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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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가장 어두운 곳에서 멸시와 모욕을 당하며 일하는 사람의 직업을 말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몸으로 벌어먹고 사는’ 창녀들일 것이다. 돈을 위해 육체적 욕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섹스를 서비스로 제공하는 사람들은 양심과 정의를 파는 부도덕한 일반 사람들의 무시와 천대의 두꺼운 장막 뒤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몸을 팔며 살아가던 나날들마저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들이 되어 그리워하게 되는 더욱 참혹한 시간이 병든 노년이라는 이름으로 기다린다. 육중한 몸 속의 모든 장기들이 기능을 잃고 머리 속 뇌세포가 모두 뿌연 죽음으로 가득 차 과거와 현재를 구분할 수도 없을 때, 옷을 모두 벗고 추한 나체를 드러낸 채 부츠를 신고 레이스 달린 속옷을 스카프처럼 목에 감고 교태를 부리는 로자 아줌마의 죽음에 이르는 여정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소년은 열살(로 알고 있는)난 모모이다. 


도시의 가장 하층민으로서, 서로 다른 종교와 믿음을 가지고 프랑스인들과 유리된 채 가난한 유색인들이 섞여 살아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짜리 건물의 맨 꼭대기 층에 바로 그 왕년엔 창녀였던, 그리고 그 창녀였던 시절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빛났던 시간이 되어 버린, 로자 아줌마가 있다. 늙고 병들어버린 육체에 갇힌 로자 아줌마는 더 이상 팔아먹을 것이 없어, 창녀가 낳은 아이들을 맡아 기른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자신을 기르는 대가로 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안 날 충격을 받는다. 사랑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에 자기를 기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상심할 만큼 어린 소년은 로자아줌마와 깊은 밀착 관계에 놓여 있다. 창녀가 낳은 딸이지만, 아랍인이라는 사실에, 학교에 갈 수 없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모모의 교육을 맡게 되는 사람은 유태인인 로자 대신 아래층 카페에 사는 하밀 할아버지다.  학교에서 받는 교육 대신, 그가 자라면서 주워들인 환경이 그의 가치 체계를 형성한다.  로자가 쓰는 유태인의 언어도 쓰고, 하밀 할아버지가 쓰는 자신의 아랍어도 배우고, 프랑스말도 할 줄 안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P13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른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세상과 조금은 다르다. 아이들이 자란 한정된 공간과 짧은 시간 동안 획득한 경험의 한계로는 어른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이들이 보는 세상을 아이들이 보고 알고 그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과 사회의 잣대로 보는 세계와는 차이가 있다. 어린 모모의 눈에 창녀는 예쁘고 향기나는 존재며, 자신에게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엄마라는 그리운 존재다. 아이에게 창녀는 바로 로자 아줌마에게 돈을 보내는 사람들이며, 가끔씩 찾아와 아이들을 안고 입을 맞추고 데리고 나가 놀다 오는 부러운 존재다. 아이의 세계에는 로자 아줌마와 가난한 주변 사람들에게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조합해서 형성한 고유의 가치관이 있다. 아동보호법 같은 것으로 인해 창녀가 아이를 낳으면 양육권을 박탈하고 보육원 같은 곳으로 보내졌던 사회적 제도에 대한 적대적인 가치관은 로자 아줌마를 비롯하여 자기 아이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창녀들의 세계가 그대로 아이에게 투영된 것일 것이다.  안락사에 대한 강한 지지와 병원의 치료에 대한 거부감,  창녀의 아이들이 보내진다는 빈민구제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아이에게 빈민구제소와 요양 병원이라는 기관은  로자가 죽으면 자신이 보내지게 될, 로자가 경험한 가장 비참한 아우슈비츠 같은 곳이다.


아이들 눈에 비친 세계가 우리 눈에 재조명되었을 때 때로 우리는 생각의 경로를 바꾸고 알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  척박한 환경에 내몰린 아이들은 그 곳에서 적응한다. 매춘과 도둑질, 마약, 거짓말, 그런 것들을 일반인들이 악으로 규정하고 경계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그들의 삶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매춘과 도둑질이 날 때부터 그저 생계 혹은 심심풀이나 주의 끌기의 한 방법일 때, 아이의 세계는 그것이 일상이 된다. 매춘과 도둑질과 거짓말마저 아이의 세계이기 때문에 이해와 관용으로 읽어내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이다. 


열 살짜리 어린 소년이 어느 날 갑자기 4년이라는 시간을 뛰어 넘어 열 네 살이 된 것 일과 그 이유는 전체 스토리에서 매우 대단한 비밀이 드러나는 엄청난 사건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존재와 태생에 얽힌 복잡한 출생의 비밀은 로자 아줌마와의 사랑 앞에서 아이에겐 거의 무의미한 것이 된다. 단지 열살에서 열네살로 뛰어넘는 경험을 할 뿐이다. 치매로 의식과 무의식을 왔다갔다 하면서 가끔씩 정신이 들었을 때,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인지하는  로자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은 죽음이 아닌, 죽음의 연장이다. 치료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 치료에 의한 연명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로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지 못한 채 몇십 년이고 병실에 갇혀 고문받는 삶이다. 그녀의 트라우마는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조차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죽을 권리를 갖지 못하고 처방전에 의해 온갖 학대를 받게 되었다고 믿게 만든다. 로자가 점점 죽음에 다가가고 혼수상태가 길어지자 아이는 이제 로자가 눈물 흘리는 것조차 살아있는 것에 대한 확인으로 기뻐하게 되는 처지가 된다.


잔인한 시간이 흐른다. 로자에겐 아우슈비츠의 망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지하 대피소가 있다. 그리고 삶의 어려운 순간에 종교처럼 위로를 주는 침대 밑 히틀러 사진이 있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힘든 시간이 찾아오면 히틀러의 시간들을 생각한다. 그 절대 절명의 끔찍한 기억은 현재의 끔찍함을 덜 끔찍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아이는 세 살 이후부터 자신이 본 세상을 고백하듯 이야기의 화자가 된다. 열 살의 나이로 오로지 자신이 의지할 단 한 명의 사람이 죽어가는 것은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울까. 그러나 그가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로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병원으로 실려가고, 자신과 떨어져서, 고통을 당한 채 죽지 못하는 모습이다. 마지막의 선택은 가슴을 쿵 쿵 하며 여러 번 때린다. 충격적이고도 끔찍한 결말을 이렇게도 아름답게 묘사하다니.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의 필명이름이 만들어낸 로맹 가리의 스캔들과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 그리고 가혹한 평단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삶에 대한 동경으로 만들어낸 드라마틱한 두번째 콩크루 상의 수상작가에 얽힌 이야기가 힘을 잃는다. 반 이상을 읽을 때까지도, 뭐 명성에 비해 그냥 조금은 뻔한 성장소설일 뿐이네 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을 덮고 난 후 한동안은 먹먹한 감동에 여운이 길다.  


사람은 사랑이 없어도 살 수 있나요?  하밀 할아버지는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는 생을 떠났고, 그의 생은 남겨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로자 아줌마와 7층짜리 건물에서 로자의 죽음을 묵도하며 똥오줌을 치워주고 먹을것을 나눠주고 의사를 업어 올려가고, 의식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95킬로의 거구를 함께 들어 흔들던 세네갈, 알제리, 유태인과 아랍, 베트남인 사람들. 가족과도 같은, 아니 어쩌면 가족이라도 힘들만큼 그들을 서로 돕게 했던 끈끈한 연대의식의 정체는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시간을 거꾸로 가면 자신의 과거와 만날 수 있듯, 이제 그 아이는 정규교육을 받고, 훔치지 않고도 먹고 입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겠지만, 아이의 각인된 사랑이 끝난 시점부터 남겨진 생 그 생경하게 펼쳐질 이제는 달라질 삶이 기기막힐 뿐이다. 하밀 할아버지의 말처럼 사랑이 없이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사랑이 없는 순간부터 남아있는 생, 이제 시작일 뿐일 남아있는 생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스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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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7-21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책을 잘 읽었는데 독후감을 시작하기가 어렵네요. 서평 잘 봤습니다~

CREBBP 2015-07-21 17:51   좋아요 1 | URL
자꾸 쓰다 보면 늘더라구요. 처음부터 내용을 잘 정리하려 하지 마시고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부터 공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