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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콘서트 ㅣ KTV 한국정책방송 인문학 열전 1
고미숙 외 지음 / 이숲 / 2010년 1월
평점 :
인문학의 지위가 부상했던 지난해였습니다. 돈 못버는 한량들의 공부라고 여겨졌던 '인문학'이 삶의 필수적인 가치공부로 떠오르기까지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요. <인문학 콘서트>에서 잠시 얻은 힌트는 학자들이 통섭을 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통섭
'통섭'은 이제 거창한 학술용어만은 아닙니다. '사회통합'만큼 자주 쓰일 수 있는 평범한 단어입니다.
생물학의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의 책을 번역하면서 '컨실리언스'를 어떻게 바꿔야할지 2여년간 고민하다 나온 말이 통섭(統攝 거느릴 통, 몰아잡을 섭)이었습니다. 물리적 결합이 통합, 화학적 결합이 융합 이라면 '통섭'은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이 만나 뭔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발효의 과정과도 유사합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 공통의 언어를 찾으려 노력하면, 학문의 분석적이고 차가운 성질이 희석될 수도 있겠습니다. 인터뷰이 최재천 교수는 교육에서의 통섭을 먼저 언급합니다. 나누어 배우면 나눠서 생각하기에 길들여지는게 현실입니다. 전공 영역을 넓게 크로스할 수 있는 하버드 학생들의 예를 듭니다. 그에 비한다면 우리나라는 분야가 조금만 달라져도 속수무책이라는 거죠. 수학능력이 아닌 수학 장애를 가졌다고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교육과 학문에서 자유로운 통섭이 이루어진다면 자연스레 인문학의 위상은 올라갈 것입니다. 과학분야가 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시대를 걷고 있지만 하나의 가치만으로는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는 사실은 직감할 수 있습니다. 모든 과학도 결국 인간의 학문일때 제 모습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인문학 열전
인문학이 한껏 고무된 흐름을 타고, '용기있게 무능해지기로 작정한' 제작진이 낳았던 <인문학 열전>(한국정책방송)의 부분들이 책으로 묶였습니다. 인터뷰 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각분야의 인문학자들이 총 출동합니다. 교육학, 생태학, 종교학, 철학, 등등. 인문학자들이 한 입으로 모으는 말은 인문학이, 한가하고 거추장스런 학문이 아니라 내일의 삶을 위한 에너지원이자 상상력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듯이, 인문학이 묻고자하는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결코 소홀해야할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책이나 방송은 모두 이런 인문학의 위상을 재확인 시키려는 듯, 다양한 학문의 맛보기로 입맛을 돋웁니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담론이긴 하지만 개중 통섭, 다중지능, 예방 윤리학, 정보판옵티콘 등 호기심을 끄는 각분야의 핵심 쟁점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본격 학문이 아니라 '학문에 대한' 대담에 가깝기 때문에 누구나 읽을만합니다. 물에 들어갈지 말지를 정하려고 발 끝정도 대보는 건, 전혀 손해될 게 없지 않습니까. 또 하나, 소제목을 달아 다시 잘게잘게 나눈 인터뷰들은 절대 길을 잃지 않도록 배려되었습니다. 참 감사할 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