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법정의 고수 - 신 변호사의 법조 인사이드 스토리
신주영 지음 / 페이퍼로드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집 주변이 오글거립니다. 먼 함성이 창에 불 켜진 여러 집을 합친 건지, 어디 특별 행사장의 모둠 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네요. 지금 우리는 이기고 있습니까. 이 새벽에 배달차 소리가 산발적으로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합니다. 동네에 촘촘한 수비망을 형성한 치킨집 사장님들의 승리군요.
(그 사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네이버 실시간 중계를 띄워놓고 있었습니다. 작업은 물건너 갑니다)
경기장이 법정이라면 어떨까요. 후반 추가 수혈된 김남일의 지나친 혈기가 실추한 패널티 킥에, 변호사가 고용된다면? 어쨌든 16강 진출이라는 큰 목적을 달성했기에 과실이긴 하지만 치사는 아니었다. 과장없이 변호할 수 있겠습니다. <법정의 고수>에 의한다면 말이죠.
긍정적인 기운으로 가득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법이 불행에 둥지를 튼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해집니다. 반대로 '단 한 사람'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행복의 수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기도 합니다.
늘 억울합니다. 차인것도, 탈락한 것도, 주머니가 가벼운 것도 모두 내 탓이 아니길 바랍니다. 교통사고도, 사랑도, 다툼도, 내가 옳았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바쁩니다. 내 억울함을 증거할 단서들이 어디든 있을 것 같습니다. 네, 법정은 철저한 증거주의 입니다. 이의 반대기조인 자유심증주의도 안전장치로 증거능력 안에서 자유심증합니다. 현대의 증명적 사고는 법정과 맞닿아 있는것 같습니다.
좀 더 합리적으로, 단 사진 한 장 이라도, 단 한 줄의 인용이라도, 공인된 인물의 권위를 빌어서 나의 주장을 증명하려는 증거주의 사고가 널리 통용됩니다. 진실이 진실 스스로의 힘으로 드러나는게 아니라 밝혀야만 되는 어떤 주장들 속에서 뒤져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관계에 집착하는 부득불 씁쓸한 곳에 사람냄새 물씬 나는 변호사가 떴습니다. 법정을 삶터로 바꿔 씁니다. <법정의 고수>는 법조계의 숨겨진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승소와 유불리, 증인, 증거, 판례, 법조항, 날카로운 칼날을 쥔 직업인이 차가운 세상을 비비는 내용입니다. 편하고 재밌습니다. 소설 한 편만큼 잘 읽힙니다. 고민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공격적인 변론서라기보다는 감정적인 탄원서에 가깝습니다.
법조계의 드라마틱한 성공사례나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사건 보다는,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교통사고, 이혼, 간통, 사기, 연대보증 같은 평범한 사건들을 다룹니다. 십년차 변호사가 괴나리 봇짐을 이고 떠나는 자아여행 같습니다. 전혀 과장된 몸부림도, 목적지가 분명한 여행도, 감격스런 현장도 아니었습니다. 우리 속에 잠복되어 있는 보편적인 고민이 법과 만나는 지점이 이상하리만치 다정합니다.
부모님이 당했던 사기로 노무현, 이성암 변호사를 차례로 만난 어린시절 이야기로 행복한 시동을 겁니다. 돈을 주고 사야하는 변론에 약간의 온도차를 주기 시작합니다. 이후로 줄줄이 이어지는 법정의 사례들은 신주영 변호사(저자)의 보온으로 따숩습니다. 피고와의 적극적인 공감, 연민부터 사법연수생들의 고충, 법조인의 업무환경, 법정 고수들의 역전되는 수, 실패한 변론들, 신나는 승리보다 신명나는 고민들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판사를 설득하려면 판사의 말을 써야한다는 조언처럼 그녀는 독자의 말을 몸으로 익혀 흔들리는 인간의 변호사가 됩니다. 그녀도 세상의 법을 익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