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나이트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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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를 만난 건 행운이다. 글쓰기의 한 경지로 보이는 블랙 코미디와 풍자를 자유자재의 상상력 속에 버무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찬사는 아낌없다. 단호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평화적 메세지를 전달하는 솜씨 또한 대단하다.
블랙유머나 풍자에 맛을 들이면 그 기쁨의 지평이 얼마나 넓은지 알게된다. 조선시대 실학자 박지원을 유명하게 만든 소설을 풍자를 빼놓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들은 단계적으로 어쩌면 아주 뒤늦게 독자를 자극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삶의 지표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게 그가 주는 소설 속 교훈의 올바른 경로다.

 


교훈이라는 말은 문학에서는 매우 위험한 표현이지만 커트 보네거트에 한해서는 예외다. 지루하지도 권위적이지도 응큼하게 숨기지도 않는 쿨한? 교훈이 이곳에 있다. 커트 보네거트의 공식사이트에 그가 남긴 스케치들을 보면 소설보다 빨리 그를 습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시대는 점점 전쟁과 멀어져 예술 속에 남은 전쟁의 파편은 전시 자체가 아닌 전중의 개인에 집중된다. 개인의 경험을 둘러싼 배경으로, 적절한 위력 관계를 묘사하는데 쓰이는 것이 현대의 전쟁이야기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2009년 발표 된다고 한들 어떤 충격도 이 시대로 가져오지 못한다. 우리가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보고 반전의 구호를 먼저 떠올렸다면 그만한 흥행몰이는 어렸웠을 것이다.  

데모처럼 반전을 외칠만큼 총, 칼 무차별적 죽음이 우리 가까이에 있는 건 아니지만 그리 먼 이야기도 아니다. 굳이 신문의 국제면을 들추지 않아도 세계는 아직 전쟁 중이며 특히 분단 상황에 놓인 우리는 지나친 말로 늘 전시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경각심을 깨우는건 그의 소설 단 한 편만으로도 가능하다. 전쟁이 개인에게 어떻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전쟁이 얼마나 무식한 자들의 무의미한 도발인지 명징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메세지를 먼저 들먹거리는 일이 작품을 만나는데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최신작 <마더 나이트>를 둘러본다.

1961년, 그의 나이 39세에 발표된 <마더 나이트>는 히틀러가 주도한 유태인 학살과 전쟁, 그리고 거대한 그의 조국 미국을 타겟으로 한다. 전쟁과 민주주의, 인종차별과 자유의 국가, 이 부조리한 세계 현실만으로도 웃지못할 블랙 유머로 가득찰 수 있다는 점을 포착해 낸다.
수백만 명의 인간을 죽여 없애기 위해 설립한 아우슈비츠의 확성기에서는 하루 종일 훌륭한 음악들이 흐른다. 그 사이에 나오는 안내 방송은 "시체 운반원은 경비실로 오라"는 것이다. 이 년 동안 매일 이 방송과 음악을 들으면 시체 운반원이 아주 훌륭한 직업으로 들린다는, 기이한 웃음을 유발해낸다.

가죽끈으로 교수형에 처할 사람을 묶는 일과 가방을 묶는일이 거의 똑같이 느껴질 만큼 전쟁중의 사람들은 백치 미치광이가 되어가도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주인공 하워드 w.캠벨 2세는 다르다. 항상 자신이 한 일을 알고 있고, 잊지 않고 살아 간다. 그러나 우습게도 이건 그의 대쪽같은 성품때문이 아니라 '현대인이 널리 향유하는 아주 단순한 혜택, 정신분열증 덕분'이라고 말한다.(커트보네거트의 아들 역시 같은 병을 앓았고 또 소설을 썼다)

그의 비판의 활촉은 동시다발성을 띄고 있어서 만능활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다. 법을 수호하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를 전쟁 스파이로 고용하고도 증거인멸로 발뺌하고, 여자 군악대장을 앞세워 "미국인은 전쟁을 아주 섹시하게 생각"하는 가면을 태연히 쓰고 있다.

하워드w.캠벨 2세는 너무 깊어서 그 어떤 말도 도달할 수 없는 영적인 사랑을 잃고, 결국 스스로 전쟁의 희생자가 된다. 소설은 '다른 사람이 어디로 가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데도 못가는 사람, 다음에 무엇을 하라고 말해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 무엇을 하라고 말해주면 무엇이든 하는' 아우슈비츠의 수 천 명중 한 사람이 되고마는 그가, 나치의 선전 방송원이었다는 역설을 품고 있다.          

커트 보네거트는 숨김없이 반전주의자 이자 낭만주의자다. 그가 만들어낸 주인공은 사실 어떤 정치색도 없는 시대의 예술가이자 희생물일 뿐이다. 그저 '둘만의 제국'에서 사랑의 뿌리로만 살고싶은 한 남자의 갈망은 운명을 조롱하는 로맨스로 향하지만 작가가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사랑이 남는 장사'라는 말은 언제든 유효하다. 전쟁이 사랑의 비극을 만들었다는 점만이 그의 영혼을 파괴할 수 있을 뿐이다.

블랙 유머나 풍자가 단 몇 줄 로 드러나기는 힘들다. 생각이 책을 덮고 덮어서 쉽지 않은 코드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베일을 벗기기보다 느낌을 믿어보는 편이 좋겠다. 그가 남긴 스케치의 군더더기 없는 선들이 만든 우스꽝스러움을 감상해 보자. 아는 사람들 끼린 커트 보네거트를 읽었어.라는 말로 충분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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