관계는 분명한 판결을 기다릴 수 있는 살인사건은 아닙니다. 식민의 역사가 거대한 제국주의 속의 흐름이었음을 저는 우선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인 여형사 배영희의 말을 마지막으로 떠올려 봅니다. 

...동경의 한복판에 있는 일본경찰청의 책상에 앉아 100년 전에 조선에서 긴 세월을 보낸 한 일본인의 기록을 보면서, 자신이 마치 역사라는 상상의 공간 속에서 일탈하여 떠다니는 하나의 먼지라는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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