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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생활백서 - 행복한 엄마를 꿈꾸다
장세희 지음 / 경향에듀(경향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육아서'만큼 엄마를 스트레스 받게 하는 것도 없다. 말 안통하고 칭얼대는 아이나 늘어지는 뱃살이나 남편의 무정함이나 커피 한 잔, 목욕 한 번 여유있게 할 수 없는 필연의 결과물들은 그럭저럭 받아들이고 만다. 발버둥쳐봐야 바뀌는 건 없으니까.
하지만 육아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중독성 독서는 '바뀔거야'라고 주문을 건다. 아이도, 남편도, 나도 얼마든지 바뀔 수있다고, 훨씬 좋아질 수 있다고 단단히 꼬드기는 것이다. 하나같이 맞는 말이고, 곧장 아이를 통해 시연에 들어갈 수 있는 바로미터의 비법들이 산재해 있다.
영재교육서들은 5세 이전의 아이들이 얼마나 깨끗한 뇌를 가졌는지, 그래서 엄마가 주는 유익한 것들이 얼마나 잘 흡수 되는지를 설득한다. 인성 교육서들은 부모의 태도만으로 아이에게 좋은 버릇과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영어 조기교육서들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영어를 시작해야 한다고 부추긴다. 각종 육아정보를 담은 책들은 그림책과 교구, 장난감을 발달단계에 맞게 공급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의 목록을 작성하게 한다.
한 스무권 정도 읽고나면 어느새 그런 엄마가 되있는 것 마냥 만족스럽다. 엄마는 의욕으로 충만해 이제, 아이에게 내 모든 것을 주리라, 눈을 반짝거린다. 하지만 플래시 카드는 도통 먹히질 않고, 영어 원서에는 반응이 뚱-하고, 클래식은 고사하고 좋아하는 씨디 한 장이 너덜해 질 때까지 버튼을 눌러줘야 하고, 큰 맘 먹고 구입한 전집은 단정히 꽂혀 있기만 하고, 코칭법이 무색하게 떼를 써대고, 밤에는 언제든 깨어나 한바탕 울어젖히고, 다정하리라 결심했던 인내심은 금새 바닥나고, 개월수에 맞게 준비한 교구는 먼지 뽀얗게 틀어박히는, 이런 현실로 다시 돌아와서야 '뭐가 잘못된거지?' 잠시 의문을 가지지만 영락없이 완벽한 육아코치, 육아서에 다시 코를 박고만다. '아직 부족해' 되뇌면서.
철학 스타 지젝이 말했다는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 원리가 떠오른다. "엘리베이터의 문을 빨리 닫히게 하는 버튼은, 버튼을 대는 사람에게 자신이 엘리베이터의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을 주는 일종의 심리적 안정제와 같다." 지젝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치적 과정에 대한 은유를 발견한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렇게 읽는다. "육아서의 펼침은 육아서를 읽는 부모에게 아이의 성장에 제대로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을 주는 일종의 심리적 안정제와 같다."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제안하고 있는 후보들 중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시민의 투표처럼,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을 아이의 성장에 환상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고 지금 되묻고 있는 것이다.
영재조기교육을 실천한 엄마들의 경험담은 걱정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아이가 부모를 통해 변할 수 있다'는 전제로 가득한 육아서들이 지나치게 아이를 대상화 하면서 도리없이 일방통행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에 브레이크를 걸어본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결국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논하는, 환상적 실용성의 실효는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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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엄마생활백서>를 보고 야릇하게 전복된 육아서의 방향을 짚어본다. '육아생활백서'가 아닌 '엄마'생활백서. 育兒라는 말에포함된 '아이를 기르는 것'이 '아이와 함께 크는 것'이라는 사실이 간과되었던 건 아닐까 하는 물음이 일렁인다. 성인이 일군 사회에서 그토록 강조되는 대인관계의 룰이 육아에서 당연한 듯 빠져있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기초적인 보육을 제외한다면, 아이가 부모의 소유물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엄마'의 주권을 빼앗긴 육아의 방식은 '부족한 완벽'에 불과하다.
아침에는 테레사 수녀 같은 넓은 마음을, 낮에는 맹모와 같은 열정을, 밖에서는 신사임당 같은 지혜를, 저녁에는 마샤 스튜어트 같은 센스 있는 식탁을 요구받는 것이다.
저자의 말이 육아서를 겨냥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시대의 엄마가 강요받는 부분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누구나 엄마가 될 수는 있지만 누구나 다 엄마로서의 재능을 타고날 수는 없다. 아이만 바라보는 엄마에게 아이가 바라는 것은 '나만 바라보는 것'이겠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엄마에게 아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함께 바라보는 것일 거라고 믿는다.
영재성에 대한 고민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해 출간되었던 <영재 부모 오답백과>나 <양육 쇼크>에서도 조기 교육이나 기존의 육아방법에 대한 날카로운 해부가 있었다. '영재성은 키워지지 않는다'는 말은 많은 엄마들의 믿음을 저버리겠지만 아이들의 다른 재능을 살필 수 있는 열린 기회가 될 것이다. 오로지 지능, 창의성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하워드 가드너가 만든 다중 지능 같은 이론들도 널리 읽혀야 할 것이다.
아예 '나쁜 엄마'로 커밍아웃 하라는 저돌적인 기세로 시작하긴 하지만 여태껏 일궈왔던 충실한 육아의 밭에 엄마의 씨앗도 슬며시 심어주는 따뜻한 공생의 책이 아닐수 없다. 주부파업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로만'사는 일을 그만두고, 완벽해지기 위해 애쓰는 에너지를, 행복해지는 데 쓰라고 외친다. 똑똑한 엄마가 똑똑한 아이를 만드는 건 절반의 도박이지만,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드는 건 안전한 투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