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첫사랑,하면 떠오르는 소설은? 교과서에서 만났던 황순원의 소나기,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어쩐지 내겐 사랑을 주제로한 소설의 목록이 빈약하다. 나름대로 다 컸다고 자부한 다음에는 가슴 말고 머리를 채우는 일에 몰두해왔다.
하루빨리 똑똑해지고 싶었나보다. 결국 적당히, 두루 아는 바보가 되버렸지만.
특히나 사랑이 중심에 선 소설은 시간이나 죽이자고 달려들지 않는 한 곁도 내주지 않았던 걸 요새와서 알게 되었다. 

20대에는 책밖의 사랑이 더 오묘했던 까닭도 있겠다. 이젠 어엿한 아줌마가 되어 사랑말고 가족애로 살고 있다보니 때늦은 연애 소설 한편 읽고 주책맞게 마음이 동하였다. 제목도 신선한<여름>. 여름의 열기와 나무그늘의 서늘함을 모두 간직한 첫사랑 이야기다. 

난 여전히 '비누냄새'를 첫사랑의 모태로 간직하고 있다. 강신재의<젊은 느티나무>에서 짝사랑하던 이복 오빠(정확한 설정이 기억나질 않는다)에게서 맡았던 비누냄새. 어렴풋이 첫사랑은 그 은은하고 촉촉한 '비누냄새'같을 거라고 상상해왔다. 가까이 다가가 맡을 수는 없지만 그의 향기를 느끼는 것! 첫사랑의 설레임은 후각을 동반하고 찾아왔다.

저자 이디스 워턴은 <순순의 시대>로 여성최초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미국의 거장이다. 물론 <여름>으로 알게된 사실이다.
한 세기 전 첫사랑 이야기가 놀라웠던 점은 단연 감정묘사의 치밀함이었다. 묘한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감정을 단 한 올도 빼놓 않으려는 듯 다가선다. 이제는 무뎌져 떫고 아린 느낌만 남은 첫사랑이 번개처럼 다시 가슴을 쳤다. 사랑을 하고있을 때라면 공감하면서 읽겠지만 이렇게 사랑을 잃은 다음에도 효용성이 있으니 소설의 가치는 이어지는가 보다. 

'묘사의 힘'은 오감을 자극한다. 한 여름의 풀밭을 사랑하는 주인공 체리티는 그곳에 엎어져 영혼의 깊은 자리에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어떤 소녀가 그렇지 않을까. "지긋지긋해."를 입에 달고 사는 소녀의 숨겨진 방 문만 두드려 준다면! <여름>에 나타난 자연에 대한 묘사는 깔때기같은 밤하늘 이라느니, 꽃의 수액이 끓어 오른다느니, 꽃받침이 폭팔하듯 솟아올라 향기가 실려온다든지.하면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대자연 역시 사랑을 통해 태어나고, 사랑에 빠진 이라면 뭘 보든 사랑의 안경알을 통과할 것이며 작가 역시 자연의 묘사로 사랑(성적인 부분을 포함해)을 비유하려고 한 점이 눈에 띈다. 

 이런 우회적 접근과 더불어 직접적인 성애의 표현이 당시에는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지금은 콧방귀 낄만한 이야기다. 아쉽게도 진한 구석이라곤 모두 상상력에 맡겨야할 판이었다. 그런 의도로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문학작품을 볼리도 없겠지만 내겐 그 물레방아도는 화면의 뒷편이 더욱 애뜻하게 느껴졌다. 세상이 앞으로만 나아가도 우린 어렸을 때 먹던 음식을 찾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몇 구절을 인용해 보려고 접었던 페이지를 다시 열었지만 소설의 흐름을 끊을 수가 없었다. 평론을 하겠다고 마음먹지 않고서야 <여름>의 몇 부분을 들어올리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에 모래가 휩쓸리듯 문장이 소설이란 바다 속으로 조금씩 침전하는 열정적인 글쓰기가 독자에게 전해졌다. 

 <여름>이 삼각관계를 지켜보는 고전적인 재미를 우선으로 하지만 주인공 채리티의 '변화'을 느끼는 '성장소설'로 받아들이는 기쁨도 놓칠 수없다. 사랑을 통해 소녀가 '여성'이 되어가는 과정은 여류작가가 아니라면 이토록 치밀하게 다룰 수 없었을 것이다. 치밀함은 결국 깊은 공감을 유도하니 사랑의 설레임과 만족감과 굴욕감을 아낌없이 느낄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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