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전쟁 - '자유' 개념을 두고 벌어지는 진보와 보수의 대격돌
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옮김 / 프레시안북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꿈을 꾸었다.인지과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책을 막 끝낼 참이었는데. 연거푸 같은 인물에 대해 세번의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또 꿈을 꾼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심지어 나는 그의 이름을 공중에서 큰소리로 세 번이나 불러댔다. 어딘가 숨어있던 그는 나의 부름에 답하였다.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다며, 꿈속의 나는 이것이 꿈임을 자각한다.
도대체 꿈은 내 인생의 몇분의 몇인가? 꿈이 무의식의 영역이라면, 삶의 또다른 이면으로서 그것이 현실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은 종으로서 인간의 삶에 어떤 잇점이 있는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어지럽던 머리를 막 끝낸 조지레이코프의 자유전쟁에 집중하기로 한다.


자유는 본능적으로 우리 신체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자유롭지 못한 또는 자유로운 상태를 언어로 표현할 때 그것은 우리 신체의 어떤 상태로 은유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속박으로부터 벗어난다"라든가 "사슬에서 풀려난다"라든가...그러고 보면, 자유는 너무도 당연한 인간 존재의 상태여야 하므로 좌와 우가 부인할 수 없는 '단순한' 자유가 있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러나 자유에는 빈공백이 있으므로 그것을 어떤 개념으로 채우느냐는 상당히 다른 문제라고 하였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자유전쟁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진보주의자의 우는, 보수주의자들이 자유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자유는 당연히 진보적이라고 사고하는 데 있다고 읽힌다. 미국의 건국에서부터 자유의 개념은 진보적이며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이 자유를 논하기에는 비열하고 부도덕하기 때문에 "감히"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설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안먹힐 것이라는 거다.

사실 이 말 역시 수긍할 만하다. 진보주의자에게 있어 자유는 진보주의자들만이 전유물로 여길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라 대응의 가치를 아예 느끼지 못했고 또 실제로 그래왔다. 헌데 여기에 또 다른 우가 있다. 지난 30년간 보수주의자들은 너무도 교묘하게 자유의 개념을 뒤바꾸어 왔기 때문이다. 당연하고 선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수를 쓰지 않아도 자유의 개념은 "그대로" 진보적 가치로 진보주의 진영에 오롯이 머물것이란 너무도 안일한 사고는 자유전쟁에서 진보주의자들의 패배로 귀결하였다. 

도덕성이 인간이성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감정과 관려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솔깃하다. 사람들은 삶의 여러 면에서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진보적 가치를 드러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보수적 가치에 따른다. 가정에서는 가부장적 위계질서에 익숙하면서 일터나 사회적 관계에서는 진보적 가치에 경도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다. 아니면 환경문제에서는 진보적이지만 재산권이나 노동문제에서는 보수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마음속에 이미 어떤 가치에 대한 개념을 내재화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어떤 지점에서는 진보적 가치에 또 다른 어떤 지점에서는 보수적 가치가 내 마음 속에 틀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동은 결국 이와 같은 개념틀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는 것. 자유를 선취할 아무런 자격이 없는 보수주의자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다.

레이코프는 인지과학자이므로 주장은 단순한 주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그는 누구보다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수년간 연구해 온 과학자이다. 현상에 대한 해석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일방적 주장이나 개인적 경험만으로는 어림없다. 가설이 엄밀한 실험과 논증을 거쳐 이론이 되는 것이라면 레이코프의 과학자적 입지와 태도는 자유개념 전쟁에서 우리를 설득하는데 더욱 효과적이다.  

나는 본래적 의미의 자유-레이코프식으로 말하면 단순한 자유를 원한다. 그것의  빈 공간은 진보적 가치로 채우고 싶다. 그것은 인류라는 종이 그토록 많은 종들 사이에서도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사회를 이루고 사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였고, 그래서 사회를 이루는 것이 우리 종족의 생존에 어울리는 것이라면,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일부만 살아남는다는 것은, 우연한 세포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이 되기까지 너무도 많은 것들에 빚진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한정된 우주의 자원을 골고루 나눠갖는 것은, 우연히 기회를 얻어 오늘날 이토록 많은 개체수로 지구 곳곳을 파고든 우리 종족들 때문에 사라지고 줄어든 다른 종들에 대한 기본적 예의라고 생각한다.  

돈이 없다면 자유가 없다. 당연히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거의 많은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가난한 사람이 절제력이 부족해 가난한 것인가?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도로를 건설하고 유지하고, 인터넷기반을 만들고 수자원을 관리하고 전기시설을 유지한다. 그런데 부자들은 이런 시설들을 가난한 자들보다 더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다. 기회 역시 가난한 자의 기회는 부자의 기회보다 덜 자유롭다. 

진보주의자들이 도덕적 우월성이나 자유의 본래적 개념에 머물러 있기만 하다가는 큰 코 다칠 판이다. 아니 이미 큰 코 다치고 있다. 개념에서 지면, 전쟁에서 지는 것이다. 가끔 우리 종의 진화의 끝을 생각해 본다. 이 책은 섬뜩한 책이다. 물론 종의 진화와 절멸이 자연의 한 과정이자 우주의 질서 중의 하나라고 인정한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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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진달래 2010-10-22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확하게 책을 이해하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시사점을 잘 소개해 주셨습니다. 옮긴이로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퍼갑니다.

테레사 2010-11-11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