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밥상
이상권 지음, 이영균 사진 / 다산책방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산과 들에서 찾은 아득히 그리운 먹거리들이 만들어내던 이야기는 가난만이 독점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어권 사람들에게 풀(grass)이라는 범주는 수십가지나 댈 수 있는 채소나 나무의 이름과는 달리 9천종이나 되는 이 식물종 모두 뭉뚱그려서 그냥 풀이라고 부른다.  최근 읽고 있는 <정리하는 뇌>에서 읽은 내용이다(대니얼 래비틴 p66). 그들의 식탁엔 산과 들에서 막 뜯어내어 무친 향기로운 풀이 없다. 물론 평범한 우리의 식탁에도 그런 종류의 야생풀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나 산과 들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풀을 뜯어 국과 반찬을 끓여먹던 기억은 우리들의 생활 습관에 지나간 풍경처럼 향수로 남아있다. 기억과 더불어 사라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먹거리는 유별나게 향수를 자극한다. 그 먹거리들 중 아직도 우리를 떠나지 않았으나, 우리가 그것들을 구별할 수 없고, 그것들의 맛을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바로 풀이다. 


보리잎, 소리쟁이, 넘나물, 점나도나물, 광대나물, 뚝새풀, 주팝나무, 곰밤부리(벌꽃), 새팥, 댑싸리(지부자), 옥매듭, 쇠무릎, 피, 뱀밥나물(쇠뜨기), 무릇, 민물김, 황새냉이, 메꽃, 마름, 구기자. 하나의 챕터를 구성하는 하나의 풀이름들, 이렇게 21개의 풀들이 모여서 책이 되고도 남아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풀들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다. 


풀들은 자기를 뜯어 먹는 벌레나 짐승들을 이겨 내려고 독을 만들지. 그래서 벌레들이 많은 여름이나 가을에 나는 풀들이 독이 있지. 겨울이나 봄풀은 독이 없어. 특히 겨울풀은 독이 없어. 벌레들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파리가 깨끗하고 맘놓고 먹어도 되는 것이지. 예로부터 겨울을 난 풀은 산삼 보다 좋다고 했어. 그만큼 건강한 풀이라는 뜻이지.  병든 풀이나 안좋은 풀들은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다 죽어 버려. 살아서 추위를 견디어 낸 풀들은 건강한 풀들이야 074


세계 어떤 나라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풀들에 이름이 또 있을까. 풀들의 종류가 우리보다 더 많을듯한 아프리카나 동남아 쪽에서도 풀을 이렇게 뜯어다가 요리해 먹을까? 풀은 현대인의 좁은 눈으로만 보면 밥상에 봄의 향기를 가져다주는 낭만적인 음식이었을 수도 있지만, 초근목피로 춘궁기를 견뎠어야 했을 잔인했던 계절엔 생명을 지켜주는 절실한 생명들이었을게다. 눈밭 속에서 차거운 바람과 냉혹한 겨울을 이겨낸 생명력으로 허기를 달래고 기근과 아사로부터 지켜주던,  땅과 맞닿은 가장 낮은 곳의 식물들은 그래서 하나 하나 개별군들에게 하나씩 별개의 이름들을 가진 소중한 개체들이었던 것이다. 


사방에 흔하기에 욕심부려 많이 뜯어 놓을 필요도 없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뜯어 먹으면 되는 들나물, 먹고 싶을 때마다 싱싱한 것들을 언제든지 뜯었다 먹을 수 있는 재미를 주는 풀들은 살아있는 장바구니이었을 것이다. 흔하디 흔한 것들. 우리나라 들에서 가장 흔한 풀이었다던 소리쟁이는 그냥 맹물에다 넣고 된장만 넣어도 맛있다고. 풀들이 밥상에서 사라진 이유들 중 하나는 그 풀들을 먹거리가 되기까지의 고된 노고 때문이기도 하다. 길쭉한 이파리가 미역처럼 부드럽고 은은한 단맛을 내어 실제로 산모들이 미역국 대응으로 먹기도 했는데, 뿌리에서 더욱 진하고 구수한 맛이 우러나지만 뿌리까지 캐서 다듬는 일이 너무 고되어, 한끼 반찬에 한나절의 품이 필요했다고 한다. 털이 복실복실 나있는 점나도나물은 예로부터 냉이 만큼이나 나물 바구니를 가득 채워왔던 가장 많이 먹던 나물이라고 한다. 밭두렁, 길가, 집주위에서 아직도 흔히 볼수 있는 점나도 나물 역시 우리 식탁에서는 사라졌다 

기억하고,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불러주면 비로소 밥상을 향기롭게 할 수도 있을, 흔하디 흔한 야생초들. 먹거리가 흔해진 지금, 허리를 굽혀 거친 흑을 파내 그것들의 생명이 이루는 환경을 파괴하면서 밥상에 변화를 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름을 알고, 향기를 알고,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으로 오랫동안 우리 선조들의 궁색한 밥상을 채워주었을 나물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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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7-02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리쟁이, 점나도 나물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요;ㅁ;)...아쉽다. 나물 공부도 해야하는 건가;;;

CREBBP 2015-07-02 11:51   좋아요 0 | URL
저도 여기 소개되는 나물들이 정말 보리잎 빼놓고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름을 알면 더 사랑스러워질 것 같아요. 시골길을 걷다가 앗 저거 광대나물이다 저건 황새냉이다 뭐 이런 식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면 숲이 더욱 친근한 느낌일 것 같아요

에이바 2015-07-0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진짜 풀 뜯어먹고 산 사람들은 한국인밖에 없는 거예요? 약초말고 반찬으로요. 나물의 역사에 대해 누가 연구 좀 해줬으면... 외국애들이 고사리 먹는다고 하면 공룡 먹던거 아니냐고 그러던데요. 다른애들은 독초 아니냐고 그러고. 저는 한국인의 지혜를 알려줬습니다ㅋㅋ 얼마나 먹을게 없었으면 풀을.. 하긴 돌이 많죠 우리나라는... 나물, 야생초도 옛말이고 중국산이 점령한지 오래죠. 좀 걸러들어야 할 얘긴데 한반도 흙이 약토라나요? 그래서 같은 풀도 약초가 된다더라고요. ex인삼 .. 그래서 신토불이, 향토 뭐 이런데 약간의 환상이 있나봐요. 집밥의 신화처럼요. 요즘 워낙 인공적인게 많다보니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기도 하겠지만요.

CREBBP 2015-07-02 11:55   좋아요 1 | URL
ㅎㅎ 그거야 전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우겨봤습니다. 누군가 제대로 아시는 분이 읽으시고 정정해주시길.. ㅎㅎ 여기 나오는 야생초들은 저자가 어릴 때 먹었는데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고 그렇지만 누구도 잘 알지 못하고 식탁에 오르지 않는 것들이에요. 중국산을 굳이 수입할 필요도 없이 가장 낮은 곳의 식물들이죠. 우리 곁에 아직도 있지만 먹거리가 흔래져서 이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것들이에요. 하지만 추억의 맛이라는 게 있어 시골 사는 저자(동화작가. 소설가)와 사진가가 함께 다니면서 재현해낸 오래된 맛들이지요. 그렇다고 뭐 조리법이 자세히 나와있는 건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