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컬렉션 - 호암에서 리움까지, 삼성가의 수집과 국보 탄생기
이종선 지음 / 김영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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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한국에서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유명세를 탄 적이 있다. 삼성가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서 100억 넘는 고가의 작품이 지급된 문서가 추문을 둘러 싸고 연일 매스콤을 보도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그림이 되었다. 재벌의 기업윤리와 도덕관과는 별개의 문제고 여기서는 책에서 말하는 국보급 문화재의 수집과 보존이라는 면만 다룬다. 그 값비싼 미술품을 비자금으로 사들였건 아니건, 삼성의 고 이병철 전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국보급 예술품을 수집하고 박물관과 미술관을 지어 개방하는 등의 예술품 수집 활동은 몇 가지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우리 민족은 엄청난 수탈을 겪지만 수천년을 전해오던 유물들 역시 탈탈 그들에게 털렸다. 도굴꾼들은 왕실의 무덤과 유적을 파헤치고 훔쳐가고, 사찰은 물론 개인 소장자에게서도 빼앗아갔다.   간송 전형필이 엄청난 재산과 유산을 유물을 사들여 보존함으로써 문화재 보존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면, 삼성가는 예술품에 대한 무지막지한 애정, 소장욕, 덕후 기질 등으로 이루어진 엄청난 수집품이 생기다보니 기업 마인드 속에서 자연스럽게 삼성문화재단과 미술관 설립으로 이어졌다. 


우선,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내 뿐 아니라 해외로 반출된 주요 예술품을 수집할 수 있었다. 고 이병철 회장은 본인 스스로가 기업 경영의 최전선에 있을 때조차 생전 매일 개인 교사를 두고 서예를 익힐만큼 한국 서화와 문화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관심이 있더라도 재벌이 관심이 있으니 수집이 용이하다.  아직 유물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규제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부터 시작했으니, 남아 있는 것들, 빼돌린 것들, 도굴된 것들 등등 그 출처가 불분명한 것들도 분명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 실린 국보급의 대단한 작품들은 일제강점기와 전란에 목숨을 걸고 때로 간장 종지 하나인 밥상을 먹으면서 지키고 보존해 오다가 삼성가의 손에 양도된 것들도 있고, 일본에 반출되었으나 한국인에게는 팔지 않는다는 조건 때문에 미국을 통해 사서 어렵게 국내 반입해온 것들도 있고, 우연히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발견된 청동기 철기 시대 유물이 엿장사에게 팔렸던 것도 있고, 업자들에게 샀지만 그 출처가 불분명한 것들도 있다.


고 이병철 생전 당시만 해도, 골동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빤했으므로, 고가의 희귀한 예술품이 어디선가 발견되거나 매물이 나오면 바로 연줄이 닿았다고 한다. 골동품계의 큰 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집앞은 새로 발견된 혹은 매물로 올라온 골동품 소개하려는 업자들로 붐볐다. 이병철은 이렇게 수집된 수많은 유물들의 관리에 대해서 말년에 가서야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삼성문화재단과 호암 미술관을 건립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호암은 이병철의 호이다. 그러나 호암 미술관은 곧 확장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고, 미술관이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도심에 짓기로 하고 지은 것이 리움 미술관이다. 리움 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 장 누엘, 렘 쿨하스의 합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처음에는 20세기 대표 건축물인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그 이름도 유명한 프랭크 개리가 선정되었으나, 부지 선정과 외환위기 등으로 철회되고 후에 세 사람의 협엽으로 현재의 리움 미술관이 지어졌다. 


미술관의 생명은 수집품의 양과 질이다.  호암 미술관과 그 소장품들은 고이병철 회장의 작품이고, 리움 미술관과 소장품들은 이건희의 작품이다.  리움 미술관은 세 개의 건축가가 지은 세 개의 별관에서 각각 고미술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까지 별도로 취급하는데 호암과 리움 이 두 미술관을 합쳐 삼성가가 지니고 있는 국내 명품 유물은 국보 37, 보물 115 로 152건이다. 이는 간송미술관 23, 호림박물곤 46건을 보유한 것과 크게 비교되는데, 이렇게 국보급 문화재를 보유할 수 잇었던 것은 물론, 고 이병철의 광적인 수집욕도 한몫햇지만, 이건희 체제에 와서도 국보 100건 수집 프로젝트와 같이 지속적으로 문화재 수집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삼성맨으로, 고 이병철 시절부터 명품 컬렉션을 주도하고, 박물관 건립과 활동을 이끌었던 인물로, 삼성맨다운 엘리트다. 고고학자, 미술사학자, 수집학자, 박물관학자 등으로 이력이 나와있는데,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해서 고고학, 미술사학, 인류학, 중국학 등을 공부했으니 고미술품 수집과 박물관 경영에 적합한 인재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많은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미술관을 만들고 기획전을 준비하고 하던 과정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삼성가의 충성심이 반영되어 보이는데, 이해할만한 수준이다. 물론, 삼성가의 검수를 거친 글이라고 밝히고 있으므로 또한 그들의 감수 없이 이런 책이 세상에 나오기는 힘들 것이므로 이해한다.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 오래된 보물들이 풍파를 견디고 숨겨왔던 이야기들이라고 한다. 도자기 한 점, 금관 한점, 삼국시대 쓰여진 글씨 한점, 이런 물건들의 현재 가치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어느 구석에서 잠자고 있다가 인간의 탐욕에 의해 세상에 던져지면서 맞서야 했던 그 시간들, 그 이야기들을 찾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그가 얘기 하고 싶은 만큼, 그 보물들이 간직하고 있던 긴 시간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기 힘들다. 대신 우리는 삼성가가 얼마나 희귀하고 귀하고 아름다운 물건들을 가지고 있는지, 내일 당장 호암미술관과 리움 미술관을 가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이 품고 있는 가치는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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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1 2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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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2 09: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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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2 0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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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2 09: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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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2 09: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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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2 09: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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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2 0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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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2 09: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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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2 1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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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리스 1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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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2편을 읽기 전에 1편의 내용을 약간 정리해둔다. 배경은 1860년대, 뉴질랜드의 금광 호키티카 마을이다.  세 개의 사건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1. 크로스비 웰스가 마을에서 떨어진 골짜기의 외딴 오두막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다. 2. 같은 날 마을의 잘나가는 창녀 안나 웨더렐이 거리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어 자살 미수로 감옥에 갇혔다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다. 3. 동일한 시간 크게 성공한 에머리 스테인스가 행방불명된다. 이런 일이 일어난느 동안 소설의 화자 무디는 갓스피드호를 타고 금을 찾아 이 마을에 들어오던 중 배는 폭풍을 만나고 흔들리는 배 안의 화물칸에서 기괴한 사건을 목격한다. 크라운 호텔에 숙소를 정한 그는 호텔 흡연실에서 위의 사건과 관련된 12명의 사람들과 조우한다. 이들은 각자 여러 이유로 웰스의 죽음, 안나의 의식불명, 스테인스의 행방불명과 직간접으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그 몇일동안 깨닫게 되고, 의문을 풀기 위해 모안 사람들이다. 


무디는 자신이 갓스피드에서 목격한 사실과, 갓스피드호의 선장 프랜시스 카버가 그들의 의문을 푸는 데 어떤 열쇠가 됨을 직감하고, 이 12명의 사람들에게서 일어난 사건들을 12명의 시점으로 중구난방으로 듣는다. 변호사 출신의 무디는 호키티카 마을에 발을 디뎠지만 크라운 호텔의 투숙을 계속 연장하며 탐정처럼 12명의 흡연실 클럽 사람들 주위에서 사건의 전말을 정리하며 의문을 푸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리고 그는 우선 크라운 호텔에 모인 이 12명 말고 사건의 핵심을 담당하는 중요한 몇 사람이 빠진 것을 알게 된다. 그 첫번째가 로더백으로, 주지사 선거 운동차 내륙 쪽에서 골짜기를 넘어오던 중 웰스의 오두막에 들러 그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다. 로더백 일행은 웰스의 죽음 뿐만 아니라 거리에 쓰러져 있는 창녀 안나까지 목격한다. 창녀 안나와 죽은 웰스와 사라진 스테인스는 모두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는데, 읽어나가다 보면 그 핵심에는 엄청난 양의 금이다. 


크라운 호텔에 모인 12명의 사람들이 웰스의 죽음에 연루된 까닭은, 혼자 사는 그가 아편에 중독되어 죽었고, 로더백이 선거 운동차 내륙을 통해 지나던 길에 들른 그의 집에서는 엄청난 양의 제련된 금이 발견된 것과 관련이 있다. 계속 깊은 곳 오두막에서 홀로 살아가는 웰스가 금괴와 토지 등의 많은 자산을 남기고 죽자, 즉시 국고로 환수된 이 재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은행원과, 중개상, 호텔경영인, 교도소장 등 여러 사람이 수수료와 토지 매입 등을 둘러싸고 이익과 혜택을 나누어 가졌는데, 2주가 지나기도 전에 법적인 배우자가 나타나서 합법적인 상속인임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이들은 곧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될 터였다. 한편, 감옥에서 깨어난 창녀 안나는 법원 서기 개스코인이 벌금을 회수하기 위해 감옥에 나타나자, 자신의 드레스 솔기에 엄청나게 많은 금이 있음을 보여주며, 자신을 돕기를 원한다. 


안나는 자신이 입은 드레스에 솔기에 숨겨진 금의 출처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한다. 고로 독자들은 1편이 끝날때까지 그녀가 자신이 입고 있는 드레스의 금에 대해 무지하다고 알고 있다). 개스코인은 자신의 돈으로 그녀의 보석금을 물어주고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자신의 아내가 입던 검은 색 드레스를 내어주고, 금을 모두 뜯어낸 후, 자루에 담아 자신의 침대 밑에 보관한다. 개스코인의 죽은 아내가 입던 검은 색 옷을 입은 안나는 세달 전 아이가 유산되었을 때, 검은 옷이 없어서 애도기간을 갖지 못했다며 검은 색 옷을 입었으니 앞으로 애도 기간을 가질 것이므로 창녀 영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휴업에 들어간다. 그녀는 고용주에게 100파운드의 빚이 있고, 그녀에게 호텔을 빌려주고 감시(?)하는 호텔 매니저 클린치에게도 약간의 빚이 있다. 남몰래 안나를 좋아하는 클린치는 그녀가 알게 모르게 여러가지 편의를 제공해주고 배려해주었으나, 우연히 그녀의 드레스에 금을 숨기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클린치는 배신감을 느끼고 그녀가 드레스에 금을 감추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진 빚을 갚지 않는다고 화가 나서 빚독촉을 하자, 개스코인을 찾아가 맡아둔 금을 조금만 쓰겠다고 하나, 그 금은 안나의 것이 아니며 주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드레스 속의 금덩어리들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크라운 호텔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목격담들과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추리와 덧붙여서 이야기하자, 드레스 속의 금은 화물칸에서 목격했던 사람들을 발견한다. 웰스의 죽음을 처음 목격한 주지사 로더백이 애초에 그 금을 감춘 드레스들을 배의 화물칸에서 본 스토리는 이렇다. 여기에는 소설에서 가장 악명높은 살인자이자 갓스피드호의 선장인 프랜시스 카버가 등장한다. 리디아는 웰스 사후 2주 후에 나타나서 자신이 웰스의 합법적인 부인이고 상속녀라 주장했던 매우 매력적인 귀부인인데, 로더백은 한동안 그녀에게 빠져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사연이 있다.  로더백은 그녀가 미혼녀인줄 알았고, 이름도 달랐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프랜시스 카버가 자신이 리디아의 남편이라며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해서 그의 정치적 생명을 끊어버리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여러 척의 배를 소유하고 있던 로더백은 이 협박으로 마지못해 갓스피드호의 선장 자리를 내어주는데, 그것은 프랜시스 카버의 음흉한 흉계의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 후에 로더백은 카버의 흉계에 빠졌음을 깨닫게 되는 사건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이름으로 금을 숨긴 드레스들이 담긴 트렁크 화물이 배를 타고 오가고 자신은 탈세와 밀수 등의 혐의로 고발되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리디아가 로더백과의 관계를 이용해 카버와 짜고 꾸민 일료, 둘 사이의 비공식적인 관계가 소문나 있는 상태에서 리디아가 로더백 부인에게 비밀로 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빼고 로더백 이름만을 이용하여 최신 드레스를 사들이는 것으로 서류를 작성하고, 음모에 빠진 로더백은 자신의 아끼는 배 갓스피드호를 프랜시스 카버에게 넘기고 말았다.


그렇게 트렁크 속에 있던 드레스(금)가 어떻게 해서 안나에게 있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그녀는 좌초된 난파선으로부터 발견된 트렁크의 옷을 샀고, 그 속에 금이 있던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죽은 웰스의 집의 구석구석에서 발견된 금의 정체가 밝혀진다. 애초 솔기에 금이 잔뜩 박힌 무거운 드레스를 금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쨌든 안나가 입고 다녔고, 평소 중국인 아편굴에서 아편을 하며 의식을 잃던 습관을 가진 그녀는 자신의 드레스에서 금들이 조금씩 돌덩어리로 바꾸어치기 되는 걸 알지 못했다. 드레스가 여러벌 있었으며, 그 중 감옥에 있을 때 입었던 드레스 외에 다른 드레스의 금들은 모두 돌덩어리들만 들어 있다는 말이다. 드레스 속의 금은 금광석이었는데, 지금은 폐광된 오로라 광산 마크가 찍힌 제련 금덩이로 바뀌어 은행에 보관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금은 다시 또 사라지고, 그 사라진 금이 죽은 웰스의 집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렇게 애초 다섯 벌의 드레스에 골고루 나누어져 있던 금광석들은 매우 많은 사람들이 아주 매우 다양한 방법과 과정속에서 조금씩 빼돌리면서 나누어지지만 그 굵직한 덩어리는 국고로 환수되기 전 새로운 금덩어리로 바뀌었는데, 막판에 그게 다 자기 거라고 자기가 죽은 남자의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리디아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 리디아는 바로 로더백에게 자신이 카버의 부인이라고 주장했던 부인으로, 이제는 자신이 웰스 부인이라며 모든 재산은 자신의 것이라며 결혼 증명서를 들이댄 것이다. 알고보면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도 없는데, 그 치밀한 이야기가 구조에 빠져 이리 저리 머리를 돌리다 보니, 작가가 펼쳐놓는 이 유머러스한 해학과 위트를 놓치게 되었다. 2편에서는 의문도 풀리면서 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며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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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19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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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었고, 그것도 매우 지루한 장편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흰고래 모비딕>이랑 착각한 것은 아닌지, 한도 끝도 없는 독백이 대양처럼 이어지고 혼자서 하는 치열한 물고기와의 투쟁을 읽는 몹시도 힘겨웠었던 기억이 완전한 무에서도 자라날 수 있는 것일까? 때때로 기억은 심한 왜곡을 거쳐 전혀 새로운 사실로 태어나기도 한다지만, 노인과 바다를 지루하고 읽기 힘든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펼쳤는데, 단편과 중편 사이의 짧은 소설이었고, 하드보일드 문체라던 짧고 남성적인 헤밍웨이의 문체를 사랑하게 되었다. 


노인과 바다의 주요 배경은 대양이고, 등장인물은 노인과 그를 상대하는 거대한 물고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매우 중요한 인물로 소년이 나온다. 제목이 노인과 바다지만 노인과 소년이라고 했어도 소년과 노인의 관계 속에서 주제를 충분히 캐어낼 수 있을만큼 소년의 존재는 이 소설에서 큰 울림을 준다. 노인은 낡은 오두막에서 가족도 없이 혼자 살며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오래도록 고개를 잡지 못한 노인의 집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노인과 함께 어릴 때부터 고기잡이를 배워온 손자 같은 소년은 노인을 걱정하고 따르는 유일한 대화 상대다. 노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를 깨우고 둘은 이제껏 함께 고기잡이를 나섰지만, 80일이 넘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낛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가 아이를 노인에게서 떼어내어 다른 고기잡이 배로 보낸다. 다른 배에서 일하게 된 소년은 여전히 노인의 집에 들락거리며, 먹을 것과 마실것, 그리고 미끼로 쓸 정어리들을 구해다 준다.


까만 새벽에 소년과 헤어진 노인은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간다. 


그는 언제나 바다를 <라 마르 La mar> 라고 생각했다. 그건 사람들이 바다를 좋아할 때 스페인어로 부르는 말이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때로는 험담을 하지만, 그런 때에도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말한다... 노인은 바다를 언제나 여성으로 생각했고, 엄청난 혜택을 줄 수도 있고 거두어 가기도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노인은 바다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바다와 대화한다. 바다, 물고기, 그리고 그 자리에는 없는 소년과 말하듯 혼잣말을 한다. 그의 그러한 독백이 혼자서 이끌어나가고 있는 소설에 생동감과 인물의 입체적 캐릭터를 부여한다. 미끼를 향해 움직이는 고기를 향해 대화하듯, '좀 더 먹어' '아주 잘 먹으라고' 라는 등의 말을 하다가는 거대한 고개를 낛는 그 결정적인 순간에 깨닫는 아이의 부재를 아쉬워하며 '그 애가 내 곁에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라고 혼잣말을 했다가는 소년에게 말하듯 ' 내가 저 놈을 낛싯바늘로 건 게 정오였어', '저 놈들은 좋은 놈들이야'. '함께 놀고 농담을 하고 사랑을 하지' 라는 말도 한다. 결국 혼자서 거대한 고개를 낛는 것이 힘에 부치고 몸도 다치자 다시 또 아이를 환기한다. 그 애가 내 곁에 있었더라면 나를 도와주고 또한 이 광경을 함께 보았을텐데.. 사흘 밤과 낮동안 계속되는 물고기와의 사투동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때마다 노인이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 그 애가 내 곁에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다. 


80여일 동안이나 아무것도 낛지 못하는 운없는 배에서 자신과 운명을 함께 하던 아이에 대한 아쉬움과 자랑스러움, 낛시와 함꼐 했던 전 인생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며 아이가 없다는 사실,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환기하며 아이의 부재를 깨닫는 것이다.  그는 눈밑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손가락에 쥐가 나서 오그라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손가락에게도 말을 걸고, 슬슬 힘이 빠져가는 죽어가는 물고기와도 말을 건넨다. '기분이 어떠냐 손아?' '아직은 알 수가 없냐? 조금만 참아, 널 위해서 이렇게 먹는거야' 자


그가 잡은 거대한 물고기는 적으로서 대적해야 할 상대지만, 게임의 상대처럼 노인은 그 물고기를 의인화하여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나중에 상어에게 조금씩 뜯겨나가게 되면서 그에게는 다시 친구 같은 존재가 된다. 


'절반 남은 고기야' 그가 말했다. '너도 과거엔 온전한 물고기였지. 바다에 너무 멀리 나가서 미안하구나. 내가 우리 둘을 망쳤어. 하지만 너와 나는 많은 상어들을 죽이고 또 다른 상어들에게 부상을 입혔어. 물고기야. 너는 얼마나 죽였냐? 창 같은 부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지는 않았겠지... 그는 그 물고기를 생각했고 만약 저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쳤다면 상어에게 어떻게 했을 지 상상했다.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간 노인은 잡은 물고기에게 끌려다니며 떠돌다가 잡은 물고기가 상어에 다 먹혀버릴 때까지 사투를 벌이다가 겨우 살아 오두막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찾아와 발견한 사람은 소년이다.소년은 매일 습관처럼 노인의 집을 들렀고, 노인이 몇일 만에 살아 숨쉬는 것을 확인하자 울기 시작한다. 노인을 위해 커피를 가지러 조용히 밖으로 나와 길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에도 계속 소년은 운다. 혼자서 바다로 나가는 노인을 향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안스러움이 작품의 초반에 살짝 비쳐지지만, 이렇게 사투끝에 살아돌아온 노인을 향한 애틋함이 애잔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가 쓴 <노인과 바다>는 둔 소설로 헤밍웨이가 낛시 동호회에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로 구상에서부터 집필까지 15년 걸렸다. 헤밍웨이가 밝힌 그 내용은 1936년 거대한 말린을 낚은 작은 조각배로 낛시하던 노인을 동료 어부들이 발견했는데, 그가 낚은 말린은 절반 이상이 뜯겨 나갔으나 남은 부분만으로도 8백파운드에 달했으며 사투끝에 잡은 고기는 상어 떼가 달려들어 살점을 뜯어간 것으로 그를 발견했을 때 노인은 배에서 살점이 뜯기는 것이 가슴아파 울고 있었다고 했다. 



이 책에는 <노인과 바다> 외에도, 헤밍웨이의 대표적 단편 7편 정도가 더 실려 있다. <킬리만자로의 눈>,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고 행복한 생애>, <하얀 코끼리 같은 산>,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살인자들>, <세상의 빛>, <인디언 부락>이 그것이다. 그 중 밀리만자로의 눈과 노인과 바다가 가장 인상 깊었고, 역시 가장 많이 알려진 노인과 바다가 독보적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여기 실린 작품들은 헤밍웨이 스스로가 대표작이라고 밝힌 단편들과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설들이라고 역자는 밝히고 있다. 기복이 심하여, 노인과 바다 이전에 쓴 두 개의 장편 소설은 평단과 독자들에게 철저하게 외면을 받았으나 <노인과 바다>로 여론을 뒤짚고 1953년 퓰리처상을 받았으나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으로 극도의 우울증과 피해 망상에 시달리다가 결국 62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을 떠돌며, 수많은 연인들을 사귀고,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불꽃처럼 살아간 헤밍웨이.  그가 남긴 유명한 '빙산' 관련 일화는 이렇다. 


헤밍웨이는 『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이라는 논픽션에서 상징에 관하여 이런 주목할 만한 언급을 했다. 〈만약 소설가가 자신이 쓰려고 하는 것에 대하여 아주 잘 알고 있다면 그는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생략해도 무방하다. 정말로 그가 글을 잘 써놓았다면, 독자는 마치 그것(소설가가 일부러 생략한 것)이 명백하게 진술되어 있는 것처럼, 그에 대하여 뚜렷한 느낌을 갖게 된다. 빙산의 움직임이 위엄을 획득하는 것은 8분의 1만이 수면 밖으로 나와 있고 나머지는 물속에 잠겨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기가 잘 모르는 것을 생략한 작가는 그의 글 속에 공허한 공백만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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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크로니클 - 우주 탐험, 그 여정과 미래, 대한출판문화협회 "2016년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닐 디그래스 타이슨 지음, 에이비스 랭 엮음, 박병철 옮김 / 부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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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마션>은 막연하던 우주 공간과 그 탐험에 대한 과학의 성취를 가상이 아닌 실제 가능한 세계에 가깝게 세웠다.   SF군에 속하는 소설이고, 아직 화성에 유인우주선을 보내진 않았지만, 우주 여행에 대한 환상을 현실 세계에 옮겨놓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왔다. SF 차원의 먼 공상적 우주에 대한 흥미를 유발했기에 우주 여행에 대한 궁금증은 커졌다. 주요 관심사는 대략 이런 것이다.  왜 인류는 우주 공간을 탐험하고 싶어하는가, 어떻게 그 텅빈 공간에서 긴 시간동안 여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어디까지 가능할까.

 

1~2년 전에 다큐 <코스모스>의 새로운 판이 HD 영상으로 내셔널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되었었는데,  1980년 칼 세이건이 만든 다큐의 리부트 판으로, 칼 세이건의 자리를 대신한 이 책의 저자인, 천체 물리학자 닐 타이슨이 출연했었다. 칼 세이건이 워낙 스타 과학자이고, 당시 다큐가 이제는 고전이 될 정도로 전설이 되었기 때문에 2014년도 버전의 진행은 부담이 컸을 것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칼 세이건과의 어린 시절의 인연을 얘기하면서 매끄럽게 진행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책이 다루는 것은 앞에서 말했던 세 가지 관점, 대체 왜 가려고 하는가 라는 정치적인 관점, 어떻게 갈 것인가라는 과학적인 관점, 세번째로 어디까지가 가능할까 라는 미래적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한 가지 알아둘 점은 이 책은 하나의 책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일관성있는 주제 하에 쓴 글이 아니라, 그동안 썼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라는 점이다. <내츄럴 히스토리> 실었던 글들이 가장 많고, 각종 우주 관련 행사때의 개폐회 연설문, CNN과 뉴욕타임지 등의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 전문 등이 있고, 아폴로로 11호 기념식 축사와 하다못해 짧은 NASA의 생일 축하 연설문,  트위터에 남긴글 까지 탈탈 털어서 엮은 듯하다. 그 중 내츄럴 히스토리에 실린 글들이 우리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내용을 가장 흥미롭게 접근했는데, 실제 우주선의 구조와, 우주 산업의 개발 배경, 동력을 얻어 추진하는 물리적 원리들을 비롯하여, 매우 실제적인 이야기를 쉽게 풀어 설명한다. 축하연설문 같은 건 빼는게 나았을 뻔했다.

 

우주 산업은 전쟁의 산물이었다. 아폴로 11호가  사람을 싣고 달에 가서 성조기를 국기를 꼽고 온 것은, 달을 정복한 주체가 인류가 아닌 미국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시에 구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쿠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하자 위기감을 느껴 끼어든 냉전의 산물이었다.  냉전의 종식 이후 미국 내에서의 우주 산업, 특히 유인 우주 왕복선 발사는 시들해졌다가, 다시 중국의 추격으로 미국의 분발에 불을 지폈다. 중국이 2003년 유인우주선을 지구 궤도에 안착시켜 세번째 우주 여행 국가가 되자, 2004년 부시가 부랴부랴 포괄적 우주 개발 계획이란 걸  발표했는데, 중국의 맹렬한 추격에 위기감을 감지한 이러한 미국의  반응은 스푸쿠니트호 때의 악몽의 재현이 아닐 수 없다. 


닐 타이슨은 우주 개발과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는 전쟁과 같은 초대형 동기가 있어야 가능하며, 전쟁 때는 큰 돈이 물처럼 흐르지만 평화시인 현재에는 NASA에 유인우주선을 보내기 위한 천문학적 예산이 집행되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실제로 서양의 국가들은 두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겪으면서 전례없이 많은 과학적 발견을 이루어냈다. 우주와 관련된 과학은 단지 우주 추진 로켓과 같은 한두가지 핵심 기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적대적인 우주환경을 여행할 수 있는 수도 없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들이 필요로 하기에, 우주산업은 현대 일상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기술이 되어버린 수많은 도구들을 탄생시켰다. 우주개발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신장투석기, 인공심장박동기, 라식수술, GPS, 부식방지코팅, 수경재배,  항공기 충돌방지장치, 휴대용적외선카메라, 무선전동공구 기능성운동화, 긁힘방지선글라스 등이 있다.

 

그렇다면 왜 가려고 하는 걸까. NASA의 운영은 세납자들의 돈으로 운영되기에, 단순히 호기심만을 위해서 그 천문학적인 세금을 지출하는 일은 번번히 반대에 부딪힌다. 얼른 생각하자면 그 돈으로 거리의  굶는 사람을 살리고 불평등을 해소하고 뭐 우리나라라면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고 할 것이 아닌가. 이점에 대한 닐 타이슨의 주장을 내식으로 해석한다면, 인류는 발견의 동물이므로, 라고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인간의 시각은 한정되어 있지만, 적외선 감지기 등의 과학기술의 발달로, 가시영역 이외의 적외선 자외선 X선 감마선 등의 온갖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감지할 수 있으며 감각영역을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전자기파를 볼 수 있는 특수 망원경은 우주에서 오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진동수 영역의 빛을 감지하여, 빅뱅의 순간과 그 이후의 역사, 우주 공간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게 되지 않았는가. 광학현미경, 전파망원경, 마이크로파 망원경, 자외헌 망원경, 그리고 우주궤도에 떠있는 허블우주 망원경 등을 비롯한 첨단 장비의 도움으로 우리는 알려진 우주를 더 이해하고 미래를 조망해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는 목적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우리의 지적 감각을 확장하는 데 있다. 

 

개인적으로 파트 2의 <어떻게 갈 것인가> 부분이 가장 흥미로왔는데, 말 그대로 우리가 우주 여행에 대해 신기해하는 것들,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한 답들이 모여있다. 우리는 얼마나 빠르게 날 수 있을까. 콩코드 여객기는 음속의 2배인 마하 2의 속도로 날 수 있다.  음속은 시속 1100~1300킬로미터로 이것 이상의 속도가 물리학적으로 한계지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1947년 처음으로 벨 X-1기에 의해 음속이 깨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음속보다 빠른 비행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었다. 광속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어떤 물체나 신호도 빛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없다. 아폴로 로켓을 타고 지구 탈출 속도(지구 중력권을 탈출하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한의 속도 마하 33) 를 경험했던 우주인들조차도 그들이 경험한 속도는 광속에 비하면 2만5천분의 1의 수준이다. 그러니, 광속이라는 속도는 우리가 언젠가 기술로 넘게 될 속도인지 아닌지조차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광속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우주를 여행할 때, 가속하는 방법은 우주 여행의 핵심 기술이다. 탄도 비행을 하는 모든 물체는 자유낙하를 겪고 있는데, 인공위성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지구의 중력에 의해 추락하고 있다. 다만 지구 표면이 거기에 맞게 동그랗게 휘어져 있기 때문에 안정된 궤도를 돈다고 한다. 연료가 떨어진 후 슬링샷 효과를 이용하면 우주선을 가속할 방법이 있는데, 이것은 각 행성의 궤도와 현위치를 분석하여 거대 행성을 지나갈 때 중력 에너지를 우주선의 운동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즉 용수철이 끌려갔다 튀겨가듯, 행성의 중력의 반동을 이용해서 가속한다. 태양풍이라는 방법 또한 서서히 우주공간에서 우주선을 가속하는 하나의 방법인데, 우주선에 돛을 달아 태양에서 날아오는 미세한 광자들을 이용해 세일링을 한다는 것이다. 2010년 일본에서 발사된 이카로스는 태양궤도에 진입 후 태양돛을 펼쳐 금성을 지나갔다.

 

엄청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급하게 여기저기 있는 글을 끌어모아 책을 엮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닐 타이슨이 미국의 학자이면서, 오랫동안 정책 자문을 해왔기에, 미국 과학기술계의 정치적인 이슈들을 많이 논하는데, 그것들이 세계 정세 속에서의 미국의 위치에 관련된 것들이 많고, 한국인인 독자가 느끼기에 미국적 사고관과 가치관을 대변하고 논쟁하는 부분들이 많아 불필요하게 두꺼워진 부분이 아쉽다.  일부는 과거 미국의 우주 정책과 현 오바마 행정부의 우주 정책들에 관한 비판과 논쟁들이 몇 개의 글에서 중복적으로 게재되어 있고, NASA 및 우주 과학기술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실제로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과 두서없이 섞여 있던 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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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흑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68
스탕달 지음, 임미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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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을 두고 열린책들 버전을 읽은 이유는 이북을 휴대하기 편해서인데 번역이 고리타분하지 않고 특유의 분위기가 좋아요. 다 읽고 민음사 편과 문학동내 편과도 비교해봐야겠어요.

신분이 낮은 쥘리앙이 제재소를 하는 집안의 천덕구러기로 얻어터지면서 살다가 마을 성당의 신부에게서 라틴어를 배워 귀족 시장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주인집 부인과 애정행각을 벌이다 쫓겨나 신학학교에 가고 거기서도 또 엄청 천덕꾸러기가 되지만 타고난 명민함과 똘똘함으로 어느 후작집 비서로 가게 되면서 그 집딸과 또다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내용입니다. 

쥘리앙은 낮은 신분을 극복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겠다는 은밀한 야망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머리를 조아리고 시시틈틈 힘있는 사람들에게 아부해서 한자리 얻으려는 얕은 술수를 쓰는 건 아닙니다. 처음에 가정교사로 가게 되었을 때는 남의집 하인으로 가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합니다 . 그가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눈에 띄는 존재로 변해가는 모습은 자존심과 야망으로 똘똘 뭉쳤디만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미숙하고 결험없는 한 청년이 세상을 배우며 처신하는 법을 깨우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 낮은 신분을 딛고 일어서는 방법으로 유일한 길이 신부가 되는 길이었기에 신부에게서 배움을 받고 신학교에도 가지만 그런 야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감춘채 뻣뻣하고 당당하게 귀족들을 대하니 그의 그러한 태도는 스스로를 귀족들의 몰림감이 되게도 그를 한편에서는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외감을 갖게도 만듭니다.

가정교사로 들어간 시장집의  부인을 레날부인을 사랑하게 된 건 처음 보는 그 순간이었죠. 그는 자신의 사랑을 알리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매우 위험한 행동들을 합니다 . 사람들이 보지 않게 은밀히 손을 잡아 쥐고 이를 빼자 불쾌함을 그대로 드러내어 부인과 밀당을 하면서 패권을 갖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소설 한 권 읽어보지 못한 쥘리앵은 연애에 매우 서툴고 직접적이고 또 위험하지만 그와 부인과의 밀당에서는 빛나는 결과를 냅니다 . 수려한 용모와 서늘한 지식을 갖춘 10세 이상의 연하가 들이대는데 아무리 지조있고 정조관념이 넘치는 고매한 부인이리고 하더라도 유혹울 떨쳐낼 방도가 없는 겁니다. 게다가 그토록 사랑스런 아이들의 가정교사는 자신이 그의 뜻을 조금만 거스르면 금새 삐돌이 모드로 돌입해 부인을 불안하게 합니다 . 그들은 바로 옆방에서 남편이 자고 있는 밤사이 은밀하게 위험한 사랑을 나누며 즐기며 행복해합니다. 그러면서도 쥘리앙은 자신의 낮은 신분이 이들 귀족들에게서 조금이라도 얕잡아 보이게 됭까 하는 염려로 늘 날을 세운 태도로 일관합니다.

완전한 전지적 작가 시점의 이 소설을 읽으며, 독자는 등장인물둘의 매 순간순간의 깨알같이 섬세한 심경의 변화와 내면 풍경을 아주 미세한 신경망까지 파고 들어가서 읽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 작은 표정변화와 한마디 던진 말을 보고 듣는 순간에 일어나는 엄청난 양의 내면의 마음의 변화를 정교한 언어의 형태로 읽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건 그 자체보다는 어떤 사건을 둘러싸고 그 사건을 바라보는 많은 둥장인물들의 입장을 아주 다양한 시점에서 속속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글쓰기가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지루하게 비출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재미면에서 그토록 빼어난 소설이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프랑스 사회의 귀족 사회의 위선과 신분제 사회에서 그들의 부당하고 지나친 사치와 향락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낮은 신분의 쥘리앙의 질시와 시기와 야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속으로 귀족들을 비웃고 귀족들 역시, 돋보이지만 하층민인 그를 업신여기지요. 제재소에서 몰래 책을 보다가 얻어터지기나 하던 그로서는 상상도 못하던 위치에 올랐음에도 신분은 그를 늘 위축시키면서도 또한편으로는 그를 계속 성장시키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이란 세상과 타협하면서 정의를 버리고 악을 취하는 형태로 조금씩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는 걸 말하기도 하고 그가 자존심을 내세우며 타협하지 않는 굳은 모습의 자신으로 사람들의 관계에서 품위를 지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문동, 열책, 민음사 세 개의 버전 모두를 가지고 있는 책인데도, 그 책들을 모두 곱게 집에 모셔두고 이북으로 읽었습니다. 여러 버전을 모두 읽으며 비교해보겠다는 생각은 조금 물건너간듯한 게, 180세트로 산 열책 버전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번역된 듯, 세련된 표현이 고전을 읽을 때의 답답함을 개운하게 상쇄시켜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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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lp 2016-02-23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은 책입니다. 소렐과 레날 부인의 사랑. 다시 함 읽어봐야겠네요.

CREBBP 2016-02-23 14:17   좋아요 1 | URL
하편도 재미있었어요. 답글 감사합니다.

붉은돼지 2016-02-23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과 흑> 재미있게 읽은 거 같은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님의 리뷰를 읽으니 아아아 가정교사!!! 부분은 조금 생각나는군요

문동, 열책, 민음사 판 모두 가지고 계시지만 이북으로 읽으셨다는 guiness 님의 그 취향은 정말 마음에 듭니다. ㅎㅎㅎㅎ


CREBBP 2016-02-23 17:32   좋아요 0 | URL
저도 제 취향이 맘에 들어요. ㅎㅎㅎ 사실 이북은 차에서 폰으로 연결하면 읽어주거든요. 예스24는 자체 목소리를 내장하고 있어서 책낭독용 목소리에 최적화되어 있고, 알라딘 앱은... 구글 TTS나 폰회사 목소리 모듈을 사용해야 하는데 구글에서 나오는 그 여자는 잡아먹을 듯 공격적이구요, 삼성 목소리는 세 개 있는데 띨한 남자 목소리로 들으면 들을만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