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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청춘, 을 떠올리면 배가 고프다.
술자리의 사명을 다하고 새벽 미명아래 자취방으로 기어들면 오후의 기울어진 햇빛에 겨우 눈을 떠 종종 마른 라면을 부셔먹는 일은 낯익은 대학시절 풍경이다. 청춘에게 내일이란 끝없는 오늘의 연장이었다. 그곳은 세월이 흐르는 흔적도, 주름살만큼 깊게 패일 고민도 없는 무봉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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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스무 살, 도쿄>(이하 도쿄)는 그저 따분한 동네 나고야를 뜨기 위해서 도쿄로 올라온 재수생 히사오의 청춘 이야기다.
여섯 개의 독립된 이야기는 히사오의 12년을 이어주는 점선이다. 그 여섯 날은 히사오의 청춘을 대표할 만한 특이한? 사건이 일어난 날이자 존레논이 죽은 날이기도 하고, 서울과의 경합에서 일본의 나고야가 올림픽에서 밀린 날이기도 하며, 베른린 장벽이 붕괴된 날이기도, 일본 유명 가수의 은퇴 공연일이기도 하다.
성장소설에서 빠질 수없는 연애담은 “달콤한 기분이 되는”정도로 남겨진다. 하지만 풋풋하기 보단 당황스러울 만큼 리얼하다. <도쿄>의 미덕은 이런 담백한 리얼리티에 있다.
마음의 허기만큼이나 진짜 배를 곯게 되기도 하는게 청춘이라지만 <도쿄>는 ‘늘 식사 때를 놓쳐 배고픈 청춘’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식어빠진 돈까스 곱배기나 햄버거 두 개로 왕성한 식욕을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 청춘 이라니! 함께 탄식하게 만들면서.
그러면서도 음악과 패션에서만큼은 자존심을 지켜내는 센스까지. 예술이 밥 먹여 주지 않아도 좋았던 시절은 역시 그 때 뿐이다.
59년생 작가의 히사오와 유사한 다른 이력들을 비교해보지 않아도 <도쿄>가 자전적인 소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소소한 일상을 촘촘하고 애정어리게 꾸며낸 솜씨며 간간히 등장해 헛웃음을 주는 장난기어린 혼잣말에서 오쿠다 히데오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도쿄의 에너지는 수많은 사람의 에너지라고 히사오가 말한 것처럼 청춘의 에너지도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두근거리는 첫사랑, 못난 친구, 인생의 쓴맛을 보여주는 직장상사, 맞선자리의 엉뚱녀, 세상사에 닳아빠진 고독한 졸부, 이 모두가 지금의 히사오를 만들었다.
<도쿄>에서의 배고픔은 곧 삶, 젊음을 의미한다. 굶주렸던 어떤 날이 다른 날들을 꽉꽉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청춘은 그렇게 가득 찬, 그리고 자주 비워지는 왕성한 소화력의 뱃속 같은 것일까. 무슨 일이 닥치든 꿀꺽꿀꺽 삼켰던 한때가 모두 운명을 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내 청춘이 역사와 만나고 심지어 충돌하기도 했었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히사오의 이야기는 지금도 이어진다. 유명한 소설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으니 <도쿄>는 소설 밖에서 해피엔딩인 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