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불교 - 청소년이 처음 만나는 싯다르타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2
강호진 지음, 스튜디오 돌 그림 / 철수와영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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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하나 냅니다.


들에 단을 쌓고 법회를 여는 것을 뜻하는 불교 용어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하시긴 전) 마지막으로 제자인 마하가섭에게 정법을 전수하면서 영취산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석가모니가 갑자기 설법을 중단하고 대중을 향해 연꽃을 들자 어리둥절해하는 대중들 사이로 가섭만이 이 뜻을 알고 빙그레 웃었던 '염화시중의 미소'도 이 곳에서 탄생합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어지럽고 떠들썩한 상황을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무엇일까요?




<10대와 통하는 불교>, 청소년을 위한 교양 도서의 냄새가 납니다. 아쉽군요. <당신과 통하는 불교>라고 고쳐부릅니다. 모두가 읽기에 모자람이 없는 책입니다. 대게 쉽게 읽히려는 인물전이나 종교서들이 '일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인데 교훈이나 정설을 언급하기보다, 쉽게 풀어 쓴 말로 동심원을 그리며 불교의 핵심을 향해 갑니다. 고민거리도 던져주고 보다 넓은 시야로 불교를 보도록 끌어올립니다. 타겟을 지정한 책이긴 하지만 타겟을 벗어나도 즐거울 책입니다.

각 꼭지의 끝에, 궁금하지만 어떤 책도 가르쳐주지 않을 것같은 질문들이 모여있는데 '불교 신자들도 일요일마다 절에 가야 하나요?'에는 적절한 답문 뒤에 김규항의 <교회>란 글을 덧붙입니다.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기독교인이다. 아이가 경기라도 하면 나는 며칠 사이 지은 죄를 떠올린다. 나는 예수에 의지한다. 내가 가진 단출한 지식과 사상을 통틀어 예수의 삶만큼 나를 지배하는 건 없다. ...교회에는 예수대신 맞춤식 예수 상像들만 모셔져 있었다. ...나는 이제 나보다 다섯 살이 적어진 예수라는 청년의 삶을 담은 마가복음을 읽는다. 내가 일 년에 한 번쯤 마음이라도 편해 보자고 청년의 손을 잡고 교회를 찾을 때 청년은 교회 입구에 다다라 내 손을 슬그머니 놓는다. 내가 신도들에 파묻혀 한 시간 가량의 공허에 내 영혼을 내맡기고 나오면 그 청년은 교회 담장 밑에 고단한 새처럼 앉아 있다."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일요일에 법회를 열고 사람들을 모아놓고 경전 공부를 하는 사찰이 많이 늘긴했지만, 교회에서만 예수를 만나는 '교회 기독교'의 괴리를 불교가 답습해서는 안되겠다는 바깥 의지가 생기더군요. 즉시 마음에 품는 순간, 예수와 부처의 삶을 몸으로 쓰는 순간이 '종교를 믿는다'는 행위의 시발점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질문을 도출한 본문에서 이미 예견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식의 입신 출세나 함격, 부모님의 건강이나 남편의 사업을 위해서 절에 들락거리는 '보살' 아주머니들을 과연 이타적인 서원을 세운 보살이라 물러야 할까요? 또, 마치 절을 법당의 주인이양 행세하면서 관광객들과 일반 신도들의 법당내에서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사납게 눈을 부라리다, 누군가 축원과 재를 지내기 위해 시주를 한다고 하면 상냥한 얼굴로 돌변하는 법당보살들도 과연 '보살'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존재들일까요? 어쩌면 이시대의 보살은 절 안이 아니라 절 밖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10대와 통하는 불교>에서

호기심을 가장하는 질문이 그 깊이를 더해갈 때, 부도전 앞의 연못에 무심결 얼굴을 비추다가 석가산의 봉우리를 마주하는 격입니다.
 
이쯤에서 두 번째 퀴즈 나갑니다. 


옛날에 게으른 승려가 있었는데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수행과 정진을 게을리하다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승려는 그 과보로 죽은 뒤 이것의 몸으로 환생하여 살게 되었는데 등 위에 나무가 솟아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스승을 보게되어 반갑고 서러운 마음에 스승 앞으로 가 눈물만 뚝뚝 흘렸습니다. 이것의 전생을 살펴본 스승은 자신의 제자였음을 알고 천도재를 지내니, 제자가 꿈에 나타나 수행승들이 자기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나무로 이것 모양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스님들이 목탁을 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에서 발췌       
        
    

저도 그제야 목탁이 이것 모양을 무척 귀엽게 닮았다는 사실에 무릎을 칩니다. 이것 말고도 절로 신명이 나게하는 사물놀이의 네 가지 악기가 불교의 사물로부터 연원된 사실도 뒤 쪽에 나옵니다. 예불에 이용하는 사물, 즉 목어, 운판, 북, 범종이 북, 장구,꽹과리, 징과 짝을 이뤄 축소되었다고 합니다. 불교의 수행도구 하나하나가 교리의 상징성을 닮고 있다는 사실 또한 종교의 깊이를 재는데 중요한 재료가 됩니다.

점 하나를 찍고 시작하는 두 번째 꼭지는 인상적입니다. 현대 수학에서의 점, 선, 면의 서술이 불교의 연기법과 상통합니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도 있고, 이것이 생기니 저것도 생기고, 이것이 없기에 저것도 없고, 이것이 사라지니 저것도 사라진다."의 상호관계가 점이 없으면 선을 말할 수 없고, 선이 없으면 점을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이것은 바닥을 걷는 발바닥이 바닥과 하나이면 걸을 수 없고, 둘이면 디딜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점 하나로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를 설득하기도 합니다.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세기의 라이벌들'이라는 타이틀로 이순신과 원균의 째째한 신경전에 대해 입을 떼며 시작합니다. 석가모니vs데바닷타, 아난vs가섭, 원효vs의상, 지눌vs성철이라는 대결구도는 불교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톱아보게 하는 빅매치입니다. 무엇보다 세심한 '세심사 가는길'이라는 마지막 꼭지는 절에 가서 남모르게 답답했던 마음을 해소하기에 좋았습니다. 세심사라는 가상절을 마련해서 절간의 초입부터 앞뜰과 뒷뜰을 샅샅히 뒤져보며, 일주문, 사대천왕, 비로전, 대웅전 등등에 새겨진 의미를 숙지할 수 있었습니다.

답은

야단법석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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