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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즌 파이어 세트 - 전2권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다산책방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그 형체는 다름 아닌 엄마였다.
"더스티."
엄마가 말했다.
프로즌 파이어/팀 보울러/다산책방/2010.1
읽기도 전에 책을 빌려주었다. 반나절도 안되어 다 읽었다고 가져온 아이.
"어떤 소설이야?"
물었다. 주로 무협지를 즐기긴 하지만 동화작가의 꿈을 가진 상당한 다독가 스타일의 아이다.
제목만 보고 판타지쯤으로 여긴 책이었고, 그저 독서가 즐거웠는지를 알고싶을 따름이었다.
"네, 판타지는 아니구요, 성장 소설이예요. ... 재밌어요."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마지막 말은 한참있다 덧붙인다. 성장 소설이라, 조금 구미가 생긴다.
"어떤 내용인데?"
"좀 무서워요."
좀 무서운 성장소설이라. 두 권 합쳐 600쪽 가량의 책을 두어 시간 만에 읽어치웠다면, 속도감이 있다는 말인데?
그보단 아이의 '재미'가 궁금했고, 아이의 '무서움'을 발견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읽은 책을 읽을 때는 의도하지 않게, 전 독서자의 시선을 따라붙는다. 이를테면 어디가 재밌었을까.
소개팅을 나간 친구가 '예뻤다'는 평가를 내린 주인공의 어디가 내친구 마음에 들었는지 알고 싶은 이중의 시선.
탄력있는 전개였다. 이미 폼 좀 잡는 소설에 길들여진 내게 수려한 문장이나 철학적인 내용을 발현시켜주진 못했지만, 열셋 남짓아이가 소설적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애초의 평가대로 무서웠고 재밌었다. 풀리지 않는 정체의 소년과 슬픔을 간직한 씩씩한 소녀의 두려움이 전해져 긴장감이 흘렀다. '죽은 사람의 마지막 말'이라는 상징적인 의식도 자리잡은 수월한 성장소설이었다. 그러나 내가 멈추어 서서 바라본 구절은 바로 저 위의 문장이었다.
사랑해마지 않는 오빠를 잃고 별안간 엄마의 가출을 경험한 꼬마 더스티. 어느 날 눈 앞에 나타난 엄마의 모습.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부모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내가 빌려준 책을 읽은 아이. 아이는 이 구절에서 엄마를 불러냈을까. 한층 망가진 모습으로, 낡아빠진 자동차 시트에 담배불을 눌러끄는, 머리색이 바뀐, 낯선 엄마에게 차갑게 구는 더스티 안에 아이는 잠시 들어갔을까.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봤을까. 그 때부터 소설이 아닌, 마치 일기장을 읽는 듯한 은밀함이 얼핏설핏 들기 시작했다.
아이가 소설이 흐르는 방향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감정을 치유받을 수 있었을까. 치유의 비밀 중 한 가지를 터득할 수 있었을까. 슬픔으로 생긴 오기를 드러내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까. 물음은 끊이지 않았다. 아마도 아이에게 대답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 내가 아이의 상처를 더듬기에 우리는 가끔 책을 빌려주고 단평을 듣는 막연한 사이일 뿐이었다.
어쩌면 그저 소설로, 재미있게, 읽기만 했을지도 모를 노릇이지만 순수와는 일찌감치 담쌓은 어른의 음흉한 눈은 도무지 직선으로 책을 바라보지 못했다. 소년의 말대로 수수께끼는 아이에게 있고, 아이 스스로 자신의 상처와 마주할 때 해답이 있겠지만 또 '왜 혼자 힘으로 해야 하냐고' 더스티처럼 투정을 부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마음이 조금 놓이는게 있다면 '공감'으로 아이가 치유의 열쇠를 쥐었을지 모르겠다는 기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