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미래 - 인간은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가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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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후 비약적 발전 속도에 가속이 붙은 우리 인류는 신의 영역이었던 많은 것들을 알아냈다. 우리 인류가 어디에서 어떻게 진화되어 왔으며, 생명 탄생 이전의 지구와 우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되었고, 우수의 화학적 속성을 더이상 쪼개지지 않는 작은 단위의 원자와 양자 수준까지 낱낱이 분해하고 모든 물체의 성분을 알아냈으며, 지구촌 곳곳 구석까지 통신망을 갖추고 서로 소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 우리가 우리를 알아낸 우리의 마음, 그 근원적 물리적 형태인 뇌를 얼마만큼이나 이해하고 있을까.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던 걸 생각한다면, 현재 우리가 뇌의 대략 어느 부위에서 대략적으로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낸 지금의 앎은 과거에 비해 어마어마하지만, 우리가 현재까지 그 눈부신 과학 기술을 통해 알아낸 것은 사실은 보잘것이 없다. 늙고 죽는 것의 비애를 증폭지키는 알츠하이머도, 치매도, 파킨슨병도 현실적으로는 과거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게 없고, 단순한 건망증이나, 기억력감퇴조차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의료 과학이 없다. 아직 우리는 작은 인간의 뇌가 만드는 사람과 사람의 차이, 사람과 동물의 차이, 그리고 한 인간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마음에 대해 그다지 명징하게 설명가능한 이해의 상태에 있지 않다.

 

지금 우리가 뇌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또 앞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과의 차이, 그것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다.  미래의 과학기술이 인간의 뇌를 얼만큼 이해하느냐에 따리 인류의 미래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어떤 과학 기술이 인간 뇌의 어느 곳을 얼만큼 접근해서, 무엇까지 가능하게 할 것인가. 우리가 SF  영화에서 보거나 혹은 상상가능한 미래의 어디까지 가능하고, 어디부터 불가능하고, 또 그것은 어떤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답할 수 있을까. 즉 우리의 마음은 미래에 어디로 갈까. 상상은 무한하지만, 답은 어렵다.  답을 기대조차 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 책은 그 어려운 물음에 하나씩 하나씩 접근하여 차근차근 답을 한다. 그러면 그 답은? 답을 알고 싶을까? 상상은 판타지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과학 기술과 관련된 답,  일반 사람들에게는 쉽게 다가가지 않을 어려운 전문 용어로 가득차 있을 것 같은 그런 답을 알고 싶지 않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려운 전문용어와 거기에 뒤따르는 학술적 철학적 윤리적 논쟁이 골치아플 것이다.

 

이 책의 진가는 앞의 질문에 대해 답을 하되, 일반인들이 충분히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쉽고 재미있게 쓰여졌다는 데 있다. 물론 앞서 질문한 철학적 윤리적 논쟁에 대해서도 탁상공론을 끌어들이지 않고, 단호하게 자신의 가치관과 미래관을 반영한 심플한 결론을 내리는 모습에 가끔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은 두껍다. 판형도 크다. 게다가 마음의 현재도 아니고 마음의 미래를 여는 뇌과학이라니, 책을 펼치기조차 용기내야 할 만큼 어려울 거라는 선입관을 갖게 하는 주제에 대해 책을 쓴 저자 미치오 카쿠는 뇌뇌과학자가 아니라 이론물리학자이다. 이론 물리학자인 그가 뇌과학에 관한 방대한 책을 쓴 이유는 무얼까. 자신의 전공과 약간 동떨어진 분야의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댓가는 책 속의 모든 지식이 일반인이 이해가능한 언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어휘 뿐 아니라 설명 자체가 전문적인 설명을 배재하면서도 핵심적인 개념을 쉽게  설명 한다. 그의 책쓰기 방식은 관련 학술적 서적 짜집기가 아니라, 기자처럼럼 몸으로 사람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본인 자신도 세계적인 석학인 그는,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대략 알 수 있는 저명한 세계적 뇌과학자들을 직접 만나고 다녔다. 어마어마한 양의 엄청난 대가를 만나 인터뷰하고, 이해하고, 분석하고, 통찰한 내용들이 방대한 양의 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가장 먼저, 뇌과학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는 방식이 좋았다. 여러 종류의 일반인 대상의 뇌과학책 및 행동과학, 심리학 책들에서 두서없이 주워들은 기본적인 뇌구조 및 뇌 탐구 도구 및 기술과 뇌스캔 장비와 그 원리들을 책의 초반부에 집중 설명하는데, 이 내용은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본문 곳곳에서 쓰이므로 계속 책을 이해하며 읽어나가기에 매우 유용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그동안 궁금했던 뇌스캔 장비의 현주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알게 해준다.

 

두번째로, 온 마음을 빼앗는 온갖 판타지적 요소들의 실현가능성과 과학적 원리들, 그리그 현주소들이다.  우리가  SF 판타지를 통해 판타지로만 여기던 것들이 실제로 첨단 뇌과학의 현장에서 현재 연구되고 있다. 아바타와 서로게이트, 텔레파시, 기억 다운로드/업로드, 염력, 기억지우기, 지능높이기, 생각과 육체의 분리, 꿈을 찍어내는 사진과 동영상, 감정이 있는 로봇, 인간의 세포 깊숙히 들어가 유전병을 치료하는 나노 로봇, 로봇의 몸과 인간의 의식이 합쳐지는 것 등등에서 보다 더 황당하게 느낄 수 없는, 유체이탈과 임사체험, 순수한 에너지의 형태로 존재하게 될 의식, 외계생명체까지 그 범위는 광범위하다.

 

미치오 카쿠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의 과학은 분명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될 것이며, 부차적으로 발생되는 윤리적 문제는 어떻게 되든 해결될 것이다. 뇌과학이 기억을 완전히 정복하게 된다면, 매트릭스의 네오가 그랬던 것처럼 신체적 경험에 기반한 기억 같은 것 마저도  뇌를 통해 다운로드받아 거래될 수가 있다는 거다. 그렇게 되면, 기억을 훔쳐내거나, 기억을 바꿔치기하는 등과 같은 기억조작과 관련된 범죄가 생길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 범죄처럼, 모든 새로운 과학 기술은 새로운 범죄를 탄생시키니 말이다. 첨단 과학을 겨냥한 범죄는 더욱 치명적이겠지만 말이다.

 

그러한 마음 과학의 미래에 있어서 한계가 되는 것은 양자의 세계이다. 현재 무어의 법칙으로 무섭게 발전하는 실리콘 세계는 원자 수준 이상으로 더 작아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람의 뇌에 들어 있는 인간의 마음을 시냅스 연결 그대로 컴퓨터로 재현하려면 큰 도시 만한 크기의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만큼 우리 머리 속의 작은 뇌가 하는 영역은 바다만큼 어마어마하고, 우리가 알아낸 것은 그 중 아주 매우 일부분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이렇게 많은 것을 정복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존재에 대한 어떤 경외감 같은 것을  준다.

 

매력적인 책이었다. 여러 종류의 뇌과학 책을 전전했지만, 이토록 쉽게 많은 것을 정리해 주는 책을 만나기는 어려웠었다. 수많은 영역을 그것도 미래 기술에 초점을 맞췄기에 어느 한 영역을 깊이있게 탐구하는 책은 아니며, 전문가가 보았을 때의 헛점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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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꿈꾸게 하는 클래식 - 달콤 쌉싸름한 내 삶의 모든 순간
홍승찬 지음 / 북클라우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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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우리를 꿈꾸게 한다. 몹시도 지치고 힘들 때, 귓가에 들려오는 한줄기 음악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일상에 매몰되어 잊었던 사람을 생각나게 하고,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만져주기도 한다. 그래서 음악은 말하지 않고도 감정을 전하는 국경 없는 언어이기도 하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2년반을 끌며 30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역사상 최악의 전투로 꼽히는 2차대전 의 레닌그라드 전투 중 지옥보다 처참했던 레닌그라드에서 열린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연주회는 작곡에서 연주회까지의 과정이 기적과도 같았다. 약골로, 참전하지 못한 쇼스타코비치는 독일군에게 포위된 레닌그라드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교향곡의 작곡을 끝냈고, 소비에트 당국은 이 곡으로 전투 의지를 고무시키고 싶어했다. 이미 볼쇼이에서의 초연으로 인해 널리 알려지고 미국에서조차 앞다투어 초연을 하고자 경쟁했던 이 곡은 정작 레닌그라드에서는, 독일군의 포위를 뚫고 악보를 전달하는 것부터 역경이었다. 목숨을 걸고 악보를 전달한 공군 중위와 지휘를 맡은 지휘자, 시체실과 군부대에서 찾아낸 악단의 생존자와 일반 연주자들이 힘을 합쳐 어렵게 연습해서 기적같은 연주가 이루어지던 날,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가고 배고픔과 추위로 죽음과 가까이 있던 시민들 뿐만 아니라 전장에 있어야 할 군인들까지 다치고 병든 몸을 이끌고 레닌그라드 필하모니로 모여들었다. 그 날 울려퍼진 이 교향곡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던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선사하여, 처참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은채 버틸 수 있게 했다(p 226~233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 요약)


음악의 힘을 보여주는 하나의 일화에 불과하다. 우리는 늘 음악과 더불어 산다. 특히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원하는 어떤 종류의 음악이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거의 무제한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 문화 평등의 시대에 도달했다. 다른 곳에 쓰는 돈과 비교해봤을 때 거의 공짜로 들을 수 있는 음악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음악과 그 음악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라디오 방송이 주로 음악방송이었고, 디제이들이 음악을 틀어주며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만, 요즘처럼 음악을 취향껏 골라 귀에 꽂고 다니는 시대에는 라디오도, 음악보다는 토크쇼 위주로 진행되는 것 같다. 이 책 <나를 꿈꾸게 하는 클래식>은 라디오에서 음악과 함께 들으면 더 좋을법한 내용들,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클래식과 팝에 한정시키지 않고 또 음악가나 음악 자체에 한정시키지 않고 여러 종류의 이야기들을 자근자근 들려준다. 마치 클래식 라디오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 같은,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감정적이지도 않은 문체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3~4 페이지의 짧은 글들의 모음인데, 전적으로 음악 자체에 대한 평론이 아니고, 음악을 사랑하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음악을 연주하는 장소를 비롯해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담는다. 


저자 홍승찬은 음악평론가면서 공연예술감독 및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장르와 관계없이 한국의 음악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클래식 음악과, 팝음악, 오페러와 뮤지컬, 공연예술 뿐만 아니라, 음악가의 사랑과 삶을 조명하기도 하고, 중국의 서태후나 우리나라의 김종필 전총재와 같이 역사적으로 공연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삶의 일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업적과 걸었던 길을 짚어보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바이올린 콰르네라와 스트라디바디 그리고 가장비싼 피아노 스타인웨이, 펜더가 신중현에게 헌정한 기타 등에 관련된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하늘을 이고 있는 원조 호수 위 오페라 무대인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 세계 최고의 시설을 갖춘 뉴욕의 카네기홀의 역사와 그 역사를 기록한 인물 등 세계 곳곳의 유명한 연주회장에 관한 일화들,  주목할만한 음악 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의 음악 교육 이야기 등 음악을 잘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상식적 이야기들을 많이 늘어놓았다. 


예술가들의 사랑, 특히 음악가들의 사랑은 그들이 작곡한, 혹은 연주한 음악 내에 고스란히 사랑을 표현하고 그대로 복사되어 수십 수백년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에, 그들의 사랑, 그 사랑 속에서 태어난 음악은 언제나 흥미를 끈다. <지그리트의 목가>는 당시 둘다 유부녀와 유부남이었던 프란츠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바그너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곡으로, 집으로 부른 작은 오케스트라가 계단 층계에서 연주하여 아직 자고 있는 부인을 오케스트라 선율로 깨워 선사한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 이 밖에도 30년간 한번도 직접 만나지느않고 편지로만 주고 받은 차이코프스키와 폰메크의 부인의 사랑, 우리에게도 익히 잘 알려진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사랑이 탄생시킨 영감 역시 역시 시대가 이어준 감동에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꼭지 읽고 그 속에 있는 음악을 찾아 듣고 하면서 읽었는데, 아무리 쉽게 음원을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긴 하지만, 가장 손쉽게 해당 음악을 액세스할 수 있는 수단은 유튜브라 유튜므에 의존하면서 들었는데, 정보가 부족하기도 하고, 찾을 수 없는 것과 딱히 어느 부분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이런 종류의 책이 CD 혹은 다른 종류의 (공개) 음원과 함께 제공되었다면 더욱 효과적으로 음악과 음악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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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2015-04-28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은 쓰러져가는 가슴에 다시 빛을 가져다 주는 힘이 있어요

CREBBP 2015-04-28 22:0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만국공통언어이죠
 
HRC 힐러리 로댐 클린턴
조너선 앨런.에이미 판즈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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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총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이미 2008년 이후 국무부 시절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힐러리 클린턴은 어떤 사람일까. 그녀가 등에 엎고 있는 남편 빌 클린턴은 미국의 마지막 흑자 기록을 가진, 재임기간 내내 사상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게 한 경제 대통령으로, 아직까지도 막강한 지지기반과 영향력, 인맥을 가진 미국 정치계의 베테랑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 빌 클린턴은? 실제로 그녀는 세상에 까발려진 남편의 간통, 2008년 민주당 예비선거 때의 모진 고투 같은 엄청난 시련을 겪고 다시 일어나서 싸우는 강인한 기질 때문에 유명인사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능력있는 사람이, 남편의 후광을 입었다는 비난에도 시달린다면 어떨까. 실제로 어떤 능력을 가졌기에 그토록 오랫동안 지지를 받는 걸까?

 

이 책은 힐러리 클린턴이 2008년 예비 경선에서 탈락한 이후부터 4년의 국무부 재임 기간 중의 그녀의 행적을 담은 책이다. 많은 정치적 이야기가 실려 있고, 수많은 정치적 인물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그들의 말, 행동, 정치적 결단, 대중의 호응, 국무부의 업무, 사생활들이 수많은 사건 사고와 엮여 힐러리의 이야기들 속에 실려 있다. 책을 통해 힐러리가 성장하고 노력하고, 성취하고, 때로 실패하고, 또 언론을 대하고, 직원들을 대하고, 사람들과 관계맺고, 오바마의 정책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추진해나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미국 최고 권력자들이 만들어내는 드라마틱한 권력 투쟁의 현장을 매우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구경할 수 있기도 하다. 권력 기관들과 그 직원들이 하는 일, 미 국무부를 비롯한 핵심 기관의 장들이 어떤 정치적 관계 속에서 임명되고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 동안 인구의 절반인 여성 중에서 한 번도 대통령을 내지 못했던 사실은 미국의 보수성을 전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2008년 예비 경선에서 "최초의 여성대통령 vs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대결구도는 흑인 대통령의 대세로, 힐러리는 쓰라린 참패를 맞았다. 그러나 경선 패배 후, 여성권리 운동과 인권 운동을 명백히 결합시킴으로써 자신의 대의와 오바마의 대의에 연결시킨 결과, ‘최초의 여성 대통령 선출에 대한 희망이 오바마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국민에게도 주었고, 결과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정치 인생도 큰 전환점을 맞는다. 

 

정치적으로, 여성이라는 꼬리표는 떼는 것이 유리한가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유리한가. 한사람의 여성으로서, 여성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눈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동은 역겨워 보인다. 힐러리도 예비선거에서는 캠프에서 여성성보다는 강인함을 부각시키고 싶어했지만, 캠프는 뉴햄프 셔주에서 눈물을 보인 덕분에 판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했고, 이후 2016 대선을 위한 행보에서도 그녀는 강인하면서도 진취적이면서도 섬세한 여성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정치 인생이 맞닥뜨린 것은 여성이라는 사실 뿐만 아니다. 미국 최후의 유례없는 호황과 흑자 경제를 이룬 빌 클린턴의 그늘이라는 피할 수 없는 꼬리표가 상원의원 시절부터 늘 따라다녔다. 수년동안 아칸소 주의 퍼스트레이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이후, 뉴욕주 상원위원의 역할을 맡으면서 그녀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정치 세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음에도, 힐러리는 빌클린턴과의 관계로 정의되곤 했다. 빌 클린턴의 임기 말부터 그녀는 선거 정치의 최전선에서 두 번의 상원 경선에서 승리하고 대선에서 패했다. 그녀는 전직대통령의 영향력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기를 원했다. 이 책은 그녀가 대권 도전에 실패한 오욕과 참패의 눈물을 거두고, 4년간의 오바마 행정부 하에서 국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총 112개국을 돌며 만들어낸 그녀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대선 후보를 가리는 예비 선거전에서 서로에게 주고 받는 상처가 큰 모양이다. 정치적으로 한 편이었던 사람들이 대선 지원을 두고 양쪽으로 갈라져 줄을 서고 공격하고, 때로 사적으로 다져진 관계마저도 파괴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을 것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고, 그 적에 대한 반감이 정치라는 커다란 판에서 쉽게 희석되기 마련이지만, 빌 클린턴은 평생 구축해놓은 인맥과 정치 자산을 이용하여 살생부에 올려놓은 그들을 혹독하게 되갚는다. 

 

정치적이라는 말을 협잡이란 의미로 보지 않는다면, 힐러리 클린턴은 단연코, 정치적인 사람이다. 그녀의 성인 인생은 32살이라는 미국 최연소 나이로 주지사가 되었던 그녀의 남편과 고스란히 함께 한다. 빌 클린턴이 힐러리가 2008 오바마와 치른 예비경선에서 패배했을 당시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살생부의 작성이었다. 빌 클린턴은 이후, 유례없는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차근차근 살생부의 목록에 기록된 배신자들을 정치권에서 제거해나간다. 주로 선거전에서 직접 반대편 후보를 강력 지지하는 방법으로 효과를 본다. 어느 주를 가더라도 빌 클린턴의 지지도와 영향력이 항상 높았기 때문에, 클린턴가를 배신하는 일이 어떤 일인가에 대해 민주당에 적을 둔 사람들은 큰 교훈을 얻었다.

 

이 책을 통해 드러나는 힐러리랜드의 가장 부정적인 특징은 의리, 자기 사람 챙기기에 있다. 그녀는 삼고초려 끝에 결국국무부의 모든 인사권을 조건으로, 국무부 장관직을 수용했고, 끝까지 캠프를 지켰던 충성파들을 주요 요직에 앉힌다. 그 결과 대선 후보를 지지한 오바마의 외교 정책 고문들은 밀려났다. 이 사람들은 억울할 수밖에. 기껏 일해서 대통령 만들어 놓았는데, 떨어진 쪽에서 주도권을 잡았으니 말이다. 국무부 인선을 힐러리에게 맡긴 결과는 두 진영 사이를 처음부터 삐끄덕거리게 만들었지만, 오바마는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힐러리를 영입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힐러리는 민주당원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뿐 아니라 공화당원들에게도 존경받고 있었다. 오바마가 힐러리 영입에 공을 들인 이유는 그녀의 스타성을 이용할 목적 만이 아니다. 1. 경쟁자들까지 껴안겠다고 하는 고매한 선거 유세의 약속을 지켰고, 2. 힐러리가 상원에서 오바마의 정책에 이의를 제기살 수 있는 여지를 없앴고, 3. 무엇보다도그녀를 국무부에 둠으로써 4년 후 2012년의 예비 선거에 출마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힐러리는 무엇보다도 자체적으로 스타였다. 명성도 엄청났지만, 연방 정부를 속속들이 잘 알았다. 

 

치열한 경쟁 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반목과 불신의 씨앗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 협력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초반, 힐러리는 국무부 후보로 지명된 후에도 그들과 자신들을 우리와 그들로 갈랐으며 양측은 서로를 이해하지도, 좋아하지도 믿지도 않았다. 국무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섬이 되었으며 힐러리의 사람들만 있는 힐러리의 세상이었지만, 뒤에서 오바마가 받쳐주었다. 이러한 자기 사람 챙기기는 클린턴가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면서 가장 비판을 받았지만, 그들(빌 포함)은 끝끝내 충성 참모들의 편에 서는 의협심을 버리지 않는다. 어쨌거나 힐러리가 오바마의 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둘의 우정이 키워지다가, 나중에 임기 말기에는 너무나도 감동적인 장면들을 연출하는 동안에도, 힐러리의 참모들과 오바마의 참모들은 끝까지 서로를 못잡아 먹어 안달을 하며 앙숙으로 지내는 모습이 인간들 세상은 어딜가나 똑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녀의 정치 세계를 이해하는 첫번째 열쇠는 통합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그녀 스스로가 가장 강점으로 강조하는 특수한 능력으로, 정부, 민간 부문, 학계의 이해관계자들을 한데 불러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그녀만의 특기이기도 하다. 상원의원이라는 지위는 사회의 여러 영역들에 있는 기관들을 서로 연결하여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부의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드라마틱한 결단들은 때로 감동을 이끌어낸다. 미 국무부는 외교 정책을 주관하는 기관으로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고 있는 미국의 강력한 세계적 위상을 생각할 때, 그 어떤 부서 못지 않게 중요한 기관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과 테러 용의자의 처우 등으로 인해 부시가 망쳐놓은 미국의 대외 이미지는 오바마가 집권할 당시 사상 최저였다. 국무부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고 직원들의 사기 역시 형편 없었고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의 불화가 심한 상태에서 힐러리는 미 행정부 내에서 국무부 영향력을 재건해야 했고, 대외 평판을 회복해야 했다. 힐러리는 처음 인사 청문회에서 밝혔던 철학과 안건을 임기 내내 고수함으로써 일관성있는 근면함을 보여준다. “외교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원칙과 실용을 결합”하여 세계 위험 지역들에서 외교를 군사력과 개발원조와 통합시킴으로써 삶을 개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킴으로써, 아웅산 수 치의 가택 연금을 풀고 미얀마와 대외 협력관계를 맺었고, 이집트와 리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의 민주화 운동을 돕고 민간인 학살을 방지하였다. 많아서 다 못적는다. 

 

대통령의 사생활이 온천하의 가십거리가 되었을 때 배반감과 모멸감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었을까? 어쨌거나, 빌과 힐러리는 환상적인 한 팀으로 보인다. 손발이 착착 맞아 떨어지는 빌 클린턴의 2016년 대권을 위한 발판 마련은 이미 힐러리가 국무부를 떠난 얼마 지나지 않아 대권을 위한 힐러리 캠프와 다름 없는 조직으로 사람들을 몰리게 했다. 그가 국무부에서 보여준 지치지 않는 열정은 여성으로서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2016년에 승리를 점치게 하는 많은 요소들을 발견했지만, 빌 클린턴과는 달리 근면함과 성실함과 배려, 통합, 집중, 강인함과 같은 이미지는 읽는 내내 그녀의 건강을 염려하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혈전과 장염 등으로 여러번 입원했고, 그것이 약점이 되지 않을가 우려가 되기도 하다. 


우리도 여성 대통령을 가졌다. 역사 이래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수식이 자랑스러웠다면 좋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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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5-04-24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 읽으면 미래가 좀 보일까요? 며칠전에 힐러리가 또 부각되는거보니 미국 대선도 얼마안남았구나 했었는데. 미국을 잘 몰라서요. 메르켈과 힐러리는 늘 궁금해요 :)

CREBBP 2015-04-24 21:17   좋아요 0 | URL
미래는 잘 안보이더라도 미국의 정치판과 힐러리의 측의 가치관들이 대충 보이는 것 같아요. 중도파에게도 안전한 선택일 것 같은데 두고 봐야죠. 어떤 변수들이 있을지..

아이리시스 2015-04-2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로서 보면 정치판에서 버티는게 얼마나 힘들지 아니까 마냥 멋진데, 뭘하는지는 잘 들여다보지 않아서, 올해 책 각각 한 권씩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팟캐스트 정치카페 좋아하는데, 빨책보다요, 유시민이 독일정치 얘기하면 유토피아처럼 느껴질때가 많아요 ㅎㅎ

CREBBP 2015-04-24 21:44   좋아요 0 | URL
힐러리가 여성적인 장점을 통해 구축한 그녀만의 세계가 있어요. 강인함 뒤에 숨겨진 배려와 섬세함 통합적인 리더십과 내사람 챙기기. 참모들의 기념일 같은 것까지 일일히 챙기고 충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능력이 있더군요. 특히 정책수행에 있어서 보여준 유연성은 수컷들의 대결구도적인 마인드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게 많더라구요. 부시가 망쳐놓은 대외 이미지를 많이 회복시켰던거죠. 당장 성취로 인정되지는 않더라도 단단히 밑거름이 되는 대외 정책을 차근차근 밀고 나간것도 그렇고..

아이리시스 2015-04-24 22:04   좋아요 0 | URL
아, 이 댓글 좋다, 블로그의 챙기고 챙김받기에 비추어도 어느정도 맞는 말이네요. 내게 관심 주는 사람에게 충성하는 건 당연하죠. 빠른 피드백과 세심한 챙기기, 유연성 같은 것들이 인맥의 끈이죠. 쉬운거 같으면서도 지위나 인기가 올라갈수록 간과하는데, 성공한 장점들을 잘 이용하면 여성들의 직장 리더십 혹은 관계맺기에도 도움이 되겠네요. 그래서 여성 리더십이 자기계발서쪽으로 자꾸 나오는건지ㅎㅎ제대로 통하긴 하는지 의문이 들때도 있지만요. 최근 쉬는날 아주 복잡한 마트나 백화점을 자주 갔는데 지하 4층까지 주차장이라도 이중삼중 주차가 기본인거예요. 여자들은 하나같이 공간지각능력이 부족해 차 찾느라 헤매는 모습을 많이 보고 남자는 운전에서 여자에게 조금의 배려도 없죠. 참 다르다 싶은 장면을 많이 봤습니다.

CREBBP 2015-04-24 22:09   좋아요 0 | URL
자기계발서에서 놓치는 게 많죠. 힐러리의 경우는 여성적이지 않아 보이는 강인함 끈기 이런걸 이미지로 밀고 나가면서 여성적인 건 그냥 본능적으로 나오는 거 같아요. 성격이죠. 이런 저런 걸 잘 조합해서 자기만의 특색으로 밀고 나가는데 자기개발거는 획일적으로 이렇게 해야 이긴다는 식으로 한가지 일관된 주장을 해야만 하니 먹힐리가..

아이리시스 2015-04-24 22:12   좋아요 0 | URL
(끄덕끄덕) 요즘 계속 생각하던 분야라.. 얘기하니까 좋네요^^

CREBBP 2015-04-24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힐러리 같은 사람이 대선에 성공해야 진정으로 여성의 진가가 연구될 듯 해요. 달리 보면 감정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취했으니까요. 우리의 경우 너무 한심하죠.
수컷 본능의 한계는 남자들 세계에서도 스스로를 고독하게 하는 치명적인 한계로 인해 언젠가 완전 동등해지는 날엔 여성 지도자가 더 잘 먹힐거고 더 세계를 잘 통합할 시거라 여겨져요. 능력있는 여성 지도자가 많아지면 전쟁도 줄지 않을까 싶구요. 그 영국 총리했던 여자랑 박씨 같은 사람 말고..

아이리시스 2015-04-25 03:12   좋아요 0 | URL
아 알람이 안와서 몰랐; 대처. 아 대처도 있었죠? 국가별 상황비교하고 장단점별 업적 비교같은거 하면 재미나겠어요. 우리의 대통령님은 여성의 한계가 아니라 그냥 인간의 한계를 증명.. 전 뭐 더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ㅠㅠ 아 잠이 안와요. 어제 늦게 잤고 오늘 되게 일찍 일어났는데, 미쳤어요ㅠ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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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시대를 살았던 청춘의 고뇌가 거대한 서사 속에 사랑을 이야기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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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인류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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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채택한 소형 인류라는 관점의 책, 흥미진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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