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속으로 언급할 때 투비알오투비라고 했었는데, 알고 보니 To Be oR nOt To Be를 줄여서 쓰는 말줄임 코드였다. 이 냉소적이면서도 풍자적인 표현이 작가 자신을 잘 설명해준다. 


현재의 속도로 평균 수명이 늘어난다면 미래의 어느 날엔 분명 수명을 정복하는 날이 있을 것이고, 그와 더불어 늙는 것을 멈출 수 있는 날이 생길 것이다. 그럴까? 그렇지 않을까?  내가 골골거리다가 조금 덜 사는 건 억울하지 않은데, 더 일찍 죽게 되면 미래의 다가올 어떤 중요한 변화를 더 많이 놓치는 게 좀 억울하긴 하다. 사놓은 책 다 못읽고 죽어도 억울하겠구나. 


이렇게 말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일요일 교회 뒷자리에 앉아서 비몽사몽 설교의 비논리성들을 차곡차곡 은유로 바꾸어 저항감을 죽이는 것처럼, 나는 의심한다. 인간이 인간의 수명을 정복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는 회의적이다. 하지만 내 생애의 아주 짧은 동안 회의적인 것들이 마법처럼 바뀌어 그대로 생활이 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녹색 화면에 텍스트로 채팅 메시지를 주고받고 깔깔거렸던 시절,  어떤 미래에는 통신상으로 사진과 영화로도 주고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얼마나 회의적이었던가, 눈이 휙휙 돌아갈 변화를 겪고 나서도, 처음으로 와이파이가 되는 전자수첩으로 인터넷을 반나절 걸려 로딩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본다는 상상에도 코웃음을 쳤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은 다르지 않은가. 다른가. 매일매일 조금씩 더 인류의 수명은 늘어나고 있지만(하루 15분이라고 기억), 그것은 제3국의 질병 퇴치 수준이 끌어올려지는 효과라고, 불치병 정복에 힘입은 통계적 결과지 실제로 인간의 수명을 정복하는 일은 힘들지 않겠느냐 반문해본다. 아 모르겠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인간이 수명을 정복한다면, 백살이고 이백살이고 삼백살이고 늙지 않고 사는 일이 가능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백년법>이 비슷한 소재를 가진 장편 소설이라서 비슷하다고 했더니, 이런 소재는 별도의 쟝르고 분류할 수 있을만큼 흔하디 흔한 것인 모양이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하고 가정하는 미래 소설들 말이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아마도 큰 일이 날 거다. 기하급수적 인구증가에 따라 지구는 초만원이 되고, 포도송이처럼 오골오골 붙어살아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물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 한, 사기꾼 멜서스가 아무렇게나 던졌던 예언이 사실이 될 것이다. 그런데 커트 보네거트는 반대로 그 미래의 어느날 미국의 인구가 4천만으로 고정된 사회를 그렸다. 너무나도 아늑하고 식량은 풍부하고 인간이 자연을 해치지도 않는다. 수명 뿐만 아니라 늙음이란 것이 극복된 그곳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56세의 '어린' 남자가 와이프의 출산을 기다리는 병원 대기실, 세쌍둥이가 태어나려고 하는 그곳 풍경을 그리고 있는데 냉소적인 화가가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는 이렇게 잘 컨트롤된 사회를 내내 비아냥 거린다. 그리고 그렇게 잘 조화된 사회가, 그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낙원인가 아닌가를 묻고 있기도 하다.


사람이 죽지 않고, 또 아기가 태어나는데 어떻게 4천만이라는 인구가 늘 그대로 유지될까. 그 천국 같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비밀은 자발적 선택에 있다. 이게 뭔소린가 하면서 읽어나가다가, 아 이런 상상을 한 작가의 천재성에 반해 버린다. 어느 시스템이든 저항과 불평불만이 생기기 마련이다. 수십억 수백억을 넘어서던 인구를 4천만으로 고착시키기까지의 과정은 물론 묘사되지 않는다. 어떤 흉칙한 역사가 결과적으로 '살기 좋은 낙원'으로 인도했을 것이다. 그 낙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재생산의 권리는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인가? 결국 이 짧은 소설이 독자들에게 묻고 있는 것은 우리가 가장 근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권리가 과연 타당한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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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3-23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의학관련 글에서 인간의 수명은 아무리 늘어도 120세는 넘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과연 지구 입장에서 인간이 좋을지는 의문입니다. 책 재밌겠어요.^^

CREBBP 2018-03-23 10:47   좋아요 0 | URL
단편이라 영문 버전도 텍스트로 쉽게 구할 수 있어요. 번역본은 출판사에서 무료 대여하는거 같은데 단편이라 원래가격도 5백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