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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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의 <1984>가 생각나는 작품이다. 기억상실이라는 너무 막장스러운 테마가 앞쪽에 있어서, 뭐 이런 작품에 문학상을 다 주는건가 싶었는데, 조금 읽다 보면 <본 아이덴터티>에서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자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살짝 보였고, 계속 책장을 넘기다보니, 기억상실이란 것은 이 작품에서 전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이야기의 흐름을 엮기 위한 액세서리일 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사건이란 걸 알게 되면서, 현실과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중첩적으로 교차되는 1984가 생각나는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미래를 갖지 못한 어떤 굉장히 우울한 가상의 세계, 가상의 시대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매일 자살을 선택하고, 10%의 부자들이 1%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하는 동안 나머지 90%들은 10%의 1%를 위해서 살아간다. 이야기의 전개는 사변적이고,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의미심장한 대화가 스토리를 끌고 간다. 흔히 감시의 시대에는 도청과 카메라, 첨단 디지털 매체로 인간보다는 기계에 의한 간접적인 감시에 의해 대량의 데이터 처리 방법을 통해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 감시의 주체는 '스파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스파이들은 점으로 존재한다. 스파이들은 스파이로 태어나며, 자신이 스파이인 줄을 모르는 스파이와 자신이 스파이임을 알게 되는 스파이로 나누어져 있다. 스파이임을 알게 된다는 것은 스파이의 세계에서 권력의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해 더 높은 수행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기심과 의심은 스파이의 최대 금기다. 스파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최소한의 이 무능한 사회에서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직장에서 잘리기 전에 아무 회의도 갖지 않고 그저 열심히 일만 해야 하는 것처럼 이 사회에서 스파이들 역시 주는 대로 일감을 받아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 미래가 없는 사회에서 그들은 왜를 묻지 말아야 한다. 


미스터리나 스파이 소설처럼 쓰여졌지만 작품이 독자에게 주는 것은 감각이 아니라 이성이다. 스파이들을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힘이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고 있고, 또한 그 스파이들이 무엇때문에 존재하는지도 작품 속에서 확실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파이들이 자신이 스파이인 줄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노리는 지점은 먼 미래나 디스토피아적 공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디스토피아적 소설이 존재하는 이유가 어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면, 소설 속의 공간은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먹고 샆만한 사람들은 모두 스파이이다. 


X는 기억을 잃는 시점에서 자신의 스파이로서의 존재를 자각했을 지 모른다. 15년간의 경험으로 이룩한 것들을 없애기 위해, 그의 기억을 지웠을까. Y는 기억을 잃은 채로 깨어난 X에게 다가가 조작된 과거 인연으로 자신을 위장하지만 승진을 앞둔 시점에 이 모든 것에 의심을 시작하고, 그 의심의 대가로 좌천되어 한참 낮은 단계의 스파이들이 하는 일인 소설가 Z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는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서류상 언니만 존재하고 본인은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않은 D는 어느날 언니가 사라진 곳에서 언니의 흔적을 쫓으며 언니 행세를 하며, 정신과 상담실에서 기억을 잃은 X를 만난다. 소설을 써서 먹고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소설가 Z는 어둡고 모순된 사회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하지만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B는 조직에서 꽤 윗선에 위치하지만 줄을 잘못서서 더이상의 승진은 어려워지고..이 모든 사람들은 결국은 사라져가고 말 점이다. 점은 전체를 볼 수 없기에 선이 되지 못하고, 그것들은 소멸되고 말지만, 그들은 사회를 의심하고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보고 싶어했기에 소리도 없이 사라져간다. 끝까지 살아남지 못하기에 패자로 불리지만, 스스로 패자이기를 선택했으므로, 그들이 패자의 서에 남긴 것들은 보태지고 모아져서 덩어리지게 될 것이고 그것들의 실체가 무엇이었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각 인물들이 어떤 정형화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뿔뿔이 흩어져서 자신이 보는 것을 기술하는 형태로 쓰여졌기에 리뷰에 내용을 대충이라도 정리하기가 너무 힘들다. 이제까지의 혼불 문학상과는 차별화된 소설이고 문장도, 구조도 좋았으며 몰입하게 하는 게 있다. 글쓴이의 사고와 자본주의적 모순에 대한 현실 비판이 그대로 사변적인 글의 형태로 너무 강하게 드러나 있는 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때로 직접적인 현실 비판처럼 읽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부분이 인문학적 백그라운드가 충분한 독자들에게는 불필요한 설명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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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구마 2016-10-1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빨리 읽어보고 싶어요. 하성란작가님 또한 심사평에 조지 오웰의「1984」가 생각난다고 하셨던 것이 생각나네요.

CREBBP 2016-10-19 17:03   좋아요 0 | URL
네 1984가 전체주의에 의한 감시사회를 그리면서 스탈린과 히틀러를 생각나게 했다면 이 소설은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가 아닌 현실 속에서 우리가 생각지 못한 디스토피아적 부분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