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고 이야기해주는 부모들
유소영 외 지음 / 쿠북(건국대학교출판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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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고 결심한 어느 날. ‘내일로 미루지 말고 알고 있는 이야길 해주자’ 하며 주머니를 뒤집듯 기억을 털어보는데 호랑이, 토끼, 여우 따위의 동물들만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닐 뿐 정작 중요한 플롯이나 대사는 한 줄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시험지 앞에 앉은 수험생처럼 억지로 기억을 더듬어 겨우 한 가지 이야기를 완성할까 말까였다. 다행히도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는 비교적 상세히 떠올랐는데 그것도 서영에게 한 스무 번쯤 이야기 해주고 나서야 만듬새가 괜찮아지더란 어이없는 사실에 도서관을 찾았다.

 
다시 초등학생이 되어 ‘이솝이야기’를 빌려온 날. 무릎을 탁탁 쳐가며 금도끼 은도끼, 황금알 거위, 양치기 소년 이야기 등등을 읽어나갔다. 한 달 동안 ‘호랑이와 곶감’ 이야길 해주면서 중요한 대사와 극적 포인트를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단 사실을 알았기에 들려주려고 읽는 부모의 특별한 입장이 되었다. 그런데 제목만 봐도 줄줄 꿸 것 같았던 이야기들이 통 입에 붙질 않는 것이다. 또 뭐가 문제일까 안개 속을 헤매던 중에 다시 도서관을 찾았다.


역시 책은 길이요 문이요 열쇠였다. <책 읽어주고 이야기 해주는 부모들>이란 책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을 말해 무엇 할까. 물론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법이지만 제목은 마침 기다리던 책이었다.
 

그 즈음 이야기 해주기의 의욕도 조금 수그러든 상태였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시리얼을 무료로 유치원에 공급했더니 이후 아이들이 자라서 자녀를 기르게 되었을 때도 시리얼이 계속 팔렸다는 이야길 해주면서 (p.86) 시리얼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나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서하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부모와 교사가 이야기하기, 읽어주기로 맛을 들여 주는데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간간히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이야기 해주기의 힘을 더하고 있다. 또 옛이야기가 왜 이야기 해주기에 좋은지, 안 좋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세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공들여 골라 보여주고, 원본이야기를 압축해서 들려주기 좋도록 고치는 실 예를 들어주기도 한다. 실용적이기도 하지만 이야기 보는 재미까지 있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옛이야기는 ‘지루한 설명 없이, 사건의 연속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 사건들은 그림을 보듯 이야기의 진행을 상상할 수 있게, 생생하게 제시되고 일말의 반복성이 있다’는 것이다.(p.94)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면 이 한 줄에서도 수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이야기해주는 할머니의 입장으로 인자하고 세심하게 아이들의 입장을 염두하고 있는데, 아이 경험과 환경을 고려하여 이야기해주는 방법도 적고 있다.(p.114) 꽤 분량을 두어 좋은 책을 소개 하는 마지막 챕터도 알차다. 

 
이 책은 전문적이면서도 매우 독창적인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정말 드물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 책까지 읽고 나니 정말 든든하다.

이제 나에게 필요한 건 연습이다. 어차피 이제 갓 돌을 지난 서영은 두 세 마디의 생활어 밖에 알아듣지 못한다. 지금이 연습의 적기라고 본다. 많은 이야기를 읽고 감상하고 감동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가장 질 좋은 버전이 되었을 때 즈음 서영은 엄마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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