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먼 곳. 긴 한반도의 맨 끝쪽에 위치한, 서울에서 천리 길 강진. 낯설고 물선 그곳 천주학쟁이 사학 죄인을 경계하여 꼭꼭 잠근
문을 닫아 걸은 유배지 절망적 풍경 속에 홀로 참담하게 내던져졌을 때, 추운 겨울 주리고 지친 몸을 누인 곳이라곤 어두운 들판 홀로 서 있던
주막집 뿐이었던 그곳에서, 다산은 겨울을 나고 열다섯 황상을 처음 만난다. 아전들의 경계가 풀어졌을 때쯔음 적적함을 견디고 밥벌이라도 할
생각으로 문을 연 서당에서 황상은 질박하고 꾸밈없는 더벅머리 소년이었다. 유배지에서 찾은 조개 속 진주가 될 제자 황상이었다. 이 책은 두 사람의 일생을 통한 긴 만남 속에서 주고 받은 시와 시 속의 삶, 삶 속의 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이 가까이 있던 17년이라는 다산의 유배 기간, 해배 이후 다산이 운명을 달리할 때까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아슬아슬하게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까지의 18년 이라는 시간, 그리고 홀로 남은 제자가 스승의 시 속 같은 삶을 가꾸어 살아간 나머지 35년간에 걸친 긴 세월동안 두 개인에게 흐르던 애틋한 정은 촉촉히 읽는 이의 가슴을 적신다. 일생을 흐르는 숱한 세월동안
한결같이 스승을 사모하고 스승을 그리고, 스승의 뜻을 따라 살아간, 그 질박한 시간을 따라가며 책을 읽은 일주일은 참으로 따스한 시간이었다.
칠월 칠석 일년에 한 번 만난는 연인이라면 이토록 애절할까. 황상의 스승에 대한 사랑은 그가 남긴 수많은 시 속에 고스란히 스며있고,
만년으로 갈 수록 더욱 더 스승과의 기억속으로 빠져들며 애닯아진다. 그는 한결같은 인생을 살았다. 강진과 서울 사이. KTX가 빠른
속도로 산천을 누비는 시대임에도 녹녹지 않은 거리다. 전화도, 우편시스템도, 인터넷도 없었다. 천리 길 먼 곳에 계신 그리운 님은 다른 이 아닌
스승과 제자다. 제자 못지 않게 다산은 황상을 몹시도 그리며, 편지를 쓰고, 오지 않은 답장을 원망했으며, 죽을 때가 되었으니 보러 오기를
희망하였다.
많은 제자를 두었지만, 과거 시험에 대한 영향력에 실망한 다른 제자들이 하나 둘 씩 그의 곁을 떠나고 경제적인 이해 관계로 인해 서로
뿔뿔히 흩어진 이후에도 다산이 끝까지 아낀 마지막 제자, 욕심 없이 한 세상 살았던 제자 황상은 오직 한 스승 다산만을 섬기며, 그에게서 처음
학문을 배울 때 받은 삼근계를 마지막까지 간직했고, 스승을 그리며 초월된 삶을 살았다. 스승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그의 삶은 다산의 그림자처럼
스승의 뒤를 쫓았다. 다산과의 인연을 통해 만난 추사 김정희와 그의 형제, 다산의 두 아들 정학연과 정학유, 초의선사와 같은 시대를 대표했던
문인들과 시와 편지로 먼 거리의 벽을 허물고 교류하며 살아갔다.
황상은 아전이었다. 그렇다. 그 아전. 수탈과 협잡의 대명사, 민초들을 억압하고 피땀흘려 지은 농사를 간난아기와 죽은 자의 몫까지 세금이란
명목으로 악착같이 빼앗아 가던 그 아전. 먹고 살기 위해 아전 생활을 하는 젊은 시절의 기록은 기억상실증처럼 이 책과, 모든 기록에서 없다.
그는 세습직이었던 그 아전 생활을 결국 스스로 끝내 버렸고, 산골 깊은 곳에 돌밭을 일구고 집을 짓고 점차 자신과 가족만의 소박한 낙원을 만들며
살아갔다. 노년에는 그 마저도 마다하고 집을 떠나 더 골짜기로 올라가 단칸방 일속산방을 지어 혼자 기거했다. 그러나 애써 가꾼 집과 밭은 소유권
분쟁에 휘말렸고, 이 욕심없고 순수하기만 한 다산의 제자를 평생을 괴롭혀 말년에는 결국 큰 고초를 당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 결말을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안다. 적막한 숲 속 한적하고 그윽한 세계에서 살고자 했던 황상의 삶이 탐욕스런 인간의 본성을 가진 집단들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침탈당했을지.. 허구가 아니기에, 기록이 남긴 단서들로 추적한 실제 존재한 영혼이었기에, 해피엔딩이 아닌 말년의 비참한 결말에 이르게
된 역사적 현실 인식에 순순히 굴복해야 한다.
한편, 다산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캐릭터이다. 꼼꼼하고 집요하고 고집도 세다. 이 책은 그의 치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황상과
맺은 인연,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지인과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와 시를 통해서들이다 보는 그의 일상적 성격은 꼼꼼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한 편으로는
참으로 인간적이다. 유배온 후 장성한 자식들의 공부가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리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편지들에는 세세하게 조목조목 공부 방법에
대한 꼼꼼한 지적과 잔소리가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착한 아들들은 아버지를 뵈러 와서 꼼짝없이 붙들어 앉아 공부만을 해야 했다. 주막집과
제자 이학래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거쳐 다산초당에서 자리를 잡아 기거하기까지, 제자들을 세심하고 엄하게 가르쳐 다산 초당에서 키운 윤씨 자제들을
당시 조선의 가장 뛰어난 지성인 집단으로 만들고 셀수도 없는 수많은 저서들을 출간하는 팀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엔 언제나 아전의 자식 황상이 있었다. 그 자리에 배신 않고 서 있을 그의 사람 황상. 해배된 후 연락이 끊기자 몇
번이고 답장 없는 편지를 보내, 무리일 것을 알면서도, 먼길 자신을 보러 올 것을 바란 스승. 두 사람의 지극한 마음은 결국 제자에게 아득히
먼길을 걸어 방문하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 스승의 사후에도 스승과 맺어진 연을 계속 잇고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제자가 절절히 그립고
애틋하여 눈을 감을 수조차 없었던 스승은, 강진에서 서울까지 진흙길을 헤쳐 마침내 제자가 방문하자, 그제서야 눈을 감는다.
작가 정민선생은
황상의 작품집 <치원유고>와, 황상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을 모아, 퍼즐조각 맞추듯 이어 붙였다. 시와 편지를 분류하여 한자어로
된 원본과 해석본 그리고 해설과 함께 싣는 방식으로 황상과 다산의 삶을 독자에게 전했다. 말과 글이 다른 시대에 한자로 시를 쓴다는 것은
한자어로 된 글을 말처럼 체화시켜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 때에도 글은 지성인들의 향유물이었지만, 21세기에도 그 때
쓰여진 글들은 일반인이 다가가기 어렵고 겁난다. 다른 나라의 고전들이 우리 글로 번역된 것만큼, 쉽고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없다. 한자어가
아니었다면 너무나도 아름답고 서정적이어서 대중적으로도 많이 사랑받았을 그시대의 시와 문학이 매니아층에서만 향유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세계명작이라는 이름으로 어릴 때부터 수많은 해외 고전들을 읽고 자라는 것처럼, 이렇게 절절하고 아름다운 우리 선인들의 문화의 체취를 느낄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래서, 감수성 진한 문장과 해박한 지식을 동반한 정교한 해설, 그러나 원본을 왜곡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편집된 원본을 함께 싣는
정민 선생의 책은 언제나 고맙고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