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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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일치하는 시간. 매에게 토끼의 죽음은 삶이다. 야생의 순수한 생명 그 자체다. 토끼를 죽이는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인간이 '길들인' 매는 사냥한 토끼를 빼앗기고 몇점을 먹고 나서 사라진 본체를 알지 못한 채 다시 또 사냥을 한다. 토끼가 살아 도망간다는 것은 야생으로서의 매에게 목전의 먹이를 놓치는 것이고 그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두 선택지 사이에서 후자다. 야생의 삶은 그것이 법칙이다. 내가 살면 적은 죽고 적이 계속 살면 나는 죽는다. 매에게 사냥은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이어야 한다. 살아남은 매 만이 유전자에 복제된 자기를 남길 수 있다. 맹금류가 사는 방법은 반드시 다른 동물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게 자연이고 그게 질서다. 자연을 사랑한가는 것은 생존을 위한 살육까지도 사랑한다는 것을 말한다. 


 나는 부족한 자들의 안식처인 기분좋은 우월감에서 위안을 찾았다.58 

 상처받은 자가 도망칠 곳은 우월감이었을까.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깊은 상실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 이해는 보이지않는 어떤 가치가 일치하는 공통의 영역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아버지의 상실이라는 공통분모는 가치를 초월하지 못했다. 그녀는 동물애호가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야생성이라는 자연의 질서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우월감을 확인한 게 아니었을까. 애초 길들이기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그 동물에 감정이입을 하고 참매를 자신의 세계에 데려오기보다는 자신이 참매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해도, 참매는 자유롭지 못했다. 참매는 사냥한 토끼와 꿩을 맘껏 헤처 먹지 못하고, 주인에게 돌아와야 했다. 길들여진 것의 자유는 억압 속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끝까지 그녀의 참매 메이블이 딱했다. 

그녀가 참매를 길들이는 과정을 통해 상실감을 처리한다는 발상은 메이블을 길들인 자신과 반대로 그것에 실패한 화이트와 비교함으로써, 야생을 다루는 것에 대한 철학을 선명하게 두 개의 가치로 나눈다. 그녀는 참매길들이기에 실패한 과정을 책으로 옮긴 화이트의 참매라는 책을 통해 그가 실패하는 과정과 자신이 성공하는 과정을 싱크해서 대조했으며, 화이트가 실패한 이유는 매 훈련을 은유적인 전투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모비딕이나 노인과 바다처럼 참매는 동물과 인간의 문학적 조우였고 이것은 정신을 겨누는 정교도적인 전통과 잇닿아 있었다.61 

내게 매 훈련은 매의 비행을 한껏 즐기는 것일 뿐 그로 인해 생기는 죽음은 즐기는 게 아니었다... 나는 수백 년간 사회적인 특권과 정당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느긋함을 보았다. 256 

그녀도 그걸 인지했다. 매길들이기는 영국인들의 재수없는 특권의식, 귀족의식이 깊이 배어있다는 것을. 또한 매길들이기에는 어쩔 수 없는 살육이 동반하며, 거기에 따르는 책임에 대해서도 변명을 해댄다. 좁은 우리 안에서 항생제로 범벅이된 먹이를 먹고 자란 육류를 먹는 대신 메이블이 잡은 신선한 토끼와 꿩을 대신 먹고 또한 메이블도 먹는다는 것이다. 빈약한 변명보다는 오히려 떳떳하게 이런 죽음을 즐기는 것이 나았을 뻔했다. 

 매 안에는 후회나 깊은 슬픔이 있을 수 없었다. 과거도 미래도 없었다. 매는 오직 현재에 살았고, 그게 나의 피난처였다. 나는 매의 줄무늬 날개의 움직임에 몰두하는 것으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매 안에 죽음이라는 퍼즐이 붙잡혀 있다는 것을 그 안에 나 또한 붙잡혀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257 

 날카로운 매의 발톱에 여기저기 긁히고 상처난 몸으로 야생의 들판에서 참매가 잡은 꿩과 토끼를 직접 잡아 먹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 털을 뽑고 뼈마디마디를 부러뜨려 죽이는 헬렌(저자)의 상실의 슬픔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공감할 수는 없었다. 동물을 다루는 방법은 세 가지다. 먹기 위해 사육하는 동물, 살아있는 장난감 혹은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펫으로서 삶의 동반자로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 그리고 자연 그대로 그들이 속한 그 세계 속의 질서를 건드리지 않고 그들은 그들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살도록내버려두는 동물. 앗 하나 더 있다. 신기하니까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동물원에 전시하는 동물. 내 식대로 구분한 이러한 분류 속에서 참매길들이기는 일종의 애완동물이다. 다만 참매의 야생성을 즐기기 위해, 매가 사냥할 수 있도록 날게 하고, 다시 주인에게 되돌아오도록 훈련시키는 것일 뿐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이다. 어린 매 한마리를 데려다가 먹이를 채 먹게 하고, 자신의 주먹으로 날아오게 만드는 전 과정, 그 깨알같은 디테일과 의식 사이를 오가는 망망하고 장황한 감정들, 추억과 상실들. 잊기 위해 다루기 힘든 동물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굴복시키고, 잔인한 것들을 쓸쓸히 묵도하는 것. 문장이 아름답다는 해외 매체들의 극찬에는 해석이 필요할 것 같다. 그 극찬들... 가만가만히 읽어보니 구체적이지 않고 피상적이다. '놀랍다. 기적이다.예리하다 전율하게 한다. 대단히 드문일이다. 설렌다. 매혹적이다...' 등등  
나에게는, 참매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는 학대하게 된 화이트의 실패한 참매길들이기나, 자연학자로서, 동물애호가로서, 참매를 잘 이해하고, 메이블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서 매와 하나가 되어 완벽하게 매를 길들인 이 책의 작가 헬렌이나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다. 야생인 자연마저도 인간의 위안에 이용하려는 이기적 인간의 희생양이 된 참매 메이블에게 몇 번의 기회가 생긴다.  헬렌은 온몸을 찢겨가며 메이블을 찾아 온 들판을 뛰고 기어 메이블을 찾아낸다. 나는 메이블이 더 멀리 더 힘차게 날아 더는 나른한 평온이 야생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세계로 치열한 경쟁의 세계속에서 잡은 토끼를 그자리에서 배가 부르도록 먹고 또 멀리 마음껏 날아갈 수 있거나 굶어 죽거나 하는 그 진짜 야생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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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30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을 다루는 방법 ㅡ
1. 박제
2. 동물백과사전
3. 뼈 표본 등등 샘플과 특정 기호로 종`을 전시

저는 이 책을 안 읽어서..뭐라 할 말은 아닌데..^^
읽어봐야겠죠..언제고...읽게 되겠죠..^^

우리 선조들 그러니까 고구려 민족이라 해야 하나요?
이들 역시 매를 잘 다루는 민족였다고 해요.
매는 매우 고가의 상품이기도 해서 (훈련이 잘된 매는 특히나) 나라간의 무역품으로도 쓰일 만큼 ..
우리말 시치미 ㅡ시침떼다 ㅡ의 어원이 바로 그 매의 주인이 매에게 달아놓은 표식을 (후에 이게 너무 시장분위기를 해친다하여 금지되니까) 떼는 데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읽었네요.
그러니까 ㅡ 재수없는 영국뿐 아니라...매길들이는데엔
우리나라 역사에도 ㅡ있었다.는 말을 드리고 싶었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하게 읽고 갑니다.
(제 얘기는 뭐..단지 그렇단것일뿐 ㅡ반박이나 그런건 절대 아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