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어제밤에 남은 마지막 몇페이지를 읽었다.
어제는 다수의 사람들과 대화해야 했고, 그 다수는 대체로 처음보는 이들이었다. 대화를 하면서, 속으로는, 아 나 왜 이러고 있지? 이건 직업이지만, 너무 피곤하네..내가 원래 이랬나? 왜 이리 수다스럽지? 이짓 벌써 수년짼데, 본성에 안맞네...아 정말 이제 방식이 다른 일을 하고 싶다. 사람들을 대면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다...등등 온갖 생각을 다 했다.
그러다 페이스북에 나의 직업이 극한 직업 같다고 만천하에 선언하고 말았다.
약간의 부끄러움을 동반하였지만, 선배들에게는 좀더 미안한 마음이고, 더 극한 일을 하는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어 비공개로 할까 말까 고민하다. 귀찮아서 그냥 뒀다.
이런 다양한 생각들이 어제 나라는 존재의 의식 속에서 이리엮이고 저리엮이면서 점화되었다.
그리고 퇴근하였고, 전철 출구 벽에 이리저리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잠시 읽었다. 집중은 안되었지만, 뭐 사람들은 이렇게 지나다니는 벽에다 제생각을 부끄럼없이 발산하기도 하는구나...인생이 주관적 경험이라고, 고됨과 안고됨은 상대적인 것인가? 아닌가? 아니다 그것조차 주관적이겠구나..어차피 나는 너의 생각도 경험도 온전히 딱 아귀가 맞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역시 고통의 경중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일테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집, 집 방문을 열자마자 탄내가 진동,
잠이 어떻게 들었나 싶게 냄새 때문에 신경이 쓰여, 화내고, 원망하고..이러다..밀크맨이 몇 장 안남았으니 마저 읽고 자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몇 주 만에 밀크맨은 내 잠자리 들기 직전의 독서로 휴일날 이불 밑에서 읽기용으로 붙들려 있다가 완독이 되었다.

화자의 서술태도가 좀 특이하다고 느꼈다. 애들이 막 주절이 주절이 자기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는 격이랄까?
문장이 계속 늘어나는 방식. 등장인물 그 누구도 고유명사, 이름이 불리어지지 않는것. 유일하게 밀크맨이 책의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 별명이 아니라 진차 이름이었다는 것 빼곤, 그야말로, 첫째 언니, 둘째 언니, 첫째 형부, .어린 동생들,..어쩌면 남자친구, 어쩌면 여자친구, 아무개 집의 아무개 아들...등등. 아 페기...가 있었구나,그나마 페기라는 진짜 밀크맨이 현재의 성격의 밀크맨이 된 속사정에 등장하는 수녀가 된 페기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구나.

여튼...열 여덟 먹은 소녀는, 그렇게 1970년대 어느 시기쯤의 아일랜드 어디메쯤에 사는데, 어느날 퇴근 길에 평소와 다름없이 걸으면서 아이반호를 읽고 가다가 그 사건에 맞닥뜨리게 되고, 그 사건은 원래는 사건이라고 칭할 그 무엇도 아니었고 그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만 언제부터인가 사건이라고 할 만한 일의 당사자가 되어버렸고, 전혀 일어나지도 않은 어떤 일에 대해 그 당시 그 즈음, 그 지점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휘말리고, 후달렸듯이 18세 소녀인지 여인인지는 그렇게 한권의 소설책의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
1970년대 아일랜드
반대파, 국가수호자, 테러리스트, 밀고자, 협력자, 우리편, 저편, 밀크맨, 진짜 밀크맨,...
뭐가 뭔지..처음엔 이건 뭐지? 하다가 이런 시대, 이런 삶이 존재하였구나..저 너머 바다 건너 머나먼 어느 섬나라,, ..이상하고 강력한 이웃을 둔 덕에 부침과 원하지 않게 삶의 대부분이 꼬였던, 부침이 심했던 그 섬나라....
18세 소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어 하는 사이 어느덧.,,,몰입과 집중,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아아..이 지구상의 인간의 삶의 형태란, 참으로 다양하고, 심란하고, 모질고, 서글프고, 예상을 뛰어넘고...
각각의 특이성을 뛰어넘는 보편적 속성이란, 결국 인간은 주어진 조건에서 그럭저럭 살아내야 하는 것, 혹은 못견디고 사라지거나.....그것 둘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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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테레사 > 중간에 가서야 비로소 깨닫다

과거의 나를 일깨우는 이런 환기는, 내가 누구인지 묻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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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테레사 > 지난 여름 추락한 수많은 개인의 명예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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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테레사 > 밑바닥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한 작가

9년 전 나는 좀더 섬세했고 따뜻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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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테레사 > 황혼에서 새벽까지 읽다

12년 전 오늘 무슨 일이 있었길래.ㅈ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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