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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2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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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시를 쓴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막 세상에 태어나와 엉금엉금 기어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본능적 감각과 요구를 노출된 언어로 의사소통하고 조모와 이웃. 어른들에게 흘려들은 옛말과 아이들과 뛰어놀며 터득한 새로 생성된 어린 언어를 함께 들으면서 말에 대한 미묘한 차이들을 감지해낸 모국어, 민감하고 감수성 짙은 청소년기에 밤을 밝히며 빠져들었던 사랑과 번뇌에 대한 언어, 학창시절 수많은 지식들을 배우기 위해 터득한 온갖 종류의 언어, 이 모든 것들의 조합이 만들어낸 말의 실체가 자연스럽게 언어적 뉘앙스를 구분짓게 하고, 화자와 청자 사이의 시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이제까지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도, 십대도 아닌 때, 이미 수많은 시간동안 형성된 이질적 구조의 언어 표현이 굳어진 성인이 타언어권에서 기존의 언어를 쓰는 가족과 살면서 삼십세 이상의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읽기와 듣기로 주로 습득한 언어로 시를 쓴다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의 노력이 필요로 되는 것일까.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단어 사용의 주고받음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차이와 음성으로 소리냈을 때 받는 느낌이 빚어내는 언어감각은 그 언어를 제2 언어로서 배운 사람에게는 메우기 어려운 커다른 구멍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외국인이 어떻게 '맑은'과 '해맑은'과 '말간'의 차이를 잡아낼 수 있을까. 구멍 뚫린 언어가 그것을 메꾸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고유성도 이민자 언어로서 현재 언어의 다앙성과 풍성함에 기여하는 것일까. 이디스 그로스먼이 <번역예찬>에서 영어는 다른 모든 언어와 융합하고 교류해야 풍성한 언어적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민족이 그만큼 다양한 언어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미국 사회에서 영어는 모국어로서의 언어 뿐만 아니라, 성장과정에서 상실된 언어 감각을 다른 형태로 메꾼 이민자들의 언어로서도 다양성과 풍성함을 포함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영어의 생명력이 모든 종류의 이국적인 에너지를 동화시키는 능력에서 부분적으로 연휴하고(p.448)'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 중국어로 글을 쓰며 굶어 죽지 않으려면 중국 작가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으면 안된다. 모국어로 쓴 작품을 본국에 보내 출판하는 경우 검열을 당한다. 그에게 중국어는 과거이고, 영어는 미래이자 아들과의 공감이다. 그리고 또한 다른 언어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이 중국적인 유산에서 더 멀어지고 더 심하게 외로움을 견디고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모국어로부터 자신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도 이해했다.

 

난은 또한 문학권력에서 자유롭고자 했다. 우리나라의 일부 기성 정치인들이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체포되고 실형을 선고받은 것을 하나의 훈장처럼 여기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유명세를 얻기 위해 중국 당국으로서는 건드릴 수 없는 미국의 시민권을 획득한 다음 일부러 귀국을 하여 체포당하는 코스프레를 통해 훈장을 받아내는 행위를 역겨워한다. 시와 문학이란 것이 순수하게 이를 행함으로서 기쁨을 얻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문학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했다. 대중의 기호 충족과 시대적 흐름과 유행에 기대어 선 앏은 문학과 기성작가의 편견과 출판업계의 이익에 좌우되는 문학의 시대상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으며, 삶의 자유로서의 시를 쓰는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류선생은 삶이 과거의 의해 만들어지고 그를 중국에서 추방한 중앙 권력과 관련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망명자였다. 여기에 류 선생의 비극이 있었다. 그는 늘 자신을 통제하고 괴롭힐 수 있는 국가 장치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킬 수 없었다. 기존의 틀이 없으면 그의 삶은 의미도 방향도 잃어버릴 터였다. 바로 이것이 그렇게 많은 망명자들이 향수에 무너져 고통과 애국주의을 찬미하는 이유인 게 틀림 없었다.41

 

밤낮없이 열심히 일해 집과 가게 빚을 단 몇년만에 소유하게 되 댓가는 자신과 자아에 대한 침혹한 자각이었다. 대부분의 이민 1세대가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헌신하여 2세대가 싹이 트고 뿌리내리게 할 수 있도록 토양을 가꾸는데 평생을 다하고 살아가는 데 비해 그가 사업과 집을 위해 빚을 모두 갚고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었을 때는 겨우 마흔살이었다. 아직 살 날이 많이 있었고, 그 많은 시간을 자신이 원하지는 않았던 일을 하는 데 모두 바쳐버렸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그는 이제 시를 쓰지 않을 핑계가 없어져버렸다고 느꼈다. 평생을 목표로 이루가면서 삶의 이유가 되어 주었어야 할 경제적 자립이 불과 몇년만에 끝나자 그는 다시 자신에 대해 아프게 자각했고  시를 쓰기로 한다. 

가슴에 통증이 밀려 왔다 자신이 목표를 잃어버리고 돈을 버는데 정신이 팔려 살아온 것만 같았다. 왜 시를 쓰는 일에 헌신하지 못했던 걸까. 지난 몇년동안 그는 두뇌가 없는 기계처럼 일만 하며 살았다.137

 

그는 속으로 자신을 비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벌레처럼 살며 육체로만 존재한다. 나는 음식이 지나가는 통로이며 걸어 다니는 송장이다. 그는 요즘 걸핏하면 화를 냈다.137

그는 자신의 경제적 자립과 가족을 안전한 층 위에 올려놓은 성취가 기쁘지 않았다. 그는 시를 배반했던 그 시간동안 벌레처럼 살았다고 느꼈다. 그는 핑핑과 가족에게 헌신한 시간들이 시를 빼앗아갔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의 사랑 베이나에 대한 환상이 현실의 구렁텅이에서 자신을 건져 시에 대한 영감을 살려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가 베이나를 만나러 가는 건 슬픈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필요한 일이었다. 시에 대한 영감이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환상에 있는 것이라면 깨어져야 했다.

난은 영어로 시를 쓰기로 한다. 그는 미국에서 적응하고 살기로 했다. 그는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독립적인 여성들이 애국심이라는 명목과 중국 문화의 보존이라는 구실로 과거 찬란했던 중국 역사의 허상에 갇혀 현재의 문화를 전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중국 남자들을 소인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공감한다. 그러나 한편, 남자들이 처한 환경은 어디서나 같다고 느낀다. 생존을 위해 벌어야 하는 엄청난 몸부림 때문에 이미 정신적으로 절름발이가 되고 사회적으로 불리한 입장이 되어, 심하게 고통을 겪은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그리고 웹스터 영영사전을 끼고 다니면서 틈틈히 영단어와 표현을 익히고 영어로 시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그는 자신이 조름씩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그는 시 속에 자신이 지켜야 할 철학을 간직했다. 그는 아직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고, 어쩌면 역사에 남을만큼 문학적으로 훌륭한 시인이 되지는 못랄지도 모른다. 소설 속 기간 동안 난의 가장 큰 성장은 베이나라는 첫사랑의 몽상적 이상을 버리고 현실 속에서 핑핑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처럼 그의 시를 베이나로부터 해방시킨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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