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이야기 3 - 이스탄불의 점쟁이 토끼
마치다 준 글.그림, 김은.한인숙 옮김 / 동문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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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점쟁이 토끼'에게 오늘 휘말리게 될 구설수에 대해 점쳐보시겠습니까. 


당나귀가 잃어버린 수레는 오늘 중에 찾게 될것이나 그 때는 이미 쓸모없는 물건이 되있을 터이고,
융단상 아후메트는 평생토록 쓰고도 남을 재산을 모을 횡재수가 있으며,
술주정꾼 떠돌이에게-이름도 없는 남자는 내년이면 러시아 땅에 서 있을 것이다.


라고 기록을 길이길이 남길만한 점사(占辭) 한 장 받아둔다면, 요컨대 점이 얼마나 실제와 꼭 맞아떨어졌는지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점에 어지간히 자신 있는 이가 아니라면 불가능할, '예니의 토끼가 친 점'은 단,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이 점사(占辭)를 읽을 수 있는 자는 점치는 토끼 예니 뿐이고,
동물이나 무신론자 같은 이들은 점치는게 도저히 불가능하며,
소년의 미래는 점칠 수 없고,
정말로 점이 필요할작시면 인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인간들뿐이라는
 
헛헛한 철학을 간수해야한다는 거죠.


 

'동쪽에서 귀인을 만나고, 믿는 도끼에 발등찍히고, 성냥불이 초가삼간 태운다'는 100원짜리 재떨이 운수에서 튀어나온는 돌돌말린 갱종이 문구. 그 싸구려 점괘에서 느닷없이, 남몰래 눈을 반짝이며 전 그 때 무얼 읽어내고 싶었던 걸까요?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가듯이, 마음이 아픈 사람도 어딜 가긴 가야하는데, 겨우 닿은 곳이 누런 전등이 코 앞까지 내려온 후미진 골목의 목로술집이었다면. 100원치의 점괘가 기울어진 책장 밑을 괘는 종이 한장같은 든든함을 주지는 않았을까 더듬어 봅니다.

(←요기 사진은 호박툰http://blog.naver.com/hobaktoon?Redirect=Log&logNo=20090187463님께 잠시 빌려왔습니다)
 
이스탄불의 토끼가 치는 점은 진지하고 호기심 많은 고양이 얀에게는- 손님을 기쁘게 만들 요량으로, 애매모호한 말로 희망적인 메세지는 건네는, 뛰어난 상술의 소유자라고 여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But  예니의 점치는 토끼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자, 얀이 지켜봐온 점괘들은 신통하게, 얄궂은 운명의 징검다리를 건너며 척척 맞아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때론 가짜의 무게가 더 무거운 법이죠. 

점이란 것은 말이지, 인생을 마무르기 위한 처방전인 거야. ..다시 말하면 손님도 절반은 일시적이나마 얼마간 위안을 주리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괜찮다는 거야. 그런게 점이지.

라고 담담하게 말했던 점쟁이 토끼였지만, 후일 운명의 섬뜻한 시험장면을 감상한 고양이 얀에겐 결코 점이 '인생을 마무르기 위한 처방전'만은 아니었습니다. 토끼의 점은, 혹은 토끼가 없는 자리를 채우기 위해 얀이 준비한 시적 문구의 제비 안에는, 선악의 저편에 있는 동물들만의 심미안이 운명을 예감하는 듯 하였습니다. 

'동물은 말이야, ..오늘의 너는 어제의 너와 아주 다른 너 일는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러므로 내일의 너도 오늘의 너는 아닌 거고. 그렇지만 인간이라든가 물건 자체는 말이지, 연장된 의식을 지닌 존재란다. ..연속적인 존재라고나 할까.'  

바로 인간의 부자유함을 점괘처럼 시詩처럼 노래하는 동물들의 깨달음은, 점괘를 원하는 것도, 점괘에 마음을 쏟는 것도, 점괘를 완성하는 것도 오로지 '인간무리'라는 쓸쓸한 결론을 향합니다. 하지만 인간 역시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가 아니라면, 운명의 사슬 안에 놓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미래가 두려워 목로 술집의 싸구려 종이 따위에 헛된 희망을 품어보는 일은 한 번이면 족할까요. 

읽을 수 없는 동물의 미래 아래 인간이 놓이게 된다면! 하고 바라게 되는 이상야릇한 이야깁니다.




   
얀 이야기/마치다 준/동문선/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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