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괴짜처럼 생각하라
스티븐 레빗.스티븐 더브너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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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바를 아는 바로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실제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굴 때 문제의 심각성은 훨씬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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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보장 - 5천만 결정장애 국민들의 속 시원한 고민 해결 상담소
송은이.김숙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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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를 많이 안봐 잘은 모르지만, 일박이일, 무한도전 이런 오락 프로그램들이 남자들 중심의 리얼 버라이어티로 가기 시작하면서 여성 개그맨들을 보기가 힘들어졌던 것 같은데, 그런 추세는 십여년간 계속되는 게 아닌가 싶다. 송은이와 김숙이 원래 엄청 친한 선후배 관계인데, 연예인들의 생활이 안정된 것이 아니어서인지, 둘이 동시에 뭐 프로그램 맡은 것도 없고 해서 심심했었던 모양이다. 우리 뭐 재미난 거 해볼까? 해서 시작한 게 팟캐스트 방송이 <비밀보장>이었다. 공중파가 아니라서 처음에는 당연히 몇명 듣지도 않고 답글도 거의 안달렸었는데 곧 입소문을 타서, 팟캐스트 1위의 대박을 쳤고 그러다가 공중파 <언니네 라디오>로 진출하게 되었다고. 나는 예전부터 송은이가 엄청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많이 안나온다고 여겼다. 


어쨌든 개그우먼 둘이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했을 법한 분위기의 책을 받아들고는 시큰둥했던 것과는 달리, 첫페이지부터 유쾌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팟캐스트를 찾아 들어보니, 책의 구성이 헐렁한 진행상의 잡담이라던가 쓸모없는 인트로 같은 것을 싹 제거하고 알짜배기 대화만을 컴팩트하게 배치해놓았다. 그래서 그 긴 방송을 길게 듣고 있는 것보다 압축된 내용을 책으로 읽는 게 나에게는 더 맞았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은근 결정하지 못하는 아주 사소한 고민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친구 결혼식에 얼마나 조의금을 내야 할지,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빌려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면접 때마다 머리속이 하얗게 텅비어버려 떨어지는데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동성애자인데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한다면 몇살쯤 하는 게 좋을지, 소개팅할 때 솔직해야 할지, 매너를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할지, 연극모임에 나가는데 사랑 연기가 안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사귄지 몇 주 되어 키스를 해야 하는데 장소는 어디에서 해야 하는지, 소개팅 앞둔 뚱뚱녀는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등등 제법 고민거리가 되고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할 정도가 되는 내용을 다루는데, 방송에서 뭐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아닌 코미디언 둘이 이런 고민을 다룰 수 있는 이유는 두 사람의 막강한 인간관계 때문이다. 


고민이 선택되면, 그들은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가장 적임자를 선정해서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건다. 물론 섭외해두었고 준비된 답변일테지만, 그렇게 적절한 조언과 웃음을 함께 선사해줄 적임자를 빠르게 찾아내어 담백한 인터뷰를 끌어내는 두 콤비의 순발력과 재치가 돋보였다.  20대 중반의 취준생이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부모님께 알려야 하는지에 대해 홍석천의 답변은 울컥할 만큼 마음을 건드렸다. 


(홍석천)처음에는 다 힘들어...웬만하면 커.밍.아.웃.을 하.지.말.라.고 하.는. 편이거든. 부모님께 너무 큰 아픔이기 때문에..

...

(김숙) 결국은 평생 숨기기는 힘들자나. 이정도면 좀 밝혀도 된다 하는 나이가 있을까.

(홍석천) 삼십대 초반에서 삼십대 중반. ...어쨌든 집에서 쫓겨나도 방 하나 내가 구할 정도로 경제적인 안정이 되어 있으면 좋지.


사랑 감정 연기가 안되는 배우에게 연기자 이재용의 충고는 전문적이다. 그는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을 상황이 주는 자극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물리적인 환경이나,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 나누고 있는 대화를 통해 교감하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두 사람과 관련된 노래를 선택해서 자꾸 듣는다든지 인위적인 환경을 조성하라는 것이다. 정서적 기억의 한기로 자기 경험을 토대로 연기에 담을 줄 알아야 절절한 사랑을 연기할 수 있다는 말. 멋지다.


이런 고민들이 너무 심각하다면, 아주 깨알같은 별 고민같지 않은 짧은 고민도 즉석에서 해결해준다. 아이폰 신상을 새로 샀는데 케이스를 씌울까 말까 같은 사소한 고민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숙의 대답은 이렇다. 아이폰 신상은 2년 쓰다가 중고나라에 갖다 팔아야 되니까 케이스를 씌워라 가 답이다. 엄마가 맨날 집에 몇시에 오냐고 물어보는데 몇시에 집에가야 잔소리를 안들으면서 최대한 늦게갈까 라는 청소년다운 질문에는 정확히 11시 30분을 제시하고 거기에 플러스 5일에 한 번씩은 일찍 들어가줄 것을 대답으로 제시한다. 여름 패션에 하얀바지를 입으면 속옷이 비칠까 걱정된다는 고민에는 흰바지는 비치라고 입는 거라며 빨간색 같은 강렬한 색을 입으라는 충고다.소개팅한 남자가 네 번 만나고 인연이 아닌 것 같다고 하는데 자신이 까인 이유를 물어보고 싶은 여성에게 김숙은 단칼에 이렇게 정리한다. "언니 정말 너무 눈치가 없다. 그냥 까인 건 까인 거에요. 왜 이유를 알고 싶어해?" 똑똑한 사람이라도 사랑에 실패한 마음에 아뒤 상황 정리가 이렇게나 안될 때가 있으며 친한 친구라도 뭐라 대답해주기 어려운 상황일 때,  이 간단한 걸 직접 이렇게 말해줘야 세상 이해가 되는 상황이 생길 때가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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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해부도감 - 대자연의 비밀을 예술로 풀어낸 아름다운 과학책 해부도감 시리즈
줄리아 로스먼 지음, 이경아 옮김, 이정모 감수 / 더숲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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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읽은 어린이/청소년용 과학 책들이나 자연 교과서에 설명을 보조하기 위한 일러스트 그림들이 생각난다. 조금 복잡한 구조의 텍스트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그림이 곁들여지는 것이다. 특히 생명과학에 관련된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생물들의 생김새들을 확인하려면 사진과 그림 같은 텍스트 외적인 자료가 필수다. 자연 해부도감은 일반적인 텍스트 북과는 반대로 책의 구성 대부분이 그림으로 되어 있고, 텍스트는 그림을 설명하기 위해 최소로 제공한다. 그러니까 그림으로 읽는 자연의 생태서라고 볼 수 있다. 거의 그림으로 제공되는 책이므로, 수준이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청소년은 물론 성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독자가 충분히 자신의 지식 내에서흥미를 보일 수 있는 책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집근처 통나무집으로 주말 여행을 가고 곤충 채집과 수정 키우기 등을 즐기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저자는 이제 직각의 드높은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둘러쌓인 뉴욕에 살면서 초록의 자연을 그리워했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을 삼기 위해 주변의 공원에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는데, 산책을 하면서 눈에 띄는 들꽃들, 날아다니는 새들, 잠자리 떼 등등의 자연들을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에서는 중산층들이 살고 있는 한적한 주택가에도 다람쥐들을 비롯해 온갖 야생동물들이 자주 주택가 나무들 사이로 뛰어다니고, 갖가지 야생 들꽃들과 나무들, 새들이 날아든다. 반면 콘크리트 바닥을 벗어나려면 꽤나 시내를 빠져야하는 우리나라는 그러한 기회를 어릴 때부터 접하기 힘들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말에 차를 타고 멀리 도심을 빠져나가기 전에는 저자가 발견한 이런 많은 초록빛 날자연들을 접하게 될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국내에도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저자보다 훨씬 더 많은 체험을 가지게 되겠지만 도심에 사는 대다수의 어린이/청소년들에게는 자연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저자의 눈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구조에서부터, 밤이면 광대한 하늘에 반짝거리는 별들과 달, 낮에는 지구를 환히 비추는 해, 그리고 지구와 이 모든 하늘 위 천체의 세상이 만들어내는, 날씨변화, 무지개, 폭풍, 눈송이, 일몰, 별자리 등의 모든 자연 현상들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그 범위는 꽃과, 곤충, 숲속의 생물, 야생동물, 새, 물고기 등의 생명체들에게로 옮겨간다. 그림으로 포착한 자연의 세계는 사진만큼 정교하지는 않지만, 사진이 가지지 못한 장점들이 있다. 그림에 의해 단순화된 자연의 요소들과 생명체들과 자연의 특성들을 보다 명쾌하게 알 수 있다. 무엇인가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시각적인 명료함만큼 중요한 것이 없을 것이다. 특히 자연은 그렇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들, 새들, 나무와 풀과 돌멩이와 별과 해 그 모든 것들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설명은 단순하지만, 그 생명에 가만히 주의를 기울여본다면 알고 싶게 되고 알게 되는 기본적인 것들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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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흑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69
스탕달 지음, 임미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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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눈치오의 <쾌락>을 읽다보니, 예전에 읽고 리뷰를 1편만 쓰고 말았던 스탕달의 <적과흑> 생각이 났다. 두 주인공 모두 두 명의 여성을 동시에 사랑하고, 비극적으로 사랑을 끝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채 사치와 향락에 쩔은 붕괴 직전의 귀족들의 일상과 대화, 심리를 상세히 묘사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적과흑>에서 쥘리앙은 <쾌락>의 안드레아와 비교해보면 치기와 불안을 껴안고 고뇌하는 젊은 청춘이며, 안드레이와 비교해볼 때,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신분과 부를 기반으로 예술적 감각과 재능과 광범위한 지식 수준 등 모든 면에서 비교 불가의 초라한 청년이다. 


쥘리앵은 확실히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당시 자유와 평등을 열망하던 프랑스 민중들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룩한 공화정의 대업이 나폴레옹의 구테타와 그 후 계속된 전쟁, 그리고 실각과 함께 잃게 되고, 유럽의 다섯 개 나라는 패전국 프랑스로부터 촉발된 자유주의적 개혁에 반하는, 혁명이전으로 모든 것을 되돌리는 왕정복고 라는 역사의 도돌이표를 선택한다. 1789년부터 시작된 혁명의 성과는 부르봉 왕조의 복귀와 그 뒤를 잇는 반동정치에 의해 하나씩 무너져갔고, 귀족들은 득세했다. 이 혁명과 혁명의 사이사이에 끼어있던 암흑기에 평민 태생의 쥘리앙은 남몰레 나폴레옹을 흠모하며, 신분 상승의 한을 품고 시대적 사상 속에 갇힌 채, 순간순간 신분의 한계와 그가 접하는 사회에서의 차별적 지위를 인식하며 가혹한 현실을 살아간다. 이 책이 쓰인 1830은 샤를 10세가 반동정치의 끝판을 보여주던 때다. 구체제의 신분질서가 과거의 특권을 향유하기 위해 온갖 부패와 술수를 동원하던 시기라는 점은 청년 쥘리앙의 개인적인 삶을 지배한다. 이처럼 시대는 개인의 사랑이라는 은밀한 사생활까지도 지배한다.


시골에서 시장의 부인과 아슬아슬하게 놀아나다가 탄로나는 상황이 되자 그곳을 떠나 수도원을 거쳐 어떤 후작집의 비서로 일하게 된다. 감옥같은 수도원에서의 생활은 쥘리앙의 남다른 면모와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배경으로 기능하는데, 그 수도원에서의 생활 부분이 엄청 길다. 거기서 앞으로 인생을 바꿔줄 후작과 연결되는 끈들이 우연히 조금씩 만들어 지는데, 처음에는 그의 뛰어난 비범함으로 인해 동료들에게서 괴롭힘을 당하는 원인이 되지만, 그가 관여하는 자잘한 에피소드들은 차차 그를 그의 삶에 있어 조금씩 유리한 위치로 옮겨놓는다. 타고난 감수성과 천부적인 재능,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야망과 위선적인 행위들의 복잡한 상호작용들은 쥘리앙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들이다. 가령 그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주변의 인물들처럼 똑같이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고자 하지만, 타고난 감수성이 만들어내는 연민은 자주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쥘리앵은 두 여인과 사랑을 한다. 첫번쨰 사랑은 처음으로 집을 떠나 사회에서 만나는 첫 여성으로, 10살 연상인 레날부인이다. 왕정복고 시대에 꼼짝 없는 신분제에 묶인 쥘리앵은 야망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신부가 되기로 결심하는데, 이를 위해 마을의 신부에게 수업을 받고, 그렇게 교육받은 덕분에 시장 집에 아이들 가정교사로 들어오지만, 그의 첫눈에 아이들보다는 아이들의 엄마인 레날 부인이 각인된다. 레날부인과의 사랑으로 19세의 청년답게 매우 저돌적이고 열정적이다. 두번째 사랑 역시 자신을 고용한 집 식구다. 후작 집 딸 마틸다는 여러 백작들이 파리 꾀듯 주변을 가득 맴도는 매혹적인 여인이나, 이미 첫사랑을 경험한 쥘리앵은 이제 밀고 당길 줄 아는 프로 선수가 되었으나 여전히 겉잡을 수 없는 그의 열정은 종종 그의 야망과 그가 지켜온 자존심, 자신이 귀족은 아니지만 이들보다는 더 낫다는 생각과 충돌한다. 레날부인과의 사랑이 순수하고 열정이 넘치는 위험한 사랑이라면, 마틸다와의 사랑은 끊임없이 능숙하게 탐색하고, 계산하면서 서로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프로페셔널한 사랑놀이다. 


귀족들의 진부한 구애와 표현에 둘러쌓인 마틸다가 순수해 보이고  지적인 청년의 신분상의 이질성에 쉽게 현혹될 수 있다는 설정은 그럴싸하다. 그녀의 갈등은 그를 사랑하면서도 그의 신분을 경멸하는 모순에 있다. 그를 유혹하는 데까지 성공했으나, 그가 자신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다시 그의 하찮은 신분이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우위에 있는 그녀는 밤에 그를 침실로 불러내 훌러덩 옷을 벗어버리고, 유혹에 넘어간 이 가여운 청년을 냉대한다. '하찮은 신부 나부랭이이자 기껏 촌부의 아들인 자'에게 자신을 허락한 그녀는 그 일을 후회하고 쥘리앙은 당황하지만, 그녀를 꺾기 위한 갖은 노력끝에 결국 둘은 밀었다 당겼다를 반복하며 애정을 꽃피운다. 


어두운 과거는 들키라고 있는 법, 2편 중반을 넘어서면서 레날 부인과의 과거의 불륜은 그의 발목을 붙잡아, 다 된 밥에 코빠뜨리가 되어버리고 스토리는 겉잡을 수 없는 복수와 파멸의 길을 달린다. 줄리앙의 야망과 위선을 처음부터 읽어온 독자로서는 급작스런 그의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증오가 스스로를 파괴시킬만큼의 크기로 자란다는 것은, 그 증오가 배신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레날 부인의 편지는 줄리앙에게 있어서 이제까지 어렵사리 쌓아올린 자신의 명성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증오는 그토록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던 젊은 날의 그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이 참혹하게 깨졌기 때문이다. 마틸드를 사랑하면서도 레날 부인에 대한 신의는 그만큼이나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다행이도 총알은 레날부인의 어끼를 스치고, 그에게는 레날 부인의 진심을 확인할 구원의 날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조용히 죽음을 기다린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뭐라 변명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사형을 거의 코앞에 앞둔 그의 감옥엔 두 명의 여자가 경쟁적으로 들락거리지만, 그는 목숨을 구걸하지도 삶의 의지를 보이지도 않는다. 이미 레날 부인을 쏘았을 때, 자신은 스스로를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 레날 부인이 감옥으로 돌아와 그를 안았을 때, 그녀의 진심을 알았을 때, 아마도 죽어도 여한이 없었나보다. 


찾아보니, 영국에서 미니 시리즈로 했다.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로도 했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다. 미니시리즈는 자막이 없긴 하지만 유튜브에 4회로 나뉘어져 있다. 쥘리앵과 마틸드, 레날 부인 모두 책 속에서 나온 것처럼 상상을 잘 옮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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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0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0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3-10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민음사 판본을 세 번 읽기 시도했는데, 1권을 완독하지 못했습니다. 작년에 발자크 소설을 읽고 있어서 다음에 스탕달에 도전하려고 했는데, 다른 책에 눈길을 가는 바람에 시도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CREBBP 2016-03-10 21:47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게 십년씩 미뤄둔 소설이 저는 아주 수두룩해요. 이 책을 마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이북 읽어주기 덕분이죠. 차에서 짬짬이 듣다보니 감질나서 내킨 김에 읽어버리더라는.. 근데 읽어주기는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새고운 집중력 강화 훈련이 될 거 같기도 해요
 
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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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이 어디까지 사회에 참여할 수 있을까. <작가란 무엇인가 1>에서 읽은 내용을 돌아보면 어떤 작가는 드러나는 사회 참여는 문학이 될 수 없다는 의사를 강하게 내비치고, 어떤 작가들은 스스로가 매우 정치적이라고 여긴다. 마르케스같은 작가는 정치와 문학을 떼어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현대의 영미 작가들은 문학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는 환경에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정치적이고도 사회 참여적인 의도가 불순해질 수 있는 특권적 환경이라는 차이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어떤 제도적 틀 안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것과는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음을 안다. 희노애락을 일으키는 감정은 시스템의 틀 안에서 움직일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그 견고한 시스템을 깰 수 있을까. 혹은 알릴 수 있을까.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아버지가 거대한 공장의 톱니바퀴 사이로 몸이 끼어 죽은 후, 그 남겨진 가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소설 <백의 그림자>는 <계속해보겠습니다>보다 몇년 앞서 쓰였다. 후에 쓰인 소설이 그 이후의 삶이라면, 먼저 쓰인 이 소설은 삶을 부수는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톱니바퀴가 가장의 육체적인 몸 대신 가장의 경제권이라는 일터를 아작내기 위해 다가오는 상황을 그림자라는 장치에 결합시킨다. 


세운상가는 뭔가를 고치러, 혹은 뭔가를 사러 예전에 몇번 다녀봤던 기억과 종로를 지날 때마다 눈에 익어서 소설 내에 배경 설명이 그리 길지 않았는데도 생생하게 공간적인 장면들이 머리속에 훤히 그려졌다. 철거를 앞둔 세운상가에서 앰프를 고치고, 부품들을 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고전 영미권 소설을 읽을 때만큼 배경 설명이 긴 것도 아닌데도 그 복잡하고 얽히고 설킨 복도와 골목 구조, 그리고 가게 속에 수십년간 모아온 부품들과 작은 물건들이 뺴곡히 어지럽게 쌓인 모습들의 모습이 영화를 본 것처럼 생생하게 머리속에 그려졌다. 


선량한 사람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어느 날 그곳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 그들과 그들 주변의 사람들에겐 그림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림자가 갑자기 일어서는 것이다. 왜 그림자일까. 그림자는 물체가 빛을 가려서 드리워지는 검은 형체다. 그것은 빛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사물은 빛을 반사함으로서 색깔을 만들어내는데 어떤 물체가 그것을 가리면 그 물체가 햇빛을 가리는 부분인 것이다. 그림자는 즉, 빛을 받지 못한 부분이다. 가리워진 부분이다. 일부러 감추려고 하지 않았지만 감추어진 모습이다. 당연히 사람의 그림자는 그 사람의 발바닥에 붙어서 바닥에 누워서 따라 다녀야 할 것인데, 그림자 혼자서 생명이 있는 듯 벌떡 일어나서 단독적으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여자(은교)는 맨 처음 자기를 떠나 돌아다니는 자신의 그림자를 따라가다가 숲에서 길을 잃는다. 남자(무재)는 그런 여자를 따라간다. 그림자를 따라 들어왔다는 말을 하자, 자신의 아버지의 그림자도 일어섰다며, 그림자를 따라가지 말 것을 충고한다. 아홉식구의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빚보증을 섰다가 그 빚을 갚으려고 노력하는 만큼 점점 더 늘어나는 빚을 안고, 끝내 죽었는데, 죽기 전에 그림자가 일어섰고, 그 그림자를 따라다녔다. 그 빚은 고스란히 무재에게 전가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림자는 죽음을 암시하는 걸까. 


철거가 가까와오고 사람들이 하나둘 씩 떠나 스산한 세운 상가의 어두운 이야기를 따스하게 하는 것은 물론 이 두 사람이 서로 가까와지는 모습이다. 둘은 함께 긿을 잃지만 농가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다. 이후 둘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도 그랬고, 현대 소설들이 그런 경향들이 많이 있지만 둘의 대화는 따옴표 없이 이루어지는데 지문보다 대화가 많을 만큼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이끌고 나가는 것은 대화다. 짤막 짤막한 말들의 주고 받음 속에는 문장으로 단언하지 못하는 숱한 의미들과 상징을 끌어안고 간다. 쇄골이 반듯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무재는 자신의 쇄골은 삐뚤빼뚤하다는 은교에게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라고 말한다. 안개비가 내리는 밤 등나무 아래에서의 대화는 아마도 두 사람의 인생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일 것이다. 



등나무 잎을 삶으면, 하고 무재씨가 문득 말했다.

삶아서 그 물을 마시면 금이 간 부부 사이의 금슬이 다시 좋아진대요.

그렇대요?

언제고 우리 틈에 금이 가면 삶아서 마실까요?

라는 말에 당황해서 우리는 부부도 뭣도 아닌데, 라고 얼버무리자 무재씨가 우산 속에서 싱글벙글 웃었다. 나는 흠 하고 기침을 했다.

금슬은 잘 모르겠지만 무재씨, 이렇게 앉아 있으니 배도 따뜻하고, 좋네요.

네, 

그냥 좋네요.

하며 밤을 바라보면서 앉아있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 끝내 도망갈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 인내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림자가 일어서는 경험을 한다. 은교의 입을 통해 뭔가를 상징하는 것처럼 사람에게서 떠나 땅에서 일어난다. 가게 주인 아저씨의 지인인, 한 기러기 아빠는 모든 걸 희생해서 아이들에게 올인했지만, 비행기값을 아껴 오랜만에 방문한 외국에서 아이에게 아빠가 챙피하니 친구가 오면 밖에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기러기 아버지의 그림자도 일어난다. 가끔 가게를 들러 2천원을 달라곤 하는 유곤 역시 오랜동안 세운상가와 함께 세월을 보낸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타워크레인의 추가 삼십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즉사했고, 그 이후로 어머니의 그림자가 일어섰다. 그림자가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많은 상징을 대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이 더이상 버티기 어려울 때, 그림자는 돌연코 일어나서 그림자이기를 거부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림자를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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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애 2016-03-09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안에 따뜻함과 사랑이 그 몇 마디 대화 속에 오롯이 피어날 때 그래 그래도 우리는... 하며 삶을 다시 따뜻하게 바라봅니다. 그게 황정은 소설을 읽고 다시 읽는 이유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CREBBP 2016-03-09 15:46   좋아요 0 | URL
저는 황정은의 소설은 두 권밖에 안읽었지만(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개 읽는 편이 아니라 그래도 많이 읽은 편) 묵직한 메시지를 줄 뿐만 아니라, 그 묵직하고 어두운 것들 속에서 너무나도 따뜻하고 인간적인 것들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다른 소설들도 읽어야겠어요

2016-03-17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7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7 17: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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