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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C 힐러리 로댐 클린턴
조너선 앨런.에이미 판즈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2016 총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이미 2008년 이후 국무부 시절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힐러리 클린턴은 어떤 사람일까. 그녀가 등에 엎고 있는 남편 빌 클린턴은 미국의 마지막 흑자 기록을 가진, 재임기간 내내 사상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게 한 경제 대통령으로, 아직까지도 막강한 지지기반과 영향력, 인맥을 가진 미국 정치계의 베테랑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 빌 클린턴은? 실제로 그녀는 세상에 까발려진 남편의 간통, 2008년 민주당 예비선거 때의 모진 고투 같은 엄청난 시련을 겪고 다시 일어나서 싸우는 강인한 기질 때문에 유명인사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능력있는 사람이, 남편의 후광을 입었다는 비난에도 시달린다면 어떨까. 실제로 어떤 능력을 가졌기에 그토록 오랫동안 지지를 받는 걸까?
이 책은 힐러리 클린턴이 2008년 예비 경선에서 탈락한 이후부터 4년의 국무부 재임 기간 중의 그녀의 행적을 담은 책이다. 많은 정치적 이야기가 실려 있고, 수많은 정치적 인물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그들의 말, 행동, 정치적 결단, 대중의 호응, 국무부의 업무, 사생활들이 수많은 사건 사고와 엮여 힐러리의 이야기들 속에 실려 있다. 책을 통해 힐러리가 성장하고 노력하고, 성취하고, 때로 실패하고, 또 언론을 대하고, 직원들을 대하고, 사람들과 관계맺고, 오바마의 정책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추진해나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미국 최고 권력자들이 만들어내는 드라마틱한 권력 투쟁의 현장을 매우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구경할 수 있기도 하다. 권력 기관들과 그 직원들이 하는 일, 미 국무부를 비롯한 핵심 기관의 장들이 어떤 정치적 관계 속에서 임명되고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 동안 인구의 절반인 여성 중에서 한 번도 대통령을 내지 못했던 사실은 미국의 보수성을 전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2008년 예비 경선에서 "최초의 여성대통령 vs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대결구도는 흑인 대통령의 대세로, 힐러리는 쓰라린 참패를 맞았다. 그러나 경선 패배 후, 여성권리 운동과 인권 운동을 명백히 결합시킴으로써 자신의 대의와 오바마의 대의에 연결시킨 결과, ‘최초의 여성 대통령 선출에 대한 희망이 오바마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국민에게도 주었고, 결과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정치 인생도 큰 전환점을 맞는다.
정치적으로, 여성이라는 꼬리표는 떼는 것이 유리한가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유리한가. 한사람의 여성으로서, 여성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눈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동은 역겨워 보인다. 힐러리도 예비선거에서는 캠프에서 여성성보다는 강인함을 부각시키고 싶어했지만, 캠프는 뉴햄프 셔주에서 눈물을 보인 덕분에 판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했고, 이후 2016 대선을 위한 행보에서도 그녀는 강인하면서도 진취적이면서도 섬세한 여성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정치 인생이 맞닥뜨린 것은 여성이라는 사실 뿐만 아니다. 미국 최후의 유례없는 호황과 흑자 경제를 이룬 빌 클린턴의 그늘이라는 피할 수 없는 꼬리표가 상원의원 시절부터 늘 따라다녔다. 수년동안 아칸소 주의 퍼스트레이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이후, 뉴욕주 상원위원의 역할을 맡으면서 그녀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정치 세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음에도, 힐러리는 빌클린턴과의 관계로 정의되곤 했다. 빌 클린턴의 임기 말부터 그녀는 선거 정치의 최전선에서 두 번의 상원 경선에서 승리하고 대선에서 패했다. 그녀는 전직대통령의 영향력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기를 원했다. 이 책은 그녀가 대권 도전에 실패한 오욕과 참패의 눈물을 거두고, 4년간의 오바마 행정부 하에서 국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총 112개국을 돌며 만들어낸 그녀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대선 후보를 가리는 예비 선거전에서 서로에게 주고 받는 상처가 큰 모양이다. 정치적으로 한 편이었던 사람들이 대선 지원을 두고 양쪽으로 갈라져 줄을 서고 공격하고, 때로 사적으로 다져진 관계마저도 파괴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을 것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고, 그 적에 대한 반감이 정치라는 커다란 판에서 쉽게 희석되기 마련이지만, 빌 클린턴은 평생 구축해놓은 인맥과 정치 자산을 이용하여 살생부에 올려놓은 그들을 혹독하게 되갚는다.
정치적이라는 말을 협잡이란 의미로 보지 않는다면, 힐러리 클린턴은 단연코, 정치적인 사람이다. 그녀의 성인 인생은 32살이라는 미국 최연소 나이로 주지사가 되었던 그녀의 남편과 고스란히 함께 한다. 빌 클린턴이 힐러리가 2008 오바마와 치른 예비경선에서 패배했을 당시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살생부의 작성이었다. 빌 클린턴은 이후, 유례없는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차근차근 살생부의 목록에 기록된 배신자들을 정치권에서 제거해나간다. 주로 선거전에서 직접 반대편 후보를 강력 지지하는 방법으로 효과를 본다. 어느 주를 가더라도 빌 클린턴의 지지도와 영향력이 항상 높았기 때문에, 클린턴가를 배신하는 일이 어떤 일인가에 대해 민주당에 적을 둔 사람들은 큰 교훈을 얻었다.
이 책을 통해 드러나는 힐러리랜드의 가장 부정적인 특징은 의리, 자기 사람 챙기기에 있다. 그녀는 삼고초려 끝에 결국국무부의 모든 인사권을 조건으로, 국무부 장관직을 수용했고, 끝까지 캠프를 지켰던 충성파들을 주요 요직에 앉힌다. 그 결과 대선 후보를 지지한 오바마의 외교 정책 고문들은 밀려났다. 이 사람들은 억울할 수밖에. 기껏 일해서 대통령 만들어 놓았는데, 떨어진 쪽에서 주도권을 잡았으니 말이다. 국무부 인선을 힐러리에게 맡긴 결과는 두 진영 사이를 처음부터 삐끄덕거리게 만들었지만, 오바마는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힐러리를 영입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힐러리는 민주당원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뿐 아니라 공화당원들에게도 존경받고 있었다. 오바마가 힐러리 영입에 공을 들인 이유는 그녀의 스타성을 이용할 목적 만이 아니다. 1. 경쟁자들까지 껴안겠다고 하는 고매한 선거 유세의 약속을 지켰고, 2. 힐러리가 상원에서 오바마의 정책에 이의를 제기살 수 있는 여지를 없앴고, 3. 무엇보다도그녀를 국무부에 둠으로써 4년 후 2012년의 예비 선거에 출마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힐러리는 무엇보다도 자체적으로 스타였다. 명성도 엄청났지만, 연방 정부를 속속들이 잘 알았다.
치열한 경쟁 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반목과 불신의 씨앗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 협력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초반, 힐러리는 국무부 후보로 지명된 후에도 그들과 자신들을 우리와 그들로 갈랐으며 양측은 서로를 이해하지도, 좋아하지도 믿지도 않았다. 국무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섬이 되었으며 힐러리의 사람들만 있는 힐러리의 세상이었지만, 뒤에서 오바마가 받쳐주었다. 이러한 자기 사람 챙기기는 클린턴가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면서 가장 비판을 받았지만, 그들(빌 포함)은 끝끝내 충성 참모들의 편에 서는 의협심을 버리지 않는다. 어쨌거나 힐러리가 오바마의 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둘의 우정이 키워지다가, 나중에 임기 말기에는 너무나도 감동적인 장면들을 연출하는 동안에도, 힐러리의 참모들과 오바마의 참모들은 끝까지 서로를 못잡아 먹어 안달을 하며 앙숙으로 지내는 모습이 인간들 세상은 어딜가나 똑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녀의 정치 세계를 이해하는 첫번째 열쇠는 통합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그녀 스스로가 가장 강점으로 강조하는 특수한 능력으로, 정부, 민간 부문, 학계의 이해관계자들을 한데 불러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그녀만의 특기이기도 하다. 상원의원이라는 지위는 사회의 여러 영역들에 있는 기관들을 서로 연결하여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부의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드라마틱한 결단들은 때로 감동을 이끌어낸다. 미 국무부는 외교 정책을 주관하는 기관으로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고 있는 미국의 강력한 세계적 위상을 생각할 때, 그 어떤 부서 못지 않게 중요한 기관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과 테러 용의자의 처우 등으로 인해 부시가 망쳐놓은 미국의 대외 이미지는 오바마가 집권할 당시 사상 최저였다. 국무부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고 직원들의 사기 역시 형편 없었고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의 불화가 심한 상태에서 힐러리는 미 행정부 내에서 국무부 영향력을 재건해야 했고, 대외 평판을 회복해야 했다. 힐러리는 처음 인사 청문회에서 밝혔던 철학과 안건을 임기 내내 고수함으로써 일관성있는 근면함을 보여준다. “외교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원칙과 실용을 결합”하여 세계 위험 지역들에서 외교를 군사력과 개발원조와 통합시킴으로써 삶을 개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킴으로써, 아웅산 수 치의 가택 연금을 풀고 미얀마와 대외 협력관계를 맺었고, 이집트와 리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의 민주화 운동을 돕고 민간인 학살을 방지하였다. 많아서 다 못적는다.
대통령의 사생활이 온천하의 가십거리가 되었을 때 배반감과 모멸감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었을까? 어쨌거나, 빌과 힐러리는 환상적인 한 팀으로 보인다. 손발이 착착 맞아 떨어지는 빌 클린턴의 2016년 대권을 위한 발판 마련은 이미 힐러리가 국무부를 떠난 얼마 지나지 않아 대권을 위한 힐러리 캠프와 다름 없는 조직으로 사람들을 몰리게 했다. 그가 국무부에서 보여준 지치지 않는 열정은 여성으로서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2016년에 승리를 점치게 하는 많은 요소들을 발견했지만, 빌 클린턴과는 달리 근면함과 성실함과 배려, 통합, 집중, 강인함과 같은 이미지는 읽는 내내 그녀의 건강을 염려하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혈전과 장염 등으로 여러번 입원했고, 그것이 약점이 되지 않을가 우려가 되기도 하다.
우리도 여성 대통령을 가졌다. 역사 이래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수식이 자랑스러웠다면 좋았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