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미의 수학N - 수학의 발칙한 상상, 문학.영화.미술.철학을 유혹하다
박경미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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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단어 자체가 차갑다는 인상을 주지만 인문학적 견지에서 보았을 때, 우리 삶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따스한 온기를 더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는 수학적인 주제가 다소 산만하고 가벼운 느낌을 주지만, 수식없는 수학을 개념적으로 무리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학, 영화, 미술, 사회, 철학, 역사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문학을 말할 때 여차여차 해서 인문학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경계불분명한 학문은 많지만 수학이라면 글쎄 단연코 아니다 쪽으로 기울 것이다. 그러나 윗줄에서 말한 분야인 문학, 영화, 사회, 철학, 역사는 인문학의 가장 기본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이 대체 수학과 어떤 식으로 관계맺을 수 있을까.

 

작품 속의 수학적 요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저자가 고른 문학 작품은 루이스 캐롤(1832~1898)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그리고 얼마전 멧데이먼 주연의 영화로도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고, 서점가에서는 베스트셀러 열풍을 불러왔던 앤디 위워의 과학소설 <마션>이다. 일본의 소설가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 등이다. 특히 마션은 책으로 읽었다면 내용이 상세해서 이해했을 테지만, 영화로는 조금 힘들었을 미항공우주국과 와트니의 통신방법에 대한 설명이 있다. 화성의 모래밭에 원을 그려 16등분하고, 각 부채꼴에 아스키코드의 16진수를 그려넣음으로써 알파벳 하나 하나를 항공 사진으로 찍어 통신하는 방법은 인상적이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오일러 공식을 묘사한 대목이 언급되는데 "하늘에서 pi가 e 곁으로 내려와 수줍음 많은 i와 악수를 한다. 그들이 서로 몸을 마주 기대어 숨죽이고 있는데, 한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세계가 전환된다. 모든 것이 0으로 규합된다'. 이것은 오일러의 공식 e^pii=-1이 박사가 젊었을 때 형수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둘의 관계와 상실을 의미하는 -1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우변의 -1을 좌변으로 이항하여 e^pii+1=0으로 적음으로써, 식의 좌변에 있는 e pi, i, 1이 완벽한 0의 상태인 0으로 안정적인 상태로 결론을 이끌었다고 해석한다.

 

영화 속의 수학을 이야기하기 위해 고른 작품은 <페르마의 밀실>, <용의자 x의 헌신> <2012> 등이다. <페르마의 밀실>은 소수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미해결 문제라고 알려진 '골드바흐의 추측>을 모티브로 한다.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5보다 큰 모든 정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의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영화는 이 증명을 둘러싼 수학자들의 심리 스릴러로,  페르마의 밀실에 초대된 수학자들은 퍼즐을 풀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책에서는 골드바흐의 추측 외에도 여기에서 다룬 퀴즈들을 수학적으로 상세하게 다룬다. <용의자 X의 헌신>은 한 남자를 죽인 야스코와 그 딸을 평소 연모해온 이시가미가 비상한 두뇌를 이용해 범행을 은폐할 수 있는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는 내용으로 대학시절 4색 문제 증명에 몰두하던 이시가미를 떠올리던 유키와의 모습을 포착하여 4색 문제에 대한 수학적 역사와 이론을 소개한다. 인류멸망설을 소재로한  <2012>는 2012의 멸망설이 고대의 마야 달력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주목하여 고대 마야의 달력과 숫자, 그리고 수 개념의 발생에서부터 아라비아 숫자의 등장과 보급에까지 간략하게 소개한다.

 

미술 속의 수학에 등장하는 미술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바르바리가 1495년에 남긴 <파치올라의 초상>, 작품 속에 수학 원리를 반영한 작품 세계로 유명한 에셔(1898~1972)(책에서는 에스허르로 표기)의 작품들이다. 파치올라는 이탈리아의 수학자이자 수도사였으며 그림의 탁자 오른쪽에 있는 정십이면체와 손에 들려 있는 유클리드의 <원론>중 13권에 주목하여 여러 가지 정준다면체들의 성질과 특성을 소개한다.  에셔의 작품에서는 테셀레이션 과 원의 극한을 발견하고 또한 <유클리드의 산책>이라는 작품에 주목하여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준에 대한 비논리성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태동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또한 대표적인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 리만의 구면기하학을 소개하고 구면 기하학에서의 평행선 공준의 위반 사례를 설명한다.

 

사회 속의 수학에는 미터법을 비롯한 도량형의 통일에 관한 내용, 선거 방법과 관련된 수학 이론, 그리고 게임이론이 소개된다. 미터법은  프랑스 혁명의 산물이지만, 세계적으로 통일된 미터법을 쓰지 않고 독자적인 야드법을 사용하고 있는 미국이 이로 인해 값비싼 댓가를 치른 사례를 짚고 있는데, 1999년 9월 화성 계도에 진입하던 화성 기후 탐사선이 대기와 마찰을 일으키며 추락한 사건의 배후에 미터법과 야드법의 혼동에 의한 원시적인 실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으로 1억 2500만 달러의 예산이 허공에 날아갔는데, 유인우주선이었으면 어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결이 원칙이라고 알고 있지만 최다득표제는 한 번의 투표로 당선제를 결정할 수 있어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보르다 점수법, 최소득표자 탈락제, 쌍대 비교법 등을 설명하고, 예시를 통해 어떤 경우에 누가 당첨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 밖에도 철학 부분에서는 영화 <옥스포드 살인사건>이 다루고 있는 수리 철학을 비트겐슈타인의 저서 논리철학논고와 함께 고찰하고 영화가 수식을 사용하여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영화에서 페러디하고 있는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 타니야마-시무라 추측,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호프스테더의 저서 <괴델, 에셔, 바흐>는 수리철학자 괴델, 미술과 에셔, 음악가 바흐를 넘나들며 통섭의 절정을 보여주는데, 이 책에서 언급되는 내용이 수학적으로 풀이되어 있다. 또한 유클리드의 원론의 공리적 체계를 설명하고 이에 따르는 뉴턴의 <프린키피아>, 그리고 스피노자의 <윤리학>, 미국의 <독립선언문>까지 소개함으로써 유클리드의 원론에서 완성한 연역적 증명과 공리 체계가 얼마나 수학적 논리적 추론을 통해 일상과 인문학적 접선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역사 부분은 고대 수학의 역사를 살펴보는데, 바빌로니아의 수학 노트 점토판의 탄생 배경과 숫자 체계,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비롯하여 바빌로니아 인들의 수학을 살펴보고,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새겨진 상형문자와 이집트 인들의 기하학적 사고, 그리고 수학사를 통털어 최고의 수학자 3인방으로 꼽는 사람 중 하나인 아르키메데스가 남긴 찬란한 수학적 유산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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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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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대도시로 상경한 여성이 우여곡절 끝에 배우로 성공한다는 훈훈한 이야기라면 독자는 무엇을 기대할까. 성공을 이끄는 사랑과 야망을 향해가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다룬다는 면에서 본다면 우리의 상상적 범위 내에 있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피상적으로 캐리는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공교롭게도 19세기가 막을 내리고 새세기를 맞이하던 1900년도에 소설이 쓰여졌는데, 사장이 없는 동안 에디터가 계약을 한 모양이었다. 뒤늦게 여행에서 돌아온 사장은 부인까지 동원하여 책의 비윤리성에 분개한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출판사는 계약을 파기하지는 못하고 조용히 사장되기를 바랐고, 1008부를 거의 찍었지만, 이후에는 평단과 독자들의 혹평과 비난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소설 속의 허스트우드만큼이나 폐인이 되었었다고 한다.  응? 소재로 봐서는 건전해 보이는데, 무엇이 이토록 19세기말의 미국 사회를 불편하게 했을까. 


작가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후에 윌리엄 포크너, F.스콧 피츠제럴드, 등의 미국 현대 문학의 대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거인이자,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자연주의는 개인의 사회적 생물학적 조건하에서 숙명을 벗어나는 것을 어렵다고 보고 결종론적 세계관에 따라 도덕과 인습을 벗어버린 채, 있는 그대로의 삶을 상세히 기록한다.  드라이저는 작품 속에서 물질적인 향락과 사치라는 행위 속에 잠재된 욕망과 위선을 포착하여 홀랑 벗겨 보이면서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져 하층민이 된 인물의 처참한 하루살이 같은 삶을 대조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그 절정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부로서 같은 운명을 걸어가던 두 사람이 한 명은 성공의 사다리 맨 꼭대기에, 다른 한 명은 저 맨 밑바닥의 수렁 속에 동시에 기착되면서 대조적인 삶이 생생하게 클라이맥스를 이루며 막을 내리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출판사 사장을 비롯하여 책을 읽고 평가할 수 있는 위치의 대다수 기득 중산층들을 겨누는 화살로 느껴졌기에 그들은 격렬하게 논쟁했고 소설을 비하했던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비윤리적이라고 하면, 잔인한 폭력과 난잡한 섹스 등의 자극적인 묘사를 흔히 떠올리는데, 이 소설은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점잖다. 


역자 후기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 출판사 사장을 비롯하여 비평가들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비정한 자본주의의 모습을 자유의 이름으로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잔혹한 우연성에 개인의 운명을 승차시켰기 때문이다. 캐리의 성공은 그 시작이 돈과 화려함이라는 욕망을 쫓던 중,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녀는 인생 전체를 꿰뚫지도,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 채, 더듬이처럼 바로 옆에 우연히 함께 있는 사람들이 가진 것과 자신에게서는 있지 않은 것의 차이를 근시안적으로 알아차린다.  영리한 그녀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는 빠르게 적응한다. 그녀를 구두공장 노동자로서의 최하층 신분에서 구한 것은 아이러닉하게도, 그 최악의 일자리마저도 잃고 언니와 형부가 사는 집에서 쫓겨날 신세에 있을 때 나타난, 우연히 상경하는 기차에서 알게된 드루에와의 만남에서였다. 


여배우로서 대성공이라는 결과와는 반대로 캐리는 오히려 소극적인 여성이다. 낯선 남자가 자신을 여자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채 단지 얼굴에만 반해서, 돈을 주고 방을 얻어주고 친절을 베푼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골뜨기였지만 둘이 부부처럼 행동하면서도 차일피일 결혼을 미루는 이유를 눈치챌 만큼은 똑똑했고, 뛰어난 감성의 소유자였다.  드루에가 속한 클럽의 아마추어 극단의 기금 마련을 위해 처음 연극의 배우로 서게 되었을 때 경험한 숨막히는 갈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녀를 성공시킨 것은 사회적으로 유리하게 조합된 유전자의 우연이 가져다준 재능 외모과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해 무대로 향해야 했던 사정이라는 우연, 그리고 공연 중 그녀를 눈에 띄게 한 사소한 사건들에 대한 재치있는 대처였다. 그런 것들 중 어느 하나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어도, 지금 그녀가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수렁같은 바닥에서 절망했을 허스트우드와 다르지 않은 신세가 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사랑하지도 않는 동거남에게 결혼을 요구하는건, 그가 자신과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만큼은 똑똑했기 때문이다. 허스트우드의 거짓말들을 수용한 이유는 드루에가(를) 떠난 몇일 동안 다시 여공 시절의, 밑바닥으로 인생으로 전락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 자명하다. 캐리에겐 그의 거짓말보다는 그가 자신과 결혼할 것인지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 결혼이 자신에게 약속할 수 있는 단 한가지는 자신이 다시는 공장노동자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정도였을까. 아니면 그가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이제껏 알아왔던 부잣집 신사로 쭈욱 살아가게 될 것을 막연하게 믿었을 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그녀가 뭘 알고 있었는지 독자도 모르고 그녀도 모른다. 캐리는 근시안적이었다. 문제는 이거다. 그녀에겐 허스트우드의 본성, 이제껏 유부남이라는 거짓을 말해왔고, 또 자신을 속여 납치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왜 보이지 않았었는가 하는 문제다. 이제껏 알던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속아 다른 멀리 떠나가면서, 그녀는 앞으로 뉴욕이라는 장미빛 도시와 거짓말하는 남자에서 자신의 미래를 맡기고자, 자신을 그 두려운 밑바닥 인생으로부터 구조해줄 결혼이라는 확고한 증명만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캐리는 처음부터 드루에가 가진 경박함과 대조되는 세련되고 부티나는 허스트우드에게 빨려들듯 걸려들었다.  드루에의 지인인 허스트우드는 권태로운 중년으로 아름다운 캐리에게 반해, 드루에가 없는 동안 결혼 사실을 숨기고 캐리를 꼬여내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지만, 사실이 밝혀지자 가족들에게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은 모두 빼앗기게 될 운명에 처하고,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금고를 털어, 캐리를 드루애가 다쳐서 같이 가봐야 한다는 거짓으로 불러내어 도주한다. 열차에서 허스트우드의 거짓이 드러나지만, 캐리는 허스트우드의 열렬한 구애에 넘어가고, 뉴욕에서 사업을 시작한 허스트우드는 점점 자멸의 길을 걷는다. 


돈은 그 자체로 힘이었다 78


허스트우드 집안의 불행은 질투가 사랑에서 태어나긴 했어도 사랑과 함께 사라져 버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272



드루에로 말하자면 ... 지금 그의 마음속은 속았다는 분노와 캐리를 잃는다는 슬픔, 패배 당했다는 비참함이 뒤섞여 있었다.300



그녀의 욕망은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실현되지만, 그것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좋은 음식과 멋진 옷들, 화려한 집안 살림들, 이런 것들은 궁색한 언니 집 한구석에서 자신의 주급 4불 50센트 중 4불을 지불하면서 남은 50센트를 모아 옷을 사던 시절을 생각하면 꿈꿔보지도 못한 것들이지만 그런 생활을 하게 되면 그 주위에 항상 자신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우아한 껍질들로 자신을 감싼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스트우드를 버리고 우연한 기회가 올 때마다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공연계에서 한 계단씩 올라가게 되었을 때조차 그녀는 자신이 이제껏 허스트우드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기생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깨닫지 못한다. 다만, 뉴욕 최고의 호텔에 거주하며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는 스타가 된 동안, 완전한 밑바닥까지 추락한 허스트우드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어야 했던 이유는 그들의 도덕적 인과응보로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허스트우드는 거짓을 일삼고 가족을 버리고 젊은 여성을 꼬여냈으며, 그 여성을 거짓으로 납치하듯 드루애의 집에서 데리고 나왔고, 돈을 훔치고, 사업을 망한 후에도 무능했기에 나쁜 사람은 맞다. 그러나 시카고 사교계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자가, 돈의 부재와 함께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참혹한 몰골로 비참한 최후를 마치는 모습은 당시라면 충격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심화된 요즘이야 하루아침에 알거지 되는 일이야 비일비재하기에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경우지만, 세습된 부가 단단했던 당시로서는 그런 몰락이 중산층들을 더욱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되었건, 성공한 캐리는 어떨까. 그녀는 그토록 갈망하던 화려한 세계에서 일인자가 되었고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드는 불나방같은 남성들의 중심에서 돈과 명예,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녀는 그녀가 이제껏 추구해왔던 것들이 공허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더 고상한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에 다가갈 수 없음을 알고 고통스러워한다. 


깨끗하고 자연스러운 용모를 지닌 이 젊은이는 그녀가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는 것들도 분명히 이해하는 것 같았다.429 


캐리는 고개를 떨구고 처음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고통을 느꼈다 42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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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6-03-25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부격인 뉴욕에서는 캐리의 성공보다 허스트우드의 몰락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듯 했어요. 전 허스트우드가 안주하게 되는 그 심리가 너무 생생해서 소름끼치고 마지막 장면이 좋았어요.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듯 해요... 주연은 캐리 멀리건이었으면...

CREBBP 2016-03-25 13:17   좋아요 0 | URL
그쵸 맞아요. 그가 몰락하는 과정이 캐리의 성공과 대조되면서 극적 아름다움이 느껴졌어요. 사실 영화로 굳이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생생하게 시각적 상상력을 받쳐주어서 마치 영화로 본 듯해요. 50년대 흑백 영화가 있어서 찾아봤는데 풀버전은 없고 5분짜리 소개 동영상만.. 아쉬워요. 영화로 만들면 정말 재밌을 거 같아요
 
빨간구두당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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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언젠가는 듣거나 읽어서 알고 있던 많은 종류의 동화들은 대개 해피하게 끝을 맺는다. 위기에 빠진 공주는 왕자와 만나 결혼하고, 못된 계모들은 천벌을 받고, 저주받은 마법은 풀린다. 불행하게 끝나는 경우도 많다. 왕자를 사랑한 인어공주는 한마디 항변도 못한채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성냥을 팔던 소녀는 추운 겨울에 남의 집 창문 앞에서 시린손을 성냥불로 녹이면서 죽어간다. 이렇게 닫겨진 이야기의 문을 다시 열고, 활자 이래로 박제되어 있던 이야기의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것이 이 책이다.


빨간구두당은 색을 잃은 세계에 어느날 찾아온 빨간색에 관한 이야기다.  색을 잃은 세계에 색깔은 전설이다. 까마득한 윗 대의 선조, 증조부의 증조부의 증조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색이라는 개념에 대해 현재 세대는 완벽하게 무지하다. 색이 없이 흑백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판단 능력은 그들이 식별해낼 수 있는 흑백의 색만큼이나 원시적이고 기초적인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한 무지라는 질서 속에 찾아온 빨간구두를 신은 춤추는 처녀는 마을을 찢어놓는다.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는 춤을 멈추지 못하고, 빨간 구두의 빨간 색이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빨간 구두가 보이면서 빨간 색을 가진 물건을 식별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렇게 마을은 빨간색을 아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뉜다. 빨간구두가 보이는 사람들, 그들은 빨간구두당이다.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이고, 첫번째 이야기의 제목이다.


빨간구두당은 안델센의 빨간구두의 변주이고, 개구리왕 또는 강철의 하인리히는 그림형제의 동명 동화의 변주인 것 같다. 새뮤얼 콜리지의 노수부의 노래, 그림형제의 영리한 엘제, 거위지기 아가씨, 성냥팔이 소녀 등이 그림형제의 동일 제목의 민담 동화에서 따왔으나, 내용은 수많은 설화와 전래동화들을 다채롭게 변형하고 윤색하고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전혀 새로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한편 한편의 단편들은 넘치도록 많은 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의 모티브들은 여러 버전으로 알려진 동화와 전설에서 가져왔고, 이 모티브들은 주요 서사의 뼈대와 혈관이 되어 이야기를 완성한다. 처연하며 아름답고 강렬한 동화의 은밀한 내면은 현재 우리들의 삶을 재조명한다. 시끄럽고 화려하고 잔인한 환상의 세계 속에서 현실을 소환하는 것. 그 조용한 성찰. 그것이 구병모 소설의 특징이자 책을 쥐고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현대적이면서도, 과도한 자의식이나 지식의 나열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고,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기묘한 세계를 다루는데, 그 세계에 현실보다도 더욱 불편한 리얼리티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풍자로 읽어내고 말 수는 없는,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과 풍부한 서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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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 1 - 요석 그리고 원효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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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알 수 없는 갈증으로 허덕일 때마다 습관처럼 종교를 찾았다. 인간은 왜 종교를 발명했을까. 수렵채집을 하던 원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만년동안 어느 시대, 어느 문명에서도 인류는 한 번도 종교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진리와 영원의 안식을 향한 갈증은 단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헌금과 보시를 통한 사후 보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비를 잃은 소녀 단은 불단 앞에 들어가는 일이 허락되지 않아, 거대한 장륙존상 꼭대기에 매달린다. 불단은 한 발짝만 더 디디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천민들에겐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먼 거리였다. 그 금지된 한 발자국은 죽음으로 응답했다. 신성한 불단 앞에 천민들의 출입을 허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소녀가 믿은 것과 종교사이의 갭은 폭력으로 채워져 있었다. 신라시대 신분제가 가진 귀족과 천민 상의 거리였다. 그 거리감이 당시 불교의 상징이었다. 


귀족들을 위한 종교, 배우고 깨친 사람들만을 위한 위안과 구복. 가난하고 배고픈 민중을 품을 수 없이 고귀하게 높은 정신적 세계를 지향했던 불교는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결코 다가갈 수 없었던 높고 단단한 신분의 벽이기도 했다. 소승불교가 권력과 결탁한 귀족 승려들의 야망을 실현시켜주는 도구로 자리잡아가는 동안 밑바닥의 민중들에게도 종교는 서서히 마음 속에 구원의 희망으로, 위안의 상징으로, 아늑한 쉼터로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주린 배를 안고 텅빈 항아리 바닥을 긁어 모은 한줌 쌀을 바치며 불공을 드리는 것이 목숨을 건 소망이 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원효는 민중의 타는 목마름을 이해했다. 구도자의 정신으로 수행에 몰두하는 것만이 부처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발 딛고 서 있는 단단한 땅 위의 현실 속에 부처가 있고 진리가 있음을 알았다. 그는 우리 모두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이며 우리가 바로 부처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 위해 이 땅에 왔다. 민중의 삶 속 한 가운데서 흙과 함께 뒹굴던 예수이자 모하메드이자 석가모니였고 공자였으며 소크라테스였다. 


천상천하유아독존. 구도자위 길을 걸어가고 있는 스님이었지만, 원효는 신에 종속되지 말 것과 복을 빌지 말 것을 설파한다. 헌금과 바꿀 수 있는 모든 욕망들을 신의 이름으로 부추기는 행위들을 거부했다. 모든 존재가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존엄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수천 년을 지나도 변치 않을 단순하고 명료한 진리. 소설 속의 원효는 그것을 전한다. 


기록이 남기지 않은 공백을 허구의 이야기에 담고 있지만, 원효의 밀도있는 고민과 삶의 가치가 공백을 메우는 단단한 기둥이 되어 불법을 능가하는 호소력과 전달력을 갖는다. 요석 또한 원효를 능동적으로 사랑하면서도 그의 결정을 존중하는 한편 자신이 도전해 이루고자 하는 뚜렷한 삶의 목표를 갖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시대극 속의 드문 여성이다. 단 한번의 절정과 완성된 사랑의 환희를 통해, 같은 가치를 향해 한 곳을 바라보면 따로 걸어가도 함께 걷는 것이고 그렇게 함께 열심히 걷다 보면 함께 본 그곳에 도달하여 만나게 되는 새로운 사랑의 진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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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제국 -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감각의 모든 과학
문동현.이재구.안지은 지음 / 생각의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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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여러 감각 중 가장 쓸모없는 것 하나만 골라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몸을 아프게 만드는 통증을 고를 것이다. 통증이 진화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몇 해전, 통증이 없는 남자가 맞는 일을 하면서 근근히 먹고 살다가 여자 친구를 만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 병이 있었고, 실상은 영화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실제로 '선천성 무통각증 및 무한증(CIPA)'이라는 병을 가진 한별양은 아픔을 통해 자기 몸을 보호할 수가 없게 되어, 수없이 뼈가 부러지고 살갖이 찢기는 등,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관절과 다리는 모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발목부터 고관절까지 연골은 모두 닳아없어졌고, 걸을 수도 없다. 통각은 몸을 위험에서부터 가장 먼저 감지해주는 보호장치인 것이다. 


감각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 그리고 생존의 역사와 같다. 빅뱅 137억년 전, 지구 탄생 46억년 전, 최초의 생명 탄생 39억년전, 그리고 30억년간 박테리아와 조류 등의 단세포 생물이 지속된 이후, 진화 역사상 빅뱅에 대적할만한 변화의 시기, 캄브리아기의 폭발이 5억 4천 2백만 년전부터 4억 8천 8백만년까지의 기간 동안에 일어났는데, 그 이전까지의 생물이 그저 물컹물컹한 단백질 덩어리가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자기 몸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플랑크톤을 소화해 다시 그 구멍으로 뱉어내는 일을 하는 단순한 존재였다면, 그 기간동안의 폭발적 변화를 일으킨 것은 눈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의 직접적 접촉과 더듬이를 통한 감각이 전부였던 생물체에 눈이 생겨나면서, 이것이 진화에 있어서 혁신적인 변화의 계기를 만들었다. 캄브리아 말기, 어떤 우주적 사건에 의해 지구상에 빛의 스위치가 켜졌고, 삼엽충이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을 뜬 삼엽충은 먹이를 독식하며 생존경쟁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고, 이후 모든 동물들이 삼엽충의 신체적 특성을 갖게 되는데, 특히 눈은 최초의 능동적 포식자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더욱 강한 기능을 장착한 생물체를 등장시켜 포삭자가 피식자가 되는 정글같은 시대를 도래시킨다. 이러한 먹이사슬 속에서 눈의 진화는 가속화되며 수많은 생명체들을 탄생시켰다. 현재 인간의 뇌는 약 40% 가량이 시각 정보 처리에 할애되어 있다.


보는 것 뿐만 아니라,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피부로 감촉을 느끼고, 코로 냄새맡고 하는 모든 종류의 감각들을 실제로 처리하는 것은 뇌이다. 각각의 감각 기관은 물리적, 화학적 정보를 받아들여 이를 적절하게 뇌가 수용할 수 있는 전기 신호로 변환하고 내보내는 역할만 할 뿐, 그러한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일은 뇌가 한다. 만일 태어난 갓 아기 고양이의 눈을 꿰매어(실제로 이런 잔인한 실험을 진행했다) 못보게 했다가 나중에 풀면 그 고양이는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뇌가 처리할 수 없어서 여전히 시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13년간 모든 외부의 신호와 차단된 채 제한된 공간에 갇혀있던 소녀가 구출되었을 때, 아무리 가르쳐도 언어를 배울 수 없었다. 이런 예들은 태어난 후 뇌가 자극을 통해 시냅스들의 연결을 어떻게 이루느냐에 따라 감각의 처리라는 두뇌와 인지적 지능적 활동이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운동 피질은 행동을 계획하고 움직임을 실행하는 기능에 관여하는 뇌의 영역이다. 전운동 피질의 영역은 시각적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다. 1990년대 초 짧은꼬리원숭이는 연구원이 바나나 먹는 모습을 보자 전운동 피질의 뇌가 활성화되었다. 자신이 직접 하는 행동이 아님에도 남이 하는 행동을 보고 그가 하는 행동에서 일어나는 똑같은 뇌의 활동이 일어나는 현상이 공감 능력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발화하는 신경이 거울신경이다. 거울신경은 타인의 마음이나 의도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바탕이 된다. 


EBS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감각의 제국>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감각의 제국이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감각을 처리하는 두뇌의 작용에 대해 치중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런 두뇌의 작용이라는 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5부작의 내용을 한권의 책으로 묶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듯 보인다. EBS 다큐를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편당 몇 파트로 나뉘어 제공하고 있다. 글자가 제공하는 것과 시각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차이가 있으므로 동영상을 함께 보면 감각을 처리하는 두뇌의 작용에 대해 더욱 풍부한 이해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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