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는 스핑크스가 있지만, 그리스 신화에도 스핑크스가 있다. 오이디푸스의 신화에 등장해서, 아침에는 네발로 걷고, 점심에는 세발로 걷고, 저녁에는 두 발로 걷는게 뭐게? 하고 퀴즈를 내고는 맞추자 열폭해서 죽은 그리스 스핑크스는, 이집트 스핑크스와는 달리, 상반신은 여자고 하반신은 날개 달린 사자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서 맞추지 못하면 잡아먹는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그래서 사악하다. 사악하지만, 비밀을 풀자 자폭한다.


<구스타브 모로(1826∼1898)> 출처 국제신문              기원전 530년 전에 만들어진 스핑크스 석상                                                                           (그리스 아티카), 출처 나무위키


너무 솔직하지만 않으면 참 좋은 친구일텐데, 라고 생각되는 친구가 어느날 사진 하나를 보여준다.



크고 흐릿한 눈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원작자의 의도는 흐릿한 눈이 아니라 수수께끼의 답을 혼자만 감추고 있으려는 듯한 모호한 눈빛이 아닌가 싶다. She was tall and slight, and strangely picturesque with her large vague eyes and loosened hair. 내가 영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문장과 스토리를 통해 받은 그녀의 'vague eye'의 느낌은 무엇인가 감춘 듯한 신비감에 쌓인 애매모호한 눈빛이다. <켄터빌의 유령>에 들어있는 문학동네 판은 한술 더 떠서 멍하다고 표현한다.



이 여자 어때? 사진 한 장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나. 오 예쁜데? 오 잘생겼는데? 우리 평범한 인간들의 한계는 여기까지인데, 와일드씨는 화자에게 훨씬 더 많은 걸 감지하게 한다. 


사진 한 장. 그 사람을 얼마나 알려줄까. 요즘 SNS에 올라가는 얼짱 각도와 카메라 앵글에 최적화된 조작된 웃음을 가진 사진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광경이다. 그 여자가 지닌 비밀은 무엇일까. 내용은 짧고 간단하다. 그 여자를 길거리에서 반해 찾아다니다가 어느 집 만찬에서 우연히 만나 어렵게 스토킹한 끝에 썸타는 사이가 되었는데, 너무 뭔가 비밀스럽다는 거다. 과부였고, 화자가 사진을 보고 한 눈에 알아낸 것 이상으로 신비감에 쌓여있다. 둘의 대화는 늘 누가 들을까봐 주의의 대상이고 편지는 직접 집으로 배달하면 안되고 도서관에 다른 사람 이름으로 전달한다. 왜 그러냐 어떤 사정이 있냐고 물어도 그녀는 이유가 있으며 자신의 집에서는 편지를 받을 수 없다는 거다. 밀당에 지친 제럴드(남주)는 프로포즈를 하기로 작정을 하고 약속을 잡는다. 


그는 여성의 신비감에 매료되었으면서 동시에 그것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녀의 미스터리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그녀의 미스터리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는 건지 자신도 알 수 없으나, 그를 가장 괴롭게 하는건 여자의 미스터리다. 사랑하는 여자의 실체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런던의 어느 후미진 골목에서 여자를 보게 되고 그녀가 허름한 lodge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아하 그것이 그녀의 미스테리였군, 이제야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되겠거니 생각한 제럴드는 그녀가 자신이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는 거짓말을 듣자, 빼도박도 못하게 그녀가 그 lodge에서 떨어뜨린 손수건을 흔들며 거기서 무얼 하고 있었던거냐고 캐묻는다. 당황한 여자는 울며 말한다. 무슨 권리로 그런 걸 묻냐고 자기는 할 말이 없다고. 다른 사람을 본 거라고, 자기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를 믿지 못한다. 이 신비에 쌓인 여자를 더이상 믿지 못한 남자는 여자를 떠나고, 도시를 떠나 한달 이상 휴가를 보내고 오는데, 다녀 왔더니 여자는 열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신문으로 알게 된다. 


여자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그녀의 비밀을 알고 싶은 남자는 그녀를 보았던 그 월셋집을 찾아가서 주인을 만나 그녀의 비밀을 캔다. 그녀는 그 허름한 집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녀는 밀당의 고수였을까? 무엇 때문에 그에게 비밀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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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30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 여인이 처한 상황에 대입하면서 <비밀 없는 스핑크스>를 읽었을 때, 남자 인물들의 은밀한 시선이 불쾌하게 느껴졌어요.

CREBBP 2016-11-30 23:33   좋아요 0 | URL
여성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이상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맞추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