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하는 작별
룽잉타이 지음, 도희진 옮김 / 사피엔스21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권의 시집. 이라면 누가 이 책에 돈을 지불하겠습니까. 문학과 지성사, 세계사, 민음사, 문학동네, 실천문학사 시집들은 지금 누가 사고 있지요? 저는 못 사고 있습니다.(가림토님과 참좋다님은 사 보시는 것 같습니다) 반은 핑계지만 요즈음은 통 시집을 사 볼 여력이 없습니다. 김언의 <소설을 쓰자>를 주문해 놓고 몇 주를 묵혀두고 있어요. 매 주 배달되는 신간들을 소화해야 하는 시기, 의무감에도 불구하고 제법 맛있는 식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서편식으로 빈혈과 당뇨를 앓고 있는 허약한 지성에 지난 일 년간 서인영의 신상구두 컬렉션 모양으로 독서식탁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제 첫사랑은 '시' 입니다. 두근거려본 것도, 마음 조린 것도, 합방한 것도, 아파본 것도, 욕한 것도, 추억한 것도, 희망한 것도 모두 '시' 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태연히 하는 걸 보니 참, 제 변심 가증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적인' 것, '시심'을 간직한 산문들을 보면서 시를 불러냅니다. 언젠가 시로 돌아가기 위하여 밑밥을 까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김언의 시집<소설을 쓰자>란 제목만 봐도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슬로건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소설이나 에세이들은 시인의 문장으로 의미의 축지와 도약을 꿈꿔왔습니다. '시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소설가 신경숙의 바램(인터뷰)이 발상 축에도 들지 않을 만큼 소설가들의 남모른 시사랑은 여러 문장으로 들통나곤 했습니다.
 
간혹 시의 긴장감을 견딜 수 없을 때 '풀어진 시'라는 착각이 들만큼 잘 깍인 문장과, 서사 없이도 서사를 대변하는 묘사에 응축된 사유들, 문장간의 거리가 새와 새장이 아닌 새가 올려다보는 하늘과도 같을 때, 비유의 탁월함에 무릎을 치며 놀랄 때, 시의 골격 없이도 시의 형상이 떠오를 때가 바로 '시적인 산문'과의 반가운 조우 임을 알게 됩니다. <눈으로 하는 작별>이 그랬습니다.

첫사랑을 닮은 누군가를 길에서 스쳤을 때의 덜컹 내려앉는 마음이 흐릿한 추억을 몰고오다가도, 어둠과 함께 이내 또렷해지는 달처럼 선명해지는 상반된 감정들. 기억이 반쯤은 타자의 식민지라는 듯, 막을겨를도 없이 첫사랑의 신체의 한 부위까지 머릿속을 침범해 옵니다. 발가락, 티눈, 점, 희미한 흉터, 들키지 않는 습관들. 룽잉타이의 산문이 나만 아는 표식인양 다가옵니다.

유머와 통찰, 지치지 않는 호기심이 내밀한 자기고백을 공공의 사유물로 내밉니다. 몇 구절을 옮기려고 시도해보았지만 별 의미 없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삭제 당한 노년, 아들에게 스팸으로 분류되는 엄마, 인생의 아이러니를 통째로 옮기기에 이 지면은 너무 작습니다. 양물과 터럭의 건초냄새, 즉, '거시기' 냄새를 모른다고 잡아떼는 엄마와의 한바탕 웃음보, 아들들을 대동하고 할아버지의 말문트기 내기를 시켰던 저자. 진짜 고수들은 사랑과 죽음과 이별을 입에 담지 않고도 꼭 그것을 향해 가는 법인가 봅니다.

"넌 어디서 왔니?"

이 평범한 질문이 딸을 잊어버린 늙은 엄마가 하는 것이라면 문장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의미에서 벗어나 재조합되기 시작합니다. 무겁게 선언한 '시적'이란 느낌이 실은 특별한 시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수한 문장이 도드라지는데 있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 E.B.화이트는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a man)에 대해 쓰는 것"이 글을 잘 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이 아침 꽃비처럼 축복이>/장영희/샘터 에서 재인용) 이 한사람의 힘이 얼마나 센지 <눈으로 하는 작별>이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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