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죽음은 개별적이다. 영혼이 서로 만나 함께하고 싶어서 따라죽으면, 그래서 죽음으로 함께가 되리라는 믿음은 죽을 작정을 해서 죽는 그 순간기까지만 유효하다. 산 자에게 죽음 이후는 같아 보이지만, 죽은 자에게 동시성의 두 죽음은 함께 시작한 평행선일 뿐, 죽음이 만남을 회복시켜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자, 살아남은 자들은 죽음 속에 속한 모든 자들을 같은 장소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연기처럼 흩어진 형체없는 어떤 실체가 죽음이라는 세계 속에서 죽은자들 서로에게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혹 그럴까? 어쩌면 그럴지도.


사랑하는 구가 길바닥에서 죽자, 담은 따라 죽는 대신, 구를 꼭꼭 씹어 먹는다. 먹으면 만나질까? 구의 죽은 머리카락, 손톱, 살점을 뜯어 먹으면 소화되어 담의 살이 피와 살이 섞이면 그 몸속에서 구를 느낄 수 있을까. 구가 담을 먹은 이유는 또 있다. 검은 옷을 입은 그 사람들이, 그 빚쟁이들이 그를 찾지 못하도록, 그의 시체를 찾지 못하도록 구를 죽지 않은 것으로 해야 했다. 그들은 구를 죽였지만 구가 죽은 것을 모른다. 온몸이 부서지도록 맞다가, 바스라지도록 계단을 구르고 뭉개지도록 차에 받쳐 너덜너덜 길바닥에 쓰러지고, 그렇게 끝내 자신은 한 번도 만저보지도 못한 부모의 빚에 깔려 희망없는 어둠속에서만 보냈던 푸른 청춘의 주검을 확인한 사람은 담이다. 담은 그들이 구에게서 내장을 파내 팔을 거라고 생각한다. 담은 구가 죽은 것을 모르게 해야 그들이 계속해서 구를 찾아 시간을 허비할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는 구가 한 번도 만져보지도 못한 부모 빚 때문에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할 돈을 벌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개고생을 하는데, 그러다가 힘들어서 담과 함께 도피 생활을 시작하자, 어디든 찾아가서 위협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끝내는 그를 죽음에까지 몰고 간다. 법이, 약자에게서라면 남아있는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기 위해서 존재하는 듯한 법이, 실제로 자식에게 빚을 전가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 법이라는 것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끄트머리의 아주 희미한 빛도 내어주지 않았고, 구는 자신이 법적으로는 갚지 않아도 되는 부모의 빚을,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빚을 회피할 방법이 없다.  자식에게 빚을 전가할 수 없는 법이 유효한 곳은 돈이 주체할 수 없을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아도는 사람들만을 향해 환히 비추는 밝고 화려하고 넘치게 풍족한 곳이다. 구는 그곳에 없다. 구는 구가 속한 곳에 있다. 구는 왜 살아있는 부모의 빚에 쫓겨야 했을까. 사회는 왜 그런 불합리를 내버려두는 것일까. 언제가 되어야 우리 사회는 이런 소설을 읽으며, 뭐 이렇게 비현실적인 내용인거야? 하며 책을 내던질 수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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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12-23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REBBP님, 2016 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CREBBP 2016-12-23 22:21   좋아요 1 | URL
오 즐거운 크리스마스 선물이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