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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 1 - 요석 그리고 원효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삶이 알 수 없는 갈증으로 허덕일 때마다 습관처럼 종교를 찾았다. 인간은 왜 종교를 발명했을까. 수렵채집을 하던 원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만년동안 어느 시대, 어느 문명에서도 인류는 한 번도 종교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진리와 영원의 안식을 향한 갈증은 단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헌금과 보시를 통한 사후 보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비를 잃은 소녀 단은 불단 앞에 들어가는 일이 허락되지 않아, 거대한 장륙존상 꼭대기에 매달린다. 불단은 한 발짝만 더 디디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천민들에겐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먼 거리였다. 그 금지된 한 발자국은 죽음으로 응답했다. 신성한 불단 앞에 천민들의 출입을 허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소녀가 믿은 것과 종교사이의 갭은 폭력으로 채워져 있었다. 신라시대 신분제가 가진 귀족과 천민 상의 거리였다. 그 거리감이 당시 불교의 상징이었다.
귀족들을 위한 종교, 배우고 깨친 사람들만을 위한 위안과 구복. 가난하고 배고픈 민중을 품을 수 없이 고귀하게 높은 정신적 세계를 지향했던 불교는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결코 다가갈 수 없었던 높고 단단한 신분의 벽이기도 했다. 소승불교가 권력과 결탁한 귀족 승려들의 야망을 실현시켜주는 도구로 자리잡아가는 동안 밑바닥의 민중들에게도 종교는 서서히 마음 속에 구원의 희망으로, 위안의 상징으로, 아늑한 쉼터로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주린 배를 안고 텅빈 항아리 바닥을 긁어 모은 한줌 쌀을 바치며 불공을 드리는 것이 목숨을 건 소망이 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원효는 민중의 타는 목마름을 이해했다. 구도자의 정신으로 수행에 몰두하는 것만이 부처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발 딛고 서 있는 단단한 땅 위의 현실 속에 부처가 있고 진리가 있음을 알았다. 그는 우리 모두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이며 우리가 바로 부처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 위해 이 땅에 왔다. 민중의 삶 속 한 가운데서 흙과 함께 뒹굴던 예수이자 모하메드이자 석가모니였고 공자였으며 소크라테스였다.
천상천하유아독존. 구도자위 길을 걸어가고 있는 스님이었지만, 원효는 신에 종속되지 말 것과 복을 빌지 말 것을 설파한다. 헌금과 바꿀 수 있는 모든 욕망들을 신의 이름으로 부추기는 행위들을 거부했다. 모든 존재가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존엄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수천 년을 지나도 변치 않을 단순하고 명료한 진리. 소설 속의 원효는 그것을 전한다.
기록이 남기지 않은 공백을 허구의 이야기에 담고 있지만, 원효의 밀도있는 고민과 삶의 가치가 공백을 메우는 단단한 기둥이 되어 불법을 능가하는 호소력과 전달력을 갖는다. 요석 또한 원효를 능동적으로 사랑하면서도 그의 결정을 존중하는 한편 자신이 도전해 이루고자 하는 뚜렷한 삶의 목표를 갖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시대극 속의 드문 여성이다. 단 한번의 절정과 완성된 사랑의 환희를 통해, 같은 가치를 향해 한 곳을 바라보면 따로 걸어가도 함께 걷는 것이고 그렇게 함께 열심히 걷다 보면 함께 본 그곳에 도달하여 만나게 되는 새로운 사랑의 진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