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451 환상문학전집 1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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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문학 (幻想文學 fantastic literature)

초자연적 가공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사건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 
 

<화씨 451>을 읽고 검색한 정보다. 정확한 의미를 알아두고 싶었는데 결국 지금의 판타지나 SF의 할아버지말 인것 같다. '지금은 F. 카프카·E. 카네티·M. 쿤데라, 라틴아메리카 환상소설가 J.L. 보르헤스로부터 G. 마르케스 등의 작품에서 환상문학의 현대성을 볼 수 있다.'라고 설명한 걸 보니, 지금처럼 환상성을 기본으로 하는 예술장르의 선구적 작품들이 이에 속하나보다.
  

확실히 1950년에 <화씨451>의 초고 <방화수>가 씌여졌다는 건 선구적이고 예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2009년, 이 환상문학이 내 손으로 왔을 때는 이미 혁신성을 조금 잃은 뒤였다. 이미 많은 여타의 예술작품들이 그가 그린 세상을 리메이크 한 다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이 재생되는건 현대에 어떤 의미를 낳기 때문이리라. 그 의미를 찾는 일이 이 번 독서의 중요한 과제다. 

답은 사실 매우 쉽게 드러난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는 작가의 대부분이 경고와 교훈을 염두하고 있을 것이다. 리얼리즘에 교훈을 담는 것보다 오히려 명확하고 자연스럽게 그 작업이 이루어진다. 리얼리즘이 설명하는 동안 판타스틱은 상상하면서, 재미와 교훈의 무게가 다른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60년 전의 이 소설이 비교적 현대성을 갖는 이유다.
 

교훈이라는 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어서 상상이 아무리 낡아도 우리는 같은 도덕성을 끌어올린다. 과연 레이 브래드버리가 상상한, 책을 불태우는 직업인'방화수'가 지금 어떻게 읽혀질까. 책을 불태우다니? 분서갱유도 아니고 이 뜬금없는 설정에 호기심이 발동해서 읽기 시작했었다. 현대와 혹은 펼쳐질 미래와 매치했을 때 비유나 상징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이 책에서도 긴 설교를 통해 잃어가는 책의 의미와 사라지는 사유의 과정들을 직접적으로 통탄한다. 이미 우리는 지식보다 정보력이 앞섰던 걸 자주 경험한다. 깊은 생각의 골은 지루한 강의나 고전의 몫으로 밀어놓고 시간을 죽이기 위한 영상이나 가벼운 책들로 교양을 쌓는다. 진정성을 담은 책을 외면하는 일이 책을 태워없애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독자가 없으면 사라지는게 책의 운명이니까.
 

책 말고도 다양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다. 주변의 자연과 사람, 사건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일이 도리어 반사회적인 장애가 되버리고, 정부의 표적이 되기까지하는 암울한 세상이 펼쳐진다. 결국 '인간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인물들은 세상과 싸우거나 사라져야한다.

"나는 열흘이면 아흐레 정도는 아이들을 학교에다 맡겨놓고 살아요. 그러니까 한달이면 사흘 정도는 아이들한테 부대낄 수밖에 없는데, 뭐 그렇게 견디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지요. 그저 거실에다 몰아넣곤 벽면 텔레비젼 스위치만 켜 주면 그만이니까. 세탁기 돌려서 빨래하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빨랫감들을 집어넣곤 뚜껑을 닫으면 그만이잖아요?"

저자가 상상한 '인간성'상실의 현장은 화들짝 놀랄만큼 우리 코 앞에 다가와있다. 이런 디스토피아적 환상이 60년 후 리얼리즘이 되었다면 차라리 그가 틀렸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상 유래없이 책을 불태우는 '방화수'가 등장한 이 환상 소설이 더 이상은 아무것도 들어맞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당연히 저자의 의도와 일치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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