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소록
강희안 지음, 이병훈 옮김 / 을유문화사 / 2000년 2월
평점 :
절판


 저어새는 기록에 의하면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흔히 볼 수 있는 새였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아시아 일부지역에만 600마리 정도 살아 남았다니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조류가 아닐 수 없다.

저어새는 온몸이 흰색이고 다리와 부리 그리고 부리의 밑등으로부터 눈에 이르는 드러난 피부부분이 검은색을 띠고 있다. 특히 부리가 주걱모양이고 눈아래에 노란색의 반점이 있는 것이 아주 순한 인상을 준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희고 부드러운 댕기깃이 위로 솟구쳐 흡사 갈대가 흔들리는 듯하다. 비슷하게 생긴 백로나 다른 맹금류가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은 어딘지 잔혹한 데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갯벌에서 주걱모양의 부리를 이리저리 저으며 요행히 먹이가 ‘걸려들기’만 바랄뿐 인 듯한 저어새의 먹이 채취 모습은 바보같고, 그래서 가슴이 뭉클하다.

이 순하고 아름다운 동물이 불러일으키는 알 수 없는 뭉클함은, 이미 60억을 넘어 지구상 최고수준의 개체군을 자랑하는 우리 인간이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가지는 단순한 연민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잠시 함께 빌어 살 뿐인 이 지구에서 다른 동식물들 역시 그들 나름의 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당한 무심함과 우리자신에게와 똑같은 존중을 기울여야 마땅하나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일까?

조선 세종 때의 강희안은 식물은 ‘지각도 없고 운동도 하지 않지만 배양하는 이치와 거두어 들이는 법을 알고’ 천성을 어기지 않으면 그 참모습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였다. 1400 년경에 씌어진 ‘양화소록’은 그 당시 사람들이 완상해 온 꽃과 나무를 심고 옮기는 법, 습도와 온도를 맞추는 법 등 식물을 가꾸고 거두어들이는 법을 알 수 있는 요즘식으로 말하면 원예교본 같은 것이다. 수십 종에 달하는 꽃과 나무에 대한 옛사람들의 기록을 옮겨놓은 것도 다채롭고 읽을 만하지만, 무엇보다 강희안이라는 갓쓴 선비가 지각도 없고 운동도 하지 않는(마이클 폴란-욕망의 식물학 저자-이 들으면 항의할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오늘날만큼 식물생태학이니 유전학이니 하는 학문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도 용서하리라 )식물을 마치 벗을 대하듯 그 천성을 살피며 인간의 품격을 가다듬을 만한 장점을 찾아내려는 겸손함에 이 책의 미덕이 있다. 물론 일본 철쭉의 그 ‘곱고 찬란한 붉은 비단’ 같은 자태를 감상할 수 있는 복을 누리게 된 것을 세종의 덕화(德化)가 동해 먼데까지 미친 공으로 돌린 것에서는 가히 충신다운 면모도 엿볼 수 있겠다.

책 말미에서는 꽃을 빨리 피게 하는 법, 꽃을 분에 심는 법, 꽃을 취하는 법, 꽃을 기르는 법 등 양화(養花)에 대한 실제적 내용뿐 아니라 화분 놓는 법에 대해서까지 섬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저자의 자상한 품성도 보인다. 특히 오징어 뼈로 꽃나무를 찌르면 바로 죽는다거나 효자(孝子)나 잉부(孕婦)가 꽃나무를 손으로 꺾으면 몇 년이 지나도록 꽃이 피지 않는다는 설명은 재미있기까지 한다. 시험삼아 한 번 해 볼까 하는 장난끼가 동한다.

부록인 "화암수록"은 강희안 자신이 직접 꽃과 나무의 품재에 대해서 9가지 등급으로 나누고 품평을 논한 것이다. 소나무니 대나무니 작약이니 동백, 장미, 백일홍 등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보아왔던 꽃과 나무에 대한 그 당시 사람들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겠다.

아쉬운 것은 이제는 이 책에 소개된 꽃 중 몇몇은 이제 여념집 뜨락에서 완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핀 치자나 사계화, 석창포 등을 만나기가 도심에서는 쉽지 않다.

멸종 위기로까지 내몰린 저어새나 이미 보기 어렵게 되어버린 꽃과 나무들은 자연을 천성대로 두지 않고 인간 기호의 변덕스러움에 맞춘다거나 오로지 인간만이 이땅의 주인인양 행세하는 오만함의 소치인 것 같아 자못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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