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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의 요리 - 요리사 이연복의 내공 있는 인생 이야기
이연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쓴 전기 스타일의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는 편이 아니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그들은 자주 쉽게, 그들 앞에 이미 날 때부터 주어진 특권과 세상이 만들어지고 돌아가는 원칙인 우연성을 자신의 특별한 노력과 안목과 혹은 홍보하고 싶은 요소로 묻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부의 요리가 요리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그의 성공이 그리 큰 성공이 아니었고, 한 때는 짱깨집 주방장이라고 불렸던, 그가 책에서도 여러번 언급하지만, 공장 노동자들이 공돌이 공순이라고 불리던 시절 짱깨집 요리사라고 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더 낫지도 않았던 연애 시절 아내에게조차 속이고 싶었던 중식 요리사라는 직업으로 어떻게 연일 티브이에서 얼굴을 볼 수 있는 유명한 쉐프가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라고 생각되는 소학고 6학년을 채 마치기도 전에 뛰쳐나와 짱개집 철가방 이전에 사용되던 나무 가방을 조심조심 들고 배달일을 하던 13세 어린 소년이 지금 이 자리에 있기 까지의 시간들이 궁금해서였다.
요리 프로그램이 대유행이고, 뜨거운 불 앞에서 하루 10시간씩 힘겨운 노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요리사가 이제 조금 좋은 시대를 만나 쉐프라는 멋진 이름으로 불리고 잘생긴 용모와 멋진 쉐프 모자와 쉐프용 위생복을 입고 값비싼 칼과 후추가루통으로 공중 쇼를 보여주는 세상이라고 해서 중식 요리사의 팔자가 완전히 핀 건 아니다. 여전히 중국집 하면 우리는 인공감미료의 닝닝한 감칠맛과 노란색 단무지 몇 쪽 그리고 탕수육과 함께 서비스로 제공되는 글로벌 만두를 기대한다. 한국에서 진짜 중식 쉐프가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매일 짜장면과 짬뽕과 탕수육, 그리고 조금 운이 좋은 날이면 팔보채니, 고추잡채니 하는 어딜가나 똑같이 생기고 맛도 똑같이 뻔한 그런 요리들을 늘 요리하는 중식 요리사들에게 언제 그 넓은 중국 대륙과 주변국들의 다채로운 요리들을 해볼 기회나 있을까.
그의 이야기는 그의 외모만큼이나 소박했다. 열세살 어린 나이로 철가방도 나오기 전 냄새나는 나무가방에 담긴 짬뽕 국물을 쏟을까 노심초사 하며 배달을 다니던, 소년 시절을 기억하는 이연복 쉐프가 삶의 질곡에 대해 고생담을 이야기하자면 또 얼마나 산더미같은 이야기들이 있을까만, 그는 그런 것들, 당시 화교로서 처한 환경과 미래가 정직한 노동으로 먹고 사는 것을 유지하는 중식당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 가세가 기울어 비싼 화교학교 등록금을 밀려 학교를 뛰쳐나와 형을 뒷바라지 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일 같은 것들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중식 식단 자체가 짬뽕 짜장면을 위주로한 저렴하고 단조로운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채로운 요리들을 선보이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은 매체의 힘이 어느 정도 작용했던 것 같은데, 그가 하는 식당에 당시 기자였던 박찬일이 취재차 들렀다가 그 맛에 반헤 홀랑 반해 호형호재 사이가 된 이유가 있었고, 또한 그렇게 차별화된 맛있는 음식을 만들게 된 것은 첫째, 대만대사관에서 요리사로 8년 근무하면서 연구하고 익힌 본토 요리 솜씨와 그 이후 일본에서 10여년간 아주 작은 중식당을 운영하면서 갈고 닦은 글로벌한 중국요리 덕분이었다. 물론 대사관에 들어가게 된 건 엄격한 시험으로 선발된 전적으로 그의 실력이었으며, 이후 한국에서는 보더 듣던 요리들을 대사관 부인들로부터 말로 전해듣고 계속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과는 과정에서 그 맛을 찾아나갔다.
요리가 좋아서 요리를 하게 되었다기 보다는, 먹고 살아야 했고, 화교로서 먹고 살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중식당밖에 없었다는 그의 고백에서 진솔함이 느껴졌다. 스무살 시절 아내를 만났을 때 직업을 묻지 않는 아내에게 당당하게 먼저 말해주지 않을 만큼, 그리 자랑스러운 직업도 아니었다. 화교 뿐만 아니라 저학력이라는 사회적 편견에도 많이 부딪혔을텐데, 그러한 언급은 전혀 없다. 어쩌면 그 사회가 그런 편견보다는 성실한 맛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사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요리 과정 중에 쓴 노트도 살짝 지면에 공개되었는데 이런 저런 요리를 시도하면서 메모한 것들로, 정식으로 중화요리를 배우지 않고 혼자서 터득해간 노력의 흔적을 엿볼수 있었다.
요리 얘기는 아쉽게도 매우 조금 나온다. 비록 좋아서 선택한 직업은 아니었지만 그는 유학을 가지 않고도 스스로 중화요리의 맛을 터득하고 요리법을 재현해낸 성실하고 깐깐한 쉐프다. 요리과정의 변칙은 바로 맛으로 직결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면 삶을 때 가로로 무한대기호 모양으로 저어야지,위아래로 저으면 맛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단박에 먹어보고 알아내는 것이다. 면을 뽑을 때도 한 번에 뽑아야 하는데, 너무 길어 잡기 힘들면 한 번 잘라서 나눠 뽑는 요리사들이 있는데 어김없이 사부(중식 세계에서는 쉐프대신 사부라고 부른다)인 저자에게 걸린다. 짬뽕 소스를 만들 때에도 고춧가루를 먼저 볶다가 국물야 하는데 뻑뻑하다고 국물부터 넣으면 색감이 허여멀개진다고 한다. 알아두면 좋을듯.
읽다가 허걱 하고 놀란 일이 있는데, 축농증 수술이 잘못돼서 냄새를 못맡는다는 것이다. 후각의 상실은 요리사에게 엄청난 재앙일 수밖에 없다. 몸으로 익힌 감각으로 맛을 재현해내면서, 후각 없이 맛으로만으로도 미묘한 식감을 되찾은 그는 이제껏 비밀이었던 이 사실을 책에서 이제서야 털어놓는다. 과연 한국 최고의 중식 요리사라고할 수 있는 위치에서 인생의 드라마까지 갖추었다. 읽다가 궁금해서 탄탄면을 찾아봤는데 마침 우리가 즐겨보는 <오늘 뭐먹지> 코너에 소개된 적이 있다. 고맙게도 무료라서 인터넷을 뒤지지 않고도 티브이에 지난 방송을 찾아서 보았다.
그가 하는 식당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식당 이름이 목란이다. 요즘 티브이에 많이 나오다보니 손님이 엄청 많은 모양인데, 유명세에 비해 돈은 많이 못번 모양이다. 가게세 얘기도 나오고 딸이 홍대 미대 진학할 때, 부모 도움없이 스스로 벌어서 미술 학원도 다니고 재료도 샀다고 하니..읽어보면 덤덤하게 이야기하듯 쓴 책이지만, 나름의 인생철학이 숨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애쓰고 나서서 드러내지 않는 방식의 자신만의 원칙과 가치관을 읽을 수 있었다.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목란에 한 번 들러 배추찜도 먹어보고 싶고, 동파육과 개운한 짬뽕과 배추와돼지고기로만 하는 짜장면과 또 그의 매와 같은 감독아래 뽑았을 면들과 기름으로 반죽한 튀김옷으로 만든 탕수육도 먹어보고 싶다. 다 먹어보려면 몇일 걸리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