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온도'의 작가, 한정주님의 새 글입니다.
이전 책에서 이덕무의 산문을 칭송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시를 칭송하고 있습니다.
역시 주인공은 조선 최고의 작가인 '이덕무'입니다.
전작의 표지는 잘익은 복숭아였는데, 이번 책의 표지는 매실이네요.
모두 128편의 시를 통해 이덕무의 작품 세계와 당시의 시대상을 함께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시를 보면서 내가 알던 조선시대의 시와 조금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보았던 시들은 문장은 멋지지만 동화될 수 없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면 이덕무의 시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현장에 있는듯한 사실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좋은 감정, 멋진 풍경을 직접 보는 듯한 기분...
왜 이덕무의 시를 극찬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덕무의 글쓰기는 다음과 같은 여덞 가지 비결로 요약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어린아아의 마음으로 글을 써라.
둘째,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써라.
셋째, 일상 속에서 글을 찾고 일상 속에서 글을 써라.
넷째,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보고 적어라.
다섯째,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지 말고 자신만의 색깔로 글을 써라.
여섯째,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진실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라.
일곱째, 무엇에도 얽매이거나 구속당하지 말고 자유롭고 활달하게 글을 써라.
여덟째, 온몸으로 글을 써라.
다시 말해 나의 삶과 나 자신을 온전히 글에 담아 써라.
저자가 말하는 이덕무의 글쓰기 비법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글을 잘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비법인 것 같습니다.
진실된 마음을 그대로 글로 옮길 수 있다면, 그 진실은 읽는 사람에게도 잘 전달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글이 최고의 글이겠지요.
시작(詩作)은 언어의 한계에 도전하는 최전선의 작업이다.
어떻게?
천 마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한 마디의 시어 혹은 한 구절의 시구로 압축하여 표현한다.
압축은 동시에 생략이다.
천 마디 말을 한 마디 말로 압축하는 것은 나머지 구백구십구 마디 말을 생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압축과 생략의 묘미, 시를 읽는 재미가 거기에 있다.
꼭 시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글-심지어 일을 위한 보고서도-은 풀어쓰기는 쉬워도 줄여쓰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시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압축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한 마디의 압축, 단어는 몇 장의 글보다도 더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나와 유득공은 서로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높여 칭찬하였네.
우리 두 사람이 일 년 내내 이 책을 읽는다고 한들 어찌 굶주림을 조금이나마 모면할 수 있겠는가?
진실로 글을 읽어 부귀영화를 얻고자 하는 것은 도대체 우연한 행운을 바라는 술책일 뿐이니, 당장에 책을 팔아서 한때나마 굶주림과 술 허기를 달래는 것이 더 솔직하고 거짓 꾸밈이 없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네.
참으로 서글픈 일이지 않은가?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오랜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이덕무는 아끼던 맹자를 팔았고, 이 말을 들은 유득공은 춘추좌씨전을 팔았습니다.
책을 너무나 좋아해서 '간서치'-책만 읽는 바보-라 불리웠던 이덕무가 책을 팔 정도였다면 얼마나 굶주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술 고파했던 유득공도 책을 팔았고...
이 부분을 보면서 비가 와도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을 거두지 않고 공자왈맹자왈 하는 선비 나부랭이 보다는 훨씬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에 기반한 글공부가 더 솔직하고 현실적이라 생각합니다.
이덕무도 서글픈 현실이지만 이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가운데에도 더럽지 않은 것이 있고, 깨끗한 가운데에도 깨끗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 사람에게 배어 있는 삶의 냄새란 그 사람이 어느 곳에 자리하고 어떤 지위에 있고 어떻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
언제나 겉과 속이 다른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겉은 깨끗해 보일지언정 속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 이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속 냄새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에 아직 겉모습만으로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시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대화하고 공감하고 교감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시를 읽으면 사물과 공감하는 시인의 '감수성'을 읽을 수 있다.
시를 읽으면 사물과 교감하는 시인의 '사유'를 읽을 수 있다.
시를 읽으면 사물과 대화하는 시인의 '상상력'을 읽을 수 있다.
공감과 교감과 상상력은 사람이 사람일수밖에 없는 필요충분조건 중의 하나다.
시는 공감과 교감과 상상력의 최고 경지다.
왜?
가장 적은 말과 가장 짧은 글로 자신과 사물 사이의 공감과 교감과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표현하기 때문이다.
시가 왜 좋은지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지금까지 명확하게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 글을 보며 쉽게 공감을 하는 것을 보니 바로 이것이였던 것 같습니다.
공감, 교감, 상상력.
따뜻한 봄햇살이 집 앞 마당의 목련 봉우리를 깨우려고 합니다.
외출이 힘든 요즘, 좋은 시와 함께 하는 것도 멋진 시간을 보내는 훌륭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