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소로우는 스스로 가난한 자들의 친구이고, 내면으로 여행할 줄 아는 자들의 길손이다. 하지만 쓸모 없는 것을 모아두려고 돈버는데 정력을 쏟는 자의 적이고, 쉽게 고통을 잊고 신념을 잃고 사는 자에겐 매운 회초리다. 이 독특한 한 권의 책은 마치 수십 년을 이어 온 호밀빵의 발효종처럼 지금 이 땅, 이 시대에도 그 풍미를 잃지 않는다. 잘먹고 잘 살 자는 요즘 들어 그 맛은 더욱 품위 있다.

 

1845년 미국의 한 남자가 월든 호숫가에 홀로 집을 짓고 2년을 보낸다. 그가 구도자의 길을 걸었다가 하산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활(生活)이다.  밥해먹고 불 때고 사람 만나고 생각하고, 먹고 자기 위해 노동했던 기록 말이다. 


숲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인생의 본질과 만나고 그것이 가르치는 바를 온전히 듣기 위해서는 주변의 목소리가 아닌 단련된 신념의 목소리를 따랐다고 말이다. 이 책은 그가 보여준 행동에 대한 지당함일 뿐이다. 따분한  설교와 홀아비의 고지식한 발상을 상상한다면 이 책의 무궁무진한 재미를 어서 풀고 싶은 마음이 급해진다.

은근하게 드러나는 소로우라는 인물에겐 친구 삼을 만한 유머와 솔직함이 넘친다. 곳곳에 자신의 약점을 밝히고도 모자라 독자들도 자신과 같거나 나을 것이 없을 거라고 장담하고, 묵직한 주제에 대해 절제하기 보단 수다스럽게 자신의 말을 이어간다. 그 친근함에 고집스런 주장에도 격이 없어진다.

 

무엇보다 ‘월든’은 약에 딸린 처방전처럼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안내서의 일종이다. 그가 숲에 들어간 것은 귀농의 한 형태로서, 도시가 안겨 주는 짐을 벗고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 싶어 시골로 가려는 이들에게 정신적 실재적 바탕을 제공한다. 통나무집 한 채를 짓는데 드는 비용을 공개하고, 자신이 먹는 빵을 소개한다. 빵이라면 의당 들어가는 효모도 필요 없음을 중요한 소스로 제공하고, 가꾼 곡식을 돈에 넘기고 상점의 밀가루를 사다먹는 농부들의 폐해까지 지적하며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몸소 내보인다.

그의 환경 친화적 농법은 원시적이고 창의적이다. 그래서 흙의 힘을 이해하는 농부임은 물론이고 흙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연구하는 발명가처럼 느껴진다. 이 자연에 대한 애정 곧, 삶에 대한 이해는 혹여 미천해 보이는 노동을 가장 고귀하고 풍성하게 비춘다.

 

그에게 요리란 맛을 내어 만드는 어떤 것이 아닌 맛있게 먹는 어떤 것이어서 준비할 것은 적당한 노동에 바친 고픈 배 일 뿐이다. 그의 ‘채식’이란 선택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는 동시에 상상력에도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면서 꼭 동물을 잡아 도살해본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행복을 거슬러 가는 짓인지를 이야기한다. 자본주의가 낳은 무서운 산물은 바로 전쟁과 기아와 배부름의 병이다. 수입의 1할을 자선에 바치느니 9할을 바쳐 자선사업을 끝내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통쾌하고 과감한 대안을 내놓기도 한다. 



소로우는 반복되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발견하는 깨이고 열린 눈의 소유자였다. 그에게 외로움은 허공에 띄워진 허상일 뿐 오히려 고독이 그를 부단히 깨어있게 한다. 그의시적 통찰력은 평화주의자의 강한 에너지가 깃들어 있다.

 

그가 책으로 보여준 영향력의 근본에는 동양의 철학이 굳게 자리한다. 공자의 논어를 반복해서 인용하고 인도 철학에 흠뻑 빠진 모습엔 때뭍지 않은 진지함이 있다. '근본에 대한 그리움으로 내부를 탐험하고 내부의 법칙을 따르라'고 다른 이에게도 종용한다. 논리보단 직관을 우호하고 타인과의 경쟁보다는 명상을 사랑하는 삶의 방식을 만들어 냈다. 사회 속에서 그의 투쟁은 싸움이 아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꺾지 못할 신념이기 때문이다.



가장 낮고 소박한 시선으로 자신이 느끼는 모든 것을 풀어놓고 그것이 독자의 마음에 가 닿기를 원하는 모습엔 어떤 점잔도 과시욕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목표가 우리를 버리고 방해받고 ‘어쩔 도리 없다’라고 말하고 싶어하지만 그는 단호하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한 목표는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을 뿐더러 더 높은 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돈이나 능력으로 자신을 높이려는 현대인의 당연한 과제에 한 번쯤 회의를 느낀다면  그 땐, ‘자기 자신의 천재성에 충실히 따르는 사람은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는다’는 등불 같은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가 말한 세계인(世界人)으로 변모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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