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 발이 묶이셨다구요? 리어왕, 햄릿, 오델로, 맥베드. 끝도 없이 호명되는 그 이름에 이제 내가 널 좀 알아야겠다, 싶어 4대 비극을 뒤졌을 때가 자그마치 몇 년 전입니다.
투비 오알 낫 투비, 댓 이즈 퀘스쳔.
그를 알기도 전에 명성을 확인시켜준 이 대사가 눈앞에 펼쳐졌을 땐 어찌나 싱거웠던지요. 셰익스피어를 브로치 달듯 인용하는 저작들 때문에 좀 과장하면 가슴앓이 좀 했습니다. 지금은 반추하기 조차 힘든 4대 비극을 저는 언제쯤이면 학식과 교양좀 있다는 사람들처럼 손을 찔러 넣어 깊이를 잴 수 있을까요.
벌써 지난 주에만 보란듯이 두 번의 언급이 있었습니다.
'이 대사에서 우리의 시선에서 빠트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행위의 갈림길 사이에 놓여 있는 작은 글자, "또는 or"이 그것이다.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선택의 가능성은 자유를 뜻하지만, 동시에 망설임을 뜻한다. ..인간은 매번 선택해야만 하는 자유를 선고 받았다.' -<멜랑콜리의 미학>에서
이젠 하다못해 or까지 우려내는군요. '선택'이란 꼭지를 시작하는 첫 말이었습니다.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셰익스피어는 제왕 절개술에 대해 알고 있었다. ..<맥베스>에서는 스코틀랜드 던컨 왕의 부하 장군이 세 마녀를 만난다. 그들은 그가 왕이 될 것이며 '여인이 낳은 자는 누구도' 그를 죽이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맥베스와 맥더프가 벌인 최후의 전쟁에서 맥베스는 맥더프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맥더프는 여인이 낳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자궁을 찢고 나온'자였기 때문이다. -<엉터리 과학상식 바로잡기>에서
'제왕절개의 어원'으로 셰익스피어의 총명함을 증명할 거라고 어디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방심하면 튀어나오는게 고전입니다. 결국 고전을 필독할지 말지는 제게 빈약한 자유일 뿐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절 완벽히 사로잡지 못하더라도 오로지 제 탓으로 여기며, 제법 의미심장하게 셰익스피어전집 2차분 중 <좋을대로 하시든지>와 <헷갈려 코미디>를 연달아 읽었습니다. 십이야..,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밤의 꿈이 있었지만 당연한 듯 불모지에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2010년 독자의 눈에 두 작품은
현실성 없는 과장된 광대극이며, 말놀이의 향연이었습니다. 설정도 전개도 말이 안되기는 매 한가지로, '미혹을 쫓기로' 작정한게 아니라면 그저 노장의 풋풋함과 운명의 장난질을 맛보기에 알맞을 정도였습니다. 하긴 이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요. 허풍으로 일삼는 풍자와, 말놀이로 드러내는 사랑과 죽음과 권력과 시간에 대한 담론이 한 줄 한 줄 제 발목을 잡아매더군요. 만만해보이는 표제였지만 실은 힘겨웠습니다.
두 희곡 모두 단연 유머가 압권입니다. 당시 비비꼬인 운명의 바보짓에 더러 웃기도 했겠지요. 현대적으로 봤을 땐 무장해제 코미디는 아니었습니다. 결혼, 남과 여, 사랑, 권위, 욕망에 대한 조롱과 질타가 섞인 유머에 어떻게 찔리지 않고 웃을 수 있겠습니까.
터치스톤 황소가 멍에를 지듯, 선생. 말이 재갈에, 그리고 사냥매가 종에 매였듯, 인간은 성욕을 달고 다니는 거요. 그리고 비둘기가 서로 부리를 부비듯, 결혼도 조금씩 서로를 갉아먹자는 거죠.
로잘린드 아냐. 비너스의 그 못된 사생아. 생각이 씨가 되고, 변덕이 임신하고, 광증이 출산한, 자기 눈이 멀었으니 온갖 사람의 눈을 속이는 그 눈먼 악동, 큐피드에게 물어봐, 내 사랑 얼마나 깊은지. -<좋을 대로 하시든지>
문학사적인 의미를 반추하기에 제 지식은 너무 얇아서 이렇게 인상평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뭘 몰라 용감한 거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아무리 흠집을 내려고 해도 그의 단단한 명성에는 아무런 해가 없다는 계산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런저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의 공력은 변함없습니다.
특히 <헷갈려 코미디>는 코담배 피던 시절 대학로에서 보았던 '라이어'(지금도 전국을 순회중이더군요)를 연상시킬만큼 속도감있는 전개로 익살스런 상황을 꼬집어 내고 있습니다. 이번 전집의 번역자
김정환 시인에 의하면 '현대적 장르'의 시초입니다. 관객을 완벽한 전지자로 두고 모든 상황을 장악하게 만드는 느긋한 웃음을, 셰익스피어가 처음 선사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좋을 대로 하시든지>에서도 대범함과 통찰로 시절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현대적 발원지의 거인을 만납니다.
터치스톤 어떤 기사분이 '그의 명예를 걸고' 팬케이크가 맛있다고 맹세하고, '그의 명예를 걸고'겨자는 엉터리다 맹세하대요. ..하지만..그 기사분도 거짓 맹세는 아닌것이, 그의 명예를 걸고 맹세한댔는데, 그는 명예같은 거 있어 본 적이 없거든, 혹시 명예가 있었더라도, 그 팬케이크니 겨자 따위 보기 전에 맹세로 날려 보냈더라.
선임공작 자네들 보다시피 우리만 불행한 것은 절대 아냐. 이 드넓은 우주 극장은 보여주지. 우리가 출연 중인 장면보다 더 불쌍한 광경들을.
두 작품 모두 유머코드로 빛나는 동시에 운명의 시험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버림받은 자들이 벌이는 일심 단결의 사랑,(좋을 대로 하시든지) 제멋대로 갈라놓고 다시 만나게 하는 운명의 극단(헷갈려 코미디). 특히
운명과 결부된 시간의 비유가 즐겁습니다. 가진 재산보다 빚이 많은 '시간'은 파산상태요, 사랑의 범법자를 심판하는 오래된 판관이지만
셰익스피어에게 시간은 복리 이자요, 유능한 변호사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