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라 쿠트너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우울증은 정말 엿같은 이벤트죠."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는 이렇게 시작된다. '새로 만난 정신과 전문의는 자기가 무슨 유명스타라고 생각하는지 한 껏 폼을 잡으며 말했다.'라며 의사를 분석하는 환자 카로의 이야기. 남자친구에게, 직업에, 인생에 굉장한 불만족을 느꼈던 서른의 카로는 카드 점을 보러가듯 심리치료를 시작한다. 스스로도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했던 만큼 절대 심각한 삼십대의 이야기가 아님을 예고한다.
젊은 작가들의 통통튀는 문장과 감성이 문학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시류에 어울릴만한 소설이다. 게다가 요즘 '우울증'은 정신적 감기에 비견될 정도로 흔한 병명이 아니던가. 은밀한 공감도 면에서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지금 당장 검색창에 '우울증'을 쳐본다면 의학적 소견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울감, 자살 사고, 의욕상실, 무기력감, 피로감, 수면장애, 성기능 장애, 집중력 저하, 식욕장애'
단지 혼자가 되는게 두려워 이별하지 못하는 남자친구를 가졌거나, 적성에 꼭 맞는 직장을 석달전에 잃어 대낮에 늙은이들만 모여드는 B급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하거나, 가짜친구들을 추려내면서 오히려 그들이 반기는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저 수많은 증상중 적어도 두 세가지쯤 겪지 않을 위인이 어디있을까.
다만 카로에게는 다혈질의 감정괴물이라는 요소가 추가될 뿐이지 당신이나 나처럼? 꽤나 똑똑하고 유머러스한 여자다. 그런 카로가 지독히도 집착하는 것은 '사랑'이다. 아무래도 사랑같은 건 개나 줘버리자는 여자보다는 한수 아래다. 그래서 나는 카로의 증상을 정상이라고 간주해 버렸다. 헌데 이 여자, 한밤중에 응급실에 갈 정도로 상태가 가끔 나빠진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내 어린 시절은 불행했어요. 가끔 뺨까지 때리는 불행한 엄아에다가 내가 절실하게 사랑이 필요했던 시기에 딸보다는 세계문학의 진주를 캐내는 일에 더 몰두했던 대단한 아빠가 계셨거든요. 두 분은 이혼까지 하셨죠. 또 결혼한 삼촌이 하나 있었는데, 어린 내게 해서는 안 될 몹쓸 짓을 했어요. 이상한 방식으로 날 '사랑했던'거죠. 그리고 내가 진짜로 사랑했던 외할아버지는 일곱 살때 돌아가셨고요."
프로이트라도 동원될 법한 불우한 어린시절의 주인공 카로는 단숨에 부정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쁜 삼촌 카드'는 수년 전에 극복한 상태라고. 그녀의 트라우마를 만든 이 가족사는 카로의 심리여행에서 제외되어도 좋을 듯했다. 그녀를 힘들게 하는 주범들로는 당연히 '남자'가 지목된 상태였다. 필자는 내내 그녀의 이별과 고통과 설렘과 극악한 증상들을 되풀이해서 만나야했다. 솔직히 이런 과정은 그닥 반갑지 못했다.
자아가 강한 현대 여성의 우울증을 유쾌하고 명랑하게 쓰겠다는 명목으로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지는 이런 과정들은 자위에 가까웠다. 그녀의 우울증 극복기는 별다른 희망이나 개운함도 주지 못했다. 페이지라는 관성 때문에 독서를 마치고 말았다니! 게다가 이렇게 길게 서평까지 쓰고 있다는데 심리치료를 부탁하고 싶을 지경이다.(하나도 안 웃긴가)
'내가 졌어요'(관심남이 카로에게 보낸 문자)라고 카로에게 문자를 전송해야겠다. 정말 무심했다면 이렇게 긴 편지를 쓰지도, 책을 다 읽지도 않았을테니 말이다. 그래, 이 이야기는 싱글의, 더 이상 어리다고 말할 수 없는 서른 나이의 여자라면 공감할 수 있는 괜찮은 소재지만 증상과 심리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도 했다. 울림통이 빠졌다고 해야할까. 데뷔작이라는데 마음을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