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도 기념일도 아닌 날 <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책을 선물받은 적이 있다. 독특한 흑백의 판화 그림이 평생 나무만 심은 노인의 주름과 수염, 그리고 나무의 결을 고스란히 전해 주어서 눈마저도 즐거운 책이었다. 우리는 회색노트-하나의 일기장으로 일기를 나누어 쓰는-를 함께 쓰는 사이였고, 그렇게 아무도 기념하려고 하지 않는 날을 특별히 불러보고 간직하는 소녀다운 감수성으로 가득찬 시기였다. 바다의 날엔 바다를 그리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식목일이 내게 특별한 낭만을 동반하는 건 오로지 이 한권의 책 때문이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실화를 바탕으로 씌여진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다. 흔해빠진 표현대로 남녀노소가 두루 읽어 유익할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선물해도 좋을 동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큰 줄거리랄게 없지만 고독하고, 우직하고, 또 성스러울 지경인 양치기 노인의 나무를 심는 이야기가 프랑스 문학계의 거장 장 지오노를 통해 탄생한다. 2년을 넘게 홀로 작업했다는 판화 그림은 삽화를 넘어선 상상력을 제공한다. 이야기가 있는 미술관에 들른 기분으로 글 속에 파뭍히지 않고, 잠시 그 경건한 작업에 실린 아우라(노인과 화가 모두의)를 경험할 수 있다. 개인의 둘레와 개인의 이익을 사수하는데 길들여진 우리에게 이 책은 내일이면 잊어버릴 동화 속의 판타지나, 신문 사회면의 흐뭇한 선행 기사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시작말처럼 '이야기'의 힘을 빌려 아주 가까이서 그 인격을 지켜보는 행운을 얻는다면 판화처럼 새겨질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